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평화 이슈 적극제기론에 동의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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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8월 15일 10: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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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공적인 정상 회담을 위한 한가지 제언

    현 정부 임기 내에 실현 여부가 불투명했던 2차 남북정상회담이 결국 성사되었다.

    내부 정치의 논리와 관련이 없는 순수한 외교란 실존하지 않을 것이다. 선거를 4개월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개최되는 남북정상회담이고 보면 ‘궁금한 게’ 많아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또한 북한정부 역시 결국은 북미관계를 염두에 둔 가운데 선택한 남북정상회담 일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대결보다는 대화가 낫고, 긴장보다는 화해가 낫다.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어쨌든, 일단 환영한다.

    "노대통령, 이번엔 정제된 언어를"

    나아가, 한반도에 평화·공존질서를 안착시키는데 필요한 가능한 풍부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회담을 이끌기 위해, 정부는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사정이야 우리로서는 회담장에서 만나봐야 알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가시화가 명백한 쟁점들에 대한 국내에서의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이 없다면, 남북화해의 좋은 뜻도 사회적 갈등과 정쟁의 소재거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덧붙여,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부탁이 있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요번만큼은 정제된 언행을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난 몇 해 동안 노무현 대통령의 ‘해외순방 외교’에 대한 기억을 돌이켜보면, 종종 바깥에 나가 국내정치를 겨냥한 발언을 던져 파문을 야기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남북정상회담기간 동안만큼은 ‘평양’에서 국내정치를 향한 대통령의 ‘교시’가 날아드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국내여론은 또 다시 정상회담 자체는 안중에도 없이 노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한바탕의 소동으로 점철될 것인바, 어렵사리 성사된 남북정상회담도 별 소득 없이 지나보내는 시나리오가 될 우려가 있다.

    2. 평화는 평등과 함께 간다.

    냉전적 전쟁억지 구조를 새로운 평화질서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은 진보진영 전체의 공감대이다.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 남북정상회담 그 자체를 비판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폭력이 한국사회를 부와 빈곤을 따라 ‘분단’시키는 사태 속에 서 있는 것이 민주노동당이요, 한국 진보세력의 발 딛은 자리인 이상, 남북정상회담에 하냥 박수를 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나아가 한미 FTA와 개성공단을 이종교배 하려 안간힘 쓰던 엽기적 발상이 보여주듯, 신자유주의 지배동맹이 이끄는 남북관계의 개선 역시 신자유주의적 통합, ‘하위-제국주의적’ 발상과 떨어질 수는 없다.

    그리고 핵을 둘러싼 북미간의 공방과 그것이 만든 국제 정치적 양상은 근본적으로 시간을 버는 것이지, 한반도 두 국가의 역학관계 자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체제유지비용’의 조달이 다급한 북한과 남한자본의 북한으로의 진출이 ‘옵션’사항인 관계 양상 자체는 여전히 지속되는 중이다.

    평등-연대적 전망 열기

    북한의 문제는 결국 북한 인민의 주권적 사항이라고 치고 말한다면, 한국 진보세력이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를 넘어 평등-연대적 전망을 여는 것 보다 더 분명하게 한반도 민중 전체에 기여하는 일은 없다. 한반도에서 안정된 평화적, 호혜적 질서를 향한 노력의 키워드는 그것이 이곳에서의 대중의 삶을 개선하는 것과 연결되는 것에 있다.

    사소한 남북관계 개선의 문제조차 구설수에 휘말리는 것은 단지 보수우익세력의 데마고그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먹혀들 수 있는 토양의 문제이다. 남북관계가 이렇게 가거나 저렇게 가는 것이 하루 하루의 삶을 고통과 공포로 느끼는 서민대중의 입장에서 어떤 실익의 문제가 될 것인지 알 도리가 없는 한, ‘퍼주기 논란’의 사회적 기초는 잔존할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이제 스스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군축으로 민중복지’라는 구호는 이루어야 할 소망스러운 것이지, 현실이 아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GDP 대비 2.5%라는 경이적으로 낮은 군비지출이 이루어진 것이 지난 DJ정부에서의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추동 한 것은 바로 IMF의 재정지출 축소 압력이었다. 군축으로 재정 여유가 생긴다 해도 그것이 민중의 복지에 쓰일지, 아니면 신자유주의적 재정축소의 논리 혹은 재벌기업을 위한 지원금이 될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구조적’으로 한국사회에서 평등-연대적 전망의 문제와 한반도 질서의 호혜적 성격이 최소한 50%는 연동되는 것만큼이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의 가능성은 한반도에서 평화공존질서의 이익이 대중이 체감할 수 있는 문제가 되는 것과 연동된다.

    나아가 불필요한 무력비용의 감소는 좋은 일이지만, 군비와 복지의 제로섬의 구도는 그 자체 남북한 대결구도와 연동된 논리이다. 보수우익은 이미 수십년 동안 ‘군비 때문에 복지 지출을 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재미를 보아왔다.

