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련 활짝 핀 날, 꽃잎처럼 떨어진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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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8월 05일 11: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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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영의 시집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에 등장하는 죽음은 여러 가지다. 시인의 죽음, 이주노동자의 죽음에서부터 탐험가와 혁명가의 죽음, 현대사 속 인물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름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죽음이 등장하는 시의 모습 역시 각각 다른 얼굴들을 하고 있다.

    죽음이 “그리고 묵직한 설교단 반대쪽 측문 왼편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구리로 된 무덤 표지판이 제라늄과 함께 장중히 누워 있었다.”(<라이프찌히, 토마스 교회를 가다> 부분)에서처럼 그저 하나의 풍경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집을 압도하고 있는 형식은 다음의 예가 대표적이다.

    “목련이 활짝 핀 봄날이었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불법체류 노동자 누르 푸아드(30세)는 인천의 한 업체 기숙사 3층에서 모처럼 아내 리나와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목련이 활짝 핀 아침이었다. 우당탕거리는 구둣발 소리와 함께 갑자기 들이닥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이 다짜고짜 그와 아내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기 시작했다. 겉옷을 갈아입겠다며 잠시 수갑을 풀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푸아드는 창문을 통해 옆 건물 옥상으로 뛰어내리다 그만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떨어져 숨지고 말았다. 목련이 활짝 핀 눈부신 봄날 아침이었다.”(<봄날> 전문)

    시적 자아의 개입을 극도로 배제한 채 사실과 상황을 전하는 것으로 시를 삼고 있는 셈이다. 좀더 나아가 아예 언론 보도, 편지, 육성 등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시적 자아의 개입 정도가 “목련이 활짝 핀 봄날이었다” 보다 더 두드러지는 경우도 있다. 가령 <사담 후쎄인>의 경우.

    “교수형에 처해지기 직전 후쎄인은 군인답게 얼굴에 두건 쓰기를 거부했으며, 굵은 밧줄이 그의 목을 힘껏 죄기 직전까지 미국과 페르시아인들에 대한 저주를 퍼부었다.…중략…그는 서방의 제재로부터 이라크를 해방시킨 아랍의 영웅인가? 아니면 10만이 넘는 쿠르드족과 반대파를 학살한 독재자인가? 어둠속의 무덤은 낮고 아무런 말이 없다.”(<사담 후쎄인> 부분)

    이 경우에도 시적 자아의 개입의 강도는 그리 세지 않다. 또한 이 경우처럼 시적 자아가 개입하고 있는 시들은 이번 시집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도 않다. 곧 이시영 시인은 최소한의 시적 자아만을 자신의 시에서 허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시인은 이에 대해 책 말미에 실린 ‘시인의 말’을 통해 “이 시집엔 다른 분의 글이나 기사에서 인용한 것들이 많다. 때론 한줄의 기사가 그 숱한 ‘가공된 진실’보다 더 시다웠다. 부디 그분들의 글이 더욱 빛나기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시영의 시들이 즉물적이고도 객관적인 묘사에만 치중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시영의 시의 핵심과는 거리가 멀다. 다음은 <가을 호상>의 전문.

    “가을햇살이 깨밭의 깨꽃처럼 쏟아져내리는 아침, 이씨네 상가 상청에선 이 댁의 시집간 딸들이 모처럼 모여 소녀처럼 다리를 뻗고 울고 있었는데, 간간이 섞이어 들리는 “아이고 어머니, 나 중학교 다닐 때 깨 팔아 운동화 사 신으라고 주신 돈을 빵집 앞에서…” 어쩌구 하는 막내딸의 사설 또한 구성지기 그지없었는데, 마당에서 잠자리 잡는다고 빗자루 들고 뛰어다니며 놀던 어린 손주들이 곡소리에 놀라 어른들 다리 사이로 방 안을 기웃거리다가 제 할머니들의 갑작스런 어리광에 양볼을 타고 비어져나오려는 함박웃음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하하 터트리고 마는 것이었다.”

    단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주어는 여러 개다. 아침-곡소리-함박웃음이기도 하며, 할머니-어머니-손주이기도 하며, 깨꽃-운동화-잠자리이기도 하며, 가을-집-다리 사이이기도 하며, 울음-놀이-웃음이기도 하다.

    이처럼 죽음의 풍경은 중층적이고도 복합적이다. 죽음은 시에 등장하는, 또한 시 뒤편에 숨겨진 시인은 물론, 모든 것들과 연관되어 있으며, 곧 죽음은 모든 것을 하나의 문장 속으로 수렴시키며, 그럼으로써 모든 것을 자신의 풍경으로 만든다.

    그 풍경 속에서 우리는 분노하고 희망하고 노래하며, 우리는 부모가 되고 시인이 되고 혁명가가 된다. 그 삶과 죽음의 풍경이 시시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지금 이곳의 삶이 어딘가 무언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이시영의 시의 여백은 바로 그 곳으로 향한다. 시의 사회학은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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