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상조론-정치행보-부동산 도마 위에
    2007년 08월 13일 06:29 오후

Print Friendly

   
 
 

그간 지상청문회 기획과 관련해 노회찬 선본과 논란을 벌였던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가 13일 오전 인쇄를 마치고 오후에 당원들에게 배포됐다. 이날 배포된 진보정치(335호)는 그간 당 게시판 등을 통해 이미 당원들 사이에서 여러 번 제기됐던 심상정, 노회찬, 권영길 후보에 대한 ‘의혹’들을 지상청문회 형식으로 보도했다.

심상정 "창당 시기상조론 주장한 적 없어"

먼저, 심상정 후보와 관련해서는 재산 고지 기피, 창당 시기상조론 주장 여부, 대중성 부족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2004년 국회의원 재산 신고 당시 시부모 재산 고지를 기피했던 것’과 관련 심상정 후보는 "당시 의원단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으며, 저를 포함해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열 중 여섯이 부모의 재산 신고를 하지 않았다. 직계존비속 재산 신고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재산형성과정에 대한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이해했고, 저의 경우 남편이 둘째 아들인데다 형편도 여의치 않아 시부모를 부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심 후보는 "그러나 지난 3년간 의정활동 경험을 종합해볼 때 직계존비속 재산신고는 정치권과 공직자 전체의 재산형성 과정의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의 측면이 더 중요하고, 무엇보다도  진보정당의 도덕성과 투명성의 잣대로 인식되는 현실을 충분히 감안해서 숙고했어야 하는 문제였다는 판단이다"고 답했다.

또 창당시 ‘시기상조론’을 말하며 민주노총 조합원의 당원 가입을 반대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심 후보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97년 금속노조 일각에서 민주노동당 시기상조론을 말하기는 했으나 이런 주장은 민주노동당 건설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이 더욱 굳건한 ‘반석’ 위에 발딛게 하기 위해 민주노총 내부 절차를 단단히 하자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심 후보는 "당 창당발기인 가운데는 금속 조합원이 많이 있으며 금속은 창당 후 당의 모든 방침을 가장 충실히 이행했고, 최대 당원을 확보했으며, 매 선거마다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금속 내부에서 당의 강화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던 결과로 이 질문에 답하고 제 역할에 대해 평가받겠다"고 응답했다.

   
 
 

또 경선 과정 동안 당 안팎에서 자주 지적받았던 "어렵다, 대중을 쉽게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 심 후보는 "‘콘텐츠’를 묵직하게 전달하려면 일정한 어려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고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감성에 호소하려고 노력한다"면서 "’찍순이’, ‘따당’ 등 비유를 통해 소외된 서민들의 아픔을 감동 있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제 말에 그들의 진정성까지 묻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가슴에 두고두고 남는 메시지를 줄 수 있도록 더 노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노회찬 "통합민주당 전술 오류 이미 인정"

노회찬 후보와 관련해서는 꼬마 민주당 공천, 특별당비 미납, 일부 주사파 학생들에 대한 비판 등(94년 서울신문 인터뷰)이 지상청문회 대상에 올랐다.

이미 당 게시판을 비롯해 <레디앙>의 댓글을 통해서도 여러 번 거론됐던 꼬마 민주당 공천과 관련된 노 후보의 답변이다. 

"1996년 총선에서 개혁신당, 통합민주당에 참여해 총선 출마를 추진한 것은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전술적 판단’이었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진영이 진보정당운동에 폭넓게 참여하지 못하고 있던 당시 한편으로는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민중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초석’을 다져야 하는 시기였는데, ‘진보정치연합’은 조직적 방침으로 개혁신당, 통합민주당을 통한 ‘총선 출마 전술’을 대의원대회를 통해 결정했다."

"이런 ‘전술적 선택’은 실패로 끝났고 이는 <진보정치 56호> 인터뷰를 통해 ‘전술적 오류’였음을 인정했다. 그 후 1995년 진보정치연합 9월 대의원대회는 1997년 대선에 독자후보를 출마시켜 이를 바탕으로 진보정당건설에 나서기로 결정했고, 다시 대표로 선출된 나는 민주노총, 전국연합 등과 함께 국민승리21 건설을 주도하고 민주노동당 창당사업에 매진했다."

이어 <진보정치>는 민주노동당 의원단과 보좌관이 노동자 평균 임금만을 받기로 하고, 나머지를 특별 당비로 납부키로 한 방침을 주도한 노 후보가 의원 보좌관 특별당비 6,800만 원 가량을 납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질문을 했다.

이와 관련 노 후보는 "오늘(8월 12일) 현재 미납액은 5, 500만원이다. 당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특별당비를 제때 납부하지 못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 사유에 대해선 사무총장에게 상세하게 설명드렸다"면서 "안기부 X파일 공개사건으로 고소, 고발되면서 민사, 형사재판 비용이 갑자기 발생한 것이 주 배경이다. 어려운 당 현실을 감안해 8월 14일까지 미납액 전액을 납부할 계획이다. 참고로 타 후보도 특별당비를 제때 납부하지 못한 경우가 있으며 8월 4일 까지는 심 후보가 900만원을 미납하였고, 권후보는 완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진보정치>는 또 지난 94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면서 불거진 소위 조문 파동과 서강대 박홍 총장의 주사파 발언 파문 등으로 마녀사냥에 가까운 공안정국이 형성돼 민주인사들이 구속되던 시절에 노회찬 후보가 8월 12일자 <서울신문> 인터뷰를 통해 한 발언에 대해 질의했다.

