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왜 권영길 선대위원장을 맡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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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8월 17일 02: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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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든 감투에 대하여 가장 좋기는 ‘제안은 받고 수락은 안 하는 것’이다. “나한테 후보가 직접 전화를 세 차례나 했지만, 그 때 내가 딱 잘라서 거절을 했지!” 나중에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자랑할 이야기꺼리는 남겨두고서 책임을 지거나 욕을 먹을 건수는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게 잘 알면서도 굳이 나는 권영길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전화가 네 번 걸려왔기 때문인가? 아니다. 나는 그 행동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다. 새삼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쉬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권영길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이유는 오래 전부터 해온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어서였다.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이들에게 분명히 하고 싶은 말

    많은 사람들이 다 알아듣고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런데 몇 사람이 나의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를 아직 알아듣지 못하고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위하여 몇 마디 말을 해야겠다. 최소한 훗날을 위해서라도 나와 그들의 의견의 차이를 분명하게 밝혀 놓아야겠다.

    그것은 한 마디로 정세 인식의 차이다. 보수 양당 체제의 복원력에 대한 판단의 차이다. 이른바 범여권 후보의 난립과 자유주의자들의 분열이라는 유리한 조건이 총선까지 이어질지 여부에 대한 판단의 차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을 바라보는 대중의, 민주노총 조합원, 노동자계급 전체, 그리고 일반 국민들의 시선에 대한 인식의 차이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민주노동당의 근본적 한계에 대한 인식의 차이다. 그 동안의 정파 갈등과 일심회 사건으로 당이 입은 타격의 크기에 대한 판단의 차이다.

    2.

    1935년 1월 15, 16, 17일, 3일 동안 기억할 만한 일이 있었다. 그 3일에 중국공산당의 당권이 모택동에게로 넘어가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 때 모택동이 당권을 잡지 않았다면 과연 14년 후, 1949년에 중국공산당은 정권을 잡을 수 있었을까?

    1935년 1월 15일, 그 날까지 무식한 촌놈, 모택동은 중국공산당의 주류가 아니었다. 28인의 볼셰비키라고 불리는 유식하고 똑똑한 젊은이들, 모스크바 유학생 출신들이 당의 지도권을 쥐고 있었다. 그들의 이론은 항상 옳았고 명분은 훌륭했다. 그들의 주장은 항상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설명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중국공산당을 계속 이끌었다면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잡지 못했을 건 분명하다.

    이름 하여 준의회의, 그 사건은 두고두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당 조직이 거의 다 망가지고 태반의 홍군 병사들이 죽고 다친 그런 상황까지 가서야 비로소 28인의 볼세비키들은 당권을 내놓았다. 아니 그런 지경에도 순순히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고, 당권을 내놓지 않았다. 그래서 회의가 3일이나 계속 되었다. 중국공산당은 현실주의 노선을 정립하는데 많은 대가를 치렀다.

    나는 지금까지 민주노동당 생활을 하면서 여러 차례 70여 년 전의 그 날에 대해서 생각했으며 요즈음 다시 생각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준의회의는 언제 열릴 것인가? 얼마나 더 고생을 한 후에 민주노동당의 준의회의는 열릴 것인가?

    3.

    중국공산당은 창당 초기부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불과 50여명으로 창당한 지 몇 년 만에 당원은 수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그 성공에 도취하여 당은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창당의 주역 진독수를 우익기회주의로 내몰고 이입삼, 왕명, 박고 등이 당의 주도권을 쥐었다. 그리곤 상해, 무한, 남창 등 정치적 중심 도시에서 여러 차례 폭동을 일으켰다.

    나는 민주노동당의 중앙당 부근에서 28인의 볼셰비키들을 만나곤 했다. 그들은 똑똑하고 젊었다. 자신감에 넘쳤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반대하고 투쟁을 결의했다. 심지어 지구당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개정된 정당법이 잘못된 거라며 불복종 운동을 결의했다.

    민주노동당 중앙당에서 만나는 28인의 볼셰비키들

    우리에게 유리한 법,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법을 반대한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올바른’ 결정이었다. 그들은 쉽게 민심을 거슬러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세웠다. 그들은 기초의원의 정당 공천에 반대하는 여론, 특히 우리 당의 주된 지지기반인 영호남에서 압도적인 여론을 아무렇지도 않게 거역했다.

    나는 생각했다. 그들이 당권을 쥐고 있는 한 민주노동당은 정권을 잡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언젠가는 그들로부터 당권을 빼앗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지난 총선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8명이나 국회의원을 만들었다. 그들의 눈에 2명의 지역구 당선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121명의 지역구 낙선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흡사 28인의 볼세비키들이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아 진독수를 축출한 것처럼 독일녹색당의 규칙을 빌려와서 ‘당직 공직 겸직 금지’의 당규를 만들어 권영길에게 타격을 가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들의 맹동주의 노선이 관철된다면 큰일이다. 흡사 모택동의 정강산 같은 시골 구석에 우리가 확보한 작은 근거지를 잃게 될 것이다. 근거지를 잃고 헤매게 될 민주노동당, 설령 만리의 장정을 하더라도 당이 실용주의, 현실주의 지도노선을 정립한다면 고생한 보람은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미리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4.

