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공화국 저작권보다 올바른 내용이 중요
        2007년 07월 11일 02: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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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은 전염되기 마련이다. 가끔 글을 쓰다 보면 독창적인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애를 먹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불현듯 ‘적절한 말’이 떠올라 스스로 감탄하며 미소를 짓곤 하지만, 나중에서야 그것이 두뇌 회로 속 어딘가에 원래 있었던 것임을, 즉 새로운 창조물이 아님을 깨닫고 괴로워할 때도 있다.

    ‘따라 하기’는 의식적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일 수도 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먼저 쓴 사람과 나중에 쓴 사람의 생각이 통해서였을 수도 있고, 나중에 쓰는 사람이 나쁜(혹은 비겁한?) 마음을 먹어서였을 수도 있다. 또는 ‘따라 하기’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이디어의 원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께름칙한 경우도 있다.

    말은 말의 뜻, 아이디어와 함께 전염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말은 그대로 전염되지만, 전염의 과정에서 아이디어는 변하기 일쑤다. 특히나 대선과 같이 정치권이 표현에 민감한 시기에는 더욱 그렇고, 종종 시빗거리도 된다.

    ‘따라 하기’의 유형과 따라 하기 이후의 사태 전개 방식은 다양하다. 예컨대 권영길 의원은, 이제는 정당 티를 내는 ‘미래창조연대’가 정당이기를 거부하던 바로 얼마 전의 이름인 ‘미래구상’을 자신의 정책 머리제목으로 사용한다. 미래창조연대는 굳이 ‘따라 하기’ 시비를 걸지 않는다. 아마도 권영길 의원의 그와 같은 행보가 반가웠을 테다.

       
      ▲ 지난 7월7일 광주에서 열린 대선에비후보 정책토론회 (사진=민주노동당) 
     

    반면에 노회찬 의원처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자신의 아이디어(말이 아닌)를 따라 한 것에 대해 “나를 따라 하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노회찬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의 ‘생계형 서민업종 카드수수료 인하’ 정책이 자신이 발의한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따라 한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불쾌해했다.

    또는 한국사회당처럼 노회찬 의원이 최근 자주 쓰는 ‘제7공화국 건설’ 주장에 대해서, 그것은 2006년 한국사회당 전당대회 때의 슬로건이었지만, “그런데 정작 누가 누구의 것을 리모델링했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저작권이 아니라 올바름과 적절함”이라고 보다 대범하게 대처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제7공화국은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 말이기에 ‘따라 하기’라고 굳이 말하기는 어렵다. 대신 한국사회당의 경우처럼, 어차피 같은 제7공화국이라는 말을 썼으니, 그 내용을 가지고 토론을 하자고 정공법을 펼치는 것이 더 현명할 수 있다.

    이 ‘끝장 토론’이란, 같은 말의 다른 두 의미(아이디어)가 단 하나의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이며, 곧 권력 투쟁이다. 예컨대 ‘자유’라는 말을 둘러 싼 계급 간의 오랜 투쟁이 있었으며, 한국에서는 ‘공화’라는 말을 둘러 싼, 구 ‘공화당’세력과, 새로운 ‘사회적 공화주의’ 세력의 싸움이 이제 시작되고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공화’라는 말 속에서 연상할 수 있는 한 가지가 무엇인지를 선택하기 위한 과정을 겪는 셈이다.

    ‘배제 없는 통합’이란 말을 둘러싼 시민권 쟁취 투쟁도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사회당의 사회적 공화주의 강령에서는 새로운 사회통합 방식으로서 ‘배제 없는 통합’이 주장되고 있다.

    여기서 ‘배제 없는 통합’이란 “국가가 모든 국민이 대등한 주권자로서 국가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사회적, 경제적 조건과 전제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현재 무엇보다도 복지급부의 확대를 통한 빈곤선 이상의 생활 보장, 제반 사회권의 보장, 모든 국민들이 능동적 시민이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공적 교육체계의 확립”을 의미한다.

    최초에 등장한 ‘배제 없는 통합’이란, ‘배제 있는 통합’ 이후의 시대 구성, 새로운 사회 체제 구성을 위한 담론이다.

    의미도 다르고, 격도 다른 ‘배제 없는 통합’이란 말이 다른 곳에서, 다른 주체에 의해서 쓰이기도 한다. 윤호중 열린우리당 대변인이 10일 국회 브리핑에서 입 밖에 낸, “열린우리당은 어떠한 기득권도 주장하지 않고, 어떠한 주도권도 행사하지 않으며, 배제 없는 대통합을 추진한다”고 했을 때의 그 ‘배제 없는 통합’이 그렇다.

    여기서 현재 배제했거나 배제된 대상, 통합의 주체로 호명된 대상은 사회적 공화주의에서의 ‘모든 국민’이 아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계승 발전시키려는 모든 세력들”이다. 통합민주당이거나 혹은 그 부류의 정치집단이다.

    열린우리당이 ‘배제 없는 통합’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한두 번 들을 때는 쓴웃음을 짓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나 ‘배제 없는 통합’이란 말이 국민에게 혼란을 자아내는 상황에까지 이른다면, 언어 세계 안팎에서의 격렬한 권력투쟁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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