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교조 선생님 힘주는 KTX 제자
        2007년 07월 18일 04: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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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13년 째 사회를 가르치는 홍성현(39) 교사는 제헌절 날인 17일 아들을 데리고 KTX와 새마을호 승무원들이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서울역 천막 농성장을 찾았다.

    길거리로 쫓겨난 지 500일이 넘은 KTX 승무원들이 집단 단식에 돌입했다는 뉴스를 보고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에 그냥 집에서 쉬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가 가장 아끼는 제자가 KTX 승무원으로 이 투쟁에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노숙자들이 즐비한 서울역 한 켠에 네 동의 천막이 쳐져 있었고, 방송 차량에선 KTX 승무원들의 소식을 알리는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투쟁 500일 단식 15일을 맞은 승무원들

       
    ▲ 홍성현 교사
     

    열차가 도착하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천막 앞을 무심한 눈빛으로 지나간다. 어쩌면 정부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KTX 투쟁이 차츰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지친 노동자들이 스스로 포기하길 바라고 있는지 모르겠다.

    바로 이 시점에 이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스스로의 결의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곡기를 끊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이 투쟁을 이끌고 있는 KTX 승무원 민세원 지부장이 세 번째 천막에서 반갑게 맞았다. 그는 지지방문을 온 수원대학교 학생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었다. 노래패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은 이날 이 천막을 방문해 힘을 내라며 노래를 불러주고 떠났다.

    활기찬 목소리와는 달리 민세원 지부장의 얼굴은 많이 상해 있었다. "수배 중일 때 안 움직여서 살이 많이 쪘던 거구요, 지금은 살이 빠져서 그래요. 단식하면서는 5kg 정도 줄었어요,"

    먹고 싶은 음식 이름표 뒤에 쓰다

    천막 한 구석에 세 명이 누워있고 민세원 지부장을 비롯해 ‘튼튼한’ 세 명이 ‘손님’들을 맞고 있다. "세원이 언니는 이렇게 방문하는 분들에게 KTX 투쟁을 설명하느라 잠시도 쉬지도 못해요." 옆에 있던 김진옥(28) 조합원의 얘기에 마음이 미안해진다.

    아침부터 밤까지는 이곳 서울역 천막에서 농성과 선전전, 문화제를 하고, 잠은 용산역에 있는 철도노조 사무실에서 잔단다. 그런데 아직 반가운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여전히 이철 사장은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안쓰러움과 답답함이 밀려왔다.

    단식자들은 ‘단식’이라고 씌여진 노란 이름표를 목에 걸고 있었다. "난생 처음 단식을 하잖아요. 친구들이 먹고 싶은 걸 이름표 뒤에 써요. 떡볶이, 순대, 삼겹살, 피자…. 그리고 사달라고 할 사람도 같이 쓴다니까요."(김진옥 조합원)  민세원 지부장은 회가 먹고 싶다고 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상징 KTX, 민간부문 상징 이랜드

    한국사회는 더 싼 임금, 더 쉬운 해고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KTX 열차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850만 비정규직으로도 모자라 자본과 정부는 직접고용을 간접고용으로 갈아치우고 있다.

    이를 저항하는 전선의 맨 앞에 KTX와 이랜드 노동자들이 서 있는 것이다. 본인이 원든 원하지 않든 간에 KTX 승무원들이 직접고용을 끌어내느냐에 따라 30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랜드 역시 민간부문 비정규직의 투쟁의 태풍의 핵이 됐다.

    "KTX와 이랜드 투쟁은 똑같은 투쟁이에요. 그래서 우리도 이랜드에 연대하고 이랜드도 우리와 연대하고 있어요. 정말 비정규직의 상징이죠. 민주노총은 연대가 아니라 실제 주체로서 이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세원 지부장은 민주노총에 대해 섭섭함과 비판을 잇따라 쏟아냈다.

    ‘꽃단장’을 하고 온 제자

       
    ▲ KTX 승무지부 강유선 조합원
     

    민세원 지부장을 비롯해 33명이 투쟁 500일을 맞아 7월 내에 이 투쟁을 끝내자며 지난 3일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열흘이 넘어가면서 견디지 못한 친구들이 단식을 중단해 17일로 15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조합원들은 7명이다. 14일부터 2차로 또 8명이 단식에 들어가 5일째를 맞았다.

    홍교사의 제자 강유선(28)은 열흘째 되던 날 단식을 중단했다. 몸아 아파서가 아니었다. 몸이 편찮으신 어머님이 딸이 단식을 시작하자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더 단식을 할 수가 없었다.

