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T 팬에서 노회찬 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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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7월 31일 12: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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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몇 유명인사들을 보면 자신의 인생을 바꾼 책이 있었다고 합니다. 과연 나의 인생을 바꾼 책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시절, 고등학교에서 입학 예비생들에게 미리 읽어보도록 권장한 도서 목록을 살펴보면서 흔히 말하는 ‘진보’ 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읽었던 책이 유시민씨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였는데요, 지금 유시민씨의 행보는 정말 안타깝지만, 그때 당시에는 정말 충격적이고 신선한 책 내용에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점차 끄덕끄덕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제 삶을 180도 바꾼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정치는 어른들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정치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선생님들의 영향으로 ‘진보’ 의 개념에 좀 더 다가서기는 했지만 적어도 한국의 정치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치에 희망을 걸기엔 우리의 현대사가 너무나도 암울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당시에는 홍세화, 진중권, 박노자, 한홍구씨, 노엄 촘스키 등의 책을 읽으면서 내면의 의식을 성숙시키기보다는 지식에 대한 상대적 우월감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아직까지 제 인생을 바꾼 책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고3 수험생 시절에 정치인 노회찬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고3이라는 시간은 공부도 많이 하는 시간이지만 그와 함께 평소에는 재미없던 프로그램도 재미있게 보게 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당시 저에게는 정치인들의 정책토론회나 100분토론 같은 프로그램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패널 이름에 ‘노회찬’ 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날은 때로는 그 촌철살인의 통쾌함에 웃음을, 또 어느 날은 그의 현실풍자에 공감하며 씁쓸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점차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치는 어른들의 따분한 이야기이고 정치인은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던 제가 정치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인생을 바꿀 책은 만나지 못했지만, 제 삶의 모토를 바꾸어 줄 정치인을 만났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저는 어릴 때부터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아이돌 가수를 참 좋아합니다. 어린 시절 H.O.T.가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화려함과 그들의 수려한 외모에 넋을 잃었었고, 좀 더 나이가 든 후에도 동방신기 같은 제 동생뻘 되는 아이돌 가수들을 보면서 눈을 떼지를 못합니다.

    지금이야 덜하지만, 학창 시절에는 툭하면 ‘오빠들’ 얼굴을 보기 위해 공연장에도 쫓아다니고, 집이 지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있는 숙소까지 찾아가는 등 제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습니다. 학교 수업 시간표는 몰라도, 오빠들 스케쥴 시간은 몽땅 외우고 다닐 정도였다고 하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을 하실지 모르겠네요.^^

    그런 제가 한 사람의 정치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아가 ‘민주노동당’ 이라는 특정 정당에 관심을 가지자 부모님께서도 신기해 하시더군요. 꼴에 책은 좀 읽었다고 부모님이 말씀하실 때 마다 우격다짐식의 딴지를 걸기도 했습니다.

    몇몇 정당에 대한 비판이 아닌 비난만을 일삼던 딸 자식이 이전보다 좀 더 진지하게 정치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시면서, 부모님과 좀 더 체계적인 토론을 나누려하는 딸의 모습을 보시면서 부모님도 민주노동당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보셨습니다.

    요즈음 들어 당시의 이야기를 회상하듯이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면, 부모님께서는 그 때의 제 변화가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우셨다고 합니다. 7080세대인 부모님께는 어쩌면 당연한 걱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의 걱정을 뒤로 하고 대학교에 진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노동당에 입당하였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당의 시스템을 잘 몰랐기 때문에 당원이 되는 방법도 몰랐고, 민주노동당에 어떤 분들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대표적인 몇몇 분들, 권영길, 노회찬 등의 의원과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몇몇 책의 저자인 황광우, 장석준 같은 분들이 제가 알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전부였습니다. 뒤늦게 입당한 저의 당원번호는 79503번, 7만번대 번호에 겨우 걸쳐있는 번호입니다.

    2005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고 첫 번째로 맞는 여름은 제가 입당 후 노회찬 의원을 다시 돌아보게 한 여름이었습니다. 흔히 X파일이라고 말하는,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노회찬 의원의 공룡 ‘삼성’과의 싸움이 불붙기 시작한 여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떡값’ 을 받아먹은 떡값 검찰 7인의 실명을 밝히기로 결심하고, 이에 검찰 측에서는 노의원을 기소하려고 했던 여름이었습니다. 제도화된 권력 앞에서 그는 당당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말했습니다.

    "나를 기소하고 싶은가? 기소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은 알리는 것이 도리다. 나라와 국민에게 도움 되고 옳은 일이라면, 법의 잣대에 개의치 않고 나는 한다.

    나의 오늘 행동이 공익에 반한다면, 국민이 알 필요도 없는 내용을 공개하고 부당하게 사리(私利)를 추구했다면, 스스로 면책특권을 포기할 것이다. 나 스스로 나의 손목에 수갑을 채울 것이다."

    당시의 언론을 기억합니다. 아니, 그 해 여름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전부터 보수언론과 보수정치권은 정경언 유착이라는 X파일의 본질을 일부러 흐려왔습니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논점을 흐리던 차에, 노회찬 의원이 나서서 일거에 논점을 다시 제 자리로 돌려놓은 셈입니다.

