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현실을 닮아 이토록 섬뜩하다
By
    2007년 08월 11일 08:02 오전

Print Friendly

   
 
 

"현관문을 열자 편지 한 통이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p.37)

전작 『아오이가든』에서 시체들을 향해 인사했던 편혜영의 두 번째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의 표제작은 그렇게 한 통의 편지와 함께 시작한다. 그리고 팔랑거리며 툭 떨어진 편지 한 통에 이제 누군가의 하루가 혹은 누군가의 세계가 불안과 공포를 동반한 채 허물어진다.

이 시대의 전형적인 도시 직장인이면서 전원주택의 거주민인 그가 출근 직전에 받아든 이 편지는 집을 얻는 데 보탠 어마어마한 융자금에 대한 화답이다. 중산층의 허위와 그 몰락의 공포는 「사육장 쪽으로」에서 현실의 상황으로 들이닥친다.

여기서 작가는 집행인의 등장을 끝까지 미뤄두는 방식을 택한다. 불안과 공포의 구체적인 대상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 오는 거예요?"(p.40)라고 아내가 묻지만 대답을 구하지는 못한다.

"집행이 시작되려면 조금 여유가 있을 거야. 그 동안 살 집을 마련하면 돼. …중략… 그렇게 말하는 순간, 어쩐지 집행이 늦춰질 것이며, 그사이 새로운 주거지를 찾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느 모로 보나 터무니없이 낙관적인 생각이었다."(p.42)

실제로 그가 무리해 입주한 이 단독주택조차 진작부터 그의 낙관을 배반하고 있었다. 조립식 자제를 사용해 열흘 만에 지어진 집은 레고 블록과 다를 바 없었고, 마을의 다른 주택들 역시 똑같은 방향으로 창이 뚫려 있었고 같은 크기와 모양의 우체통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는 도시를 벗어난 곳에서 살고는 있지만, 도시의 상징인 아파트의 구조를 벗어나 있지는 않은 것이다.

사육장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개 짖는 소리가 소란스러운 것은 둘째 치고, 사육장과 관련된 핏빛 소문들이 무성했다. 투견이 있다고도 했고, 개와 멧돼지를 흘레붙인다고도 했고, 실은 도살장이라고도 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몰락의 공포와 확인되지 않은 사육장에 관한 소문들이 내내 이야기를 휘젓는다. 불안함은 본래 미확인 상태에서 증식하는 법 아닌가. 이쯤에서 카프카를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공놀이를 하던 아이가 사육장에서 온 개들에게 포위당하고 물어뜯기는 사건은 편지를 받은 날 밤에 벌어졌다. 아이가 그 지경에 처하는 와중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돌팔매질과 야구방망이질이 고작이었다.

"그러면서 마을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들을 도와줄만한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이미 개 짖는 소리를 듣고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꽁꽁 잠갔을 거였다. 그도 진작 아이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그는 그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p.56)

그의 몰락은 아이가 개에 물렸다는 것만으로는 절정에 오르지 않는다. 그들이 가야할 곳은 병원이지만, 마을 사람들이 가르쳐준 병원의 위치는 공교롭게도 ‘사육장 쪽’이었다. 결국 그가 쫓아야 하는 것은 개 짖는 소리인 셈이다.

"(…) 그는 점차 자신이 찾는 것이 사육장인지, 아이를 치료할 병원인지, 아니면 아이를 물어뜯은 개인지 헛갈리기 시작했다."(p.59)

이 갈피 없는 헛갈림에 귓가를 계속 쫓아오는 개 짖는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야기는 끝이 난다.

가야할 곳을 알지 못하는 것은 비단 「사육장 쪽으로」의 인물만이 아니다. 「소풍」의 마지막 장면은 어떤가. "여자는 멈추어 선 채로 허공에 매달린 이정표를 읽었다. 모두 처음 보는 지명이었다. 이정표는 언젠가 도착할 도시의 이름을 알려줄 뿐, 여기가 어딘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었다."(p.34)

작가가 그린 몰락이란 바로 이런 것일지 모른다. 이 도시의 당신과 나의 삶이란 결국 이정표 없이 헤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그 헤맴이 종착역을 갖지 못하리라는 것. 작가는 그러한 것을 말하는 데 있어서 주저함이 없다. 이 도시를 그리기 위해서는 낭만이나 감상이 불필요하다고 여긴다.

작가는 다만 끔찍한 현실을 끔찍한 대로 두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본다. 현실의 끔찍함이란 다르게 말하자면 현실의 불확실성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가 두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볼지언정 현실은 불확실성의 안개에 뒤덮여 명료하지 않으며, 부조리하고 흉흉한 살풍경들의 거대한 퍼즐이다.

작가가 바라 본 지금 이곳의 삶은 핏빛 소문으로 흉흉하거나 「동물원의 탄생」에서처럼 동물원을 탈출한 늑대의 출몰로 술렁인다.

"늑대를 찾아 도시를 헤맨 지 벌써 여러 날이 흘렀다. 늑대는 도시에 남아 있는 게 틀림없었다. 계속되는 총성이 그 증거였다. 그러나 몇 발의 총성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그는 늑대 터럭 하나 볼 수 없었다. 도시에서 늑대를 보았다는 사람들은 계속 나타났지만, 그들이 본 것이 늑대인지 늑대를 닮은 개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p.71)

우리는 끝내 늑대를 발견하지 못할 테지만, 거리를 배회하다가가 쓰레기통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며 먹이를 찾는 늑대의 동지들로 살아갈 것이다. 혹은 「분실물」의 ‘박’처럼 누구와 누구를 분별하지 못한 채 살아갈 것이다.

"지금 떠올린 얼굴이 메모지에 남긴 것과 같은 얼굴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송일 수도 있고 김일 수도 있었다."(p.246) 다같이 늑대이거나 얼굴이 없거나, 그것이 당신과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아닌가?

『아오이가든』에서 발휘한 기괴한 상상력을 기대한 독자라면 『사육장 쪽으로』가 얌전해졌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르게는 현실의 부조리와 악몽 같은 끔찍함을 이야기하는 화법이 조금 더 능란해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미 익숙한 이 현실, 그러므로 무뎌질 만큼 무뎌진 감각에 이렇게 불안하고 두려움 가득한 시선으로 칼끝을 쑥 들이민 작품과의 대면은 섬뜩한 일이다. 소설은 현실을 닮아 이토록 섬뜩하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