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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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7월 06일 10: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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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6일 새벽이고, 여기는 서울 상암동 홈에버 농성장입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대한민국 국가대표와 우즈벡과의 에이메치가 열렸던 곳이기도 하죠. 혹시 <레디앙> 독자분들이나 민주노동당 당원들께서 텔레비전을 시청하시다가, 축구경기가 열리는 바로 그곳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농성하는 우리를 떠올리셨을지 모르겠네요.

    두 골이나 넣었다죠. 그 함성을 우린 듣지 못했습니다.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리 대표팀이 골을 넣었을 때, 내지른 그 함성을 같은 월드컵 경기장에 있는 우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 홈에버 상암점, 비정규직 대량해고에 따른 점거 농성 (사진=뉴시스)
     

    3만 축구팬 함성보다 우리 목소리가 더 컸습니다

    “아니 그 시간에 뭘 했길래 같은 경기장에 있는데 듣질 못했냐”고 당연히 물으셔야죠. 하하, 사실은 우리도 함성을 지르고 있었어요. 우리 함성 소리가 너무 커서 정말로 축구경기에서 골을 넣었어도 몰랐다니까요. 그건 조금 있다가 말씀드리도록 하죠.

    지금은 새벽 5시. 모두가 고단한 농성장의 일과를 마치고 잠이 든 시각입니다. 이제 곧 있으면 한 분 두 분 일어나서 또 하루를 준비할 것입니다. 저도 무척 피곤하네요. 어제 하루는 민주노동당 용산구위원회 김종민 위원장이 철야를 한다고 해서, 제가 참석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지금 보니 서대문구위원회 정현정 위원장은 얼굴부터 발끝까지 푸욱 옷을 뒤짚어 쓰고 자고 있군요. 당원들이 여기저기서 박스를 깔고 자고 있습니다. "출근만은 여기서 해야 한다"는 당원도 있고, "전 아침에 안 씻고 출근해도 회사에서 뭐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부담 없이 농성장에서 자도 된’는 당원도 있습니다.

    우유배달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지금은 보험 영업을 하는 젊은 당원은 양복을 너무 빼입고 야밤에 왔다가 조합원들에게 형사로 오인되는 해프닝도 있었죠. "다음엔 양복 대신 꼭 운동복 입고 오겠다"고 사과 아닌 사과를 했죠. 명색이 2006년 마포구위원회 모범 당원 상을 받았던 최고의 활동가인데, 농성장에 와서 스타일 구겨버렸습니다.

    형사로 오해받은 양복 입은 민노당원

    이랜드노조의 임원들은 아주 골아 떨어졌네요. 김경욱 위원장을 포함해, 이남신 부석부위원장이 옆에서 자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아무도 이들을 깨울 수는 없어 보입니다.

    조합원들도 불편한 잠자리일 텐데 잘도 주무십니다. 대부분 아주머니인 비정규 조합원들은 절대 다수가 농성이라곤 처음 해보시는 분들입니다. 편지쓰기 시간에 보니까, 남편 생각에 남편이 밥 잘 챙겨먹는지 걱정하는 분들 많았고, 그보다 백 배 더 아들 딸 자식들 걱정하느라, 자식들에게 밥 한술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가득 표현하더군요.

    그걸 보고 가슴에서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왜냐면, 전 이 비정규 조합원들이 여기서 어떻게 일하는지 알고 있거든요. 남편보다, 자식들보다, 하루하루가 훨씬 더 힘겨웠을텐데, 집에서는 늘 남편, 자식들 밥 챙겨주면서 가사노동도 전담했을 거 같아서죠. 어찌보면 남편 월급 가지고는 자식들 공부시키기 어려워서 학원비라도 벌어보겠다고 나오신 분들 많은데….

    농성장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우리들 동지. 무슨 꿈을 꾸면서 자는지 궁금한 새벽입니다. 기상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지금, 만약 나쁜 꿈을 꾸는 분들이 있다면 극적 반전을 통해 좋은 꿈으로 획 바꿔 꾸시길 기원해 봅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인 7월5일은 참 대단했습니다. 뭐가 대단했나구요. 아, 민주노동당 당원 입장에서요. 어제 기분이 무척 좋았거든요. 조합원들과 조금 더 당이 다가선 거 같아서 기분 좋았어요.

    어제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얼마 전에 문성현 대표께서 조합원들에게 힘을 주는 방문을 했다는 걸 들었어요. 어제는 권영길 의원부터 시작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내가 만든 법이 비정규 노동자 보호할 줄 알았는데, 여기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구나, 하면서 여러분들에게 사죄해야 되는거 아닙니까.” 이렇게 말씀하셨죠.

    조합원들이 악에 바친 동의를 하더군요. “노동부 장관이 후배라고 하던데, 뭐하고 좀 해서, 아니 의원님이 만나서 혼내주고, 빨리 여기 해결하라고 할 의향이 없나요.” “오늘 홈에버 목동점에도 함께 가실 수 없나요. 제발 꼭 함께 가주세요.” 조합원들의 요구도 많았죠.

