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 말도 못해 슬픈 노무현
        2007년 08월 02일 05: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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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랜드 비정규사태가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는 채 장기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비정규법으로 이번 사태를 유발시킨 정부가 해결은커녕 이랜드 노동자들의 농성을 두 번이나 경찰병력을 동원해 강제해산시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노동부, 노사자율교섭 길마저 막아


     지난 1일 인권단체 소속 활동가 7명이 서울지방노동청을 4시간 동안 점거하고 농성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은 “정부는 비정규직을 대량해고 외주용역화를 자행하는 이랜드 문제 해결에 즉각 나서야 하며 사측의 편을 드는 ‘자본부 장관’ 이상수는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단체들이 노동부 장관 사퇴를 주장하는 이유는 노사자율교섭의 길마저 정부가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노사가 벼랑끝에서 마지막 협상을 벌이기로 한 18일, 교섭도 시작되기 전에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이날 교섭이 결렬되면 공권력 투입”을 말했다. 이랜드로서는 정부의 이같은 입장을 확인한 마당에 굳이 교섭으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었다. 교섭이 결렬돼도 농성이 해제되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이랜드는 이전 협상에서 내놓았던 안 외에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예상대로’ 교섭은 결렬됐고, 공권력이 투입됐다. 그 이후 노동부는 “이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태도를 취해왔다.


    법원, 돈으로 노동자 옥죄기


     노동부가 경찰의 강제진압 이전까지 보였던 ‘대화중재자’의 모습까지 벗어던져 비난을 사고 있다면, 법원은 적극적으로 ‘사측 편들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7월 25일 서울 서부지방법원은 이랜드 사측이 일반노조와 조합원들을 상대로 청구한 영업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전국 32개 매장에서 시위, 현수막부착, 유인물 배포, 피켓시위 등을 금지했다. 이를 어길 경우 조합원은 1백만원을 사측에 지급해야 한다. 노조가 이를 어길 경우는 1천만원이다.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계산대에 하루 종일 서서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는 고통을 감내하며 받는 한 달 임금이 고작 80만원인 여성 노동자들에게 한 번 집회 때마다 1백만원을 물어야 한다는 것은 아예 집회의 자유를 박탈 하는 것”이라며 “그것도 동시에 생존권을 빼앗는 처사며 법이 결국 노동자를 위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또 법원은 사측의 손배가압류 신청을 받아들였다. 돈으로 노동자를 옥죄는 악랄한 노동탄압이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 투쟁 이후로 주춤하다가 한달 80만원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가차 없이 가해지고 있다. 이랜드 사측은 조합원 49명에게 1억1백만원씩 손배가압류를 걸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조합원 49명의 개인통장을 가압류했다.


    민주노총, 전체 조직차원에서 투쟁하겠다

     

    이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태도를 취해 온 정부가 이랜드 비정규노동자들이 뉴코아 강남점을 점거하고 2차 농성을 시작하자 31일 경찰병력을 또 다시 투입해 강제해산을 시켰다. 이에 맞서 민주노총은 1일 비상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오는 5일과 11일 이랜드 매장에 집중타격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민주노총은 또 16일부터는 민주노총 간부와 조합원을 중심으로 1천여 ‘중앙선봉대’를 조직해 이랜드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매장 앞 집회 등 투쟁을 할 방침이다. 18일에는 민주노총 조합원 5만명이 참가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서울에서 열 예정이다. 이어 민주노총은 21일 이랜드 투쟁 단일안건으로 긴급대의원대회를 열고 전체 조직 차원의 투쟁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한편 교섭은 계속 파행을 겪고 있다. 이랜드 노사는 1일 오후 뉴코아, 홈에버 분리교섭을 시작했으나 3시간도 아돼 교섭 중단을 선언했다. 홈에버의 경우 사측이 노조 쪽 교섭위원의 자격 문제를 들고 나와 협상조차 하지 못했다. 뉴코아 쪽 교섭은 이날 서로의 요구사항만 주고 받았지 새로운 안은 없었다. 이랜드 노사는 3일 다시 만나 교섭을 하기로 했지만 사태 해결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다.


    중재자로서 정부 역할 강조하는 목소리 높아져


    한 매장에서 5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근무한 여성조합원은 “우리가 어렵지만 점거농성을 하니까 사측이 겨우 교섭에 나왔다”며 “이런 상황을 보니까 투쟁을 해야 교섭이 이뤄지고, 죽을 힘을 다해 싸우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라며 “지금은 누가 더 끈질기게 싸우는가만 남은 것 같다”며 말했다.


    이랜드 투쟁이 민주노총 전체 차원의 투쟁으로 확대되고, 비정규법을 둘러싼 노사 격돌로 이어지고 있다. 이랜드일반노조, 뉴코아노조 조합원들은 지금 상황을 힘들어 하면서도 투쟁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조합원들은 죽을 힘을 다해야 싸울 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그간 투쟁으로 경험했다. 그래서 1차, 2차 점거농성이 3차, 4차로도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 때마다 정부는 경찰병력을 동원해 농성을 강제해산 시키는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  정부가 나서서 사태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지지하는 교수․법률가 500인’은 1일 청와대 앞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부가 노조 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 공권력 투입 등에 나서 대등한 지위에서의 교섭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행정․정책적 수단을 동원해 공정한 교섭이 이뤄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왜 아무 말도 안하나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되고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발언으로 논란을 만든 전례를 비춰 볼 때 의외의 모습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10월 노동자들의 분신자살이 잇따르고 있는 와중에도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며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되며,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극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대기업노동자들이 마치 떼돈이나 벌면서 이기주의에 빠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주범인 듯 말했다. 그랬던 대통령이 정부가 만든 비정규법으로 해고된 비정규노동자들이 투쟁을 하자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으로써는 집권 초기와 다르게 5년 임기를 반년 남기고 있는 지금 할말이 없을지도 모른다. 소위 참여정부라는 현 정부 하에서 구속된 노동자가 983명으로 김영삼 정부 이후 최고로 많다. 1일 민주노총과 구속노동자 후원회 등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래 지난 4년 여 동안 구속된 노동자 수는 7월말 현재 983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 김영삼 정부(632명)나 김대중 정부(892명) 때보다 훨씬 많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 구속 노동자 332명 가운데 239명은 비정규직 노동자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구속된 노동자 271명 가운데 비정규직의 비중은 200명으로 74%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랜드 사태만으로 총 7명의 구속노동자가 추가됐다.


     정부가 중재자로써 사태해결을 위해 노력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노무현 대통령이 언제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탄압으로 일관할지 모르겠다. 국민 10명 중 7명이 이랜드 사태의 책임이 정부와 이랜드 사측에 있다고 생각하는 여론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부담을 느껴 할 말도 못하고 있을지 모른다.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는 극언에 대해 민주노총은 ‘할말이 많아서 슬픈 노무현이여’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내고 “말을 할 때는 할말 안 할말 신중하게 가리고, 특히 ‘대통령’이 할 말인지 아닌지 꼭 생각해주기 바란다”며 “국민 앞에 한 말은 꼭 지켜주기 바란다. 그래야 대통령을 믿을 수 있다”고 대통령에게 따끔한 충고를 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아무 말도 못해 슬픈 노무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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