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엄마 안여사의 이랜드 불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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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7월 30일 02: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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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사과 한봉지를 들고 나타난 아부지에 대한 엄니의 일갈이었다. 부부는 닮는다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엄니의 일갈에 대해 아부지의 항변이 이어진다.

    “싸고 좋은 물건을 골라내는 게 진짜 물건 잘 사는 거지, 좋은 물건 비싸게 사는 건 누가 못하냐?”

    그렇다. 울 아부지는 스스로 싸고 좋은 물건을 골라내는 감식안이 있다고 믿고 계신다. 5천 원에 10마리 주는 오징어, 3천 원에 10개 주는 사과, 본디 미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이지만 회사의 부도로 부득이 지하철에서 파는 부채, 오이깎는 칼 – 모두 아부지 구매 목록이다.

    “장사하는 사람이 바보냐?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 놈 새끼들이 뭐가 아쉬워서 좋은 물건을 싸게 내놓냐?”

    엄마 얘기 들어 나쁠 거 없더라. ‘그 놈 새끼들’한텐 확실히 이유가 있었다. 매직스트레이트라고 아는가? 곱슬머리를 뜨거운 고데기로 쭉쭉 펴서 직모를 만들어주는 시술이다. 이대 최고의 미용실 트위스트헤드에서는 기본 6~7만 원은 받는 시술인데, 다녀보면 이 매직스트레이트를 2~3만 원에 해준다고 광고하는 가게가 많이 보인다.

    헌데, 그거 아는가? 2만 원짜리도 이름이 매직스트레이트고 7만원짜리도 이름이 매직스트레이트지만 실은 둘은 이름만 같지 실질은 완전히 다른 시술이란 거?

    원래 매직스트레이트는 2가지 과정 – 머리카락을 연하게 해주는 연화과정과 말랑말랑 연해진 머리에 열을 가해 쭉쭉 펴는 과정 –으로 이루어진다. 2만 원짜리 매직에는 이 연화과정이 없다. 연화과정에 들어가는 제법 비싼 약도 안 쓰고 연화될 때 까지 미용실 자리 차지하면서 보내는 시간도 단축되니 미용실 입장에서는 그만큼 가격을 낮출 수 가 있는 것이다.

    자 여기서 퀴즈 하나. 손님 입장에서는 머리를 싸게 하고, 가게 입장에서는 비용을 줄이는 거니 연화과정 삭제는 마냥 칭찬받아야 할 일일까?

    아니다. 연화과정이 그냥 심심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곱슬머리를 라면에 비유하자면 연화과정은 뜨거운 물을 부어 면을 야들야들하게 만드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이후 가열과정은 야들야들해진 면을 쭉쭉 펴서 국수 같은 형태로 만든 다음 오븐에 굽는 과정이고.

    근데, 불리지도 않은 생라면을 국수 형태로 만들겠다고 봉지에서 뜯자마자 그대로 오븐에서 구우면 어찌 될 까? 결과는 다음 사진과 같다.

       
    ▲ 복싱 프로모터 돈 킹. 왼쪽은 타이슨, 오른쪽은 홀리필드.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타이슨의 담백한 성격을 참으로 사랑한다. 기독교 믿는다는 홀리필드는 타이슨 경기에서 온갖 추접한 짓을 다했다. 교묘한 버팅-박치기 반칙- 약올리기. 타이슨은 담백한 성격 그대로 이러한 반칙 행위를 참아 넘기지 않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핵이빨 사건의 전모이다
     

    글구 안타까운 건 2만 원 짜리가 2만 원만 받느냐? 절대 아니다. 막상 가보면, 기장 추가다 뭐다, 머리가 많이 상했으니 영양제를 써야한다 하면서 추가 요금을 청구하곤 한다. 그러고 나면, 실제 지불하는 가격은 이대 최고의 미용실 트위스트헤드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쯔쯔.

    매직스트레이트만 그런가? 컷도 마찬가지다. 5천 원짜리 컷과 3만 원 짜리 컷이 그게 그건 줄 아는가? 물론 미용사 개인의 실력 차도 있지만, 더 큰 차이는 바로 ‘구획’의 차이이다.

    사람의 머리는 뒤통수, 옆머리, 앞머리가 각기 특성이 다르고 자라나는 속도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각 머리에 맞는 가위질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용사가 한 번에 100가닥의 머리카락을 쥐고 가위질을 하는 것보다, 10가닥의 머리카락을 쥐고 가위질을 하면 그 만큼 자연스럽고 세밀한 스타일이 나오고, 머리가 자라도 지저분 해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즉, 100번의 가위질을 할 걸 10번만 하면 그만큼 컷 한 번에 투입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그만큼 가격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머리 모양은 엉망이 된다.

    뿐만 아니다. 미용업계의 저가 경쟁의 배경엔 이런 눈에 안 보이는 ‘속임수’만 있는게 아니다. 미용실 스탭들의 월급이 얼마라고 생각하나? 업계 최고 수준이 100만 원이다. 대부분은 하루 8~9시간 동안 서 있고 6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을 뿐이다.

