• 서브프라임발 세계 금융대란 원흉들
    By
        2007년 08월 24일 08:26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대통령이 주재하는 서브프라임 대책회의가 23일 청와대에서 열렸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금융시장 불안을 달래보려는 회의였다. 정부는 애초 사태의 본질을 몰랐고, 당연히 이날 회의에서도 특별한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그렇다면 서브프라임에서 발원한 금융대란의 구조적 문제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서브프라임 사태와 한국내 파장

    지난주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대란이 전세계를 강타했다. 나라마다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환율이 급변했다. 유럽중앙은행은 긴급자금을 무려 270조원이나 투입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재할인율을 0.5%포인트나 내렸다. 잠시 진정국면을 지나고 있으나 이번에는 미국 국채시장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한국경제도 이 충격의 한 가운데에 있다. 코스피 주가지수가 16%(최고점인 7월25일 기준)나 떨어지는 등 아시아 국가 중 하락폭이 가장 컸다. 도대체 미국 자산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에 불과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때문에 세계 금융시장이 이토록 요동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태평양 건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위기의 근원: 신용평가기관, 모기지회사, 수요자의 부실합작

    ‘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번역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신용도가 낮은 계층에게 주택가격의 80~100%까지 대출해주는 미국의 금융상품이다. 시장규모가 2000년 1,500억 달러에서 현재 1조5천억 달러로 10배 성장했다. 그러나 이는 부실과 거품으로 이루어진 성장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의 급성장은 세 집단의 역할이 어우러져 가능했다. 우선 수요자들. 수요자들은 미국의 기록적 저금리(2001년 6%에서 13차례 인하돼 2003년 1%) 속에 모기지론으로 자금을 마련, 재테크나 가계소비에 썼다.

    둘째, 모기지 회사들. 이들은 모기지 대출이 부실 위험이 상대적으로 큰 상품인데도 치열한 경쟁 속에 시장을 키워왔다. 이 와중에 모기지 회사들은 심지어 대출심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셋째, 신용평가사, 투자은행, 헤지펀드 등 이른바 ‘첨단금융시장’을 이루는 금융기관들. 투자은행이 모기지론을 기반으로 ‘고수익’ 파생상품을 개발하면, 신용평가사는 이 상품의 신용도를 높게 평가해주고, 헤지펀드는 집중 투자하는 식의 ‘긴밀한 협조’ 속에 서브프라임 관련 시장을 터무니없이 넓혀왔다.

    그러나 이는 오래 지탱하기 힘든 부실 합작이었다. 미국에서 저금리 정책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기호전과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저금리 장기지속에 따른 부동산 버블 조짐, 무역수지적자 등으로 금리인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미국정부는 2004년 6월 이후 17차례에 걸쳐 금리를 현행 5.25%까지 올린 상태다.

    저금리 국면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에게는 무척 당황스런 상황이었다. 더욱이 2005년 말 이후론 부동산가격이 정체 또는 하락세를 보이면서 대출자들은 집을 팔아도 모기지론을 갚기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 집값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르니 가뜩이나 부실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파탄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발 금융대란의 3대 원흉

    이번 서브프라임 위기는 미국내 특정 금융부문에 그치지 않고 세계적 금융대란으로 번졌다. 단순히 대출자와 모기지회사 사이의 신용부실로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요인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금융대란은 인위적으로 생긴 것이고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그래서 사태의 원인제공자를 정확히 규명하고 그 책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 3대 책임자를 여기에 고발한다.

    원흉1: 서브프라임 모기지회사와 결탁한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

    서브프라임 사태에 가장 직접적 책임이 있는 곳은 무디스, S&P, 피치 등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이다. 이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위험성을 사전에 경보하기는커녕 부실이 곪아터지기 직전까지도 ‘트리플 A’, ‘절대안전’ 보증수표를 남발했다.

    자신의 독점적 지위를 악용해 관련 금융기관과 결탁한 징후들이 점차 드러나고, EU 집행위원회는 법적 대응도 추진 중이다. 이들은 한국의 신용등급까지 좌지우지하는 무소불위의 세계적 경제권력이다.

