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몰락 현실 사회주의 뒤따를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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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7월 30일 08: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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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쓴 필자는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연구자로, 현재 베네수엘라에 대한 과도한 열풍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글이 필요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필자는 "베네수엘라에서의 실험이 성공하기는 간절히 바라는 사람 중의 하나지만, 현재 일련의 상황은 그다지 희망적이지만은 않다"고 전망하고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특히 소비에트와 베네수엘라의 주민자치위원회를 비교하면서, 향후 전망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레디앙>에 보내온 그의 글을 세 차례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모든 진보 진영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는 주제는 아니지만, 베네수엘라에서의 대변혁과 각종 사회주의적 실험에 대한 논쟁이 현대 진보 논쟁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분석과 논의는 정체된 한국 진보 사회의 논쟁과 실천 구도에 숨통을 터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적 소유와 시장을 부정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 일당 독재를 주장하지도 않으며, 고전적 노동자 혁명을 거치지 않고 ’21세기 사회주의’를 외치는 차베스의 실험에 대해, 원론적 사회주의에 충실한 단체들이 고약하고 관례적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차베스 실험에 대해 교조적 비판 없는 건 고무적

       
      ▲ 우고 차베스 대통령
     

    당연히 자칭 정통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베네수엘라 내에서도 차베스의 실험에 비판적이고 심지어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며 적대적일 수도 있지만, 노동 대중의 삶을 중심으로 관점을 달리해서 보는 수많은 베네수엘라의 ‘좌파’ 조직들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으로 노동 대중의 삶의 ‘혁명적’ 변화를 추동해 내고 있다.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좌파적 대안 사회에 대한 전망이 부재한 속에서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속수무책이었던 지난 20여 년 동안의 고통을 한번에 덜어 줄 근본적 전환은 아니지만, 베네수엘라에서의 혁명적 실험의 구체적인 과정들은 좌파들에게 오랫동안 고여 있던 이론의 굴레에서 벗어나 노동 대중의 실제 생활의 실질적 변혁을 위한 적극적 활동의 중요함을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소위 ‘정통’ 사회주의자들의 관점에서뿐 아니라 전혀 ‘정통’ 사회주의와 닮지 않은 베네수엘라에서의 실험들은 이후의 전개 과정에서 또 다시 불필요한 과잉 이데올로기적 논쟁을 야기할 수도 있다.

    또한 이 ‘정통’ 사회주의와는 다른 사회주의적 실험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않고서는 그 변혁에 열광하는 일부 좌파와 좌파적 대안을 찾는 사람들에게 마치 과거 북한, 소련, 중국을 대안 체제로 상정, 열정에 불타다 스스로 꺼져버렸던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

    베네수엘라 변혁 무조건 환호하는 건 매우 위험

    원론적으로 보면 사회주의적이지 않은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적’ 변혁 실험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한계는 동시에 약도 될 수 있고, 독도 될 수 있다. 그 무엇보다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비판 없이 베네수엘라에서의 사회주의적 변혁에 대해 환호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특히, 많은 이들이 극단적으로 이상화하거나 회피하고 있는 러시아 혁명 후의 사회주의 소련에서의 실험과 그 뒤를 이어 변질될 수 밖에 없었던 소련식 사회주의의 본질적 한계 베네수엘라를 비교하는 것은 역사 해석이나 이론 잔치가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서 중요한 좌파의 임무다. 

    주민자치위원회, 볼리바리안 서클

    우리에게 육중한 의미로 다가왔던 ‘소비에트’는 러시아 말로 ‘회의’ 혹은 ‘위원회’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실험되고 있는 주민자치위원회와 기본적으로 그 성격은 다를 것이 없는 의사 결정 기구이자 직접 민주주의 권력 기구인 것이다.

    자치 권력은 혁명의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이를 통해 기존의 권력 구조를 약화시키고 공동체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야 말로 베네수엘라 사회주의 혁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역사에서 나타난 각종 민중권력 조직 실험의 재판이며, 혁명 전 소비에트의 본래의 목적, 역할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주민자치위원회와 소비에트

    단지 차이점이란 러시아 역사에서 독특한 역할을 했던 군사, 농민 소비에트 외에, 당시의 계급 구조와 정통적 이론에 맞추어 지역 주민이 아니라 계급적 구분에 의해 구성된 노동자 소비에트의 역할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비에트는 공장위원회와 노동조합 등과 더불어 노동자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기구로서 기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장경제 체제를 부정하지 않는 베네수엘라의 경우 주민자치위원회가 경제 영역과 분리된 정치적 자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영역을 담당하는 것과는 달리, 소비에트는 시장이 담당하는 부분까지 대체하여 생산과 권력이 분리되지 않는 구 체제의 국가 기구를 대체하는 역할까지 담당해야 했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차이다. 

