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이 망해도 좋으면 네가티브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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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8월 23일 05: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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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끌끌한 노동운동가 한 분의 집으로 벌금 납부 고지서가 날아왔다. 이 분은 고지서를 받아들고 얼굴이 화끈거렸고, 자기가 언제 실수를 했는지 곰곰이 따져 봐야 했다. 벌금 고지서는 귀하가 ‘노상방뇨’를 했기에 벌금을 언제까지 내라는 것.

    어느 날 차를 몰다가 교통경찰에 걸린 적이 있는데 벌점이 없는 ‘싼 것’으로 끊어달라고 사정한 적이 있었다는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아마 그 경찰이 노상방뇨로 처리했을 것이라는 추리에 이르게 되었다. 아! ‘싼 걸로’ 해달라고 하지 말고 ‘저렴한 것’으로 해달라고 할 걸…

    그러나 어쩌랴. 그의 기록엔 노상방뇨 벌금 기록이 선연히 남게 된 걸…인간만사 새옹지마 그냥 순리대로 살라는 얘기다.

    어쨌든 노상방뇨 전과라는 혹을 달게 되었으니 나중에 혹시 출마라도 하게 되면 네가티브의 표적에 걸려 구구한 변명을 해야 할 거리로 남게 되었다. 나는 그의 구구한 변명을 껄껄 웃으며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나는 그 인간이 살아왔던 전체 궤적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에이젠쉬타인의 몽타쥬 편집기법이 오용되다

    그러나 여기 아무리 좋은 얘기도 비틀어버리는 고약한 장면이 하나 있다. 최근 민주노동당 당원 게시판에 무등산광주라는 ID로 ‘대중투쟁을 폄하하는 노회찬후보’라는 제목으로 노회찬 후보를 ‘폄하’하는 동영상이 떴다.

    방송토론 장면 중 노후보 왈 “미선이 효순이 촛불집회에 10만이나 제대로 모였습니까?”라는 말과 “100만 민중대회 주장은 낡은 운동방식”이라는 말을 이어 편집하고 “낡은 운동방식”을 되풀이 하도록 노후보의 입만 부각시키고 있다. 그 앞뒤로는 스펙터클한 광화문 촛불집회 장면과 노개투 총파업, 그리고 권영길 위원장의 대중운동 지도자 이미지를 강렬하게 부각시키는 장면들로 포위되어 있다.

    이 ‘거두절미’ 편집된 동영상만 보면 노회찬 후보는 미선이 효순이 촛불집회도, 100만 민중대회도 함부로 폄하하고 ‘입만 가지고’ 운동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말의 앞뒤 맥락은 미선이 효순이 촛불시위에 100만은커녕 10만도 모이지 않았으나 100만이 훨씬 넘는 대중들과 소통을 이루어내며 성공한 사례로 얘길 했고, 100만 민중대회라는 것도 어떻게 대중과 소통할 것인가 하는 핵심을 놓치고 그저 100만이라는 선언적인 동원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낡은 방식이라고 지적한 것이었다.

    암담했다. 혁명적 영화작가 에이젠쉬타인의 몽타쥬 편집기법이 나치 괴벨스와 조중동에 스며든 것처럼 민주노동당 내에도 이런 파렴치한 네가티브를 ‘무등산광주’라는 거룩한 필명으로 휘두른다는 게 안타까움이나 분노를 넘어 암담한 정서를 불러일으켰다. 노회찬이 살아온 삶의 전체 궤적은 증발했다.

    네가티브는 공멸의 길

    네가티브 선거전은 당원들에게 환멸을 부추긴다. 이전투구=투표율 저하, 당이 망하거나 말거나 평당원의 애당심을 꺾고 결국 당에 등을 돌리게 만듦으로써 투표율을 떨어뜨리고 조직표만으로 등극하고자 하는 야망을 불태운다.

    상대 후보가 그렇게 너절한 후보라고 믿게 만들었는데 정작 그 후보가 지명이 되면 어떻게 선거운동을 하겠는가? 역으로 네가티브로 만신창이가 된 후보의 지지자들의 원한은 또 어떻게 달랠 것인가? 네가티브는 예비선거전에서부터 당을 분열시키고 정작 본선에서는 다수의 동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해당행위다.

    노회찬을 겨냥한 네가티브가 유독 극성이다.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가 각 후보에 대한 지상청문회를 기획했다가 부적절하다고 폐기된 질문 문항이 유출되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노후보가 자신이 발행인으로 있었던 매일노동뉴스 인터넷팀에 민주노동당의 인터넷 투표시스템 구축사업을 맡긴 부당한 내부자거래가 있었던 것처럼 얘기했다.

    당은 프로그램만 1~2천만원 하는 걸 단돈 200만원에 거래했고, 노총장은 그마저 120만원으로 깎아주라는 ‘부당한’ 압력까지 가한 희한한 내부자거래를 했다. 노총장은 당의 이름으로 고급 IT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한 데 대해 해명해야 할 책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으로 치러진 2004년 비례대표 선거가 공정했느냐고 묻는다. 노총장이 이 시스템에 접근해 자신이 비례대표 8번을 받을 수 있게 조작했느냐고 묻는 것이다. 정말 낯이 뜨거워지는 질문이지만 노회찬선본은 ‘시스템 개발업체도 웹서버 접근은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하며 이같은 질문은 당시 당의 선거관리 전반의 공정성을 부인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공식 해명했다.

