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지에 몰린 아베, 위기에 처한 자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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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7월 31일 12: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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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후 이러한 국민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그리고 엄숙히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나라 만들기’는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에, 이 ‘새로운 나라 만들기’라는 책임을 총리로서 확실하게 수행해 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29일 밤 토쿄방송(TBS)과 인터뷰에 응한 아베 총리의 대답이다. “선거 참패가 확실시 되면서 사퇴의 목소리가 높아지지 않겠는가”라는 앵커의 질문에 답하는 아베 총리의 표정에는 곤혹스러운 빛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퇴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다.

       
    ▲ 참의원 선거 참패 직후 침통한 표정으로 당사를 빠져나오는 아베 총리(사진=뉴시스)
     

    7월29일 실시된 일본의 참의원 선거. 내외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말 그대로 참패했다. 이번에 선거를 실시한 121석 중에서 37석을 획득하는데 그친 것이다.

    일본의 참의원 의원은 임기가 6년이지만, 3년마다 의석의 2분1씩 새로 선출한다(‘개선 의석’이라고 함). 이 의석수는 ‘비개선 의석수’를 더하더라도 제1야당인 민주당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의석이며, 1955년 자민당 창당 이래 참의원에서 제1당의 자리를 뺏긴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연립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공명당도 비례대표 1석을 포함해 9석을 얻는데 그쳐 역대 최저 의석이 되었다. 연립여당의 의석을 다 합해도 과반수에 훨씬 미달한다.

    반면, 제1야당인 민주당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민주당은 121개의 개선 의석 중 60개의 의석을 차지했다. 다른 야당들과 공동전선을 펼친 선거구까지 포함한다면 여당을 30석 가까이 앞섰다.

    이러한 이유로 아베 총리가 아무리 “정권을 선택하는 중의원 선거와는 다르다”고 강변하더라도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론’과 ‘사퇴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점증하는 총리 사퇴론

    사실, 이대로 가다가는 선거 참패가 불을 보듯 뻔하다는 ‘우려’가 자민당 내외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작년 말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내각 지지율은 좀처럼 회복되지 못했다. 선거 직전 미국의 원폭 투하에 대해 말실수를 한 큐마 방위상을 대신해 고이케 유리코라는 여성 방위상을 내세워 전세 역전을 시도해봤지만, 고이케 신임 방위상도 아베 내각을 늪에서 구하는 ‘아베의 마돈나’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선거 참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아베 정권 인사들의 부패와 추문들이었다. 올해 5월 제1야당인 민주당이 정부가 5,000만 명의 연금 기록을 분실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아베 정권의 신뢰도가 급락했다.

    또한 아베 총리의 측근인 마쓰오카 도시가쓰(松岡利勝.62) 전 농림수산상이 석연치 않은 정치자금 회계 처리를 놓고 고민하다 자살했고, 그의 후임자인 아카기 노리히코(赤城德彦)도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는 등 총리 주변 인물들의 돈과 연루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선거전을 전후해 터져나온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어쩔 수 없었다"(규마 후미오 방위상), "알츠하이머병 환자라도 알 수 있는 이야기"(아소 다로 외상) 등 각료들의 실언이 이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이유는 아베 총리의 보수적 ‘정체성 정치’의 ‘약발’이 다했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취임 초부터 고이즈미 전 총리와 자주 비교되곤 했다. ‘경제의 구조개혁’, ‘정치개혁’이라는 브랜드를 내세운 고이즈미 전 총리에 비해 뚜렷한 색깔도 없고 콘텐츠도 약하다는 비판이었다.

    이에 대한 아베 총리의 대응 방식은 강력한 ‘우경화 드라이브’였다. 작년 연말부터 이어진 교육기본법 개악, 방위성 출범,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법안 강행처리는 대표적인 예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과 북한 때리기의 지속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러나, 아베의 이러한 ‘보수적 정체성의 정치’와 ‘반북의 정치’가 더 이상 유권자들을 움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의 약진이 “연금법 전면 수정, 공교육의 무료화, 지방과 도시의 생활격차 해소” 등 민생 문제에 착목한 ‘생활의 정치’의 성과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벌써부터 자민당 내외에서는 ‘총리 사퇴론’이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자민당의 간사장 등 간부진들이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총리직 수행을 강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의원 해산과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 스스로가 “아베와 오자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 달라”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한 만큼, 심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참의원 선거는 ‘정권 구성’과는 관계없다는 논리로 피해가고 있다.

    아베 내각의 앞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내각의 험난한 앞날은 자명하다. 매 사안마다 참의원 제1당으로 부상한 민주당과의 힘겨운 ‘권력 게임’을 벌여야 한다. 특히, 아베 내각의 지속가능성 여부는 민주당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아베 총리는 9월 대폭적인 개각을 통해 정국을 돌파하려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만약 참의원 의장직과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차지한 민주당이 아베 내각 무력화를 위해 총공세에 나선다면, 집권 여당으로서는 중의원 해산을 통한 ‘조기 총선’이라는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일본 참의원은 미국 상원에 버금가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중의원을 통과한 법률안을 부결시킬 수도 있고 심의를 지연할 수도 있다. 아베 내각의 국정운영 자체를 마비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외교안보 정책에 있어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예측해 볼 수 있다. 특히, 6자회담에 임하는 일본의 태도나 대북정책은 급작스러운 변화는 아닐 지라도 기존의 경직된 입장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민당 내에서 조차도 아베 내각의 대북정책과 대아시아 외교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야마자키 다쿠 전 부총재를 비롯한 일부 자민당의 OB그룹은 아베 총리가 ‘납치문제 해결 없이 북일 수교 없다’는 원론적 입장만을 내세우다가 외교무대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을 해 온 바 있다. 코너에 몰린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외교안보 정책에 있어 자민당보다는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접근을 취하는 민주당의 견제가 강해진다면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에 수정이 가해질 수도 있다.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는 작년 10월 북한 핵실험 이후 “주변사태법을 발동”을 요구하는 자민당과 민주당 강경보수파들에 대항해 “주변사태법 발동에는 반대한다”는 태도를 고수해 결국 법 적용을 저지한 바 있다.

    또한, 아베 총리 스스로도 ‘납치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만 했지, 실제로 진전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대내외의 비판을 의식해서라도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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