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민주노동당의 이름으로
    2007년 07월 18일 03: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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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신반의했다. 뭐니 뭐니 해도,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어야 마음이 덜 쓰이는 법. 특히 사람들 모을 때는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어야 한다. 대중 조직이든, 정파 조직이든, 크든 작든 간에 일단 밑천 삼을 조직이 있어야 그래도 안심이 되는 법이다.

정파에 몸을 담고 있지 않고, 특정한 대중 조직의 일방적 지지에 기대지 않는 노회찬 후보가 과연 1천 명 이상의 지지자들과 함께 중앙선대본 발대식을 할 수 있을까.

   
  ▲ 사진=노회찬 의원실
 

민주노동당의 이름으로

그러나 언제나처럼, 노회찬 후보는 스스로 증명해보였다. 전국에서 모인 1천 명이 넘는 지지자들은 열광적으로 ‘노회찬’을 연호하였고, 그의 이름 앞에 감히 ‘대통령’을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확인할 수 있었다. ‘대통령 노회찬’을 연호하는 1천여 명의 동지들은, 정파의 구성원도 아니었고, 대중 조직의 회원도 아니었던 그들은, ‘평등 통일의 새 세상을 향하여’라는 민주노동당 당가를 자랑스럽게 부르는 민주노동당 당원들이었다.

노회찬 후보가 지금껏 그래왔듯이, 그를 지지하기 위해 대회장에 찾아온 사람들도 민주노동당 당원의 이름을 달고 있었다. 노회찬 후보 중앙선대본 발대식은 그렇게 민주노동당의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1부 행사에 등장한 바이올린 연주와 비보이 공연은 노회찬 후보의 유쾌, 통쾌, 상쾌 이미지를 넘어서는 공연이었다. 생존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힘겨운 싸움에 내몰리고 있는 동지들이 부지기수이고, 그 생존의 조건을 제도적이고 사회적인 계급투쟁으로 엮어내는 민주노동당의 정치투쟁 또한 여전히 엄중하지만, 지배계급의 독점적인 문화 향유를 거부하고, 인민들의 투쟁 과정에서 문화를 함께 즐기고자 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투쟁이다.

지배계급의 상징도 아니요, 더욱이 불량청소년들의 일탈도 아닌, 함께 보고 즐기고 열광하면서 노동력 재생산의 에너지원으로, 투쟁을 결의하는 힘으로 공유하는 것이 문화이다. 또한 노동자들과 비밀 학습을 조직하며 새벽녘 가가호호 유인물을 돌리던 노동운동에서, 근본적인 저항을 조직하기 위한 진보정당운동으로 나아가고, 여성, 장애인 등은 물론이요 성소수자 문제로까지 끊임없이 확장해온 노회찬 후보의 사회적 자아의 확장을 엿보는 단면이기도 했다.

큰 빚을 진 노회찬

발대식에 참석한 참가자들의 열광적인 환호성은 바이올린과 비보이에게서 멈추지 않았다. 선거대책위원장을 수락한 김혜경 전 대표의 연설은 바이올린과 비보이의 열광을 그대로 이어갔다.

“2005년, 당 대표를 사퇴하는 심정으로” 노회찬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수락한다는 김혜경 전 대표의 일성은 참가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울렸다. 김혜경 선대위원장의 한마디 한마디는 40년 동안 저항운동의 일선을 지키며 늙어 온 투사의 고민과 솔직함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특히 민주노동당을 ‘씩씩한 언니들의 정당’으로 만들자며 고군분투했지만, 변화하지 않는 당의 낡은 모습을 자신의 책임으로 질책하며,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당 대표를 물러났던 책임 있는 지도자답게 ‘왕 언니’의 한마디 한마디는 민주노동당을 정확히 겨냥했다.

   
  ▲ 사진=노회찬 의원실
 

“자족적인 활동 방식과 정파라는 관성에 갇혀 우리끼리 상처내고” 있는데, “전 대표라는 사람이 공자님 말씀만 하면서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거냐”고 또 한 번 자신의 책임 있는 선택과 활동을 스스로 요구한 김혜경 선대위원장은 “특정 정파 없이 당 중심의 후보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후보”로 노회찬후보를 선택했음을 주저 없이 고백하였다.

그리고는 “정치적인 선택은 항상 분명해야 하며, 한번 선택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며 “그게 선배의 몫이 아니겠느냐”고 당당히 선언하였다.