    "유선이가 최고의 선생님이라고 얼마나 자랑을 했는데요."
    "얘기 정말 많이 들었어요."
    "선생님이 유선이한테 가장 자랑스런 제자라고 하셨다면서 유선이가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유선이가 꽃단장하고 곧 천막에 올 거예요."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한다. 홍 선생은 말없이 빙그레 웃기만 한다.

    조금 후 그의 제자가 정말 ‘꽃단장’을 하고 나타났다. 화사한 옷차림으로 나타난 강유선 조합원은 오자마자 선생님의 아들부터 안는다. 제자의 얼굴에도 선생님의 얼굴에도, 이를 지켜보는 단식자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핀다.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이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기회는 감옥에 갔을 때와 단식할 때다. 홍 선생은 박노자 교수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홍세화 선생의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를 비롯해 책을 한 보따리 들고 들어왔다. 책 앞에는 "KTX 승무원들의 투쟁 승리를 기원하며. 지원이 아빠 드림"이라고 썼다.

    "언니는 굶는데 무슨 반찬 투정이니?"

    "언니 나 선생님하고 밥 먹고 올게."(강유선)
    "다 굶고 있는데 밥 얘기 하지 마"(홍선생)
    "괜찮아요. 언니들도 밥 골라 먹어. 오늘은 삼다수 먹을래?"(강유선)

    제자의 장난에 홍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팔을 잡아끈다. 홍 선생은 서울역 안에 있는 식당에서 오랜만에 제자와 마주앉았다.

    제자는 재밌는 얘기를 많이 들려줬다. 작은 회사 다니는 친구가 "우리는 회사에서 부당한 일 당해도 문제 제기 못하고 꾹 참고 사는데 그래도 너희들은 일어나서 얘기하지 않느냐"며, 부러워했다는 얘기도 했다.

    동생이 반찬 투정을 했더니 엄마가 "언니가 굶고 있는데 투정하지 말라"며 반찬을 아예 만들지 않으셨다는 얘기에 웃음이 나왔다. 딸의 투쟁을 말리셨던 아버지가 며칠 전에 용돈을 부쳐주셨고, 정년을 앞둔 나이에 문자를 배워 문자를 자주 보내주신다는 제자의 자랑을 들으니 안도감이 생기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는 사회문제가 왜 중요한지 몰랐는데 이 투쟁을 하면서 많이 배웠다는 얘기에 그는 이제 제자가 아니라 ‘동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제간의 애틋한 대화는 한 시간만에 끝이 났다. 그의 제자가 시민들에게 방송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초임 시절 만난 제자

    1995년이었다. 홍 선생은 대학을 졸업한 후 여학교로 발령을 받았고, 그가 가르치던 반에서 유선이를 만났다. 유선이는 졸업한 후에도 스승의 날에 찾아오기도 했고, 좋은 소식이 있으면 알려주기도 했다.

    유선이는 2004년 KTX가 개통하면서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당당하게 KTX에 승무원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을 그에게 전해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파업 소식을 들었다. 씩씩하던 유선이는 파업이 길어지면서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다 할 거고 금세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면서 많이 괴로워했다.

    2006년 여름 어느 날 밤 제자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아주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절망스런 목소리였다. 그는 다음날 곧바로 용산역으로 달려갔다. 홍 선생은 유선이를 위로했다. 동료들과 함께 문제를 풀도록 설득했다. 그 이후에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며 용기를 북돋아주곤 했다.

    그는 수업시간에 KTX, 이랜드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학생들과 나눈다. "반에 서른 명 있으면 반 이상은 다 비정규직이 될 거라고 얘기하는데, 아이들은 아직은 피부에 와 닿지 않나 봐요. 그래서 이렇게 고생하는 너희 선배들도 있다면서 KTX를 소개해주기도 합니다."

    13년 째 교직생활. 전교조 활동도 열심히 해왔지만 그는 갈수록 힘이 빠진다. 아무리 애를 써도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는 세상, 절망이 가득한 교실에서 그에게 유일하게 자극을 주는 사람이 그의 제자 유선이다.

    "희망이 잘 보이지 않으면서 매너리즘에 빠지곤 했는데 유선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그러면 안 된다고 다짐해요. 특히나 아이들 가르치는 입장에서 처음에 다짐했던 것들을 계속 이어나가게 만들어주는 힘이 되고 있어요."

    그는 소망한다. 500일을 넘은 KTX 노동자들이 당당하게 이겨 현장을 돌아가길. 그리고 유선이가 탄 KTX 열차를 타고 아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날을. 교실의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얘기해줄 수 있는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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