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폭탄이 터진 날, 평화여행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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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8월 06일 12: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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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지는 모습.
     

    52년 전 오늘과 그리고 이틀 뒤, 7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은 인류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끔찍한 불지옥 속에 내던져졌다. 어떤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열기로 인해서 (물리학적 의미 그대로)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은 온 몸이 타들어가 죽어버렸다.

    또한 보다 많은 사람들은 핵폭발의 엄청난 폭풍으로 인해서 눈알이 튀어나오고 내장이 파열되면서 죽어갔고, 또한 많은 사람들은 휙 날아가 목조건물을 관통하여 다른 편 담벼락에 내동댕이쳐져 죽었다.

    그리고 더욱 많은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온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경험하고 피를 쏟으면서 몇 일 혹은 몇 주의 시간을 경과하면서 죽어갔다. 그리고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육체적으로 앓고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어가면서 살아갔으며, 자녀들에게까지 그 고통은 대물림되고 있다.

    인류의 역사상 가장 ‘효율적인’ 살상 행위는 단 2발의 핵폭탄으로 이루어낸 것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로서 히로시마와 나가사끼라는 도시에 거주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죽어야만 했다. 그들은 군인도 아니었으며 그곳을 떠나라는 경고도 받지 못했지만, 폭탄 투하를 지시한 자들에게는 침략국의 국민이라는 것만으로 이유는 충분했다.

    핵폭탄 투하로 민족 해방됐다고, 그 비극을 외면해야 하나?

    한국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최초이자 유일한 ‘대량 살상’ 행위가 미국에 의해서 일본 국민들을 향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모호한 가치판단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일제를 멸망시키고 우리 민족에게 해방을 안겨다 준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드러내놓고 말하진 않지만 긍정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어쩌면 핵폭탄 투하를 지시한 52년 전 미군부 결정권자의 생각과도 통하는 바가 많을 것 같다.

    전쟁을 조기에 끝내야 하기 때문에 침략국의 국민이 얼마쯤 죽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나, 민족해방을 불러온 핵폭탄 투하는 환영할만한 일이거나 적어도 부정될 일은 아니라는 태도는 어디쯤에선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은 지나친 것일까?

    그런 태도의 사람들에게는 매일을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의 생명과 삶은 간단히 무시될 수 있는 것일 게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일본의 한 학자는 경남 합천을 ‘일본의 히로시마’라고 부르고 있다.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의 피폭자 중에는 ‘조선인’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수는 전체 피폭자 중 10% 수준인 7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연하게도 조선인 피폭자 중의 많은 수가 합천 출신이었는데, 그들은 해방 이후 이곳으로 집단적으로 귀향하여 각종 질병과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에서도 이야기할 수 있나?

    미국의 핵폭탄이 우리 민족에게 해방을 가져다 줬다는 통념은 ‘한국의 히로시마’인 합천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미국이 핵폭탄으로 태평양 전쟁을 끝내고 우리 민족을 일제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숭미 민족주의자, 핵폭탄 개발과 보유로 민족과 조국의 안위를 지킬 수밖에 없다는 친북 민족주의자, 이들 모두 합천에 가서도 그리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의 성공적인 ‘대량 살상’에 만족해하면서, 미국은 절대 공포의 무기를 독점하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연이어 소련 등의 소위 강대국의 핵실험 성공은 미국의 ‘핵독점’ 구상을 불가능하게 만들면서, 미국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새로운 구상을 들고 나왔다.

    ‘평화적 핵이용’이라는 개념은 살상과 파괴를 야기하는 핵무기가 아니라, 핵에너지를 값싸고 무한정 공급할 수 있는 핵발전소를 건설하겠다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핵패권 국가들의 정의롭지 못하고 불평등한 핵보유를 정당하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약소국들이 핵무기 개발해서 자신들에게 도전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핵발전소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국제정치 차원의 진의(眞意)인 것이다.

    ‘평화적 핵이용’ 구상은 명분으로 내세운 핵무기 확산을 막는데 기여는 했는가. 부정적이다. 여러 국가들이 핵발전소를 운영하면서 여기로부터 얻어내지는 경험, 인력, 시설 그리고 핵연료를 이용해서 끊임없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비밀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시도해왔고, 또 그 잠재력을 확대해왔다.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 것처럼 한국이 그랬으며, 일본은 재처리를 통해서 엄청난 플로토늄을 확보해두고 있다. 미국 등 핵국가들이 위선적 태도를 철회하고 전면적이고 신속한 핵군축이 돌입하지 않는 한, 그리고 핵발전소 건설과 수출이 계속되는 한 핵무기의 확산 저지는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 피폭 후 히로시마 모습. 도시가 사라졌다.
     

