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이기는 건 사필귀정이다?
    2007년 07월 28일 01: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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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수와 대화하다(미디스북스)』는 <오마이뉴스>가 작년 말부터 연재했던 ‘보수 대해부’를 묶은 것이다. 책의 첫 부분이 의미심장하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는 1987년 이한열 장례식과 2004년 반핵반김국민협의회의 ‘대한민국 수호 국민대회’ 사진이 나란히 실려 있다.

시청 앞을 가득 메운 두 집회의 주체와 주장은 당연히 다르다. <오마이뉴스>와 지금 시대가 새삼스레 보수에 주목하는 이유를 두 장의 사진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한국 보수에 대한 상세한 안내 정보다. 각각의 꼭지마다 그 주제에 관련된 보수단체의 체계와 관계도가 옛 안기부 브리핑 자료처럼 일목요연하개 실려 있고, 주요 보수 인사들의 인적 정보가 마치 보안사 사찰 자료처럼 정리돼 있다. 찾아보기 쉬운 곳에 두고 사전처럼 이용해도 손색 없을 듯 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한국 보수의 주장을 날 것 그대로 전한다는 점이다. 진보 쪽인 우리로서는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쉽지 않았고, 설사 그 목소리를 듣더라도 길고 긴 연설 중의 말 실수나 발췌한 몇 단어 또는 진보의 눈으로 가공되거나 평가된 ‘번역’을 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보수 논객들의 기고문과 주요 인사들의 인터뷰가 날 것 그대로 생생히 살아 있다.

나는 ‘보수 대해부’ 시리즈 기고문에서 "현대 한국에서 ‘보수’는 철학이나 경제이론, 정치사상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보통 국민들에게 ‘보수’는 불의나 부패의 동의어이거나, 그런 짓을 일삼는 천박한 인간 군상이다. 한국의 보수는, 급격한 사회변화 과정에서 비겁하게 살아남은 이기주의자끼리의 폐쇄적인 공동체이고, 그들의 권력과 이권 독점을 확대하기 위한 온갖 거짓말이다(‘대한민국은 보수가 만든 게 아니다’)."고 주장하였었다.

그 생각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 곳곳에 숨어 있는 보수의 목소리는 내 생각이 진실의 전체는 아니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생각들은 흔히 ‘무식하다’거나 ‘수구꼴통이다’라는 식의 예단과 무시만으로 보수를 도매금으로 넘기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우리는 건국과 산업화의 주체였다. 하지만 민주화 단계에서 참여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올바른 보수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를 지켜야 한다. 이 가치를 위해 투쟁을 했어야 하는데, 자기확신이 부족했고 헌신하지 못했으며 현실에 안주했다. 이제 보수도 개혁해야 한다." –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경제정의가 전제되지 않은 시장경제는 강자의 논리일 뿐이다.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성장과 분배는 같이 굴러가야 한다. 우파도 좌파적인 가치를 흡수해야 한다." – 윤여준 전 한나라당 의원

이 책의 부제는 ‘2007, 보수의 세상은 다시 올 것인가’인데, 물론 대통령선거를 일컫는 것이다. 이념은 정치를 통해 현현(顯現)한다는 어려운 상식을 거론치 않더라도 올해 대선이 우리 사회의 이념 지형을 결정지을 것이라는 점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리고 보수에 대한 천착과 보수의 운명이 정반대편에서 진보에 대한 연구이며 진보의 미래임도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올해 대선을 맞는 한국 보수 일각의 사고는 3류 진보운동권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진보가 아래와 같은 개안(開眼)을 얻지 못한다면 보수에게 권력을 내주는 것이 사필귀정이리라.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까지도 사실 민주적 가치를 내면화한 사람은 아니다… 그 세대는 민주적 가치를 내면화할 시간적 여유가 없이 자랐다… 그러니까 소위 민주개혁 세력은 과거 정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민주정권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민주적인 사람들은 아니다.

이제는 우파든 좌파든 절제, 평등 등 민주적 가치를 내면화한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일본이나 중국을 보면 결정적인 전환기에 인재들이 나와서 나라의 진로를 단시일에 바꾸곤 하더라. 모택동이 집권할 때도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나와서 혁명동지가 되어 강력한 국가를 만들지 않았나?

우리는 조선 중, 후반기 실학파 이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수백 년 간 고생했으면 이제 인재들이 나와서 나라를 한번 바꿔봄직 한데 이게 안 나오고 있다.” – 윤여준 전 한나라당 의원

"이제 사람들은 민주화 경력과 도덕성을 지도자의 주요 덕목으로 꼽지 않는다. 사람들이 갈구하는 건 ‘활력’이다. 한국에는 제대로 된 좌파도, 우파도 없었다. 한나라당을 포함한 우파의 이념적 가치도 없다. 반공주의를 넘어선 우파혁신이 관건이다." –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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