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파적 정책으로 승리한 신중도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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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8월 22일 08: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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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사뭇 논쟁적이다. 정치적으로 따끈하고 당면 최대 현안을 다뤘다는 점에서 그렇고, 필자의 입장이 선명하게 개진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당면 최대 현안에 입장이 하나일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필자의 입장이 그다지 익숙치 않았던 주장이라면 더욱 논쟁의 소지가 많아진다. 

    또한 필자의 주장을 따라가다보면 발칙한 상상력으로 볼 수도, 엉뚱하고 번지수가 틀린 제안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들이 없지 않다. 필자는 현재 특정 후보 선본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이 글은 개인적 자격으로 써서 <레디앙>에 보내온 것이며, 내용도 특정 후보 선본과 무관하다.

    이 글이 ‘이명박 현상’에 대한 민주노동당 내부의 생산적이고 활발한 대안적 토론을 촉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편집자 주> 

    1. 이명박의 수락연설에서 ‘인상적’인 부분

    이명박이 결국 당선됐다. 그런데 이명박의 수락연설에서 한 가지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이명박은 수락연설 중 북한 주민들의 물난리를 언급하며 함께 돕자고 말했다. 그것도 연설의 가장 첫머리에서.

    이 대목은 향후 남북관계와 관련, 이명박이 보여줄 행보를 ‘예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명박은 대북관계에서 온건한 전략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범여권이 원하는 ‘평화’ 쟁점을 이명박이 허용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전선의 형성 그 자체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는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2. 이명박의 당선 – 대한민국 ‘최초의’ 신중도우파의 출현

       
      ▲ 사진=뉴시스
     

    박근혜는 흔히 ‘인간 한나라당’으로 불린다. 그런데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결국 전략적 선택을 했다. 그것은 두 번의 대선 패배를 통해 단련된 결과이다. 한나라당보다 ‘오른쪽’ 정당이 없는 한국 정치의 현실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도’를 장악해야 한다.

    그렇게 볼 때, 이명박의 당선은 한마디로 ‘한국 최초로’ 등장한 신중도우파의 출현으로 볼 수 있는 일대 사건이다. 그리고 이것은 87년 정치체제의 종말 이후, 한국 정치 구도가 ‘근본적’으로 전환될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분석의 임무는 새로운 현상을 통해 그것이 가진 ‘의미’와 ‘원리’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이명박 현상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변화, 한국정치의 변화를 도출하여 민주노동당에게 주어진 ‘시대정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3.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명박 지지율의 ‘5가지 근거’

    왜 한나라당 지지자들, 아니 국민들은 이명박을 선택했을까? 왜 최근까지 40%의 지지와 경선 승리 이후에는 60%에 버금가는 지지를 보내고 있을까? 왜 범여권과 민주노동당에게는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는 것일까? 이명박 현상의 ‘물적 근거’를 추적해보자.

    첫째, 이명박의 지지율은 ‘거품주(株)’가 아니라 ‘실적주’이다.

    김호기 교수는 〈프레시안〉을 통해 이명박 지지율이 ‘경제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한 바가 있다. 포퓰리즘이란 본디 ‘허상’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이런 주장은 이명박 지지율이 ‘거품’이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단은 안이하다.

    왜냐하면 이명박의 지지율은 ‘거품’이 아니라 ‘실적’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성공한 CEO출신임은 물론,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개발과 서울시 시내버스 교통체계의 개편이라는 ‘획기적’ 업적을 이룩한 바 있다. ‘거품론’은 자족적일 수는 있어도 대안적 접근은 되지 못한다. 

    둘째,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실적은 ‘좌파적’ 정책의 주도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이명박이 주도한 버스 체계 개편은 ‘대중교통 공영제’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청계천 개발은 ‘녹색’의 가치를 대변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한나라당은 ‘반값 아파트’ 정책을 주도했다. 모두 ‘좌파적’ 정책으로 볼 수 있다.

