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상보다 뜨거웠으나, 2% 부족한
        2007년 07월 20일 08: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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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경선에 돌입하기에 앞서 일곱 차례 실시된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후보 간 정책토론회가 지난 18일 울산토론회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이번 토론회는 후보들의 정책 차이를 드러내 후보 선택 과정에서 당원들의 판단을 돕는다는 기본 취지 말고도 당이 보다 폭 넓게 국민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녔다.

       
      ▲ 정책토론회에서 노회찬 후보, 심상정 후보, 권영길 후보(왼쪽부터)가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 (사진=민주노동당)
     

    "택지국유화 뜨거운 공방 대상"

    토론 과정을 거치면서 크게 네 가지 주제에서 후보들 사이의 정책 차이가 노출됐다. 먼저 심상정 후보가 제시한 택지 국유화 정책을 놓고 뜨거운 공방이 일었다. 대전, 경기, 울산토론회의 핵심 이슈는 택지국유화 문제였다. 국가가 택지를 유상으로 매입하는 경우 투기 세력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인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노회찬 후보는 심 후보가 제시한 방식대로 하면 비싼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정부의 보조를 더 많이 받는 결과가 된다고 주장했다. 노 후보는 "강남구에 있는 수십억 아파트나 타워팰리스 등을 왜 국민들이 낸 연금을 가지고 사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에서 노 후보는 "심 후보의 택지 국유화론은 당론으로 채택하기에 문제가 많다"는 데까지 나아갔다. 노 후보는 "집 없는 가난한 서민들에게 주택을 공급하려면 영구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데 더 비중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심 후보는 "자신의 세박자 주택정책 안에 이미 영구임대 주택 공급 방안이 나와 있다"며 반박했다. 심 후보는 "택지국유화가 시행되면 타워팰리스의 가격이 그대로 있겠느냐"면서 "오히려 전문가들은 택지국유화가 시행되면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는 역기능이 초래될까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심 후보는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는 게 아니라면 시장 가격으로 규모에 맞게 단일한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매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노 후보가 무상몰수를 주장한다면 논점이 제대로 형성될 것"이라고 했다. 두 후보의 논쟁은 장외로도 이어져 <레디앙> 지면을 통해 지금도 논쟁이 진행중이다.

    "연방제냐, 국가연합이냐"

    한반도 통일 방안을 놓고도 후보들은 불꽃튀는 공방을 벌였다. 이 문제는 마산토론회의 주요 이슈였다. 노회찬 후보가 제시한 ‘코리아연합’ 구상이 논쟁의 소재가 됐다. 노 후보의 구상대로 ‘국가연합’ 단계를 거치는 것은 연방제 통일을 명시한 당론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는 게 핵심 쟁점이었다.

    권영길 후보는 "6.15 공동선언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하자는 것인데, 노 후보의 통일론은 이 부분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간 신뢰구축이 필요한데, 노 후보의 주장에는 신뢰구축에 장애가 될만한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노 후보의 안이 연방제로 직진하지 않고 국가연합이라는 단계를 설정하고 있는 데 대한 비판으로 읽혔다.

    심상정 후보도 "민주노동당의 통일강령을 보면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을 이뤄 국제적으로 민족통일을 기정사실화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면서 "국가연합은 당의 통일강령보다 후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 후보는 "낮은 단계의 국가연합은 6.15 합의안보다도 후퇴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노 후보는 "연방제와 국가연합이 충돌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지만 6.15 합의의 성과는 연방의 낮은 단계가 국가연합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데 있다"면서 "연방제로 가기 위해서라도 따로 놀 게 아니라 국호를 같이 쓰는 국가연합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대안세계화 위한 지역전략 vs 패권적 블록경제

    심 후보의 동북아경제공동체 구상을 놓고도 심각한 입장차가 노출됐다. 아세안과 인도, 러시아와 함께 동아시아의 호혜적 경제공동체를 만들자는 심 후보의 구상에 대해 노 후보가 반론을 폈다. 권 후보는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의 형성이라는 큰 맥락에서 심 후보와 입장을 같이하면서도 그 범위에 대해서는 ‘한중일 + 아세안’이라는 다른 틀을 제시했다.

