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심은 군비축소 전략대화 체제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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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8월 09일 06: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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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정상회담의 의제로 거론되는 것은 통일의제, 평화체제, 공동번영, 과거사(이산가족, 납치문제), 4대 현안, 정상회담 정례화를 포함한 전략대화 체제로의 진입 등이라 할 수 있다.

    1.

    통일의제와 관련해선 추상적인 통일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겠지만, 구체적인 합의에는 이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을 강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실내용을 가지지는 않은 상징적인 수준에 머무를 수 있다. 이러한 합의는 중요하긴 하지만, 남한보다는 북한 내부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2.

    4대 현안, 즉 미군철수, 북방한계선(NLL), 핵문제, 국보법 중에서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수 있는 것은 북방한계선의 문제나 핵문제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미군철수나 국보법은 현 조건에서 논의되기가 어려운 사안들이다.

    또한 북방한계선 역시 구체적인 합의에 도달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만약 노무현 정권이 북방한계선이나 국보법 등에 대해서 북한과 합의를 한다면 심각한 대선정국과 맞물려 국내 혼란을 부추길 수도 있다.

    그러므로 북방한계선 등에 대해선 원론적 합의 및 차후 국방장관 회담 혹은 군비통제 회담에서의 지속 논의를 합의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핵문제와 관련해선 91년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재확인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북한은 핵문제의 해결을 북미관계의 틀 속에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 양자가 입장이 첨예하게 다를 수 있는 문제를 두고 입씨름하기보다는 과거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주도적으로 형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3.

    또한 공동번영의 의제와 관련해선 철도 연결 문제, 대규모 사회 기반시설 확충 등의 문제를 포함한 현재의 교류협력을 더욱 발전시키는 내용들이 다뤄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0년 선언의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추상적 합의 내용이 좀 더 보강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공동번영의 의제는 이산가족 문제, 국군포로 문제, 인도적 지원 문제 등과 연계되어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노무현 정권으로선 이들 문제에서 가시적 성과를 확보할 수 있다면, 대북 지원의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정권이 가능한 수준에서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아울러 남북한이 생태와 복지가 구현되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에너지 및 경제협력에서 자원 순환형 사회를 지향한다거나, 경제협력을 통해 민중(인민)의 삶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공동으로 도모한다거나 하는 합의가 들어가는 것은 생각해봄직 하다. 

       
      ▲ 남북정상회담 발표 기자회견.(사진=뉴시스)
     

    4.

    전략대화체제는 남북협력을 제도화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안정적 기반을 통해 남북한 당국의 정치적 의지 여하에 따라 가능한 ‘연합단계’에 가까운 장래에 도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상회담의 정례화와 91년 기본합의서에서 규정한 남북공동기구의 정상화가 반드시 합의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기반만 확충한다고 해서 남북협력이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50년 이상의 군사적 대결 체제를 유지해온 남북한이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선 반드시 군사적 긴장완화와 군비축소의 문제를 다뤄야만 하기 때문이다.

    5.

    가장 중요한 평화의제와 관련, 남북이 주도적으로 합의, 실천할 수 있는 것은 군비축소 분야라 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형성 과정을 앞당길 수 있는 것 역시 군비축소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군사적 대립을 지속해온 남북한이 군사적 긴장완화와 군비축소에 포괄적으로 합의하고, 이를 전담할 국방장관회담과 군비통제회담을 실시한다는 것은 ‘사변적’ 사건이 될 것이다.

    필자는 추상적인 통일방안의 합의나 업그레이드된 남북경제공동체의 비전 이상으로 군축에의 합의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와 관련, 북한의 입장은 다소 복잡할 수도 있다. 북한은 ‘주한미군+남한군 대 북한군’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한미군의 문제가 빠진 채 군비통제와 군비축소에 합의하는 것에는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핵 불능화가 연내 완료되는 것을 전후로 하여 한반도 평화포럼이 개최되는 것이므로, 남북한은 양자회담과 동시에 4자 평화포럼도 병행 추진할 수 있다. 군비축소 회담이 단시일 안에 끝나는 것이 아닌 한, 북한은 부담을 덜 가지고 군축 합의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군축이 빠진 정상회담은 알맹이가 없는 선언에 머물 우려가 크다. 

    6.

    더불어 지난 2000년 공동선언에서는 ‘자주’가 특별히 강조되었는데, 이번 선언에선 ‘국제적 지지와 협력’이 보다 강조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미래의 평화로운 동(북)아시아의 비전에 대한 소망을 선언에 담아내는 것은 상징적으로 의미가 있다.

    남남갈등을 예방할 수 있는 정파 연석회의와 국민 여론수렴

    청와대가 정상회담 합의 사실을 보도한 순간부터 정상회담의 정략적 이용 문제가 논쟁이 되고 있다.