    심지어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환경운동연합 출신의 오세훈은 ‘초록후보’의 이미지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당선된 이후에도 분양원가 공개, 자전거 중심의 교통체계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중산층을 겨냥한 중대형 임대아파트 공급, 공공전세정책 등을 통해 지금 현재도 ‘좌파적’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이명박-홍준표-오세훈은 민생정당, 정책정당, 초록정당에 부합하는 정책의제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통해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층과 중도진보적 화이트칼라 성향의 중간층까지를 흡수하는 있는 셈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우파정당’이 ‘좌파적’ 정책으로 일종의 ‘지지층 연합’을 이뤄냈다는 점이다. 이는 민주노동당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셋째, 이명박은 마치 노무현처럼 ‘서민 출신 자수성가형’ 후보라는 점이다.

    이는 과거 한나라당 후보와 다르다. 경기고-서울대-판사를 역임한 이회창과 확연히 구분된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이회창 후보와의 대결에서 ‘서민후보’ 대 ‘부자후보‘의 구도를 만들어냈다. 노무현 후보 자신의 인생 히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명박은 노무현과 민주노동당의 ’서민후보‘ 이미지까지 흡수해가고 있는 셈이다.

    넷째, 한나라당의 영남 후보가 아니라 ‘서울’ 후보라는 점이다.

    흔히 한나라당을 영남 지역주의 정당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명박은 전통적 범여권 지지층이라 불리는 30대 후반~40대 초반의 수도권 화이트 칼라를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다섯째, ‘양극화 극복’에 대한 우파적 해법으로 경제대통령 후보라는 점이다.

    유권자들도 양극화가 심각한 것은 다 알고 있다. 다만 그 ‘해법’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명박은 박정희식 토건국가를 통한 경제성장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양극화 극복의 대안을 단지 ‘분배 강화’로 볼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유럽의 경우 ‘경제성장’은 원래 우파가 아닌 좌파가 주도했다. 소위 황금기(Golden Age)로 불리는 전후 포디즘 시대의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은 노동자 정당이 주도했다. 이들은 케인즈주의-포디즘-노동 주도 사회협약의 방식을 통해 ‘노동친화적’ 경제성장 해법을 실제로 관철시켰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경제성장은 완전히 ‘우파의 담론’으로 선점된 감이 있다. 좌파의 현재 포지션은 ‘경제성장 반대! 분배 강화!’로 비칠 뿐이다. ‘진보적 경제성장론’이 절실한 대목이다. 

    4. 패러다임의 전환을 예고했던 2006년 ‘서울시장’ 선거

    그간 대선은 ‘누구의 편’이냐의 문제로 결국 귀결되었다. 한쪽에는 80년 광주항쟁 및 87년 6월 항쟁을 지지하는 세력과 다른 한쪽에는 이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세력의 한판 대결이었다.

    소위 말하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였다. 이러한 구도는 정책적으로 보면 크게 3가지 흐름으로 나타났다. △서민 대표 대 부자대표 △남북관계 온건화해파 대 강경파 △대미 자주 강화 대 친미동맹 존속.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집권 10년은 이러한 대결 구도에서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도가 끝났음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2006년 서울시장 선거였다. 당시 지지율은 의미심장하다. 김종철 3%, 박주선 7%, 강금실 28%였다. 셋이 합쳐도 38%에 불과하다. 그리고 오세훈 62%. 오세훈 후보는 세 후보 합계의 2배에 가까운 지지를 받은 셈이다.

    이것은 전통적 민주 대 반민주, 평화개혁세력 등등의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선거 결과이다. 

    5. 2007년 대선은 ‘국가론’을 둘러싼 한판 대결이 될 것

    서울시장 선거의 결과가 암시하듯 이번 대선은 과거와 다를 것이다. ‘누구의 편이냐’로 환원되지 않는 선거가 될 것이다. 평화개혁 세력 어쩌구 저쩌구로 재미를 보려는 범여권의 지지율이 지지부진한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은 무엇을 둘러싼 한판 대결이 될까? 나는 ‘국가론’을 둘러싼 한판 대결이 될 것으로 본다. 이명박의 국가론은 한마디로 ‘시장 국가’이다.

