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당의 실질 대표…'의리'로 선택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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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8월 21일 06: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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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노회찬후보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 당의 공식적 조직관계 외에 민중당도 아니고 진정추도 아니었다. 오히려 87년에는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였고, 91년에도 여전히 전국연합의 방침에 따라 범민주 단일후보 노선이었다. 그 이후에도 97년 대선 국민승리21에 합류할 때까지 노회찬후보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

    위기의 당 ‘호빵맨’을 호출해야

    지금까지 어떤 정파에도 가담하지 않고 있고 노회찬후보와의 관계는 그냥 담담한 당적 관계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없다. 인연으로 말한다면 민주노총 시절부터 함께 한 권영길위원장과의 인연이 한강이라면 노후보와의 관계는 실개천 정도라 할 수 있다. 그러니 그를 지지해야 할 아무런 구연이 없다.

    어떤 후보나 비슷하겠지만 노회찬도 가까이 하면 그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나는 어떤 열광적 감정을 갖기 이전에 다른 많은 평당원들과 마찬가지로 담담하게 노회찬이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적임 후보라고 생각했다.

    당의 미래가 점차 암담하게 전개되고 있고, 이 와중에 맞이하게 되는 대선과 이어지는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새롭게 비약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이런 판단은 더욱 굳어졌다. 나에게 노회찬은 민주노동당의 재도약을 위한 유력한 ‘도구’로 보였다

    노회찬은 민주노동당의 실질적인 대표 선수

    2004년 총선까지 민주노동당의 대표 선수는 당연히 권영길이었다. 97년 ‘국민승리21’부터 진보진영의 대선후보는 당연히 권영길이었다. 70%가 넘는 국민적 지지를 획득한 노동법개정투쟁 정치 총파업의 대표, 민주노총이라는 강력한 대중조직의 대표로 진보진영의 대선주자는 당연히 권영길이었고, 2000년 총선 석패 이후 흔들리는 당을 굳건히 지켜온 권영길은 당연히 2002년 대선에서도 당의 대표선수였다.

    "국민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나아졌습니까?"로 100만표를 얻으며 당을 키워온 권영길은 2004년 총선 전까지 부동의 당 대표 선수였다.

    그러나 지난 4.13 총선 이후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민주노동당이 13%의 지지를 얻으며 원내 정당으로 성큼 발돋움하고 좌파정당의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한 이후 국민들은 노회찬을 통해 민주노동당을 보았다. 노회찬은 이후 가장 많은 방송출연 섭외를 받았다. 그들은 ‘좌파 진보정당’을 대중에게 매력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대변자로 노회찬을 호출한 것이다.

    노회찬은 비례대표 말석에서 김종필을 꺾은 드라마의 주인공이고, 원내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힘든 ‘법사위’를 배정받았음에도 원내 활동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것도 노회찬이다. 삼성 X파일,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과 같은 굵직한 이슈의 한 복판에 우뚝 서면서 총선 이후에도 끊임없이 민주노동당의 간판 스타로 각인되어 왔다.

    그 결과 두 차례 대선 후보로 나선 권영길 후보와 비슷한 국민적 지지율을 보일 정도로 인지도와 지지도를 확보해 이른바 ‘본선 경쟁력’에서 가장 강력한 파워를 갖게 된 것이다. 그에 비해 유력한 후보인 권영길 후보의 경우 지난 대선 지지율을 넘어서는 대중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오지 못했다.

    물론 원내대표라는 직책을 맡았기 때문이며, 당에서 ‘좌장’격의 지위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활동에 치우친 탓이리라. 어쨌든 이러한 변화는 권영길의 불행이 아니다. 노회찬을 비롯해 심상정 등 민주노동당 세대교체의 자산이 풍부해진 것으로 당의 행운이다. 다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당이 권영길에게 헤아릴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 후보를 ‘의리’로 선택할 수는 없다.