노 후보가 "국민적 지지가 없는 학생운동·통일운동은 더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 최근 일부 주사파 학생들의 친북통일운동은 한마디로 시대착오에 불과하다. 주사파 학생들이 북한의 민주화·인권문제 등은 도외시하거나 옹호·방관하면서 북한노동당의 입장이나 정책을 비판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노 후보는 "요즘 ‘디 워(D-WAR)’라는 영화에 대한 비평가들의 날 선 비판이 공권력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상영금지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사상의 자유,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문제와 정치활동과 사상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은 다른 문제이다. 우리 활동에 대한 비판 자체를 금기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비판이든 자유로워야 하며 위기일수록, 애정이 강할수록 비판은 날카롭고 근본적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노 후보는 또 "통일운동 역시 더욱 국민 속에서 지지받을 수 있도록 재구성되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위해 일방적인 북한 추종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공안탄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김영삼정권의 진보진영에 대한 탄압에 대해 강력한 투쟁을 전개했고 이는 그 당시 나의 활동에 대해 확인해보면 될 것"이라고 답했다.

권영길 "소유 부동산은 가족들 실거주지"

권영길 후보의 경우 재산 보유 현황, 자주계열과 관련된 행보, 통외통위 상임위 활동 등이 질문 대상에 포함됐다. 

다수파인 자주계열 지지를 의식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권 후보는 "민주노동당은 다양한 이념과 노선을 가진 정파들이 모여 있는 당이고 당내 자주파도 그 중 하나인데, 이들을 무슨 범죄집단 취급하는 ‘이유’에 대해 오히려 ‘의혹’을 제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권 후보는 "목숨을 걸고 통일운동한 사람들이고, 당을 밑바닥에서부터 함께 건설해온 이들이다. 이들을 ‘최대 정파’라는 이유로 조폭 취급하고, 최대 정파가 지지한다는 이유로 ‘패권적’이라고 한다면, 이는 민주노동당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권 후보는 또 "자주파만 권영길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좌파도, 당내 사민주의 성향도 권영길을 지지하고 있어 3명 후보 중 유일하게 ‘좌우합작’ 선대위를 꾸리고 있다. 자주냐 아니냐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넘어 나는 남북이 하나되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이미 총선 및 두 번의 대선 등 선거 때마다 논란이 됐던 재산 보유 현황(중앙선관위에 제출한 재산 목록 – 본인 명의의 △서울 강남구 세곡동 답 520평 △서울 강남구 일원동 소재 55평 빌라 △경남 산청군 단성면 길리 답 716평, 부인 명의의 전세인 △경남 창원시 상남동 S아파트, 장남 소유의 △서울 강서구 등촌동 주공아파트, 어머니 소유의 △서울 강남 일원동의 다세대주택집)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권 후보는 이에 대해 "세곡동 부동산은 이미 매각됐으므로 현재는 나의 소유가 아니며, 2004년 총선 후 그간 해고와 수 차례의 선거 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은행 융자 등을 갚기 위해 처분했다. 또 장남 소유 아파트는 독립적 가정을 꾸리며 장남 부부가 월급 모으고 은행 빚 내서 마련한 장남 부부의 재산일 뿐"이라며 "노모 소유의 11평 다세대주택은 실제로 노모가 살고 계시다가 97년부터는 첫째 딸 내외가 출가해 노모집으로 들어왔다. 소유권은 노모에게 있으며 노모께서는 그 집에 애착이 깊다"고 설명했다.

이어 권 후보 측은 "(본인 명의인)산청 고향의 토지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작은 전답으로 집안의 삼촌께서 경작 중이시다. 장자인 이유로 제 명의의 전답이됐지만, 집안에서 운영하는 전답에 다름 아니다. 또 실거주지인 두 곳에 대해 설명하면, 강남 일원동 소재 빌라는 살고 있던 ‘기자 아파트’가 비좁아, 80년대 후반 노모를 모시고 1녀2남의 성장한 자식들과 생활을 위해 기자아파트를 처분하고 그 돈으로 어렵게 구한 집"이라고 밝혔다.

   
 
 

권 후보는 또 "나는 당의 결정에 따라 일원동 집을 처분하고 2000년 창원 지역구 출마를 위해 창원으로 거주지를 옮기려 했으나, 팔순 노모가 생면부지 낯선 땅에 적응하길 어려워하시며 깊이 상심해 자식된 ‘도리’가 아니라 생각해 이를 처분하지 못했고 그때 얻은 ‘창원 전셋집’이 창원 상남동 26평 아파트로 둘 다 실거주지"라고 답했다.

<진보정치>는 또 2007년 5월 31일 당 집권전략위원회와 진보정치연구소가 공동주최한 ‘17대 의정활동 평가와 대안’ 토론회 발제문을 인용해, 원내 진출 이후 2년 동안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 총 232건 중 평화통일 관련이 3건(1.3%)으로 나타나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으로서의 활동이 저조한 것이 아니었냐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권 후보는 "진보정치연구소의 ‘제17대 의정활동 평가’에서 결정적 문제점은 ‘질적 평가’가 아니라 ‘양적 평가’, 즉, ‘법안 개수’를 가지고 평가하고 있는데, 이는 ‘질적 평가’를 할 때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면서 "이라크파병, 한미FTA, 한반도 평화체제,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됐던 17대 국회에서  나는 이라크 파병에 대해 철군결의안과 김선일씨 청문회를 주도했고, 한미FTA에 대해서는 원내진입 직후부터 ‘통상절차법’이라는 대안을 마련, ‘한미FTA 국회의원 연구 모임’을 조직해 이 모임이 바로 ‘한미FTA 국회의원 시국회의’로 전환됐다"고 반박했다.

이어 권 후보는 "또 한반도 평화체제 관련해서는 6.15 기념일 제정이나 북핵 위기 당시 한반도 평화 촉구 결의안, 남북교류협력법 등을 주도했다"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민주노동당 의원 10명이 한마음으로 노력했다"고 답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