    노 후보는 "경제공동체 발상은 관세 장벽을 없애는 것부터 포함되는데, 이는 한중, 한일 FTA 찬성론자들의 발상"이라며 "심 후보가 패권적 블록경제를 추구한다고 보진 않지만 그런 식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한미 FTA를 대체할 지역의 어떤 경제 협력 체계를 만드는 그 목표 자체가 잘못 설정된 것", "한미FTA의 대안은 한미FTA를 막는 것이고, 다른 무역체제를 발명하려는 것은 부질없는 노력"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심 후보는 "(동아시아 호혜경제공동체론은) 대안 세계화를 위한 지역화 전략이며, FTA가 아니고 상호 호혜 협력하는 아래로부터의 연대론"이라며 "한국 경제는 세계경제에 깊숙히 편입돼 있기 때문에 서민경제의 틀을 새롭게 짜려고 해도 국제관계를 그냥 방치하고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권 후보는 "호혜적 경제공동체에서 지리적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한중일을 경제공동체로 하고 아세안이 합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심 후보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내재된 동북아 구조 속에서 사실 경제적 네트워크가 잘 안 된다. 그 공간에서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뛰어넘는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새로운 공화국이냐, 새로운 체제냐"

    광주토론회의 이슈는 이번 대선에서 내세울 대안적 체제의 문제였다. 크게는 권, 노 후보의 ‘공화국 교체론’과 심 후보의 ‘새로운 체제 건설론’이 맞붙었다. 권 후보의 ‘새로운 공화국’과 노 후보의 ‘제7공화국’은 작명법 외에 내용상 중요한 차이를 갖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 후보는 "6공화국 20년 동안 정권이 네 번 바뀌고, 집권당이 여러 차례 변화됐지만, 실제로 똑같은 정책 이념 노선을 견지해 왔다"며 "이런 체제와 확연하게 선을 긋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자는 것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구해가는 과정"이 7공화국 건설 운동이라고 했다. 권 후보는 자신의 ‘새로운 공화국’과 노 후보의 제7공화국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했다.

    심 후보는 "7공화국 정도의 내용은 발달한 민주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 다 수용하는 수준"이라며 "나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체제를 지향하며 이것이 사회공공체제"라고 차별성을 강조했다. 심 후보는 또 "헌법을 이야기 하려면 권력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민중권력을 만드는 제헌의회와 민중헌법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심 후보는 두 후보의 ‘공화국’론과 자신의 ‘체제 건설론’간 차이를 강조했다. 반면 노 후보는 "심 후보가 나중에 발표할 내용을 봐야 알겠지만, (세 후보가 그리는 새로운 사회의 상이) 그렇게 크게 차이가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했다. 심 후보는 "이 체제의 골조를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두 슬로건 간의 차이에 대한 구체적인 확인은 그 때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노-심 후보간 불꽃 공방과 권후보의 ‘여유’ 

    이번 토론회의 주요 이슈가 된 택지국유화, 통일방안,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대안적 체제의 상에 대한 문제들은 22일부터 시작되는 본 경선 과정에서도 치열한 공방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선 토론에서 확인된 후보들간 정책 차이를 토대로 좀 더 구체적인 답을 얻어가는 방향으로 이후 토론이 전개된다면 당 전체적으로 정책의 완성도를 높이는 경선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토론에서는 굵직한 정책적 이슈는 아니면서도 후보들간에 첨예한 대립상을 빚은 돌발 이슈들도 등장했다. 주로 노 후보와 심 후보가 맞서는 경우가 많았다.

    도라산 토론회에서 노 후보의 정세분석을 둘러싼 공방이나, 대구토론회의 ‘OECD 고용률’ 문제 등이 그렇다. 심 후보가 공격하면 노 후보가 방어하며 되받아치는 방식으로 공방이 전개됐고, 이는 민주노동당 홈페이지나 <레디앙> 게시판에서 양측 지지자들의 공방으로 이어지곤 했다.

    7차례 토론과정에서 권영길 후보는 쟁점의 가운데 서서 논전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여유’라는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한 채, 상대방의 입장에 ‘동의’해주면서 ‘종합 정리’해가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경륜 vs 본선경쟁력 vs 실력

    후보들은 이번 토론회 기간 동안 자신이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가 돼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거칠에 요약하면 권 후보는 ‘경륜’을, 노 후보는 ‘대중설득력’을, 심 후보는 ‘실력과 정책’을 강조했다. 물론 세 후보의 강조점은 모두 ‘본선경쟁력’의 주요 논거로 활용됐다. 