    국민들뿐만 아니라 당원들에게도 당의 실질적 대표 선수는 노회찬이었다. 당원 교육에도 섭외 1순위는 노회찬이었다. 다만 말만 잘 한 것이 아니다. 신입당원 교육에서 그는 당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우리가 지향하는 세상이 무엇인지를 엄청난 흡인력을 가진 화법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당의 설계자였고 당의 방향타였기에 어떤 누구를 상대로 해서도 좌파의 가치를 풍부하게 녹여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말만 잘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번 대선을 돌파함으로써 당원과 국민들에게 민주노동당을 새롭게 부각시키고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당선의 조건-일정한 지지율-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당에게 대선은 절체절명의 것이다. 당의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당의 ‘현재’ 대표선수를 이 엄중한 난관 돌파의 선봉장으로 내세워야 한다.

    주춧돌도 대들보도 아닌 기둥이 필요한 때

    권영길 후보나 심상정 후보 모두 우리 당의 보석과 같은 존재들이다. 건물로 비유한다면 권영길 후보가 당을 세우는 주춧돌이었고 심상정 후보는 이후 우리 당의 대들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둥세우기다.

    주춧돌에서 그냥 머물 수도 없고, 기둥도 세우지 않았는데 대들보를 얹을 수도 없다. 우리 당의 역사에서 ‘과거’는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준비할 수도 없다. 권영길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당이 한걸음 더 전진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어느 날 노회찬이 과거가 된다면 당은 더욱 강해졌다는 걸 의미한다.

    4.13 총선 이후 당의 지지율이 한 때 20%를 넘어서면서 우리는 성급히 민주노동당이 집권을 두고 다투는 유효할 뿐만 아니라 위력적인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성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당권 경쟁과정에서 정파적 갈등이 도드라지고, 이후 부유세와 같은 총선 정책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열린우리당 2중대 소리까지 들으며 ‘진보개혁세력의 총체적 무능’에 도매금으로 묶이면서 거품이 급격히 꺼졌다.

    게다가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심지어 부패 스캔들과 정파적 갈등에 의한 내부민주주의의 파괴 등으로 고립을 면치 못하는 상황과 맞물려 보궐선거와 연이은 지방선거에서 울산이라는 안방까지 내주는 수모를 당했다. 총선 지지율 13%는 이미 까먹고 지금은 10% 이하에서 하강 정체되어 있다

    집권을 다투는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발돋움하기는커녕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진보정당 실험의 실패를 성급히 점치기도 한다. 이번 대선에서 새로운 약진 계기(돌풍)를 만들지 못하고 총선에서 더욱 전진하지 못한다면 민주노동당은 오랜 기간 소수당으로 고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에 실망해 당을 떠나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집권의 꿈은 멀어진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당에게 새로운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홀로 고공 행진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범여권 주자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우리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구도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즉 민주노동당이 내세우는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그 실력이 그대로 성적에 반영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양강구도가 아닌 다자구도에서 후보의 대중적 친화력과 본선 경쟁력은 결정적이다.

    진보좌파의 정책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는 대표 세일즈맨이 누구일지 냉정히 판단해보라. 민주노동당에서 대중과 가장 가까이에 서있는 후보가 노회찬이다. 노회찬의 대중성은 다른 두 후보에 비해 월등하다. 여기서 대중성은 그냥 인기있다는 게 아니라 ‘진보 좌파’의 이념과 가치를 대중적 언어로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정체성을 빼고 모든 걸 바꾸라는 요구를 직시해야

    한편 최근 각 캠프의 여론조사 결과는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심상정 후보의 약진이 그것이다. 심상정 후보의 약진은 노회찬 후보와 더불어 심 후보가 설파하듯 우리 당이 변화해야 한다는 당원 대중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이 변화의 요구는 노와 심을 합치면 이미 반이 넘는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돌풍의 요체 중 하나는 당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권영길을 아끼면서도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당원들은 다만 생물학적인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동당이 퇴영적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우려한다.

    일례로 민주노동당은 그간 대북문제나 민주노총과의 관계에서 자립하지 못해왔고, 이 때문에 숱한 기회비용을 지불해왔다. 당원과 국민들은 북에 대해 독자적 진보정당, 노조에 대해서는 대등한 동반관계를 유지하며 미래로 뻗어나가길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당은 대선 경선 과정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이미 우리는 구 정파적 질서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진보진영의 정책적 의견들이 불꽃튀며 경쟁하는 진보적 공간으로 재구성되어 가고 있다. 그것이 완성되는 것은 바로 대중과 소통하는 진보 좌파의 새로운 후보가 선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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