    어쩌면 그렇게 이입삼을 닮았을까? 어쩌면 그렇게 왕명을 닮았을까? 그들은 시골 구석의 근거지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해나 남경, 무한, 북경, 천진 같은 대도시가 중요하다. 서울, 부산 , 대구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대도시에서 아직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다.

    어떤 후보는 내년 총선에서 30~40명이 당선될 거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 30~40명을 보지 못했다. 하기야 비례대표 출마를 준비하는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혹시 비례대표 후보만 내어서 총선을 치르자는 이야기인가?

    막연하게 이야기들 한다. 국회의원 선거 제도가 바뀔 것이라고 전망하거나 비례대표 의석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혹세무민이 따로 없다. 나는 그런 무책임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과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다.

    황당한 전망을 하는 사람들과 비관주의자

    나더러 비관주의자라고 한다. 아니 황당한 전망을 하는 사람을 인정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 비관주의자를 자처했다. 그러면서 상대를 낙관주의자라고 불러주었다. 그러나 정세 인식에 낙관주의나 비관주의가 어디 있겠는가? 오직 있다면 정확한 정세 인식과 정확하지 않은 정세 인식이 있을 따름이다.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사람이 당의 미래다. 내가 미래라고 주장해서 미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사람이 당의 현재다. 그의 나이나 성별은 상관없다. 나는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에도 충실할 것이다.

    2000년 4월 나는 창원을 선거구 권영길 선거대책본부장이었다. 2007년 나는 대선후보 경선에서 권영길 선거대책위원장이다. 만약 2008년 4월 권영길 혼자만 지역구에서 당선된다면 민주노동당은 새삼스럽게 권영길 당이 될 것이다.

    5.

    나는 마산시위원회 댓거리 분회 분회장이다. 50명의 당원 중에 민주노총 조합원은 22~23명 가량, 그 중에서 영업직, 사무직. 교수노조 조합원을 뺀 생산직 노동자는 18명이다. 그런데 내가 올해 초 분회장을 맡은 이후 아직 얼굴을 못 본 것은 물론이고 전화 통화도 못 해본 생산직 노동자 당원, 창원공단의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여러 회사에 다니는 당원이 15명이다.

    나에 앞서 2년 동안 성실하게 분회장을 하신 박동엽 동지는 나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면서 18명의 생산직 노동자 당원들 대다수에 대하여 되도록이면 전화를 하지 말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 분들이 매우 귀찮아하면서 짜증을 낸다는 것이다. 나는 그 중에서 서너 분에게 용기를 내어서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 분들이 내년 총선 후에 혹시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방침,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에 대하여 회의적인 목소리를 내놓지 않을까 걱정이다. “뭐야 우리는 돈만 내고 몸만 대고, 노동당 만든다고 해놓고서는 청년당, 운동권당 만든 거 아니야?” “나 이제 당비 더 안 낼래!”라고 말할지 모른다.

    근거없는 낙관론과 환상적인 시나리오

    민주노총 조합원 당원들 다수의 마음은 이미 그런 상태까지 가 있다. 다만 계기와 명분이 없어서 참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만약 내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지난 총선보다 나쁜 성적을 낸다면 참고 있던 목소리는 터져 나올 수도 있다. 정치자금의 대부분을 공급하는 민주노총이라는 근거지를 잃을까 걱정한다.

    어쩌면 그렇게 이입삼을 닮았을까? 어쩌면 그렇게 왕명을 닮았을까? 작은 성공에 도취하고, 근거 없는 낙관론과 환상적인 시나리오로 스스로를 마취시켜 민주노총이라는 사회적, 계급적 근거지를 중시하지 않는 태도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석행 위원장이 내놓은 민중참여경선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미 울산에서 시장 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두 번이나 실천해서, 당원과 민주노총 조합원에게 같은 투표권을 주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참여시킬 필요를 느끼는 건 민주노총 지도자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런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는 노동조합이 방침을 정해놓고서 형식적으로는 개인이 당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우리 당의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빚어지는 것이다. 영국노동당 같은 경우에는 노동조합이 가입하여 전체 조합원이 당원이 되고 조합 단위로 정치적 견해를 결정하여 몰표를 몰아주는 블록투표제를 최근까지도 실시했다.

    물론 우리 당의 근본 설계도가 영국노동당과는 다르다. 그래서 고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민중참여경선제 제안을 당의 정체성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하고, 정파적인 대립으로 몰고 가서 결사 반대할 일은 아니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마음과 민주노총 지도자들의 고민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당 간부들이 걱정이다.

    나는 개인 권영길을 지지하지 않는다. 지역적 근거지와 사회적, 계급적 근거지를 한 몸으로 지키고 있는 장수 권영길을 지지한다. 그는 상징이고 인격화된 노선, 민주노동당의 현실주의 노선이다. 그러므로 그를 돕기 위해서 뭐든지 하는 것이 나의 도덕적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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