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도 '학벌' 스트레스 받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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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8월 16일 10: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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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수도 방콕에는 외국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가오산거리’라는 곳이 있다. 물론 나도 태국을 방문했을 때 호기심에 그곳을 들른 적 있다. 가오산거리 양편에는 상점들뿐만 아니라 노점상들까지 거리를 메우고 있다.

장터에서 나의 시선을 가장 끌었던 곳은 다름 아닌 가짜증명서를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곳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경찰들의 단속도 단속이겠지만 이런 일은 낯부끄러워서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이다. 이곳에서는 대낮에 그것도 공공장소에서 심지어 간판까지 내걸고서 외국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버젓이 가짜 증명서나 가짜 졸업장들이 진열돼 있었고 그것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진짜와 똑같이 보이는 대학졸업장도 그곳에서는 미화 10달러면 금방 구매자의 이름을 넣어서 발행해주고 있었다.

가짜 대학졸업장을 즉석에서 만들던 여성의 말로는 가짜 대학졸업장을 사가는 사람들은 주로 유럽이나 미국의 젊은이들로서 주로 한국이나 일본에 가서 영어강사로 일한다고 했다. 졸업장뿐만 아니라 학생증이나 운전면허증, 기자신분증 등 모든 증명서들이 다 갖춰져 있었다.

한일 양국서 일하는 영어강사들 가짜 졸업장 많을 것

물론 지금은 가격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가격으로 학생증은 5달러, 운전면허증은 10달러에 거래가 되고 있었다. 심지어는 유엔의 문양과 마크가 찍힌 유엔의 가짜 운전면허증까지 그곳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가짜 유엔운전면허증은 값은 50달러로 가짜 중에서 가장 비쌌다.

"왜 가짜 유엔운전면허증은 그렇게 비싸게 파느냐"고 물으니 "유엔의 컴퓨터를 해킹하여 구입자의 이름을 입력을 시키기 때문에 진짜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그럴 듯한 강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가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나라 때문에 그리스의 가짜 사례도 한 번 살펴봤다. 우리나라처럼 연속적으로 터져 나온 사건은 없었다. 단지 몇 년 전에 가짜 의사 사건으로 한동안 언론이 떠들썩한 적 있었다.

당시 아테네의 대규모 종합병원에서 내과의사로 일하던 사람이 학력을 위조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리스 사회가 술렁거린 적 있었다. 당시 그리스 언론에서는 의사로 수련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할 생각을 했던가에 집중적인 초점이 맞춰졌다. 어쨌든 그 가짜 의사가 큰 실수를 저질러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는 보고는 없었다.

가짜 의사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야메’라는 말이 널리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가난하던 60년대나 70년대, 병원이나 치과에 갈 형편이 안되던 시절,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야메’를 이용했다.

병원에는 갈 형편이 되지 못해 약방에서 주는 약으로 치료하고 넘겼다. 치통이 과할 경우에는 야메로 무면허 치과의사에게 이빨을 내밀었다. 면허있는 치과의사보다는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이빨을 뽑아주고 치료해줬다. 어떤 무면허는 정규과정을 밟은 치과의사보다 실력이 나은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시술했다.

가령 못을 뺄 때 사용하는 벤치로 이빨을 뺀 뒤 빨간 소독약을 솜에 묻혀 이빨 뺀 자리에 넣은 경우도 있었다. 형편이 나아진 지금까지도 야메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치과 분야에서의 야메가 거의 사라지고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성형 분야에서 성업 중이라는 소식이다.

가짜 졸업장과 위장취업

야메와는 거리가 먼 얘긴데 약국의 경우도 약대 졸업자의 약사자격증을 임대해서 걸어놓고 약사가 아닌 사람들이 약을 조제하고 판매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렇게 사회가 전반적인 불신의 늪에 빠져들면 밑도 끝도 없다. 의사나 약사들이 학력을 위조해서 일한다는 불신이 깊어지면, 가령 위급한 상태에서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은 일일이 수술을 담당할 의사의 학력을 사전에 파악해야 한다.

또 약국에 가서 약을 살 때도 약사의 학력을 제대로 조사해보고 약을 사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환자들이 의사나 약사들의 학력을 제대로 조사해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벽에 걸린 자격증이나 졸업장을 믿는 수밖에 없다.

