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에 밀린 그랜드백화점 생각나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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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7월 31일 11: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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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석훈 박사가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후보 3명에의 경제 공약을 분석, 평가한 글을 <레디앙>에 보내왔다. 우석훈 박사의 글이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들의 경제분야 정책 공약에 대한 활발한 토론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글은 필자가 보내온 원고 순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1.

       
    ▲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노회찬 후보는 심상정 후보나 권영길 후보와 같이 단일 문건으로 정리된 경제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아직 만들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제 7공화국 테제’라고 부르는 것이 경제 비전을 갈음하는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어쨌든 그의 제 7공화국 테제가 여러 공약들을 모아내는 ‘얼굴’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그 얼굴은 너무 익숙하고 오래된 것이라는 점은 명확한데, 그 공약들이 가리키는 길이 라다크의 교훈을 빌리자면 과연 ‘오래된 미래’의 역할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저 오래 되었고, 익히 증명된 ‘막힌 길’에 불과한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평등과 통일’이라는 제 7공화국의 양대 가치를 보는 순간 고색창연하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 같은데, 그렇다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 하여간 노회찬 후보의 11대 테제는 이 익숙한 ‘오래된’ 두 개의 발 위에 세운 ‘7공화국’과 함께’ 그의 모든 정신을 담아서 대중 앞에 보여주는 ‘인터페이스’ 역할을 하는 것이다.

    2. 그랜드 백화점과 현대 백화점의 차이라고 할까?

    신촌의 오래된 시장, 신촌시장은 예전에 인근 대학교 학생들이 MT를 갈 때 김밥을 사가거나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서 오이와 당근 같은 ‘안주’를 살 때 주로 가던 곳이다. 이 신촌시장은 90년대를 살아남지 못했다. 현대백화점이 그 자리를 깔고 들어섰다.

    그 당시 연대 앞 사회과학 책방이라도 살려보려는 일부의 노력들이 있었지만, 이미 산업자본이 유통자본과 결합되던 거대한 변화 속에서 재래식 시장이 버틸 공간은 거의 없었다.

    현대 그룹에서 운영하던 현대백화점 길 건너편에 그랜드 백화점이라는 것이 들어섰는데, 현대백화점 신촌점이 서울리엔이니, 신촌지엔느니, 택도 없는 마케팅 공세로 90년대 초반의 소비 돌풍을 이끌어가던 시절, 그랜드 백화점과 현대 백화점의 물건의 질이나 가격에는 사실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랜드 백화점은 동네 마트 취급을 받다가, 결국 운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마트로 바뀌고, 그 이후에도 한번도 현대백화점 같이 유통체계 마케팅의 한 축에 끼지 못했다. 

    노회찬 대표의 ‘제7공화국 테제’를 보고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비유가 이 현대백화점과 그랜드 백화점 사이의 경쟁과 비슷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80년대 운동권의 꿈이 재래 시장 같은 것이었다면, 민주노동당은 정부보조금을 비롯한 정치 장치를 활용하는 백화점 같은 곳이다.

    그런데 이 정당은 한 번도 마케팅과 소비 흐름을 끌고 가는 유통업자로서 기능한 적이 없다. 아마 민주노동당은 현대백화점 앞에서 힘들게 버텼던 그랜드 백화점의 역사와 비슷한지도 모른다. 물론 이름만큼은 그랜드 백화점도 ‘그랜드’했다.

    노회찬 후보의 제7공화국 테제는 딱 이 그랜드 백화점의 구조와 마찬가지이다. 사실 현대백화점이라고 해서 자기들이 날고 기는 재주가 있기 전에는 별 특별한 상품이 있을 리도 없고, 모그룹 현대의 자금력을 뒷받침으로 하는 약간 더 화려한 치장 외에 대한민국이라는 동일한 구조에서 별 거 있었겠는가?

    그러나 소비자들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현대백화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억울하고 안타깝겠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현대백화점은 90년대 문화센터를 운용하면서 강서구, 영등포구에서 서대문구, 심지어는 은평구까지 버스로 주부들을 실어나르면서 매우 튼튼하고 강력한 ‘진성당원’들을 만들어냈는데, 이 거대한 구조 앞에서 그랜드 백화점이 버텨낼 재간은 없었다.

    3. 7공화국이 효율적인 ‘얼굴’인가?

    헌법에 대한 논의는 중요한데, 노회찬 후보의 비극은 그가 지지율 콤마 범위에 있는 정치 지도자라는 데에 있다. 만약 이명박이나 박근혜 아니면 열린우리당의 1~2위 후보 정도라도 된다면 개헌을 통한 정책 프레임과 기조의 변화가 중요한 전략이 될 수는 있다.