    베네수엘라서도 역시 이러한 주민자치위원회들의 연합이 창설되어 국가 조직을 대체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고, 주민자치위원회가 유일한 정치 권력으로 존재하는 사회주의 시티가 제안되기도 했다.

    흔히들 베네수엘라에서의 실험이 고전적 사회주의 혁명에 의한 체제 부정 혁명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 관료적 구조들과의 싸움이 힘겨울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그러한 데에 있지 않다. 소규모 자치 지역별로 1만 개 이상 건설되어 있는 자치위원회는 아직 국가는커녕 광역 단위, 지방 정부도 못 미치는 단위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실험을 성공시켰다. 

    단위가 확대될수록 필연적으로 집행자들과 대표자들이 필요하고 그들의 구조는 계층화되고 복잡해져서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들은 흐려질 수 밖에 없다. 과연 소규모 단위를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까지 관료주의의 폐해를 끊고 직접 민주주의의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소련과 베네수엘라의 중요한 차이점, 자율적 시민사회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의 일치가 대의제보다 나은 직접 민주주의 제도라는 것을 입증하려 했던 각종 단위 소비에트는 민중권력 구조 그 자체도 실현해야 함은 물론이요, 시장을 대체한 경제의 영역까지 그 역할을 확대해야 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횡적/종적으로 어마어마한 관료제를 수반할 수 밖에 없었다.

    베네수엘라 주민자치위원회는 그러한 역할까지 담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 영역으로 축소해도 유사한 문제점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또한 베네수엘라 혁명의 추진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자발적 정치 조직인 볼리바리안 서클, 그리고 그 외 수많은 차베스 지지 정당과 시민 사회 단체들이 주민자치위원회와 더불어 직접민주주의 실험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볼리바리안 서클은 집권 여당과 별도로 존재하는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시민 사회의 자율적 조직이면서 동시에 혁명을 아래로부터 이끌고 있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차베스에 의한 소위 24개 정당 해산 및 단일 정당 구성 제안은 차베스의 장기 집권이 가능한 헌법 개정 문제와 더불어 과거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의 일당 체제 수립을 위한 경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에 매우 우려할만한 일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전면 부정하고, 자율적 시민 사회 없이 국가가 압도적 우위의 힘들 발휘했던 소련과 달리, 베네수엘라는 볼리비안 서클을 비롯한 시민 사회의 자율성과 역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차베스 혁명의 비판적 엄호 조직들이 핵심 기지

    주민자치위원회와 볼리바리안 서클, 그리고 차베스의 혁명을 비판적으로 엄호하는 사회주의적 조직들의 자율적 활동이 베네수엘라 사회주의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들 조직이 정치 사회에서의 갈등을 조절하는 것과 함께 자율적 시민 사회 조직들과의 역할 설정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특히, 주민자치위원회의 국가적 규모로 확대된 기구 자체의 민주주의적 운용과 이 조직의 이해와 요구를 받아 집행할 지배 정당간의 진정한 소통과 집행의 민주적 구조 구축은 향후 사회주의 혁명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협동조합, 공동경영제

    베네수엘라에서는 북유럽 사회복지 국가도 실험해 보지 못한 생산 영역의 직접 민주주의 도입이라는 초유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바로 노동자 자주관리 혹은 노동자 공동경영 프로젝트다. 노동자 생산 통제야말로 기존의 국유/사유의 소유 문제로 가려져 있던 사회주의적 소유 체제의 핵심적 문제 중 하나이다.

    유사한 노동자 자주관리의 실험은 유고슬라비아에서 실행되었다가 실패한 것으로만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러시아 혁명 직후에도 유사한 노동자 생산 통제의 실험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들은 오래 가지 못했다. 자본가들에 의한 착취로부터의 해방감에 젖은 노동자들은 공장을 접수한 뒤 노동보다는 결론없는 비생산적 토론과 말싸움에 더 시간을 보냈고, 일반 노동자들은 음주와 여가를 위해 공장의 기계와 생산물을 나누어 가지는 일에 더 몰두했다.

       
     
     

    생산의 무정부성과 노동자 자주관리의 실패

    노동 규율은 엉망이 되었고, 그 결과 생산은 극도로 감소하였으며, 이러한 생산의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농촌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현상은 식량 등의 기초적 물자조차 공급이 안 되면서 그 불만은 다시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분노의 화살이 정권으로 향하기 일쑤였다.

    동시에, 이러한 불만의 기저에는 소비에트, 공장위원회, 노동조합 등이 볼셰비키의 일방적 통제만 받기 때문에 각 조직의 내부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유명무실화된 데에 대한 불만도 크게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결국 볼셰비키 정권은 이러한 직접 생산 통제를 철폐하고 논란 끝에 전 공업의 국유화는 물론 노동의 군사화, 단독 경영 책임제, 그리고 생산에서의 테일러 시스템의 도입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장 없는 테일러 시스템이나 노동의 군사화 정책이란 말이 좋아 정책이지 실제로는 강제 노동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훨씬 중요한 문제는 노동 규율 문제와 생산의 무정부성을 넘어서 있었다.  시장 완전한 폐기를 대신한 노동자 직접 생산 통제 실험이 실패하자, 사적 소유와 시장을 만악의 근원으로 보던 당시 볼셰비키에게 대안은 예견된 것이었다. 

