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주의 없는 국민을 형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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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7월 24일 07: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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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 항쟁 20주년을 맞아 당대비평 편집위원들이 책을 한 권 내놓았다. ‘민주화는 실패한 기획인가, 87년 이후 한국 사회에 대한 성찰’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웅진지식하우스)은 두 개의 좌담과 13편의 글이 실려 있다.

    <레디앙>은 당대비평 편집위원회와 공동기획 형식으로 책 내용 가운데 일부를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역사로서 6월 항쟁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20년이 지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밤이 돼서야 날기 시작한다”는 헤겔의 말처럼, 사태가 종료된 후에야 역사가는 그 역사적 의미를 드러내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다.

    87년 체제의 역사화를 위해

    사건으로서 6월 항쟁은 끝났다. 문제는 그 사건을 계기로 해서 성립한 이른바 ‘87년 체제’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6월 항쟁에 굴복하여 호헌을 포기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노태우를 내세워 6·29 선언의 형식으로 약속했다.

    이후 노태우 정권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쳐 군부독재의 구체제(Ancien Regime)는 청산되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민주화 시대가 열렸다. 이 같은 민주화 시대를 이뤄낸 지속의 시간을 ‘87년 체제’라고 부른다면, 이제 그것의 역사적 의미를 묻는 것은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미래에 대한 문제 제기다.

    최근 현실 정치의 역학 관계 속에서 ‘87년 체제’의 역사화에 관한 백가쟁명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 논의들은 크게 민족, 사회, 이념의 세 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무엇을 중심으로 현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입장이 갈라진다.

    이러한 정치 지형도와의 상관관계 속에서 ‘87년 체제’의 중층적인 역사적 의미들을 성찰해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 87년 6월 민주항생 당시 시청앞 광장을 가득메운 인파.

    민족: 분단체제 내의 ‘87년 체제’

    해방 60년의 한국사의 시대 구분을 한반도라는 관점에서 할 것인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관점에서 할 것인가, 즉 민족과 국가 가운데 무엇을 인식범주로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헤게모니 투쟁이 벌어졌다. 최근에 출간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은 이에 대한 하나의 기폭제였다.

    뉴 라이트의 관점을 대변하는 논객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입장에서 역사 수정주의를 주장한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고깃국에 쌀밥 먹는다”는 한국인의 오랜 꿈을 실현시키는 위대한 역사를 창조했다는 점에 주목하여 한국사의 인식범주를 더 이상 민족이 아닌 국가로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때문에 그들은 ‘87년 체제’의 종식을 (4·19로 상징되는) 민주화에 대한 (5·16으로 표상되는) 경제성장의 우위로 가치전도를 관철하는 기회로 활용하고자 한다.

    현실은 분단체제의 틀을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60년의 시간을 민족사의 관점에서 분단시대로 명명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만만치 않다. 세계적으로는 탈냉전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동아시아의 차원에서는 지정학적 질서뿐 아니라 지경학적 질서까지 포함하는 문제 틀로서 분단체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백낙청을 위시한 《창작과 비평》의 논객들은 ‘87년 체제’를 분단체제의 하위 범주로 위치 지운다. ‘87년 체제’란 1945년 이후 한국 현대사를 특징짓는, 분단시대라는 장기적인 국면 속에서 일어난 남한 사회의 구조변화라는 것이 이들 분단체제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6월 항쟁이 군부독재정권의 안티테제로서 일어났지만 기득권 세력과 타협한 ‘87년 체제’를 성립시킴으로써 분단체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1980년대의 변혁운동은 미완성이며, 세 가지 이념 민족-민주-민중을 서로 매개하는 전망을 열 수 있는 분단체제 프레임이 계속 유효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지구화(globalization)가 현실적 삶의 조건이 된 시대에 민족이라는 특수한 가치에 입각해서 사유하는 것은 말 그대로 시대착오다.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Daniel Bell)은 “민족국가는 이제 큰 문제를 다루기에는 너무나 작고, 작은 문제를 다루기에는 너무나 크다”고 말했다.

    이는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 된 세계화 시대에 민족과 민족주의라는 틀은 그 시효가 만료되었다는 세계사적인 보편성을 지적하는 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통일된 민족국가를 이루지 못한 우리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민족과 민족주의는 결코 용도 폐기될 수 없다는 주장이 우리 사회 내에서 여전히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전의 분단체제의 틀 안에서 사고했던 문제의 틀을 넘어섰다. 이를테면 북한 핵문제를 민족문제로 접근하는 것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줄 수 있는가? 북한은 중국에게는 핵실험 계획을 사전에 알렸지만, 남한에게는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다.