       
    ▲ 노회찬 후보는 중앙선거대책본부 출범식에서 7공화국운동을 선포했다.
     

    그냥 마케팅의 눈으로만 본다면 시장 선도력이 없는 후발업체의 중소 ‘전방(廛房)’에 불과한 후보가 거대한 프레임을 던졌을 때, 그리고 그것이 2/3의 국회의원의 지지와 50% 국민의 동의가 있을 때에만 할 수 있는 일일 때, 많은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이 사안은 "그냥 해보는 말"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진입 장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면, 그만큼 강력한 진입 장벽 앞에 서 있는 셈인데, 이걸 뛰어넘기 위해서 제시된 제 7공화국 테제라는 모지방은 그만큼 처음부터 한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심상정 후보의 ‘세박자 경제’는 내부적 아키텍처(구조물-편집자)의 기형적 모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건 비전이다. 비전은 전체를 아우르는 꿈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방식의 문제다. 

    그러나 노회찬의 ‘7공화국 테제’는 비전이라기 보다는 ‘수단’의 범주다. 그리고 이 수단이 현실에서 구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은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알고, 밖에서도 알고 있다.

    그래서 뭔가 더 층위가 높은 비전에 해당하는 인터페이스가 필요하고, 제 7공화국은 장기적으로 그런 시스템이 안정화되기 위한 법제도적 기반 혹은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논리적으로는 옳은데, 노회찬 후보의 경우에는 수단이 비전의 자리에 있다. 마케팅으로 얘기하자면, 그랜드 백화점의 비극이라는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둬둔 셈이다.

    이걸 들고 TV 토론이나 혹은 지상토론 등, 드디어 당 밖의 외부 인사와 논의하게 되는 순간이 왔다고 해보자. 각론이나 개별 공약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마 반대 편에서 "이게 현실성이 있다고 보십니까?"라는 첫 번째 질문에 부딪힐 것이다.

    현실성이 있다고 대답하면, 공교육 강화나 보건권 혹은 농업에 대한 수많은 공약들을 꺼내보기에 앞서, "보세요, 이렇게 정신 나간 사람에게 어떻게 국정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라는 단 한 마디에 날라가게 된다. 반대로 자신도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면? 그럼, "이건 뭡니까? 이래저래 ‘대안 없는 좌파 극단주의’ 아닙니까"라고 단 한 번의 설전만으로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물론 노회찬 후보가 이 어려움을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토론에서 설정된 프레임은 입에서 입으로 수없이 반복 재생산된다. 부유세와 무상의료 같은 것은 밑바닥에서 진행되는 수없는 지지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나름대로는 극복할 수 있던 것이라서 좋은 공약으로 지금도 평가를 받는다.

    ‘제 7공화국 테제’는 노회찬 후보만이 아니라 개별 지지자들까지도 논쟁에서 버텨내기가 어려운 테제이다. 지금까지의 논쟁사에서 유사한 경우를 찾는다면 마틴 루터 킹의 "I have a dream"(나는 꿈이 있습니다)에 해당되는 것인데, 인권에 관한 비전과 대선에서의 공약은 위상과 구조가 전혀 다르다.

    물론 같은 단어와 같은 프레임이라도 20% 이상의 지지를 받기 시작한다면, 그 때에는 제 7공화국 그것도 ‘평등과 통일’이라는 기조로 새로 만들어질 헌법안은 현실성을 갖기 시작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상황이 아니다.

    87년 대선에서 많은 사람들은 양김의 분열로 노태우가 집권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 대선을 10년 후에 분석한 사람들은 프레임의 싸움도 컸다고 지적을 한다.

    그것이 바로 ‘수권 능력’이라는 단어였는데, 과연 양김에 수권 능력이 있느냐는 아주 간단한 질문 때문에 사실은 양김에 투표할 수도 있었던 일정 정도의 사람들이 군사정권에 투표했다는 지적이다. ‘수권 능력’을 설득할 수 있는 집단과 설득하기 어려운 집단 사이에 경제공약의 인터페이스를 비롯해서 선택의 여지에 분명히 차이가 있다.

    4. 백화점일 것인가, 진보정당일 것인가?

    프레임의 얘기를 넘어서 본격적으로 각론에 대해서 보는 순간, 갑자기 두 개의 기조가 11개의 테제로 확대발현되면서 찬란하게 만개하는데, 이 중에 원래 있던 공약과 이번 대선을 위해서 새로 만들어진 공약을 구분해보려고 하는 순간, 나는 현대백화점 대신 그랜드 백화점 안으로 들어왔다가 그 미로 안에서 길을 잃고 도대체 여기에 내가 뭘 사러왔는가 헤매고 있는 구매자의 심정이 된다.

