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 눈감는 중도-시민사회 세력에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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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7월 09일 10: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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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FTA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비아냥이 아니다. 마음으로 이 사회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한미 FTA는 유령인 듯하다. 한미 FTA가 이른바 ‘중도개혁세력’, 또는 ‘민주화세력’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 정태인 (경제평론가)
     

    그러나 체결을 한 지금, 한미 FTA는 이미 유령이 아니라 실재이다. 협정문은 한미 FTA가 앞으로 우리의 사회경제를 주조할 기본 틀이 되리라는 증거이다. 어쩌면 100년이 갈지도 모르는 엄청난 대사건이다.

    과장이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 치하 36년이 끝난지 무려 60년이 더 지났어도 일제 잔재는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고(과거사 정리위의 고전을 보라), 박정희 시대가 종언을 고한지 30년 가까워 오는 데도 그는 혈육으로, 또 환상으로 여전히 강고하다.

    ‘선진통상국가론’의 원조가 박정희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자각한 유시민의 고백처럼 이를 잘 대변하는 일이 또 있을까.(쇄국 대 개방이라는 기이하도록 단순한 구도에 이 영특한 정치인이 빠져 있는 것이야말로 경이로운 일이다)

    한미 FTA가 국회의 비준동의를 거치면 법률이 된다. 훗날 이 한심한 ‘초헌법적 협정’을 폐기한다 하더라도 ‘한미 FTA 시대’의 후유증이 일제시대나 유신시대의 그것만 못할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그런데도 정치권, 나아가서 이른바 시민사회세력까지도 이 냉엄한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려고 한다. 두말할 나위없이 대선 때문이다. 한미 FTA는 최대 이슈가 되는 순간 어느 쪽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피하고 싶은 폭탄이 되었다.

    한나라당과 ‘중도개혁세력’의 대연정

    한나라당 처지에서 한미 FTA는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우’가 될 수 있다. 줄잡아 국민의 절반이 반대하는 정책이 최대 이슈가 되는 경우 10년간 절치부심한 ‘정권 교체’는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자 몸조심이 상책이다.

    ‘중도’에 목을 매다는 정치권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난 10년간 달콤한 집권의 비결은 ‘반 한나라당 연합전선’이었다. 한나라당의 냉전적 수구의 이미지는 여전히 남북 문제에 남아 있으니 아직도 의미가 있다. 한나라당 정권이 한미 FTA를 추진했다면 이 전선은 더욱 유효했을 것이다.

    문제는 참여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했다는 점에 있다. 한나라당으로선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었’고 ‘민주화세력’의 후예들은 혼란에 빠졌다. 나아가서 한미 FTA가 21세기 들어서 최고조에 달한(그러나 또한 그러한 사실 자체가 급격한 몰락을 예고하는 것이다) 시장만능론의 영구화라는 점 역시 대안이 만만치 않으니 이들에게 한미 FTA는 ‘전선’을 흐트러뜨리는 금기의 낱말이 되었다.

    한미 FTA에 반대하여 ‘목숨을 건 단식’을 한 김근태가, 한나라당 후보들보다 더 명료하게 한미 FTA를 찬성하는 손학규를 ‘대통합’의 울 안으로 불러 들인 것은 ‘중도개혁’의 고민, 또는 정신 분열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민주화 투사들의 이 ‘소연정’이 동시에 한미 FTA를 둘러싼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니 이보다 더한 코미디가 또 있을까.

    한나라당과 대통합세력의 ‘대연정’이 다다른 결론은 ‘차기 국회에서 처리하자’는 방침이다. 원칙적으로 찬성하건, 반대하건, ‘꼼꼼하게 검토한 뒤’ 결론을 내리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미 FTA에 대한 판단 유보다. 이 방침은 범여권에서 가장 강하게 한미 FTA에 반대하는 천정배는 물론 시민사회의 정치세력화를 들고 나온 ‘미래구상’이 도달한 결론이기도 하다.