사퇴한 전 대표로서의 중압감이 여전할 텐데, 김혜경 선대위원장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자신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숨어서 이 캠프 저 캠프를 기웃거리지 않고, 당원들에게 자신의 선택을 분명히 보이며, 그에 대해 당원들로부터, 또 인민들로부터 평가받겠다는 김혜경 선대위원장은 역시 우리들의 ‘왕 언니’였다.

생물학적 여성을 뛰어 넘은 ‘왕 언니’의 선택에, 저항운동의 대표자가 갖는 점잖은 연대를 뛰어 넘은 ‘젊은 노투사’의 선택에 참석자들은 존경과 지지의 박수를 아낌없이 보냈다.

김혜경 전 대표만이 아니다. 선대본부장을 수락한 김석준 부산시당 위원장, 임성대 충남도당 위원장을 비롯해 김진주 전 강원도당 위원장, 김창한 전 인천시당 위원장, 이연재 전 대구시당 위원장, 염경석 전 전북도당 위원장, 이용길 전 충남도당 위원장 등 전직 시도당 위원장들 또한 김혜경 대표와 같은 마음으로 지지를 선언했다.

당의 위기에서 맞이하는, 그래서 누구나 이야기하는 당 혁신과 도약의 전환기가 되어야 한다는 중요한 대선투쟁 과정에서 그들은 당원들에게 자신의 선택을 드러내었다. 특정 후보자에 대한 당 지도부들의 공개적인 선택이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할 때, 노회찬 후보는 그들에게 큰 빚은 진 셈이다.

제7공화국으로 인민들을 만나라

그러나 노회찬 후보가 진정으로 큰 빚을 진 사람들은 인민들이다. 노회찬 후보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2004년 4.15총선에서 새벽녘까지 김종필이냐, 노회찬이냐로 인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며, 바로 그들의 지지로 당당히 국회에 입성한 노회찬 후보의 가장 큰 응원꾼들이 바로 인민들이다.

신한카드 포인트의 정치후원금 지원에서 국회의원 중 가장 많은 정치후원금을 받는 것도 인민들에게 진 노회찬 후보의 빚이다. 삼성 엑스파일 공개로 검찰에 의해 기소될 때 나도 잡아가라며 나섰던 인민들에게도,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운동에서 보여줬던 수많은 지지 역시, 노회찬 후보가 감당해야 할 빚이다.

노회찬 후보는 이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 노회찬’을 연호하는 1천여 지지자들의 연호 속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여 줄곧 ‘집권’을 강조했다. 인민들에 대한 빚을 집권을 통해 갚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제시한 것이다.

집권을 통해 당장에 건설할 세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신자유주의 반대’, ‘교육 의료 주택 일자리의 국가 보장’, ‘탈동맹 평화체제’, ‘녹색국가지향’ 등 열한 가지의 큰 상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수구 보수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에게 사로잡혀왔던 분단 60년의 반민중적 사회경제체제와 단절하고, 새로운 민중권력의 토대로서 ‘제7공화국 건설’을 주장하였다.

노회찬 후보의 제7공화국 건설은 집권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었다. 그리고 “집권이 최종목표가 아니라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최종 목표이지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도 집권해야 한다”며 민주노동당 운동의 근본을 다시 한번 되짚었다.

“밥을 먹을 때도, 물을 마실 때도 집권을 생각해야 한다”는 노회찬 후보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집권 뿐만 아니라, 당을 실질적으로 혁신하기 위해서도 집권에 대한 분명한 목표 설정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은 당 혁신은 실체 없는 주장으로만 그칠 뿐이고, 당과 소통해야 할 인민들을 배제하는 갇힌 실천일 뿐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주장이었다. “우리 스스로 집권에 대한 의지가 있느냐”고 반문할 때는 그나마 3당으로서 안주하려 했던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도 있었다.

   
▲ 사진=노회찬 의원실
 

다시 한번 민주노동당의 이름으로

그랬다.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어쩌면 제3당에서 안주하려 했던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3당에 안주하는 당의 시스템과 정치활동에서 인민들에게 어떤 정치적 감동을 줄 수 있었겠는가. 우리 스스로의 혁신을, 그것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창당 정신에 맞는 혁신을 감히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 점에서 노회찬 후보가 누누이 강조했던 집권, 그 구체적 표현인 제7공화국 건설은 우리 안의 나태를 꾸짖는 동시에 민주노동당의 창당 정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배여 있다. 인민들과 함께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역사의 부름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것이 노회찬후보의 숙명임을, 그와 함께 하는 지지자들의 숙명임을 부인하지 않고, 담담히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선포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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