    당신들이 싸다고 낄낄 대며 머리하는 ‘꽃x 미용실’, 불우한 사람들의 모임 ‘불우클럽’ 등등의 가격이 싼 건 이들 스탭들이 뿌린 피눈물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게다가, 저가 경쟁의 피해는 미용 노동자들만 받는 게 아니다. 받을 돈 받고, 줄 돈 줘가며 하고 싶은 미용실  업주 역시 피해를 받는다. 싼 가격만 찾아 다니는 사람들 땜에 가격을 맘대로 올릴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미용 노동자들에게 제 대접해주기도 힘들다.

    만약 미용사들이 노조를 만들려고 한다면? 트위스트헤드는 찬성할 것이다. 놀랍게도, 주변의 많은 미용실 업주들도 찬성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처지에 공감해서가 아니다.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따져봐도, 미용 노동자들이 제 대접을 받는 게 업주한테도 이익이다.

    저가격, 저임금의 피해자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양심을 지키고 싶어하는 수많은 업주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머리 건강을 상하고 있는 소비자들 모두이다. 가격이 싸다면 거기엔 사고의 혁신이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누군가 억울하게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걸 말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좋은 물건을 제 가격 주고 사는 게 진정한 쇼핑’이라는 지론을 갖고 계신 울 엄니 안효숙 여사는 그 동안 이마트 같은 대형 할인점을 안 가셨다. 왔다갔다 기름 값 들고, 쓰지도 않을 거 왕창 사놓기만 하기 땜에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게 된다”고 하셨다.

    함께 살고 있는 외할머니 이원해 여사는 안여사를 보고 “쟈가 아낄 생각은 안 하고, 살림을 던지럽게(주:더럽게의 경상도 사투리인듯) 산다”고 혀를 끌끌 차셨지만, 안여사는 요지부동 동네 고척시장, 개봉시장을 이용해 오셨다.

    그런 안여사가 최근에는 (어차피 안 가던 거면서) 홈에버, 아울렛 2002와의 완전 결별을 선언하셨다. 몇 푼 더 아끼자고, 월 80만원 받으려고 하루 종일 서있는 아줌마들 눈에서 눈물뽑아 먹는 놈들 돈벌 게 해줄 수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민주노동당이 뿌린 ‘찌라시’를 받아보거나 한 게 절대 아닌, 일백푸로 자발적인 불매 선언이다.

    안여사의 불매 선언을 물적으로도 지지하기 위해, 좋은 물건 제값 주고 사시라고 생활비라도 넉넉하게 쥐어드리고 싶다. 헉…근데…그럴 수가 없다. 아까도 말한 미용실의 저가 구조 땜에 정말로 버는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

    미용사도 힘들지만, 제대로 하려는 업주까지도 힘들게 만드는게 미용실의 저가 구조이다. 요즘 당에서 이랜드 불매투쟁을 한다던데, 하는 김에 저가 미용실 불매 운동도 해보는게 어떨까? 집회나 당 모임에 ‘불우클럽’이 자랑하는 귀두머리를 하고 나온 당원이 있으면 상호 비판하는 그런 것도 해보고.낄낄.

       
    ▲ 귀두컷의 애환을 다룬 시조. 작자미상
     

    실은 나도 이런 미용실의 저가 구조를 가만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이번 달부터 7th wave란 운동을 시작했다. 이대 전체를 죽이는 저가 경쟁, 노동자와 업주 모두에게 고통을 주고 소비자에게도 피해를 주는 이런 경쟁을 막아보기 위해 머리 별로 가격을 고정하고, 가격 경쟁이 아닌 서비스 경쟁을 유도하는 운동이다.

    7th wave 운영본부 측에서 헤어스타일 별로 가격이 고정된 공동 쿠폰을 발행하고, 고객은 가격이 정해진 쿠폰을 사서 참여 미용실 중 아무 데나 골라서 가서 머리를 하고 쿠폰을 낸다. 본부측은 그럼 그 머리를 한 미용실에 쿠폰 판매 비용을 쏴주는데 전부 쏴 주는게 아니라, 쿠폰 판매 비용의 5%를 떼고 쏴준다.

    5%를 따로 떼는 이유는 본부에서 먹기 위해서가 아니다. 공동 쿠폰제를 운영하다보면, 매출이 부진한 가게가 나올 수 있는데, 이런 가게가 또 다시 가격 경쟁에 유혹을 느끼고 7th wave를 탈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본부측은 이 5%를 쿠폰 매출이 일정 비율 이하인 가게에다 배분해주는 한편, 그 가게는 수익을 배분받는 대가로 7th wave 본부측에서 실시하는 기술 및 서비스 재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할 예정이다. 실력 배양을 통해 매출이 부진한 가게에도 손님이 모이도록 하는 한편, 이대 미용실 전체의 이미지도 좋게 하기 위해서 이다. 7th wave 쿠폰을 현재 gmarket에서 팔고 있다. 많이 애용해 주길 바란다.

    http://www.gmarket.co.kr/challenge/neo_search/search_total.asp?selecturl=total&SearchClassFormWord=goodsSearch&keyword=7th+w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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