    이에 반해, 현재 20여 명에 이른다는 범여권에서 ‘유일하게’ 비전을 제시한 사람은 유시민밖에 없다. △선진통상국가 △사회투자국가 △평화선도국가 3가지로 정리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유시민 의원이 상당히 선전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6. ‘좌파’의 대안적 국가론은 무엇인가?

    한나라당 이명박의 ‘시장국가론’, 범여권 유시민의 ‘사회투자국가론’에 맞서는, 2007년 오늘 현재 민주노동당의 대안적 국가론은 무엇인가?

    그 해답은 한마디로 ‘사회연대 국가’이다. 연대와 평등은 좌파의 고전적 해법이자 최우선 가치였다. 유럽의 우파에 걸맞는 이명박의 시장국가론, 제3의길 이론에 입각한 유시민의 사회투자국가론에 맞서, 민주노동당은 사회연대국가론을 대선의 핵심 캐치프레이즈로 배치할 필요가 있다.

    7. ‘대선 필승’을 위한 몇 가지 전략

    민주노동당 경선은 9월 9일 또는 늦어도 9월 15일에 끝난다. 9월 15일은 대통합민주신당이 내부 경선에 돌입하게 되는 시작일이기도 하다.

    자신의 컨텐츠를 갖지 못한 범여권 후보들은 ‘이명박 욕하기’로 대신할 것이다. 이 시기 민주노동당은 네거티브에 동참할 것이 아니라 ‘파격적’ 포지티브 전술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경선승리 이후 ‘1달간 이명박 비판 금지 선언’이라도 할 필요가 있다.

    반면 피부에 와 닿는 생활의제 중심으로 초반 ‘정책발표’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가계부 혁명 정책 △베이비 박스 무상공급 △천 기저귀 사용 독려 △여성 빅사이즈 옷 의무 공급 △보건소에서 산후 조리원 운영 △여성화장실 남성 숫자의 2배로 의무화하는 정책 등등.

    거대담론에 준하는 ‘큰 정책’은 당내 논의와 전문가 검토를 비롯해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생활의제는 9월 15일 당선 이후부터 한 달 간 소화가 가능한 것들이 많다.

    이외에도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와 관련하여, 전국을 돌면서 ‘자영업자 보고대회’를 대선후보가 직접 개최할 수도 있을 것이다. 

    8. ‘낡은 것’은 함께 몰락할 뿐이다. – 2위가 충분히 가능한 이유

    과거 농노제가 붕괴하고 자본주의로 전환될 때, 피지배계급이었던 농노가 권력을 잡는 사회가 오지 않는다. 지주와 농노는 함께 몰락하고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전혀 새로운 계급이 출현할 뿐이다. 역사는 냉정하게도 ‘낡은 것’은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뿐이다. 정치에서의 체제전환도 마찬가지이다.

    이명박 후보의 출현을, ‘보수우파’를 몰아내고 신자유주의 시대에 걸맞는 신중도우파세력의 부상으로 볼 수 있다면, 그 파트너는 ‘낡은’ 평화민주개혁 세력이 아니라 ‘신중도좌파’를 대변하는 후보가 될 것이다.

    누가 신중도좌파세력이 될 것인가? 범여권이 그렇게 될 수도 있고, 민주노동당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기회는 양자 모두에게 있다. 그리고 둘 다 ‘낡은 틀’을 깨지 못하고 과거의 레퍼토리에 안주할 수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62%의 지지율로 ‘원사이드’하게 당선되었던 것처럼.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새로운 체제에 걸맞는 새로운 전략으로, 이명박의 ‘시장국가론’과 민주노동당 대선후보의 ‘사회연대국가론’이 한판 붙게 된다면, 민주노동당은 ‘새로운 체제’의 대항파트너로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범여권을 제치고 2위로 등극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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