    그들에게 시장을 부활시키는 것은 자멸 행위였기 때문에, ‘경제’에 대한 위로부터의 계획 혹은 명령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고, 이는 이후 현실 사회주의 사회 붕괴를 가져오게 만든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노동자 생산 통제 실패는 소련 메커니즘 한계도 작용

    혁명 직후 소련을 이상화하는 많은 이들은 노동자 직접 생산 통제의 실험이 실패한 이유로 전쟁, 내전, 제국주의 간섭, 식량 부족, 이 과정에서의 선진적 노동자 계급의 사망, 생산 통제를 담당한 노동자들의 경험 부족 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요인들과는 별도로 그 자체 메커니즘의 한계가 존재했던 것이다.

    사회주의 붕괴의 원인이라고까지 얘기되는 현실 사회주의 사회의 관료제에 대해 다양한 해석들이 난무한다. 이는 단순한 전 공업의 국유화뿐만이 아니라, 그 외 모든 부분에서의 사적 소유와 시장의 철폐의 원칙에 의한 국유화에서 비롯된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었다.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는 실험은 이러한 측면에서 양 극단의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으며, 마찬가지로 예측하기 힘든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지닐 수 밖에 없다. 현재 공동경영 실험은 소유 문제 등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실험이 용이한 국유 기업과 민간 기업 중 유휴 기업들을 중심으로 실행 되고 있다.

    시장 체제를 포기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 민간 기업에도 이러한 도입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단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제조업 공장 외 산업 분야에서의 소위 ‘새로운 협동조합’의 실험은 이러한 부분을 보완할 수도 있다. 대기업이나 제조업 대공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후 전망의 영역은 다르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15만 개에 이르는, 노동 인구의 10%나 차지하는 다양한 협동조합은 비숙련 노동자나 실업자 구제, 그리고 지역민 복지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소련과 베네수엘라의 협동조합 비교

    혁명 전까지 생산은 물론 공급, 판매 기능까지 담당할 만큼 활발했던 각종 협동조합들은 혁명 직후 러시아에서도 소비에트 정권에 의해 생산물의 조달과 분배 기구로 이용되었으나, 사적 소유와 시장 원리의 철폐, 국유화로 인해 기능이 정지되었다.

    이후 시장 원리를 일정 정도 도입한 네프(신경제 정책) 시기에 협동조합은 레닌의 대대적 칭송을 받으며 생산을 회복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소비 영역에서뿐 아니라 생산 협동조합도 증가 일로에 있었다. 그러나 이후 스탈린에 의한 집단화 시기에 그 기능은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고, 최근의 소련 붕괴 때까지 모든 분야에 걸친 만성적인 결핍과 고갈의 원인이 됐다. 

    그러나 노동조합과 함께 경영을 이끌고 있는 정부 파견 경영진의 능력과 역할은 향후 지속적인 혁신 노력이 부재할 경우, 비효율과 불평등의 극치를 보여 주었던 소련 시대 당 지정 기업 고위 관료들의 그것이 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노동자 선출 대표와 이들 간의 관계는 향후 혁명을 지지, 보족한다는 명분으로 노동조합이 준국가기관화되거나 획일적 일당 정부 체제가 수립될 경우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한 그 길을 그대로 따라 갈 수도 있다. 노동조합이 주식의 반을 보유하지만 노동조합과 일반 노동자의 관계가 투명하고 평등하게 유지될 수 있는가 역시 끊임 없이 제기되는 ‘역사적 질문’이기도 하다.

    베네수엘라 사회주의 성공과 노조의 역할

    지금이야 석유를 기반으로 정부 관계자가 조합과 노동자들이 민주적으로 토론한 결과들을 받아 줄 수 있지만, 분명 석유 이익의 축소나,  그와 상관없이 지역과 산업 분야 간 이해 관계가 상충될 수 있고 정부의 지원에 대해 불만 발생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재 구 어용 노조를 대체할 대안 노조의 역할이 커지고 있으며 혁명 정부와의 관계 설정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소련의 경우 ‘노동조합 논쟁’의 결과 노조가 국가 기구화된 것은 어떻게 보면 노동력을 판매 구매하는 노동 시장이 사라지고 자본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고전적 노동조합의 역할은 국가 기구로 대체되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 기구화된 직후부터 노동조합은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적 소유와 시장 관계, 즉 자본주의 자체를 폐기하지 않은 베네수엘라에서 국가 단위나 생산 단위에서의 노동조합과의 관계와 기능 설정은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노동조합뿐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협동 조합들 역시 공동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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