    민족통일보다 평화공존을

    그러면서도 북한은 《로동신문》 2006년 10월 25일 기사를 통해 “외세 의존으로는 안보를 얻을 수 없다”며 “전쟁의 위험이 날로 짙어가고 있는 오늘 믿을 건 오직 피를 나눈 자기 동족”이라고 말했다. 일방적으로 핵실험의 강행과 민족공조를 함께 부르짖는다. 과연 민족 공조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특히 북한 핵실험 이후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은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민족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남북한이 주권국가로서 평화공존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라는 점이 명확해졌다.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해서 우리는 ‘한민족(韓民族)’이라는 마술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에르네스트 르낭(E. Renan)은 “누구와 같은 민족인가를 결의하는 정당한 기준은 항상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지금 우리 민족이란 누구인가?’는 ‘김정일 정권의 핵’에 대항하여 한반도에서 우리의 생존을 함께 고민하고 결의하는 의지공동체라고 정의해야 할 것이다.

    지난 4월 16일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과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우리가 왜 21세기에서 ‘탈민족’을 화두로 삼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한국 사회가 점점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상황에서 혈통민족주의에 입각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규정한 것은 이제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민족주의 없는 국민을 형성해야

    버지니아 참사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사과가 아니다. 한국인들이 귀화자나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를 반성해야 한다. 만약 이주노동자가 조승희와 비슷한 범행을 저지른다면, 한국인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상상하면 정말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민주화 20년을 지나온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하는 ‘민족 문제’이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전체 가구 중 다문화 가정이 0.4%를 차지한다. 특히 농촌 초등학교에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비율이 10%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이들을 혈통민족 개념에 입각해서 배제하고 차별한다면, 이들의 존재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출산율은 갈수록 저하되고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데 필요한 연금은 고갈되고 있다. 이 같은 위기가 심화되면, 이주노동자가 한국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 없이는 한국이 존립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우리는 다민족을 이루며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과 한패가 되는 게 아니라, 한패가 되고 나서 비슷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라는 인간학적 사실에 근거해서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가 만들어졌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87년 체제의 완성이자 새로운 시작에서, 우리들은 ‘민족주의 없는 국민’을 형성하기 위한 탈민족주의 사고를 가져야 한다. 탈민족주의란 반민족주의가 아니라 세계화 시대에서 열린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버지니아 총기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 법무부는 화재 현장에서 한국인 11명을 구한 몽골인 4명에게 합법체류를 허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들을 우리 정치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정체성의 코드를 민족에서 시민으로 바꿔가야 한다.

    그리고 누가 시민인가는, 혈통적 개념이 아니라 공존하는 사회적 범주를 단위로 우리 정체성의 코드가 전환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87년 체제의 한 축이었던, 남한 사회를 불완전한 정치공동체로 보는 분단체제론은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사회: 민족통일보다는 평화공존

    6월 항쟁은 6·29 선언을 이끌어냄으로써 군부독재 정권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지만 ‘87년 체제’로 귀결됨으로써 민중혁명이 아닌 시민혁명의 수준으로 종식됐다는 평가가 있다.

    ‘87년 체제’는 군부독재 시대를 마감했지만, 김영삼, 김대중과 같은 구세대 정치인들을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하여 또 다른 구체제를 만들어냄으로써 부르주아 혁명 단계에 머물고 말았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마침내 6월 항쟁의 주도자들인 386세대가 권력의 핵심부로 진입하여 세대교체를 이뤄냈다.

    하지만 이는 한국 사회를 질적으로 더 나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있다. 최장집은 이렇게 비판했다. “계급간 불평등구조는 훨씬 빠른 속도로 심화되어왔으며, 과거 교육과 근면을 통해 가능했던 사회이동의 기회는 크게 줄어들었다.”

    신흥 지배엘리트들의 변신과 민주주의의 실패

    87년 체제는 한국 사회를 민주화시켰지만, 민주주의의 퇴보를 가져왔다는 것이 최장집의 진단이다.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민주화,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가 서로 역진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특징이라고 그는 규정했다.

    왜 이런 역설이 일어났는가? 민주화 운동 진영 출신이 정치와 시민 사회에서 신흥 지배 엘리트로 등장했지만, 안락한 보수주의에 안주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 향상을 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개혁의 이름으로 기성 헤게모니를 더 빨리 유능하게 전유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그 결과 민주 정부는 이전의 권위주의 정부 때보다도 더 신자유주의적이고 시장근본주의적인 경제독트린과 정책노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386세대는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투쟁에서는 승리했지만, 민주주의를 만드는 과업에서는 보수 기득권자들에게 패배했다.