위조와 관련된 얘기 중 우리나라만 간직할 수 있는 얘기가 있다. 70년대, 80년대의 노동현장에서는 한동안 `위장취업’이라는 말이 사회를 강타한 적 있었다. 대학을 다녔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장지대에서는 불순분자로 취급당했기 때문에 대학중퇴자나 졸업자들은 이력서에 학력을 낮게 기재해 공장에 취업했다.

경찰에 걸리는 경우에는 사문서 위조라는 죄명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만약에 이런 일이 외국에서 일어났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의 군부독재라는 특수한 지배구조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려고 의도했다.

이들은 대학생들의 공장행까지도 용납하지 않고 통제했다. 당시의 군부를 위시한 보수 지배집단은 교육제도를 통한 사회의 철저한 통제를 기도했다. 대졸은 사무직, 고졸은 육체노동으로 구조화시켜 이 틀을 벗어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았다.

교육을 통한 국가의 개인 통제

군부독재 측은 그렇다 치더라도 당시 학생운동가들도 사실은 공장에 가는 걸 죽기보다 더 싫어했고 두려워했다. 공장에 가는 일을 마치 완전한 인생의 대전환으로 생각하는 면도 있었다. 공장에 일하러 가기 전 날 술을 마시면서 마치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전사가 된 양 눈물을 흘리던 학생들도 있었다.

시대가 원한다면 대학생이라는 `위대한 신분’을 버리고 공장노동자라는 `천한 신분’으로 기꺼이 살겠다는 개인적인 결단도 필요했다. 당시 공장을 택했던 학생운동가들이 제 발로 걸어서 공장문으로 들어갔다기보다는 선배들이 원하고 조직이 원하니 거의 떠밀리다시피 해서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라는 안전한 틀 속에만 있으면 정해진 길이 거의 다 보이고 조금 편안하게 살 수 있는데 공장에 떨어지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판국이었다. 감옥에서 인생을 마감할지, 아니면 평생을 기계와 씨름하다 인생을 종칠지 모르는 상황이니 눈물이 나는 것도 당연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군부독재의 종말이나 민주화가 언제 올지도 예측할 수 없는 막막하고 암울한 상황이었다.

물론 공장에 들어간 운동가들 중에는 공장노동이 서툴러 부상당하기도 하고 심지어 산재로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들의 위대한 희생이 지금의 민주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에는 조금도 이의가 없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대학과 공장 간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요단강이 흐르고 있다.

과거에는 집안 사정 때문에 중학교에서 상위의 성적을 차지하던 학생들도 상고나 공고로 많이 진학했고 대학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상고 출신의 노무현 대통령처럼 독학으로 사시에 합격하는 경우도 많았다.

민주화가 됐다는 지금은 고졸 출신에 더 관대해진 게 아니라 더 엄격한 차별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 전반적인 사회의 분위기다. 대학이라도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아예 대학 축에 끼어주지도 않는 분위기다. 마치 이조시대 때 신분제가 다시 재현되는 같아 보기에 씁쓸할 뿐이다.

민주화 이후 학력 차별은 더 심해져

지금 한국사회를 들쑤시고 있는 학력위조 문제에서 보이는 일반인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20년 전이나 30년 전에 군부독재 집단이 대학생들의 공장행에서 보였던 반응과 별반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공장이나 육체노동현장에 가있어야 할 고졸 출신이 어떻게 예술세계와 대학강단을 넘보느냐는, 우습기만 한 낡은 잣대를 그대로 들이대고 있다.

학력을 속이고서 대중적인 활동을 벌였던 문화예술인들이나 교수들을 편드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학력을 속인 이유는 뻔하다. 학력을 속이지 않으면 도저히 그 영역에는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학력을 속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사회를 지배하는 학벌주의는 한국 사람이 외국에 가더라도 쉽게 벗어날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심리적으로 상처입은 사람들이 외국에 가서 맘 편하고 인간답게 살아보겠다고 떠나지만 막상 외국에 발을 내딛는 순간, 한국사람들을 만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학벌주의라는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된다. 한국사람들이 모이는 곳 어디에서나 학교 출신별로 동문회나 동창회가 따라다닌다.

