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은 왜 하필 아프간에 갔을까?”
        2007년 07월 24일 12: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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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왜 하필 아프간에 갔을까?” 지금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반군에 납치되어 있는 23명의 사람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의구심과 감정을 요약한다면, 이 질문으로 압축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압축하면 이 질문에 담겨 있는 막대한 언짢음과 원망이 왠지 잘 살아나지 않는 것 같지만.

    ‘왜 하필’이라는 언짢음과 원망의 대부분은 그 23명이 아프간에 간 목적이 ‘개신교 선교’라는 것 때문이다. 아마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겪어 보았을 길거리에서의 협박, “예수천당! 불신지옥!”과 같은 공격적인 무례함을,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저지르기 위해 갔느냐는 생각이 그 핵심에 있을 것이고.

       
    ▲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의 인터넷 톱뉴스.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23명이 다니던 교회에 모인 친인척들.(사진=뉴시스)
     

    한국 개신교가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그리도 자신감 넘치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쾌하게 외치게 된 원인은 한국 개신교가 선교의 열정과 서구적 우월주의를 함께 갖춘 미국 개신교인들의 선교에 의해 시작된 데 있다.

    그리고 그 이후 ‘짝퉁 서양’ 일본의 식민지를 겪고 다시 ‘진짜 서양’ 미국이 개입된 해방, 분단, 전쟁의 과정을 겪으면서 한국인들이 가지게 된 서양, 미국 모방 욕구가 한국 개신교의 성장에 긴밀히 스며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사를 들춰보면 ‘소중화 의식’이라는 말이 발견된다. 특히 중국에서 명이 망하고 청이 들어선 후, 한족 국가인 명이 망했으니 이제 진정한 중화 문명의 계승자는 우리 조선이라는 식으로 생각했던 조선 후기 유학자 지배층의 의식을 지적하는 말이다.

    이 ‘소중화 의식’은, 아시아에서는 흔치 않게도 거대 종교로 성장한 한국 개신교가 “제2의 예루살렘” 운운하며 적극적 선교를 하는 맥락과 재미있는 비교가 가능하다.

    한국 개신교 역시,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 준 서양, 미국이 요즘엔 한편에 좀 이상한 모습도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면 우리가 해야지” 이렇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하나. ‘소중화 의식’이 청과 두 번의 전쟁을 치러 모두 참패한 상처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면, 한국 개신교의 생존과 팽창 역시 분단, 전쟁, 산업화로 인해 겪은 상처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점에서 또 하나.

    흔히 말하는 보수주의(개신교 내부에서는 ‘복음주의’란 표현을 많이 쓴다) 개신교인들이 모두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고 타 종교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니다. 납치당한 23명이 소속된 교회 역시도 굳이 따지자면 앞 문장에서 말한 ‘아닌 사람들’ 쪽에 가까운 편이다.

    하지만 ‘복음주의’ 개신교인이라면 아무리 타 종교를 존중하더라도 마지막에는 끝내 걸리는 지점(“그래도 구원은 기독교에만 있다”)이 있게 마련이다. “왜 하필 아프간에 갔을까?”라는 질문의 마지막 대답은 아마 이 지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아프간에 갔을까?”로 과연 충분한 것일까. 이 질문에 교회는 ‘봉사’라고 답하고, 사람들은 구글을 통해 ‘선교’라고 찍힌 지원서를 찾아내며 거짓말하지 말라고 펄펄 뛴다.

    궁금해진다. 도대체 그 사람들이 ‘선교’를 하러 갔다면, 거기에서 뭘 어떻게 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인지. 아프간 마을 곳곳을 다니면서 한국에서처럼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기라도 했을 거란 말인가. 다친 사람들에게 의료 처치를 하고 난 다음에 “자 고쳐주실 하나님을 함께 찬양합시다”라고 권고, 강요하기라도 했을 거란 말인가.

    ‘봉사’가 아니라 ‘선교’라고 찍혀 있다고 펄펄 뛰는 바로 그 지원서에 프로그램 내용이 ‘학교 사역, 마을 사역 및 가정 방문’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건 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냥 한국 개신교가 한국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 고래고래 외치고 다니니 거기서도 그랬을 거라고?

    그 23명의 행동이 국가에 얼마나 ‘큰 해를 끼쳤는지’를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이야기하는 글도 넘친다. 제법 사려 깊어 하는 말투로, 한국의 국가 위신이 어떻고, 이거 들어 줄려면 미국에게 양보해야 되는 것들이 어떻고, 탈레반 포로를 내놓으라는데 그들이 석방되면 23명보다 더 많은 목숨들이 테러로 죽을 텐데 어느 쪽 목숨이 더 소중하냐는 말까지.

    가상의 피해와 구조적 문제를 있는대로 없는대로 갖다대며 어떻게든 그 23명은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 내지는 ‘가치는 없지만 그래도 보호해 주어야 한다’고 몰아대는 이 많은 말들. 그것이 지금까지 한국 개신교, 이른바 ‘개독교’가 저지른 일들이 있으니 당연히 터져 나오는 반응이라고?

    목사이면서 동시에 민주노동당 당원인 필자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는 것은, ‘정당한 이유’를 들이대면서 쏟아지는 ‘혐오’의 대상은 ‘귀족 노조’이기도 하고 ‘지들이 못난 주제에 주제넘게 설치는 비정규직’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아프간이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될 예정이란다. 출석하는 교회의 교인인 국제평화 NGO 간사 한 분이 생각난다. 납치 뉴스가 처음 났던 바로 그 날. 이 분이 일하는 NGO에서 미리 예정돼서 그 날 출발할 아프간 평화캠프가 중단될 지도 모른다고, 인천에서 출국 금지를 당할 지도 모르고, 아프간에서 입국 금지가 될 지도 모른다는 글을 올렸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그 평화캠프는 아프간에서 진행 중이다. 앞으로는 그 평화캠프를 하기가 영영 틀렸을려나.

    ‘출국금지’는 지금 아프간에서 잡힌 23명 같은 ‘멍청이’들을 위한 것이지 그렇게 ‘순수하게 헌신’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게 무슨 ‘출국금지’인가. 국가가 ‘가지 말라면’ 모두 가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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