    평화적 핵이용? 잠재된 핵폭탄일 뿐이다

    게다가 ‘평화적 핵이용’은 그 자체로 불가능한 목표이기도 했다. 핵발전소는 그 자체가 잠재된 핵폭탄이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구소련의 체르노빌 사고는 ‘평화적 핵폭탄’이 터져버릴 수 있으며 막대한 인명피해와 광범위한 방사능 오염을 낳는다는 우려가 사실임을 직접 보여주었다.

    아주 최근에는 일본 지진으로 인해 벌어진 방사능물질 유출 사고는 핵발전소가 잠재된 핵폭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또한 안면도, 덕적도, 그리고 부안의 예처럼, 극도로 위험한 핵발전소 그리고 방사선 폐기물 시설의 설치, 관리, 운영을 위해서 폭력적인 경찰국가의 등장의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적 사업이라는 명분으로 행해진 다른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시설이 위치하는 지역 주민들의 인권은 무시당하고 갈등은 조장되며 민주주의는 억압된다. 어디에서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가능성을 찾기 힘들다.

    최근 한 인도네시아 이슬람 종교단체 대표가 입국하여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일인시위를 벌였다. 그는 한국전력이 인도네시아 전력회사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핵발전소를 수출하려고 하는 계획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한국 환경운동에게 반대 운동에 나서달라는 연대를 호소하였다.

    그는 “한국의 핵발전소 수출 시도가 인도네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동남아의 안정을 크게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한국기업들이 동남아를 비롯하여 여러 지역에 진출하면서 인권 탄압, 환경 파괴 등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 계속 보고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기업이 자행한 인권 탄압과 환경 파괴의 목록에 이제 막 한국전력도 올라갈 참인 것이다.

    국내에서 핵산업계 마피아들이 어떻게 지역 주민들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억압해왔으며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파괴해왔는지 기억한다면, 인도네시아 운동가의 경고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핵폭탄 터진 52년 후 오늘, 비핵평화의 여행을 제안한다

    핵없는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비핵평화의 여행’을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에게 제안하고 싶다. 우선 경남 합천을 방문하여, 핵폭탄과 핵실험으로 무고하게 희생된 모든 국적의 사람들(당연히 일본인 피폭자, 남태평양의 핵실험의 피폭자, 그리고 900여명의 북한 거주 피폭자도 포함될 것이다)을 추모하고 고통을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또한 이 자리에서 ‘한국인 원자폭탄피해자 진상규명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위한 여론을 이끌어내며, (말많은 전두환의 일해공원 계획을 변경하여) 비핵평화공원을 조성할 것을 공약했으면 좋겠다. 이 법안은 민주노동당 조승수 전의원이 발의했다가 의원직 상실 이후 외면되어 서랍 속에서 썩고 있는 상황이다.

    다음으로 제주도를 방문하여 동북아 비핵지대화 운동을 주도하고 역내 진보정당과 시민사회와 연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노력할 것을 선언해주길 바란다. ‘제주도, 평화의 섬’을 선언하고 비핵자치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가 난데없는 해군기지 설치문제로 싸우고 있다. 그리고 비핵평화를 염원하는 도민들의 희망과 의지를 모아, 제주도가 동북아 비핵지대화 운동의 근거지가 될 방안을 제시했으면 좋겠다.

    또 핵폭탄만이 아니라 핵발전소와 방폐장 문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부안에 들러, 평화롭고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혁명에 연대의 뜻을 밝히면 좋겠다. 부안은 방폐장 문제로 크나큰 고통과 갈등을 겪으면서, 핵발전소가 안겨다주는 폭력과 반환경성을 인식하였다.

    지금 부안 주민들은 평화롭고 환경친화적인 재생에너지 생산을 위해서 유채꽃을 심고 바이오디젤을 만들어 사용하는 ‘옐로우 혁명’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광화문 한복판에서 서서 어떤 목적으로나 어떤 지역에 누구에 의해서든 핵무기와 핵발전소는 안된다는 민주노동당의 반핵강령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인도네시아의 핵발전소 수출에 대한 반대를 천명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북한에 경수로 지원이 아닌 평화롭고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로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당당히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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