    사실 대선이 몇 달 남지 않은 지금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여 공동선언문을 작성할 경우 여러 가지 논란거리를 남길 수 있다. 즉, 남북정상회담이 정파적 다툼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절차, 조건, 시기를 문제 삼는 한나라당이나, 정상회담 성사에 기여하였다고 스스로를 내세우는 구여권 대선주자들의 행태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한나라당은 시기, 절차, 조건을 들어 정상회담에 반대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여전히 그러한 입장을 유지할지, 아니면 변화된 정국에 맞춰 태도를 변화시킬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정상회담 이후 한나라당의 태도는 결국 정상회담의 성과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 6.15 선언 이후 김대중 정권이 취한 햇볕정책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남남갈등을 필요 이상으로 증폭시켰다는 점이다. 이는 총선 등에서 선거 전술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과거와 달리 그 효과는 크다고 할 수 없었지만.

       
      ▲ 남북정상회담 성사 배경을 밝히고 있는 김만복 국정원장.(사진=뉴시스)
     

    중요한 것은 남남갈등 논란이 결국 김대중 정권의 대북정책과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다 해서, 대다수의 지지 없이 국가적 사안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과 뿔뿔이 흩어진 구여권 세력들이 이번 정상회담을 정략적인 것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정파를 상대로 최대 공약수를 모아내는 것이다. 5당 대표회담이던 대선주자 연석회의이던, 초정파적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 마련에 힘써야 한다.

    반대론을 펴는 한나라당까지 포괄하여 논의를 진행해야, 누가 집권하든 연속성 하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름을 살리지 못한 ‘참여정부’ 답게 국민들을 상대로 여론을 수렴해내야 한다.

    이러한 합의 과정이 정상회담에도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첨예한 남북대치의 상황에서 군비축소와 같은 문제는 충분히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문제이다.

    진보진영은 군축을 중심으로 한 정상회담 의제의 제안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을 환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중의 이익에 근거하여 정상회담의 의제 설정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정상회담을 토대로 평화체제 형성을 앞당겨야

    국내외 언론보도들은 정상회담의 의미에 대해서 엇갈린 보도들을 내놓고 있다. 남북 정권의 정치적 이익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 반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거대한 지각 변동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남북한 수뇌가 만나서 합의할 수 있는 범위는 앞서 보았듯이 제한적이다. 단발성 이벤트로 끝난다면 정상회담에 대한 대중의 불감증만 키워줄 것이다. 역으로 최상의 합의를 이끌어낸다면 6.15 체제를 넘어서는 8.30 체제를 형성할 수도 있다.

    ‘아시아를 뒤흔들 3일’이라며 미국이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고, 중국, 러시아 등도 지지의사를 보내고 있다.

    남북이 경제협력과 군비축소가 병행되는 관계를 형성해나가면서, 평화체제를 주도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남북한은 6자 외무장관회담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평화안보협력, 동북아시아 에너지협력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북한의 적극적인 핵 불능화 노력에 더해진다면 내년 초 남북미 3자의 종전선언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또한 핵 불능화의 개시와 더불어 본격화될 한반도 평화포럼에도 주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일들이 풀린다면 북미관계정상화 논의가 종전선언과 더불어 이뤄질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남한과 북한이 각각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교를 펴면서도 남북축을 북미축, 한미축만큼이나 강화하는 것이 도전적 과제가 될 것이다.

    이렇듯 6자회담에서의 주도적 참여와 남북 양자의 공동체 형성을 위한 노력이 결합된다면, 어느 한 쪽이 동요하더라도 한반도의 안정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전쟁 부재라는 소극적 의미에서의 평화이건, 갈등과 모순의 근원을 제거한 적극적 의미에서의 평화이건 남북협력을 토대로 한 주체적 개입 없이는 달성될 수 없다.

    희망하는 대로 거대한 변화가 이뤄진다면, 남는 문제는 시민사회의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정상회담의 추진과정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남북관계의 개선은 주로 당국의 주도로 이뤄지게끔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가 당국의 뜻을 환영하고 추인하는 역할에만 머무른다면 문제일 것이다. 이는 진보정당에도 마찬가지이다.

    양 당국 사이의 회담을 환영하면서도, 군비축소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에 대한 의제를 선도하는 것은 진보세력의 몫이다. 정당은 자기만의 이념에 기반을 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기반을 둔 계급과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국방예산삭감(군비축소)과 사회복지 확충을 묶는 시민사회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외부로, 시민사회로 연대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보다 적극적으로 군비축소를 의제로 삼아, 한나라당보단 구여권 세력들과의 대립각을 곧추 세우는 데 나서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체제가 쟁점이 될 대선정국에서, 당이 싸워야할 대상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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