    신상품과 생필품, 명품과 기호품, 그리고 진품과 가짜가 뒤섞여 있는 11개 테제의 복잡한 구도는, 이 정책을 보고 투표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이 들긴 해도, 혹시 이 문건을 직접 보게 된 사람들이 부딪히게 되는 당혹스러움을 상상하게 만들어준다.

    물건이 뭐가 많기는 한데, 과연 이걸 구매하기 위해서 지갑을 열 것인가? 이 구도에는 "이거다"라고 생각되는 많은 상품이 어디엔가는 숨어 있을 수 있겠지만, 많은 한국 국민들은 실제로 이걸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자신이 정말로 원했던 상품을 찾기보다는 "어디 다른 데 없나?"하고 발길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경부운하에 대한 사람들의 검증 얘기를 들으면서 "참, 이 좋은 프로젝트를 몰라보고…"라고 공개된 자리에서 말한 적이 있다. 같은 말을 언젠가 노회찬 후보 입에서 듣게 될지도 모른다. "참, 이 좋은 테제를 몰라보고…"

    그런 점에서는 기본 아키텍처에 몇 가지 구조적인 문제점을 담고 있음에도 심상정의 공약은, 내용 잘 전달될 수 있을 만큼 명료성과 간결성을 가지고 있다. 심상정 공약은 "적어도 프로가 손을 댔다"는 느낌을 준다. 

    노회찬 후보의 공약 아키텍처를 악랄하게 지적하자면, ‘개헌’이라는 논의 하나를 새로 만들고, 여기에 지난 수년 동안 대선과 총선 동안에 만들어진 수많은 공약들을 전부 쑤셔 넣었다는 비난 아니면 오해를 받기에 딱 좋게 되어있다.

    물론 농업 공약과 조세 공약에서 분명히 진일보한 측면이 있고, 부동산과 공기업 문제 혹은 성평등과 같은 각론에서 새로운 것들과 손을 일부 본 것들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런 ‘새로운 것’은 이 구조에서 부각되지 않는다.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흔히 말하는 "야마가 없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저것 정책에 대해서 조금씩은 손을 댄 백화점이라는 느낌을 주는데, 기획상품 혹은 계절상품과 같이 백화점 문 앞에 걸 선전문구가 없는 셈이다.

    길 건너에 서 있는 현대백화점에 대항해야 하는 그랜드 마트가 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은 너무 뻔한데, 눈에 잘 띄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대형 현수막과 몇 개의 간판이 해볼 수 있는 전부이다. 선정주의, 인기영합주의, 포퓰리즘 등 수없이 이 현수막에 비난의 글귀를 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간판에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상품명 혹은 캐치 프레이즈를 걸지 않는다면 90년대에 현대백화점 앞에서 살아날 수 없었던 그랜드백화점 꼴이 날 수밖에 없다. 

    5. 뭔가 하나가 더 필요하다

    2007년에 적합한 의제들이 이 11제 테제에 들어가 있는가? 일부는 이 안에도 있을 것이고, 일부는 새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눈에 띄는 형태로 다시 비전 혹은 ‘경제 공약’, 이름이야 뭐든지, 그런 형태로 다시 디자인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제 7공화국 테제는 그런 것들에 대한 별첨, 혹은 기본 자세 같은 것으로 첨부되는 형태가 보다 대중적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지금 노회찬 후보의 제 7공화국 11대 테제를 읽고, 이 사람이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고 생각할 사람들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1%도 안된다.

    나머지 99%의 사람들에게 "저는…"이라고 말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고, 그걸 정책선거에서 경제비전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얘기한다면 아직 노회찬 후보는 선거 치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셈이다.

    그런 점에서는 심상정 후보는 "저는…"이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에서 그런 것을 가지고 있는데, 노회찬 후보의 전략은 이 소수 정당의 군소 후보에서도 일종의 ‘디펜딩 챔피언’ 전략인 셈이다.

    물론 60%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이나, 언제나 50%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다는 범여권의 후보와 비교한다면, 민주노동당의 어느 후보라도 더 준비된 후보이고, 더 간결하며 모범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치시장의 소비자에 해당하는 국민들은 그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이 상태가 유지될 것이다.

    이 상태로는 선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내가 노회찬 후보의 경제 공약에 해당하는 11대 테제를 검토하고 가지게 된 생각이다. 심상정 후보의 아키텍처가 약간 기형적이고, 권영길 후보의 아키텍처는 뭔가 전도되어 있지만, 노회찬 후보는 그나마도 없다. 

    개헌이 선거의 얼굴이 될 수 없다는 객관적 조건에서, 그걸 별첨으로 돌리거나 혹은 다른 개헌 로드맵 같은 것으로 전환하고, 진짜 노회찬이 생각하는 인생관을 녹여낸 그 인터페이스는 무엇인가라는 게 필요하다.

