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만하지 못한 내 아이가 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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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8월 19일 06: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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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go 몬스터』를 평범하게 평하자면 일종의 성장만화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말해버리면 만화가, 세상이, 너무나도 재미가 없어진다. 결국에는 이성이 모든 것을 재단하게 될지언정 카르페 디엠carpe diem, 곧 현재에 충실할 필요는 있다. 그렇게 『gogo 몬스터』 속으로 고고!

       
     
     

    만화의 무대는 아마도 공항이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이며 주인공은 유키와 마코토, IQ 이렇게 셋이다. 유키와 마코토는 이른바 괴짜이고 괴짜임으로 말미암아 왕따이다. 그들은 그러나 거리낌이 없다.

    이름이 사사키이지만 성적이 뛰어나 IQ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사사키는 이른바 명문 사립 중고등학교로 진학하라는 선생님의 권유에 이렇게 묻고 답한다.

    “상자 뒤집어쓰고 시험 봐도 돼요?” “그건 안 돼.” “그럼 됐어요. 상자 쓴 모습이 제 본래 모습이에요. 벗고 시험을 본다는 건 상자를 뒤집어쓰지 않는 사람이 상자를 뒤집어쓰고 시험을 보는 것과 같아요.”(p.108)

    만화의 메인 타이틀롤을 맡은 유키는 이보다 한술 떠 뜬다. 그는 아예 두 개의 세상을 느끼며 또 산다. 어떤 식이냐 하면 보이지 않는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있는데, 어둠의 세력이 몰려와 그 균형을 깨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보이지 않는 세계로 건너가고 싶다는 식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우두머리인 ‘슈퍼스타’에게 자신을 데려다달라고 청원하기도 한다. 이런 유키를 두고 담임선생님과 유키와 아주 친밀하게 지내는 간츠 할아버지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타치바나(유키의 성, 인용자)라는 아이는 두 개의 세상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외에 또다른 세상이 있어요.”
    “공상이라는 뜻인가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세상을 봐온 아이들 몇 명을 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선망한다는 뜻인가요? 그러니까 타치바나의 강한 상상력이 의식을 흐리게 한다는 그런 말인가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p.201~202)

    반면 마코토는 뒤늦게 전학 와 유키와 짝꿍이 된 평범한 인물이다. 하지만 마코토는 천천히 그러나 속깊게 유키와 IQ를 이해함으로써 유키를 어둠으로부터 빼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만화는 이 초등학생의 ‘이상하고도 낯선 정신세계’를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 속에서 진행시킨다.

    그렇다면 만화의 주된 핵심인 유키의 두 세계 사이의 갈등과 혼동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유키 자신의 입을 빌어 이렇게 표현된다.

    “어른이 되면 내장이 녹아내리고 뇌는 딱딱해져서 쓸모없어져. 온몸에 구더기가 꼬여서 보라색 냄새가 난다!”(p.63)

    곧 나뉘고 혼동되는 두 세계 사이의 갈등은 성장해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의 일종인 셈이다. 또한 이 같은 유키의 성장에 대한 공포는 상급생인 IQ의 입을 빌어 그 공포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낸다.

    “난 알고 있어. 네 고독을 알고 있어. 네가 슈퍼스타라 칭송하는 친구… 그건 네가 외부 세계와 접촉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리고 놈들이라 부르며 미워하는 것들의 존재는 너의 폐쇄적인 내면을 상징하고 있는 거야. 모든 건 네 공상이야. 유키. 실존하지 않아. 네가 이 건물의 힘을 빌려 만들어낸 세상이라구.”(p.186)

    하지만 유키는 이 같은 ‘이성적 언어’로 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치유 받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결국 ‘금지된 계단’을 올라 보이지 않는 세계로 넘어가고야 만다. 곧 죽고 다시 태어나는 상징적인 성장의 과정, 혹은 어른으로의 입문의식을 치르는 셈이다.

    사실 건물의 계단처럼 무의식을 잘 상징하는 오브제는 없을 것이다. 다만 『gogo 몬스터』가 특이한 것은 계단을 내려가는 게 아니라 올라간다는 점이다. 물론 이때의 계단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출입이 금지된 계단이다. 유키는 그 계단을 오른다. 따라서 당연히 그가 현실로 복귀하는 방식은 하늘로부터의 추락의 방식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gogo 몬스터』에서 성에 대한 이미지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계단, 꽃의 개화, 수영, 은빛막대(하모니카), 자전거 등 일련의 이미지군들은 성적인 메타포들도 읽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덧붙여 두 가지를 더 말해볼 수도 있다.

    첫째는 어른들과의 관계 문제. 극중에서 유키의 가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담임여교사와 학교의 정원을 가꾸며 잡일을 하는 간츠 할아버지가 유키와 관계 맺는 거의 유일한 어른인 셈이다.

    하지만 가령 담임여교사는 유키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반면 학교의 정원을 가꾸며 잡일을 하는 간츠 할아버지는 유키의 유일한 어른 동맹군이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거세된 혹은 성이 없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마코토가 유키를 구하는 방식. 마코토는 유키가 가르쳐준 하모니카/은빛막대를 부는 것으로 유키를 구한다. 이때의 하모니카/은빛막대 연주는 지옥에서 죽은 아내를 구해오는 마치 오르페우스의 음악과도 같다. 곧 이성의 언어, 아폴로의 언어가 아닌 감정의 언어 디오니소스의 언어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gogo 몬스터』의 재미는 성인인 우리가 이미 지나쳐온 시간, 곧 우리가 뻔히 그 과정과 결과를 알고 있는 그 시간 혹은 그때의 세상을 뻔하지 않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에게 유키의 성장통은 일종의 서스펜스로 읽힌다. 유키의 상징적 고통이 너무나 애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왜 다른 성장드라마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을 이 작품에서는 느끼게 된 것일까? 혹시 유키의 성장드라마와 나의 성장드라마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혹은 유키의 무의식이 나의 무의식 어떤 부분을 건드린 것일까?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다면 질문의 방향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혹시 지금 나의 아이의 무의식이 나로서는 두려운 것은 아닐까? 부모라는 나의 세계와 아이가 스스로 혹은 홀로 누리는 세계가 이미 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조금은 슬프다. 여전히 세상은 살만하지 못하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또 아이가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할 세상이 아직도 살만하지 못하다! 그것이 못내 슬프다. 그것이야말로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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