10년 전으로 기억한다. 모 국가의 한국대사관에 여권문제로 찾아가서 영사와 얘기를 나눈 적 있었다. 영사는 한국의 대기업상사로 파견된 현지 직원들과 회식하는 자리에 갔다가 받은 수모를 내게 들려줬다.

서로 인사를 건네고 술을 한두 잔 마시자마자 회사 직원들은 영사에게 무슨 학교를 나왔는가 묻더라는 것이다. 그가 K대라고 대답하자, 회사직원들은 모두 S대 출신이라면서 자신을 그 자리에서 깔아뭉개더라는 것이다.

며칠이 지났지만 그 영사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처음 만났던 나에게까지 불평을 털어놓았다. 외무고시를 합격한 대한민국 대사관의 영사까지도 학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가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어느 외교관의 수모, S대가 아니라서 

이런 분위기는 진보진영이라 해서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실천보다는 말이나 논리가 주도해버리는 운동이 될 때는 언제나 학벌이 모든 것을 지배해버리고 만다. 민중을 대변한다는 노동운동단체나 민주노동당도 학벌주의에서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진정한 학벌주의나 학력주의가 지배하는 국가라면 세계를 정신적으로 지적으로 지도할 정도의 수준에 있어야 한다. 배운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투명하고 밝고,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와 양보가 이뤄지는 분위기가 지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학벌과 학력이 지배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이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고, 또 변혁이 없는 이상, 또 그렇게 갈 것이 뻔하다. 도무지 교육 수준이 높은 사회라는 표가 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어려운 경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가 봐야 모두 도서관이나 고시원에서 고시공부나 취직시험 준비에 매달릴 뿐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이라 해봐야 중고등학교 때는 대학입시를 위해, 대학에서는 취직시험과 고시준비를 한다고 시간을 소모할 뿐이다. 그러니 고졸이나 대졸이나 석사나 박사나 실력면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으니 가짜증명서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건 한 마디로 교육도 아니고 단지 어린 동물들을 우리 안에 가둬두고서 서로 싸우게 만드는 정글의 세계나 마찬가지다. 이 제도의 극단적인 결과는 바로 자살이다.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들, 심지어 대학생들의 자살이 줄을 잇고 있다.

역사적으로 1960년 4.19항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4.19는 고등학생들로부터 시작했고 이에 전국민들이 동참하는 식으로 확대되면서 이승만 정부까지 무너뜨리는 혁명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1979년의 부마항쟁이나 1980년 광주항쟁의 주력군 중 상당수가 고등학생들이었다.

지배세력은 고등학생을 무서워한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배세력은 지난 혁명의 교훈 속에서 고등학생들을 통제할 고도의 교육정책을 개발해왔다. 내신성적과 수능시험제도라는 대입정책을 통해 고등학생들을 가혹한 입시경쟁으로 내모는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비인간적인 교육제도를 시행해왔다.

이와 더불어 고졸과 대졸의 차등화 정책과 대학의 서열화 정책을 통해 민중들에게는 전반적인 심리적 열등감을 심어왔다. 이를 통해 지배세력은 정책 부재나 정책 실패에서 오는 모든 문제를 단지 개인적인 문제로 전가시키면서 버텨왔다.

한 마디로 국가라는 조직체의 책임 방기인 셈이다. 의무는 강요하면서도 아무런 반대 급부는 주지 않고 불행의 씨앗만 던져주니 피해를 입은 개인들은 당연히 국가를 저버리는 것이다.

현재 줄을 잇는 조기유학 문제부터 외국으로의 이민 문제는 모두 우리나라의 교육실패와 연관돼 있다.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입시지옥으로 몰아넣느니 차라리 짐싸들고 외국으로 떠난다는 부모들의 심정을 이해해줄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못살아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자녀들 교육을 위해 이민을 가고 있다. 교육제도의 실패로 인해 대한민국은 심각한 지경까지 왔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돼왔지만 정치권에서는 별다른 대책도 없다. 사실 교육문제는 통일문제나 한미FTA문제보다 더 시급하게 해결돼야 할 문제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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