    최장집은 희망을 남한사회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역량을 키우는 것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역량은 정치의 내부로부터 창출되는 것이지 정치 바깥의 제3의 제도나 힘에 의해 창출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는 사회경제적 갈등과 균열을 제대로 반영하고 대표하는 정당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민주정치의 활성화는 정당을 매개로 해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정당체제의 민주화가 확립되어야만 한국 민주주의가 질적인 도약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한사회 관점에서 북한 바라보기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가장 중요한 이념적 기반이 민족주의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냉전시대 남한사회의 민주화 운동은 민족통일 운동의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87년 체제’를 경유하면서 남한과 북한 사이의 체제 경쟁이 사실상 승부가 결정 났고, 의지와 달리 두 사회는 서로 다른 체제로 진행되어왔다.

    백낙청을 비롯한 분단체제론자들이 여전히 한반도 통일이 현재진행형임을 주장하는 데 반해, 최장집은 사고의 프레임을 남한사회로 한정하여 평화공존을 목표로 설정할 것을 역설한다. 최장집에 따르면, “오늘의 남한사회는 분단시대라는 정의가 함의하듯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반쪽의 정치체제가 아니라, 근대화되고 자족적으로 완성된 사회이자 국가이며,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민족주의에 입각한 민족통일의 신화는 깨졌고, 민주주의를 현실적으로 추구해야 할 첫 번째 목표로 수정하여 남한사회의 관점에서 북한 문제를 보려는 관점이 등장한 것이다.

    최장집은 오늘의 시점에서 한반도의 분단 문제와 관련하여 바람직한 목표는 해방 직후 좌절됐던 민족주의-통일을 다시 추구하는 데 있지 않고, 그 대신 민주주의-평화공존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화공존을 통일에 이르는 수단이나 중간노선이 아니라 그 자체를 목표이자 중요한 가치로서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민주화의 시간은, 그 숱한 민족주의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사회가 통일되는 방향이 아닌 이질화로 진행되었다. 분단시대 또는 분단체제라는 명칭은 통일을 한국사의 목표로 설정하는 목적론을 내재한다. 분단은 극복돼야 한다. 하지만 그 방식이 반드시 통일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성찰이 필요하다. 사회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통합과 갈등의 긴장관계 속에서 진화한다.

    이를테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를 비교해보자. 영토적으로만 보아도 신라의 삼국통일은 한국사의 영토적 경계를 축소했다. 하지만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지 않았다면 ‘삼국시대’라는 한국사의 시대구분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역사의 역설적 논리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레오폴드 폰 랑케(Leopold von Ranke)의 말대로 “모든 시대는 신에 직결된다.” 그 시대의 가치는 이후 시대에 나타난 성과를 통해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내에 함축한다.

    이후 시대의 성과는 그 이전 시대가 내재했던 가능태들 가운데 하나가 현실태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역사가는 현재에 나타난 결과를 기정 사실로 전제하고 과거의 다른 가능성들을 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지나간 미래’로 발굴하는 고고학적 작업을 해야 한다.

    이제는 지난 60년의 한국현대사를 분단시대 또는 분단체제라는 하나의 기호로 그 역사적 의미를 규정하는 민족주의 역사 목적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 국가 또는 남한사회는 분단이라는 그늘 속에서도 근대화와 민주화의 꽃을 피웠다.

    한국사 프레임을 한반도에서 남한사회로

    ‘87년 체제’의 첫 번째 역사적 의미는 한국사의 프레임을 한반도에서 대한민국 국가 또는 남한사회로 분리 독립시켰다는 것이다.

    서독 건국의 아버지 콘라도 아데나워 수상은 동독과의 민족통일을 추구하기보다는 ‘서방과의 통합’을 통해 ‘라인 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그 이후 빌리 브란트는 동방정책을 통해 냉전시대에서 동서독 평화공존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마침내 헬무트 콜 수상은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는 시점에 도둑처럼 찾아온 통일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다.

    이런 서독과 유사하게 남한은 냉전시대에 ‘한강의 기적’을 성취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시도할 수 있었다. 이는 한반도 방식의 동방정책이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정착시켜야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한반도의 평화다.

    특히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87년 체제’ 이후, 우리 사회의 목표는 민족통일보다는 남북한이 분리해서 주권국가를 발전하며 평화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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