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린 두번째 제헌절을 꿈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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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7월 16일 0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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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살 때의 우화

    거의 20년 전쯤, 내가 태어나서 처음 화염병을 던져봤을 때의 일이다. 당시 숭실대생이던 박래전 열사가 군사파쇼 타도를 외치며 분신을 했다. 당연히 흥분한 민중들이 집회를 열었다.

    집회장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던 나에게 누군가 삐라를 한 장 주고 지나갔다. 그 유인물은 ‘임시혁명정부 내각 명단’이었다. 대통령, 국무총리, 내무장관 등 각 부서와 어디서 들어 본적도 없는 책임자들 이름이 쓰여 있었다.

    지금으로선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겠지만 그 조악한 인쇄물을 받아든 내가 머릿속에서 제일 처음 들었던 생각은 ‘벌써 뽑았네!’ 였다. 때는 1988년,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직후였고 사람들은 늘 약간 흥분한 상태로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디선가 2.5톤짜리 트럭이 한 대 나타났다. 그 트럭 짐칸에는 정체불명의 이상한 박스들이 잔뜩 실려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다 화염병이었다.

    2.5톤짜리 트럭으로 꽃병을 던졌던 그날, 나는 그 임시혁명정부 내각 명단을 가슴에 잘 품고 집으로 돌아 왔다. 갖고 있다 걸리면 큰일 날 시절이었지만 19살이던 나는, 최소한 이 명단 중에 내무장관까지는 이름이라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는 노태우가 아니라 그 작은 종이 쪼가리가 나의 조국이었고 내 마음속의 정부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내 마음속의 정부는 엄마가 바지를 빠는 바람에 다 찢어졌다.

    2.

    다 잊혀져서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20년 전의 추억이 되살아난 이유는 민주노동당의 한 정파인 ‘전진’이 ‘대선강령’으로 ‘제헌의회’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가 알고 있던 ‘제헌의회’의 풀 네임은 ‘혁명으로! 제헌의회’이다. 이는 선거로 제헌의회를 만든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제헌의회는 민중봉기로 구성하는 것이고 만약 그런 차원이 아니라면 그것은 제헌이 아니라 ‘개헌’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동안의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만약 선거를 통해 구성된 의회가 개헌이 아니라 제헌을 한다면 결과적으로 한 나라에 제헌절을 두 번 만들어야 한다. 기존의 제헌절은 날아가야 한다.

    즉 제헌은 개헌과 달리 기존의 헌법을 완전히 포맷하고 다시 까는 방식이다. 그동안의 역사적 정통성을 전혀 인정할 필요 없이 완전 부정하면 된다. 우리는 핸드폰 개통과는 비교도 안 될 전혀 새로운 나라를 개통하게 된다.

    3.

    한국의 좌파가 20년 전 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제헌의회’를 들고 나온 것은 전적으로 차베스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1998년 선거로 집권한 이후 국민투표로 제헌의회를 만들어낸 다소 특이한(?) 변혁과정을 밟은 바 있다. 이를 통해 쿠데타 등으로 차베스를 끌어내려고 끊임없이 책동과 모략을 일삼던 반혁명 세력들을 일시에 날려버린 사례를 남긴 것이다.

       
      ▲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연단에서 왼쪽에서 두번째)이 수도 카라카스의 의사당에서 거행된 6년의 대통령 새 임기를 시작하는 3기 취임식에서 의원들과 함께 국가를 부르고 있다.  
     

    갑자기 한국에서 제헌의회가 등장한 것은 이 사례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초부터 주로 남미 쪽 모형을 많이 참고 해왔다. 처음엔 브라질 노동자당을 많이 참고 했다. ‘참여예산제’ 같은 정책 뿐 아니라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구호까지도 수입했다. 지금은 베네수엘라의 제헌의회 전술을 참고 하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베네수엘라와 많은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기반이 주로 석유 채취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네수엘라의 경우 민중권력이 집권해서 석유 채취 기업을 국유화하고 그 경제적 이윤의 소유권을 민간자본이 아닌 국가 소유로 바꾸기만 해도 여러 가지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한반도의 4배가 넘는 국토에 세계 5위의 산유국일 정도로 자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8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차베스가 당선될 때 베네수엘라는 전체 인구의 2/3가 빈곤층이었고 그 중 절반이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든 절대 빈곤층을 이루고 있었다.

    석유에서 나오는 막대한 부는 국내외 자본가들과 관료들 주머니만 채웠다. 게다가 농업의 몰락으로 90%의 인구가 도시로 몰려와 빈민이 되었다.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는 극심한 불평등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하면 전체적으로 모순 구조가 간단한 상태이다. 생산력 혁신이나 위험 부담 같은 ‘자본’의 순기능은 거의 미미한 나라였다. 따라서 이런 상태라면 늙은 자본주의 상태라고는 볼 수 없다. 노동자 정치는 남미 쪽이 훨씬 많이 발전했지만 ‘자본주의의 나이’는 한국이 훨씬 더 늙은 상태인 것이다.

    우리는 흔한 말로 “누군 땅 파서 장사하나?”라고 하는데 베네수엘라의 석유 자본은 실제로 그냥 땅 파서 장사하면 되는 자본 운동 단계였다. 차베스의 제헌의회 전술은 이처럼 단순한 모순 구조위에서 배출된 산물이다.

    반면 한국의 자본주의는 나름대로 복잡한 성장 과정을 거쳤다. 땅 파서 장사하는 낮은 단계의 자본운동이 아니라 일정하게 이 사회에 개량의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 ‘늙은 자본’ 상태이다.

    따라서 베네수엘라의 석유기업을 국유화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환영받을 일이지만 한국의 현대자동차를 국유화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불필요한 일이 된다. (우리는 기존의 혁명적 토대를 곧바로 상부구조 개편전략에 적용시켰던 베네수엘라의 ‘제헌의회 전술’보다는 오히려 어떻게 기업의 사회적 성격을 높여나갈 수 있는가라는 측면에 주목해보아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남미 모델 따라잡기 과정에서 우리가 너무 현실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말은 ‘제헌’인데 실제 내용은 ‘개헌’이라면, 어린애가 아빠 옷을 입은 것처럼 오히려 거동하는데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한국 좌파의 독자적인 변혁 모델을 작성하기 위해 동분서주 노력하는 바에 대해 깎아내릴 생각은 없지만 최대 강령은 ‘혁명으로 제헌의회’인데 그에 따른 구체적인 실천 강령은 카드수수료 인하운동’ 이라면 얼핏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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