    진보정치가 지상청문회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질문의 의도가 사실관계를 무시한 음해성 루머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폐기된 것인데 이 질문 문항을 ‘정보공개청구’에 답한다는 방식으로 제공한 것도 참으로 고약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의 공식 기관지인 ‘진보정치’가 해명해야 할 부분이다.

    조중동식 왜곡보도를 증폭시키다

    이번에 미국에 써버를 두고 있는 유튜브. 여기는 불법 동영상을 올려도 아이피 추적이 불가능하다. 케케묵은 먼지를 털고 지난 94년 박홍의 주사파 발언 파문으로 공안정국 조성되던 시절 노회찬이 마치 공안세력의 손을 들어주는 발언을 한 것처럼 ‘거두절미’ 편집된 화면이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랐다.

    압권은 마지막 박홍과 노회찬의 얼굴을 오버랩시키며 노회찬이나 박홍이 다를 바 없는 사람과 같은 이미지를 만들고자 하는 장면이다.

    당시 노회찬 후보는 진보정당추진위원회와 민중정치연합 그리고 21개 총학생회과 함께 ‘진보,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대회’를 탑골 공원에서 개최하면서 오늘날 민주노동당의 강령 정신에 포함된 “우리는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도 남한의 ‘천민적 자본주의’도 남한 민중이 원하는 통일된 나라의 모습이 아님을 분명히 하며···”라는 내용을 천명했다.

    당시 노회찬의 입장을 들어보자.

    – 범민련과 범민족대회로 대표되는 이제까지의 통일운동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노: 이전 통일운동은 통일이 필요하다,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추상적인 기호로 선전해내는 식이었다. 그런 면에서 대중의 이해와 지지, 참여를 이뤄내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또 북한에 대해서 무비판적이고 그 정부의 정책에 대해 추종하는 일부 경향이 언론의 과대선전 등에 의해서 운동권 전체를 친북적인 것으로 오인되게 만들었다. 이러한 경향을 가진 세력은 우리 국민들이 명백히 알고 있는 북한의 몇가지 문제점, 즉 민주주의 문제라거나 인권 문제라거나 우상숭배 문제 등에 대해 오랫동안 완전히 침묵해왔기에 운동권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팽배하게 하였다.

    정부당국에 대해 자주적이라는 주장이 남한 정부에는 발휘되면서 북한 정부에는 발휘되지 않는 것이 냉전적으로 대립하는 양 체제 중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운동으로 인식하는 결과를 가져와 통일운동이 대중적인 운동으로 진행될 수 없었다.

    – 이 국민대회준비위 기자회견 후의 신문에서는 ‘재야의 주사파 배격’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를 두고 공안정국에 편승한다는 비판이 있는데.

    노: 신문들이 왜곡보도를 하는 것은 요즘에 와서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닌가. 이에 우리는 끊임없이 시정을 촉구하고 비판한다. 그러나 언론이 왜곡했다고 해서 우리 운동의 방향을 변경하거나 주장을 굽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왜곡보도에 대한 굴복에 다름 아니다.

    – 비판하기에 앞서 정부로부터 탄압받는 운동진영을 일단 엄호해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있다.

    노: 곤혹스럽다. 그러나 문제를 크게 보아야 한다. ‘탄압을 받고 있기에 선이다’, ‘탄압을 받으니까 진리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정부의 탄압을 우리도 비판하지만 탄압 받는 것이 곧 선이라는 것은 극단적으로 김영삼 정부에 탄압받는 박철언도 우리 편이라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옥석을 구분해야 한다. 정부의 부당한 탄압에 대한 비판과 운동진영의 잘못된 조류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혼동할 경우 우리 운동은 자기정화, 자기발전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국가보안법이 웃음거리가 되는 세계 추세를 보라. (월간 사회평론. 1994년 9월호

    그간 한나라당의 유혈낭자한 네가티브 경선을 착잡한 마음으로 구경하다 내 집으로 돌아오니 여기 왕좌에 눈이 멀어 왕을 시역한 또다른 맥베드가 피묻은 단검을 쥐고 덜덜 떨고 있다. 그가 죽인 것은 노회찬이 아니다. 그는 민주노동당의 자긍심을 죽였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그 동영상을 확인하러 갔더니 댓글만 남아 있고 이미 지워져 있다. 야망에 눈이 멀었으나 일말의 양심을 갖고 있었던 맥베드가 외친다 “나는 영원히 잠들지 못한다. 나는 잠을 죽였다” 민주노동당의 자긍심을 난도질한 이 어둠의 멕베드들은 잠들 수 있을까?

    탄피.

    거두절미가 도처에 널려 있다.

    “말만 잘한다”는 것도 조잡한 선동이다. 4.13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줏가를 끌어올린 노회찬을 통째로 부정하는 표현이다. 그러니 “말도 잘한다”로 고쳐써야 한다.

    “정책은 민주노동당의 창고에 재여 있다”는 것도 대표적인 거두절미. 노회찬은 민주노동당이 갖고 있는 무수히 많은 빛나는 정책도 제대로 ‘의제’로 취급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 정치적 의제로 만들어지지 않는 정책은 무력하다는 걸 지적하기 위해 “우리 당이 정책이 없어서 문제냐? 정책은 창고에 재여 있다. 다만 그걸 정치적으로 의제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얘길 한 것이다.

    ‘말도 잘하는 것’을 ‘말만 잘하는 것’으로 슬쩍 바꿔치기 하고, 정치 의제화 되지 않은 정책이 녹슬고 있는 걸 한탄하는 얘기가 ‘창고론’으로 포장하는 것이 차라리 ‘말만 잘하는’ 짓이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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