    제 주위 친구들도 노회찬 의원의 행보에 의아함과 동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더군요. 처음 주변인들의 반응은 의아함 이었습니다.

    “삼성은 국내 최고 기업인데 뭐가 불만이야?”
    “삼성이 벌어다 주는 외화가 얼만데”
    “나쁜짓은 삼성만 하는 것도 아닌데”

    싸이월드 일촌들의 방명록에 삼성 X 파일에 대한 내용을 옮겨 적고 다녔습니다. 보수세력이 노의원의 기소여부를 검토하는 순간에도 왜 노회찬이 삼성의 악행을 지적하고 있는지, 삼성이란 공룡의 악행이 무엇인지 주변의 친구들에게 알려주면서 가끔은 흥분하고, 분노하기도 했던 여름이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노회찬 의원이 대중들에게 ‘할 말은 하는 사람’ 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여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전에도 똑부러진 주장과 특유의 입담으로 우리네의 아픈 곳을 다독거려 주었지만 이 여름 이후에 노회찬을 보고 힘을 얻은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장 조레스의 발굴이라고나 할까요? ‘인민의 호민관’말입니다. 저에겐 그 해 여름이 호민관 노회찬을 발견할 수 있던 여름이었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인간’ 노회찬 에게 매력을 느낀 것은 그의 일기를 읽으면서입니다. 그의 홈페이지 ‘난중일기’라는 제목의 폴더에서 읽게 된 그의 일기는 기존의 정치인들에 대한 제 몽타주를 바꾸어 주었습니다. 이전부터 ‘정치인 노회찬’ 에 대해 가지고 있던 호감이 일기를 읽으면서는 사람냄새 물씬 나는 인간 노회찬에 대한 호감으로 바뀌었습니다.

    기존에 제가 그리고 있던 정치인에 대한 이미지를 짧게 요약하자면 ‘목 아래에 살이 처져있고, 배나오고, 목에 깁스한 아저씨들’ 이었지요. 거기다 좀 더 보태면 ‘국회의사당 이라는 링 위에서 혈전을 벌이는 조폭들’ 정도의 이미지, 그만큼 정치인에 대한 저의 인식은 부정적이었습니다.

    그의 일기를 읽으면서 적어도 그에 대한 제 이미지만큼은 바뀌었습니다. ‘눈 내린 다음날 아침 제일 먼저 밖으로 나와 골목골목의 눈을 쓸어치우시는 웃음이 넉넉한 호빵맨 아저씨, 혹시라도 빙판을 보지 못해 넘어지는 사람이 있으면 제일 먼저 달려와 손을 내미는 이웃집 아저씨’ 제가 느끼는 인간 노회찬의 모습입니다. 혹시라도 그의 일기를 읽지 못하셨다면 꼭 한번 쯤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입당한 이후 노회찬 의원은 계속해서 거대자본 삼성과의 싸움, 만 명에게만 평등한 법과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카드수수료인하 캠페인 등 소상점주들의 시름을 덜어주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남들은 조금 우습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과거 H.O.T.에 열광하던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처음 H.O.T. 가 데뷔했을 때 다섯 명이 했던 말은 “키워주세요" 였습니다. 팬들은 그들을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돌 그룹으로 키워주었고, H.O.T. 라는 이름으로 함께 한 시간 동안 그들은 최고에 걸맞는 노력과 땀으로 팬들에게 보답하였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된 이후에도 그들의 행보는 거침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팬의 입장에서 H.O.T.를 응원하고 키웠듯이, 저는 지지자의 입장에서 노회찬 의원에게 날개를 달아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한 지지자들이 달아드리려 하는 그 날개가 그에게 결코 과하거나 부담스러운 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행보를 볼 때 마다 대한민국에도 내일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모두가 진보의 위기를 운운하고 민주노동당의 위기를 운운하지만 , 노회찬 의원 같은 분이 아직 진보진영에 남아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진보의 희망이고 민주노동당의 희망이기도 합니다.

    흔히들 ‘빠순이’ 라고 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이돌의 몇몇 극성스런 팬들은 그 극성스러움으로 인해 가끔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합니다.

    정치에 있어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저의 이런 글이 또 다른 ‘노빠’ 를 선언하는 글이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노빠이지만 노빠가 아닙니다. 정치인 노회찬, 인간 노회찬을 많이 아끼는 팬이지만 그가 고쳐야 할 점도 있고, 또 앞으로 우리를 위해 해야 할 것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잘못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되면 언제라도 비판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랑스럽게 노회찬을 지지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정치인으로서의 날카로움과 통찰력, 인간으로서의 부드러움과 따스함을 고루 갖춘노회찬, 제 10대의 행복을 H.O.T.에서 찾았다면, 제 20대의 행복은 노회찬과 함께하는 발랄하고 즐거운 진보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가 행복을 우리의 몫으로 남겨줄 사람이란 사실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런 믿음이 결코 믿음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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