    미래구상이 시민사회의 대표인가

    미래구상은 이렇게 시작됐다. “첫째, 구조화된 사회적 양극화와 한미FTA 등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사회적 모순 구조에서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 양극화와 한미FTA는 과거 독재에 항거했던 민주연합을 승계하는 새로운 사회연합의 형성을 예고하는 조건으로서, 이 전선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사회적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정대화, 오마이뉴스, 2006.9)

    이것은 지극히 올바른 인식이다. ‘새로운 사회연합’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확히 그 모순점에 서야 하며 이것이 다른 정치권과의 연대의 가장 중요한 원칙일 터이다. 정대화의 인식은 미래구상의 발족 취지문에도 반영돼 있다. "굴욕적인 한미 FTA는 국민의 생존권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미래구상 준비위원회 발족 취지문, 2007.1)

    불과 6개월이 지난 뒤, 미래구상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의 차기 국회 상정”(2007.7)을 중요 정책으로 내 걸었다. 놀랍게도 ‘대연정’의 결론에 똑같이 도달한 것이다. 내친 김에 몇 발자국 더 나아간다.

    “진보라고 해서 한미 FTA를 무조건 반대하고 보수라고 해서 찬성하는 사고가 가장 위험하다… (환경 이슈의 중요성을 들어) 과거의 진보나 보수와는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FTA 반대한다고 해서 진보가 될 수 있나. 그런 것은 저차원적인 진보다”(최열, 프레시안, 2007.7)

    최열은 ‘새로운 사회적 모순구조’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것도, 국민의 생존권과 안전을 위협하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도 ‘저차원적인 진보’라고 말하고 있다. 나도 환경문제가 고차원적(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이라거나, 또는 장기적으로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바로 그 환경문제와, 한미 FTA에 대한 모호한 태도가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한미 FTA가 환경정책에 미칠 영향을 진지하게 들여다 봤다면 환경운동이야말로 한미 FTA 반대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정상이다.

    역사는 이들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물론 그들의 고민을 모르지 않는다. 국민들에게 잘 부각되지 않는 한미 FTA 때문에, 시장 만능과 반통일, 반평화로 일로매진할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넘겨 줘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도 느껴진다. 이제 무엇을 위한 연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졸속성에 대한 비판’은 누구나 받아들이는 명제이니 여기까지만 후퇴하자는 합의가 이뤄진다.

    과연 한미 FTA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서 정권을 잡을 수는 있을까? 또 그렇게 해서 정권을 잡으면 한미 FTA는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잡을 수도 없으며 잡아도 결국 지배계급 내에 압도적인 찬성론자들의 뜻대로 갈 것이 뻔하다.

    새로운 대연정 구상이 속살거릴 것이다. “이 어마어마한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과학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일단 시행해 보면서 부작용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정 안 되면 그 때 폐기해도 늦지 않은 것 아닌가?”

    다시 반복하지만 한미 FTA에 관한 한, 한나라당과 대통합론자들은 전혀 다를 바 없다. 이렇게 큰 역사적 사건을 해석할 능력도, 느낄만한 절박함도 없다. 일제 하의 개량주의자(예컨대 이광수)나 유신에 참여한 지식인들(예컨대 박종홍)과 무엇이 다른가?

    아무리 급해도 낭떠러지가 지름길이 될 수는 없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그 때는 지금과 또 다르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사회경제는 그 틀에 맞춰 변해 나간다. 부작용이 본격화하면 그 때는 이미 너무 늦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면 설령 죽지 않는다 해도 다시 길을 찾아 절벽을 기어 올라야 한다.

    대선과 총선까지 아직 시간은 많다. 쓸데 없는 정치공학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문제이다. 진보의 정의를 어떻게 내린다 해도, 또한 그 결과를 어떻게 예측한다 해도 한미 FTA는 일단 저지해야 한다. 진보 또는 개혁세력이라면 어떤 통합, 어떤 연대를 말하든 한미 FTA 반대라는 원칙을 앞세워 찬성론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시장만능론을 대체할 사회경제 정책을 요구받을 것이다. 연대의 폭을 넓힐 지점은 이 대안의 구체성과 현실성에 있는 것이지 결코 원칙, 또는 대전제의 묵살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미 FTA는 우리 국민 대다수,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까지 엄청난 파멸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민중은 스스로에게 닥친 위험을 지식인보다 훨씬 더 잘 느낄 수 밖에 없다. 덧씌워진 환상을 깨뜨려서 맨 눈으로 한미 FTA의 진실을 직시하도록 하는 것이 대선 승리의 길이다.

    한미 FTA 저지는 연합 전선의 방해물이 아니라 관건인 것이다. 터무니 없는 환상, 진실의 은폐 속에서 오히려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 작금의 ‘대연정’이 과연 역사에는 어떻게 기록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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