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론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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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7월 14일 09: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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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업 하면 경기를 하던 언론의 모습이 약간 달라진 듯 보인다. 고객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은데, 매장을 점거하고 장기 투쟁하는 노조원을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잘 들리지 않는다.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보는 여론의 모습이 과거 노조 파업을 향한 그것과는 달라보인다. 보수 언론도 일반 시민들의 생각도 그런 것 같다.

    지난 13일 CBS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 파업 사태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의견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국민의 31.9%가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했으며 사업주에 있다는 책임도 24.4%에 달했다. 반면에 노동조합에 책임이 있다는 답변은 23.2%에 그쳤다.

    이는 보통 민주노총내 사업장이 파업을 벌였을 때 일방적으로 노조에 책임을 돌리는 양태에서 크게 벗어난 것으로, 정부와 보수 정당 그리고 보수 언론이 연대해서 통과시킨 비정규직 관련법의 실체에 대해 국민들의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조사로 보인다. 

    네이버, 다음과 같은 포털사이트의 여론 동향도 홈에버 투쟁에 대해 이해하거나 동조하고 있는 입장이다. 13일 현재 다음 아고라 토론방의 조회수 베스트 글은 “강남뉴코아 농성중인 사람입니다”란 글로 현재 농성중인 뉴코아 조합원의 글이다. 이 글은 추천 베스트에서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 글에 대해 댓글을 올리며 공감을 표하고 있다.

    이렇게 일반 국민들의 여론이 홈에버와 킴스클럽에서 장기 농성을 벌이는 비정규직들에 대해 호의적으로 보이자 언론들의 보도 형태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한겨레, 경향신문 등 그 동안 노동 문제에 대해 객관적이고 이해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던 언론들은 물론 심지어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언론도 ‘엄중 대처, 법대로 처벌’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아직은’ 꺼내들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과거 현대자동차 파업처럼 보도했다가는 독자에게 외면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수 언론들이 본능적으로 눈치 채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한 일간신문 노동담당 기자는 “이랜드 그룹이 지금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다. 이렇게 (이랜드 투쟁에 대해) 여론이 호의적이면 경찰도 함부로 공권력을 투입하기가 어려워 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중이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 이처럼 지지를 보내는 것은 근래 들어 매우 보기 힘든 모습이다.

    민주노총이 바로 이런 문제를 우려하면서, 관련 개악을 비판하고 재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했을 때 대부분 언론은 매우 비판적이었고, 일반 여론도 호의적인 편은 아니었다. 왜 그럴까.  

       
      ▲ 12일 새벽 이랜드 일반노조원들이 철야 점거를 하고 있는 서울 홈에버 상암점 입구가 봉쇄돼 있다.(사진=뉴시스)
     

    비정규노동센터 김성희 소장은 이와 과련 "원래 비정규직 투쟁은 일정 정도 지지를 받아왔다. 다만 보수언론과 정부는 민주노총과 비정규직을 분리하고 정규직 책임론으로 몰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이랜드 투쟁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랜드 사측이)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터질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지금 국민은 우려했던 일이 결국은 벌어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그 동안 비정규직의 ‘처절한’ 투쟁의 원인을 민주노총 정규직 노동자의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가던 보수언론과 정부가 이번만큼은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30대 한 시민은 “정부가 비정규직을 보호한다고 주장해왔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아서 헷갈린다”며 “비정규직들이 이렇게 여러 곳에서 ‘난리’를 피고 있는 걸 보면 비정규직들이 책임을 진다거나, 그들에게 잘못을 물을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문제가 정규직 노동자의 이기적인 태도 때문이 터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과 자본 ‘무자비’한 고용 행태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대중적으로 확인시킨 중요한 계기를 이번 이랜드 투쟁이 제공해준 셈이다.

    또 여론이 덜 비판적으로 가고 있는 것은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자주 직접 대면하는 ‘동네 아줌마’들이라는 점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상대적 친밀감과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이 우호적 여론 형성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얘기다.

    한 일간지 노동담당 기자는 “지금 누가 싸우고 있는가를 대중이 보고 있다. 대형 할인매점에서 물건 살 때마다 직접 보던 아줌마들이 데모를 하고 있는데 그 아줌마들이 저임금에 시달리고 해고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즉 진짜 ‘생존권’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매체 노동담당 기자는 “이랜드 투쟁에 대해 대중이 지지한다고 해서 민주노총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대중의 이런 마음을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론의 우호적 흐름에는 이랜드 그룹의 비도덕적인 행태도 한 몫 했다. 그 동안 이랜드 그룹은 기독교 선교기업의 이미지로 알려져 왔다. 구원, 성실, 선행, 사랑, 믿음 등 기독교의 좋은 이미지를 활용해 그룹을 확장해 왔다.

    그런데 이번 이랜드 투쟁을 통해 그 이미지에 가려진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기독교 회사이면서도 월 80만원에 비정규직을 ‘써먹다’가 여차하면 ‘자른다’는 것을 일반 사람들이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그룹 총수가 1년에 130억의 십일조를 내면서 비정규직을 이렇게 거리로 내몰고 있는 사실을 상식적 수준에서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당면 투쟁의 승리와 함께,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수많은 비정규직의 고용투쟁, 그리고 비정규직 일반의 문제를 풀기 위해, 제도적 법적 투쟁의 과제가 노조 진영 앞에 놓여 있다.

    전문가들은 이랜드 투쟁을 단순히 한 사업장의 투쟁을 지원하고 고용을 보장하는 차원을 벗어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조직’된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조합은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고용 위기와 차별을 받고 있는 모든 미조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직화 사업으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진숙경 박사(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는 “투쟁과 조직화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노총이 미조직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내야 한다. 전체 비정규직 싸움을 민주노총이 대변하겠다고 국민적으로 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비정규직 해고 국민신고센터’ 같은 것을 민주노총이 만들고 널리 홍보하면서 법률적으로 필요한 부분은 법률지원센터에서, 조직적인 투쟁이 필요하면 각 산별연맹이나 지역본부에서 지원해 나가면서 국민에게 다가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 박사는 또 “현재 민주노총 집행부가 대정부와 교섭과 협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행부라면 비정규직 문제 하나만이라도 확실하게 정부와 교섭하고 이슈화시키면서 국민들에게 알리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총 등 사용자 단체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먼저 여론화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 민주노총이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이번 이랜드 투쟁이 여론이 유리하다고 결코 쉽게 정리될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김성희 소장은 “그 동안 비정규직 투쟁은 지엽적인 부분에서는 때론 승리를 했다. 그러나 결국은 정부의 비정규직 전반의 문제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그것은 정부의 정책 기조를 바꾸는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TX 문제가 500일이 넘도록 풀리지 않는 이유 역시 공공부문의 외주화라는 정부의 정책기조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소장은 이어 “지금 이랜드 투쟁 역시 어떻게 보면 쉽게 정리 될 것 같지만 결코 만만히 보면 안된다”고 경고했다.

    단병호 의원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선 정부가 쉽지 않지만 비정규법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7년 7월 1일을 기점으로 이랜드 등 사적 영역은 물론 학교비정규직을 비롯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파업 500일이 넘도록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KTX 승무지부 비정규직 등 온갖 종류의 비정규직 문제가 노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핵심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민주노총은 물론 모든 노동계가 이번 이랜드 투쟁에서 변화된 국민의 정서를 활용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처우 개선으로 이어지게 할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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