    권 후보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 것처럼, 선거에서도 이를 치열하게 치러본 경험과 경륜이 중요하다. 이미 지난 두 번의 대선을 통해 많은 분들이 권영길을 인정하지 않았는가?”라며 “권영길을 앞장 세워야 하는 것이 이번 대선의 필승 전략"이라고 했다.

    노 후보는 "2004년 총선 당시 심 후보는 비례 대표 1번으로 이미 대표였고 또 원내 수석 부대표로서 이미 권, 심 두 후보가 둘 다 대표 활동을 했다. 그래서 저는 그걸 교체하겠다”면서 "심 후보가 패기 있게 말하는 것은 정말 존경스러우나, 출마 선언도 가장 먼저하고 또 많은 것을 보여줬지만 지금까지 지지율에 변화가 없는 것으로써 이미 검증 됐다"고 했다.

    심 후보는 "권 후보님이 그간 당의 얼굴로 이만큼 성장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워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러나 2002년, 2004년 똑같은 내용,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는 이길 수 없다"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경륜이 아니라 실력, 패기, 추진력이다. 이번 대선의 핵심은 진보 정당의 대표를 과감하게 교체하는 것"이라고 했다.

    ‘뜨거운’ 토론, 그러나 정책 벼리는 데는 미진

    각 후보들간의 정책적 차이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또 밋밋하지 않겠느냐는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뜨거운’ 토론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번 토론회는 비교적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차이’의 확인이 보다 질 높은 대안의 모색으로 연결되지 못한 점은 이후 경선 과정에서 풀어야 할 숙제로 남는다.

    노 캠프의 신장식 공보실장은 "토론회 전체적으로 보면 국민들에게 민주노동당을 알리는 것과 후보들 사이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것, 두 가지 목표의 배합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다소 모호했던 점은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라고 평가했다.

    심 캠프의 손낙구 상황실장은 "경선을 재미있고 박진감 있게 하기 위해 ‘계급장 떼고 하자’고 했는데, (당초 의도대로) 토론과 유세에 긴장감이 부여됐다"면서도 "정책토론회답게 각자의 정책을 벼리고 다듬는 데는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손 실장은 "구체적인 정책을 놓고 다투고 토론해야 하는데 그 점에서 미진했다"고 말했다.

    노 캠프 "가장 쉬운 언어로 국민과 소통"

    각 캠프는 지난 토론 과정에서 자신의 후보가 세운 전과를 어떻게 평가할까. 또 상대 후보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신장식 실장은 "당초 국민과 소통하는 토론을 하자고 했는데, 만족할만큼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다른 후보에 비해 가장 쉬운 언어로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국민들의 공감대를 끌어내는 데 성과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신 실장은 "국민과의 소통, 집권을 위한 당 혁신에 초점을 맞춰 앞으로의 토론에 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실장은 권 후보에 대해 "당내 타겟층에 정확하게 소구하는 메시지를 던졌다"면서 "그 반대 급부로 통합적 지도자로서의 이미지가 많이 희석된 것 같다"고 평했다. 심 후보에 대해서는 "가장 도전적으로 토론에 임했다"면서 "심 후보 때문에 토론회가 활기를 띠었다"고 말했다.

    심 캠프 "’알찬 내용, 탄탄한 정책’ 평가 재확인"

    손낙구 실장은 "토론에서 주도성을 발휘했다"고 심 후보를 치켜세웠다. 또 "당초 정책 경쟁, 정책 선거에 걸맞게 토론을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면서 "후보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그런 포지션을 지킨 것 같다"고 평가했다.

    손 실장은 "이번 토론회를 통해 ‘내용이 가장 알차다’ ‘정책이 탄탄하다’는, 심 후보가 꾸준히 들어온 평가가 재확인됐다. 내용과 정책으로 승부한다는 기조를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라며 "선거 국면에 맞게 정책을 대중적으로 풀어나가는 점을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 후보에 대해 손 실장은 "경륜이 돋보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있게 대처했다"면서도 "원내 진출 이후 높아진 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정책과 내용을 많이 갖춰야 할 것"이라고 했다. 노 후보에 대해선 "순발력과 촌철살인의 말솜씨가 강점"이라며 "내용을 좀 더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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