    지방 선거에서는 이런 프레임을 가진 공약을 보통 ‘나열식 공약’이라고 비판한다. 이미 도마 위에 올라와있는 재료에 몇 가지 재료들을 더 더해서 음식을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대중들에게 제시하는 공약 프레임은 이 요리와 비슷한 것이다.

    노회찬 후보의 프레임은 현재로서는 손이 언뜻 가지 않는, 어쩌면 상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오래된 미래’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빛깔, 향기, 모양새에서 음식에 손이 가게 만드는 노력 없다면, 사람들은 이 음식을 구매하기 위해서 지갑을 열지 않을 것이다. 

    요약하면, 심상정 후보의 음식은 "맛이라도 한 번 보자"는 유혹을 담고 있고, 권영길 후보의 음식은 "저런 걸 먹었다가는 배가 아프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고, 노회찬 후보의 음식은, "갑자기 식욕이 떨어지네…"라는 반응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6. 인터페이스와 각론의 통합은?

    2006년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강금실 후보와 이계안 후보가 맞붙었는데, 결국 오세훈의 열풍에 밀려 강금실이 패배하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사건이 었었다. 당시 강금실의 공약은 한나라당 공약에 비하면 훨씬 이상한 것이었다.

    경선 당시 강금실과 이계안의 공약이 기계적으로 합쳐지면서 초유의 괴물이 됐다. 물론 당시 세상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지만, 강금실의 공약 안에는 서울시와 경기도의 광역 개발계획이라는 엄청난 물길 내기 공약과 한강의 전면 준설 같은 것들이 숨어 있었다. 서로 다른 패러다임 위에 서 있는 공약들을 잘못 합치면 이런 일이 생겨난다.

    한나라당의 정파와 공약들은 정치적 색깔을 강하게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사실 다 더해버려도 원래의 모집합이 되는 성격이 있지만, 현재의 민주노동당 세 후보들의 인터페이스는 그 성격과 프레임이 전혀 다르게 분화하고 있다.

    자, 그러면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누군가 되었다고 할 때 과연 민주노동당의 대선 후보의 공약은 어떤 얼굴을 가지고, 또 어떤 내용들을 담고 있을까? 현재로서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그 속성상 지금의 경선 상대의 공약의 틀을 상당히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적절하게 수용되어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민주적이기도 하지만, 내용상으로도 합집합을 더 크고 폭넓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어느 후보가 되었든 프레임과 상관없이 잘 만들어진, 그야말로 ‘웰-디자인드(well-designed)’ 공약은 경선결과와 상관없이 살아남게 될 것이고, 그 중에 몇 개는 대선 공간에서 한반도를 뒤흔들 미래에 대한 논쟁 중에서 한 가운데 서 있게 될 가능성도 높다.

    프레임에 대한 논의는 프레임에 대한 논의이고, 또 개별 공약에 대한 논의는 이 시대가 어떤 정책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가에 대한 훨씬 세밀한 논의들이다. 방향에 대한 논의와 함께 동시에 구체적인 것들에 대한 고민이 같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내가 관찰한 바로는 프레임에 대한 논쟁은 거의 실종되었고, 일부 개별 공약에 대한 논쟁만 지나치게 기술적인 것으로 흘렀다. 

    마지막으로 세 후보에게 공히 한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비유한다면 일종의 선발투수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터인데, 권영길 후보가 우완 정통파라고 한다면, 노회찬 후보는 좌완 정통파. 그리고 심상정 후보는 좌완 사이드암 혹은 좌완 기교파 정도의 구질을 보여준 셈이다.

    현재까지로는 좌완이든 우완이든, 강속구는 없고, 변화구는 너무 밋밋하다. 구속으로만 보면 심상정 후보의 볼이 그런대로 최고 강속구라고 할 수 있고, 우완전통파인 권영길 후보는 볼 컨트롤이 너무 안 좋아서, 잘못하면 데드 볼과 사사구를 남발할 위험이 있다. 반면에 좌완정통파인 노회찬 후보의 볼은 이미 구질이 너무 노출되어서 상대방 타자가 전혀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경제공약이라는 눈으로만 본다면, 세 투수 모두 지금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다. 어깨에 힘을 조금씩 빼고 평소 연습할 때 던지던 그 볼을 던지는 투수가 에이스답게 게임을 재밌게 끌어가는 좋은 투수이다. 조금씩 어깨에 힘을 빼고, 상대 타자의 호흡과 표정도 읽어가면서 연습 때 던지던 그 볼을 던질 수 있다면, 해볼만한 게임이 될 수도 있다.

    (그간 길고 지루했던 3회에 걸친 제 글을 읽어주신 여러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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