    원흉2: 금융투기화의 선봉, 대형 투자은행과 국제 헤지펀드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손실로 지금 울상이다. 그러나 부실한 모기지 채권을 화려한 금융상품으로 포장해 시장에 내 놓은 것은 정작 이들이다. 고수익을 꿈꾸며 놓은 덫에 자기발이 잠시 걸린 것이다. 사실 투자은행들이 내놓은 서브프라임 관련 파생상품이 고수익을 약속할 수 있었던 것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그 자체가 ‘약탈적 금융상품’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국제 헤지펀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의 최종투자자였다. 더욱이 이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이 상품에 투자하는, 이른바 레버리지 전략으로 더욱 위기를 키웠다. 이들은 또한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자 세계적인 주가폭락을 일으키고 있다. 손실충당용 현금을 마련키 위해 투자해온 신흥시장 등에서 자산(주식, 채권)을 대대적으로 매각하고 있는 것이다.

    원흉3: 불안정한 국제금융체제를 지탱하는 국제금융기구(세계은행, IMF 등)

    국제금융기구들은 각국의 자본시장을 지구적으로 통합하는 ‘워싱턴 컨센서스’ 프로젝트를 추진해 초국적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불안정한 국제금융체제의 토대를 놓은 장본인이다.

    바로 이들이 오늘의 국제금융체제를 설계하고 구축한 셈이다. 오죽하면 노벨경제상 수상자 스티글리츠가 국제통화기금(IMF)을 “초국적 금융집단의 이해에 봉사하는 기구”로 규정하고, 보수적 경제학자 돈부쉬 전 MIT교수조차 “해외에서 미국의 정책을 집행하는 미국의 장난감”이라고 힐난했겠는가.

    서브프라임 사태로 본 국제금융시장의 다섯 가지 위험

    눈여겨 볼 것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시장에서 특정부문의 부실은 생길 수밖에 없고, 시장은 이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 왔다.

    문제는 특정부문의 부실이 세계적 금융대란으로 쉽게 이어지는 국제금융시장의 취약성이다. 작은 충격에도 휘청대고, 지도 없이 지뢰밭을 걷는 꼴이다. 여기에 현대 금융세계화를 지탱하는 국제금융시장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파생상품이라는 이름의 파생거품

    첫째, 선진금융기법이라는 파생상품시장, 정확히는 ‘파생거품시장’이 점차 금융시장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은 모기지회사한테서 대출채권(대출자들한테 상환금을 받을 권리)을 매입하고, 다시 이를 유동화시켜 자산담보부증권(CDO) 등 별의별 상품을 만들어 낸다.

    국제투기자본과 헤지펀드 등이 이 상품을 매매하며 모기지 1건당 10개 정도의 파생상품을 만들어 거래하고 있다.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형성된 것이다. 이는 선진첨단기법이 아니라 선진투기기법일 뿐이다. 지난 2004년 환율방어 과정에서 한국정부가 낳은 손실 1조8천억원 손실도 바로 파생상품시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전 위한 투자분산? 불안을 세계화시키는 전염 벨트

    둘째, 금융자유화로 국제금융 변동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국제적 큰손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국경을 들락거리며 금융시장을 뒤흔든다. 선진금융기법이라는 ‘증권화’는 위험을 여러 투자자에게 분산하는 안전판이 아니라 위기를 전 세계로 퍼뜨리는 전염효과를 낳는다.

    국제 금융자본은 이 전염병을 기화로 천문학적 투기차익을 실현하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중소 국민경제와 군소 투자자에게 넘어간다.

    높은 외환보유고 자랑? 과잉 달러체제의 수인

    셋째, 국제 금융시장은 이미 과잉자본 체제에 지배되고 있다. 달러가 너무 많다. 2000년 IT 주가 붕괴, 9.11테러 이후 초저금리정책에 따른 달러 방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비용 지출 등으로 세계시장에는 달러가 넘쳐나고 있다.

    과잉 달러는 원유, 원자재, 부동산 가격 상승 등 세계적 가격 거품을 만들어내는 원인이기도 하다. IMF 금융위기의 반작용으로 너무 많은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 각국이 어느새 과잉 달러체제의 최대 수인(囚人)으로 전락했다.

    미국에서 시작됐는데 주변국이 더 심한 몸살

    넷째, 원인은 미국에 있음에도 정작 위기는 주변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번 충격으로 미국보다는 주변국 금융시장이 더 크게 흔들렸다. 특히 이머징마켓(이른바 신흥시장)의 금융시장이 가장 심하게 요동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미국의 고위험 금융상품(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담보로 발행한 파생상품 등)을 많이 보유한 투자기관이 가장 큰 손실을 보았다. 나아가 사태에 따른 파장은 금융안정성이 취약한 주변국가에서 가장 강했다.