    언제나 그렇듯, 정치적 논란에서 핵심은 사실 논란보다 프레임 자체의 재구성이다. 이를테면, 예전 감세 논란 와중에 어느 국회토론회에서인가 심상정 의원이 언급했듯, ‘외적 안보를 위해 군사비를 지출해야 한다면, 내적 안전보장을 위한 복지재정도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 정답에 가까운 것이다.

    3. 전장은 결국 ‘민생-경제’

    결국, 올해는 대통령선거의 해 이다. 무엇을 하건, 무슨 일이건 대통령 선거로 이야기가 연결되는 것은 필연이다. 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싼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각 정당들은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변수를 놓고 분주하게 손익을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싼 정황 중에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한나라당이 12시간 만에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누구나 대체로 동의하듯 이번 대선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경제-민생’이고, 또 하나는 ‘평화-남북관계’영역이다.

    그런데 연초부터 꾸준하게 이야기 되어온 것 중 하나는, 이번 대선에서 ‘민생, 경제’는 ‘갈등적 의제’이지만, 평화와 남북관계는 ‘합의적 의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실제로 정상회담 추진 비난 성명이 나간 직후 이, 박 양 캠프의 개입으로 한나라당의 입장이 사실상 180도 선회했다는 이야기는 이 전망이 사실에 가까울 것임을 말해준다.

    평화 이슈 적극 제기 동의 안돼

    물론 범여권과 한나라당 일부에는 정상회담을 갈등요소로 끌고 가고 싶은 의지도 있겠지만, 한나라당의 입장의 ‘유연화’ 뿐 아니라, 객관적 정황에 있어 2002년 보다 더욱 심각하게 부각되는 민생 쟁점과, ‘두 번째 정상회담’이라는 학습효과 자체가 대중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입장 차이의 폭은 예전과 다를 것이다.

    이는 민주노동당에게는 더욱 뚜렷한 문제인데,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지금 민주노동당이 취할 수 있는 입장은 특히 폭이 넓지않다. 어떻게 말해도 지금 민주노동당이 ‘정상회담 반대’를 말할 것도 아닌 이상, 결국 ‘더 잘 하기 바란다’거나 ‘제대로 하기를 바란다’는 수준의, 각론의 영역에 대한 ‘양적 차이’이지, 질적 차이를 구성할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본격적인 선거국면에서 일정한 변수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당장의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소수정당이며, 어떻게 해도 민주노동당의 입장이 ‘정상회담 반대’일 수는 없는 한, 소수정당의 입장에서 국가 간 관계 문제영역에서 튈 여지는 별로 없다는 것 역시 상기해둘 필요가 있다. (과도한 주장으로 괜한 비난을 받는 것을 빼고 말이다.)

    파란을 일으킬 수 있다 해도 그것도 결국 일단 주목과 지지를 얻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려면 적어도 구별 정도는 가능한 영역에서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정치, 특히 대의정치는 ‘차이의 질서’이다. 정치세력으로서 스스로의 입장의 고유성을 주장할 수 없는, 유의미한 차이를 구성할 수 없는 의제는 중심의제가 아니다. 게다가 이번 대선에서 남북관계를 둘러싼 의제는 비단 민주노동당만이 아니라 사실상 모든 정치세력에게 ‘합의적 의제’의 형상을 띌 확률이 높다. 누군가 남북관계를 최우선의 쟁점으로 삼고 싶은 의지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실현될 여지는 낮다는 것이다.

    즉,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고 해도, 이번 대선은 ‘민생-경제’ 문제가 중심을 차지할 확률이 객관적으로 높으며,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 양대 보수정당과 차이를 구성할 수 있는 지점 역시 그 영역이다.

    당장의 시점에서 남북관계 영역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태도는 ‘(언젠가는)수권을 말하는 정당’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측면 방어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어떻게 말해도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입지는 민생경제 영역을 돌파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부여받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민주노동당이 ‘평화 이슈, 통일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는 일부의 평가에 대해서는 선뜻 공감하기가 어렵다. 도리어 남북정상회담은 민주노동당에게는 비정규 투쟁과 한미 FTA 저지라는 현안에서 전선을 두텁게 하는 한편,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결과에 맞선 대안적 전망 구성의 문제를 한층 예리하게 가다듬을 것을 요구한다.

    4. 그리고 여전히 궁금한 것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은, 김정일과는 마주 앉아 협상도 하고 대화도 하겠다면서, 왜 이랜드 노동자들에게는 강제진압과 연행 밖에는 못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남북정상회담도 좋고, 통일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건, 일말이라도 비정규 노동자들의 피울음과 한미 FTA의 파괴적 결과를 모르쇠 하기 위한 핑계거리의 의도가 비친다면, 돌아오는 길 걸음걸음에 뿌려질 것은 압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정중히 알려 줄 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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