    UN도 우려한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

    다섯째, 세계 금융시장 환경에서 한국경제는 언제든 금융위기로 빨려들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 IMF 금융위기에서도 경험했지만, 한국은 미국발 모기지 사태로 주가가 급락하고, 덩달아 엔캐리 자금(저금리의 일본 자본을 대출받아 고금리 지역에서 운용되는 자금-편집자)이 급격히 유동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권오규 부총리의 ‘제2의 금융위기 가능성’ 발언을 두고 진위논란이 있지만, 유엔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는 올해 4월 이미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우려한 바 있다. 우리의 총대외채무 2,861억 달러 중 단기외채 비중이 45%(1,300억 달러)로 IMF 위기 당시 수준에 근접해 있는 것도 걸리는 부분이다.

    국제금융시장 변동성에 맞선 금융연대운동이 시급하다

    국제금융시장의 위험한 변동성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특히 한국처럼 시장주의 세력이 압도적인 국가에서 그 방안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해법책을 내놔야 하는 게 우리, 특히 금융세계화에 비판적인 진보진영의 의무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국제금융시장 변동성에 대응하는 중장기전략이 마련되기를 바라며, 다음 다섯 가지 실천방안을 제안한다. 앞의 두 가지는 국내적으로, 뒤 세 가지는 주로 국제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과제이다.

    가변예치의무제, 외환세이프가드제 강화

    첫째, 현재 한국경제를 싸고도는 과도한 금융변동성을 규제해야 한다. 단기거래를 특징으로 하는 한국 자본시장은 그만큼 금융변동성을 키워 거품현상을 유발하게 된다. 투기적 단기자본에 대한 사회적 규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인내하는 자본을 유도하기 위해 투자기간이 짧을수록 높은 세금을 매기는 ‘투자기간 연동 자본이익 과세’를 도입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금융위기 징후가 나타나면 투기적 단기자본 이동을 사전에 규제하기 위해 ‘외환 세이프가드제, 가변예치의무제’ 등을 강화해야 한다.

    과중 외환보유 유지 정책 재검토

    둘째, 필요 이상으로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는 외환정책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과중한 외환보유고는 금융변동성을 키울 뿐만 아니라 외부충격을 더욱 심화시킨다.

    달러를 너무 많이 보유하고, 이를 해외에서 운용키 위해 한국투자공사를 설립하는 예산낭비행위(자리 나눠먹기)나, 환율하락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해외 (부동산)투자를 확대하는 일은 중지해야 한다. 이제 적절한 외환보유고 수준을 정해야 한다.

    국제 금융체제 구조적 문제 제기

    셋째,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를 계기로 국제 금융체제의 구조적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우선 몇몇 국가라도 ‘서브프라임 사태 3대 원흉’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당장 국가가 나서기 어렵다면 시민사회진영에서 국제연대운동으로 시작할 수 있다.

    이 움직임이 가시화되면, 다음 단계로 지난 1997년 금융위기를 겪었던 아시아 국가들이 단결해 ‘채권자 책임론’으로 국제 경제권력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당시 위기는 외채를 빌린 아시아 각국의 ‘채무자 책임’이기도 하지만, 돈을 함부로 빌려준 미국-유럽 채권자의 모럴해저드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한다.

    국제 경제권력인 IMF 등은 그동안 ‘채무자 책임’만 일방적으로 강조하면서 부당한 구조조정을 강요했고, 이 때문에 아시아 각국의 국민경제는 회복불능의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토빈세 운동에 박차

    넷째, 토빈세 운동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단기성 투기자본에 의한 금융불안이 심화됨에 따라 토빈세 도입의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브라질 룰라 대통령이 여러 차례 토빈세 도입을 주장하고, 2005년 다보스포럼에선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근 남미에서 펼쳐지는 대안금융운동과 연대하면 토빈세운동의 추진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막연한 반세계화가 아니라 구체적 실천목표를 내건 국제적 연대운동이다.

    달러 중심체제를 넘어서

    다섯째, 달러 중심 체제를 넘어서는 대안지역통화운동을 펼쳐야 한다. 특히 지나친 달러 보유로 허덕이는 아시아 각국은 달러체제에 맞선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우선 올해 ‘아시안+3’이 합의한 아시아통화기금(초기 800억 달러 예상)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달러중심 외환을 비달러화로 다변화하는 정책으로 달러패권체제를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후 남미의 대안금융운동과 연대하면 대안통화체제 가능성도 열려 있다. 물론 이러한 대안통화체제는 통합된 세계시장의 변덕에 덜 기대는 무역, 산업구조 형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