       
      ▲ 홈에버 월드컵점, 농성 6일째. 농성장을 찾은 단병호 의원 (사진=민주노동당 서울시당)  
     

    한 시간 뒤에는 단병호 의원이 왔어요. 이랜드 노조 김경욱 위원장이 진짜 노동자 단병호 의원이 오셨다고 소개를 하니, 조합원들이 들썩들썩 합니다.

    “단병호 의원이 노동운동 하시느라 감옥 들락거리고 가정도 잘 돌보지 못하셨을텐데, 작년에 따님이 사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조합원들의 자기 자녀가 합격한 거처럼 “와~~~”하는 환호성을 질렀지요.

    “조합원 여러분들도 농성하느라 자녀들 걱정 많이 될 텐데, 진짜 노동운동 열심히 하면 자식도 잘될 겁니다.” 사회자가 조금은 웃자고 하는 소리였지만, 그래도 조합원들은 집에 있는 자녀들이 생각났던지 더 큰 환호성을 질렀고, 단병호 의원은 쑥스러운 듯, 웃기만 했죠.

    단병호 "제 아내도 여러분들처럼 일했습니다"

    “제 아내가 작은 슈퍼에서 여러분들처럼 일했습니다. 이건 저의 일이기도 합니다. 반드시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이지 조합원들의 환호성이 끊이질 않았답니다. “국정감사 때 이랜드 박성수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해서 혼내주세요.”

    단병호 의원이 말합니다. “그렇게 할 것입니다. 증인 채택 요청을 할 것이고, 받아들여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고, 증인으로 나오게 되면 여러분들에게 했던 걸 조목조목 국민들 앞에서 짚어 내겠습니다.”

    상상이 가시죠. 조합원들도 자길 이 거리로 내몬 이랜드 회장이 단병호 의원에게 질타를 당하는 모습을 상상했던지 울분에 찬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단병호 의원이 다녀간 뒤, 또 두시간 뒤에는 노회찬 의원이 찾아왔습니다. 특별강연을 하기 위해서 오셨죠.(민주노동당 마포, 서대문, 은평지역위원회에서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세 후보를 초청 토론을 진행 중에 있다. 지난 주에는 권 후보가 초청됐으며 이날은 노 후보 순서였는데 특강으로 대체했다. 다음 주엔 심 후보 차례다-편집자)  

    “먼저 민주노동당이 사과를 드립니다. 우리가 막았어야 할 법이었는데 막질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서 농성을 하시게 된 것에는 민주노동당의 책임도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강연이 시작됐습니다.

    한시간반 동안의 강연, 모두가 진지했고, 때로는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바로 그 시각 같은 건물에서는 국가대표 평가전이 있었던 거죠. 노회찬 의원은 해트 트릭을 넘어서 한 열골은 넣은 거 같아요. 조목조목 이랜드 자본을 질타했고, 조합원들의 눈높이에서 비정규 문제, 외국의 사례, 교육문제를 전달했죠.

    당원들 무척 자랑스러워하다

    함께 있던 당원들도 무척 자랑스러워 했답니다. 강연이 끝나고 마포, 서대문, 은평, 용산 당원이 노회찬 의원과 함께 잠시 모였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이런거 하려고 만든 정당 아닙니까. 당원동지들이 지금 함께 농성하고 있는 이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맞습니다. 저도 노회찬 의원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독자여러분께 죄송한데 마포구위원회 당원 자랑도 좀 할께요. 이틀 동안 모금을 했어요. 5일에 전달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급하게 모금을 한거죠. 서대문과 은평, 용산구위원회도 모금을 진행하고 있는데 마포구위원회만 먼저 전달을 했어요.

    바로 이곳 농성장에서 이틀 전에 운영위원회를 열어서 그랬는지, 분회장들이 당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모금을 진행했는데, 정확히 130만원을 1차로 모금했습니다. 마포구위원회 당원인 홍세화 선생님은 분회장이 전화를 거니까 바로 10만원을 입금시켜주셨더군요.

    “당원들과 철야농성을 함께 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며 돈이라도 내겠다고 했습니다. 짧은 이틀만에 130만원을 그래서 걷었네요. 모금을 못한 당원들은 이번 주까지 추가로 모금을 하기로 했어요.” 부위원장이 이랜드 홍윤경 사무국장에게 이렇게 얘길 하니, 홍윤경 사무국장 눈에 찰랑찰랑 눈물이 맺혔습니다. 아, 이럴 때는 정말 당원들 덕에 위원장 할 맛 납니다.

    노조 사무국장 눈물 흘리다

    이번주 일요일이 고비라죠. 민주노총 총연맹에서 전국에 있는 이랜드 사업장 중 몇 곳을 점거하기로 했다죠. 민주노동당 각 지역조직도 함께 할 거 라고 들었습니다. 비정규 악법이 시행된 이후 가장 상징적인 사업장이 된 이랜드. 조금만 더 힘을 실어주실 부탁드립니다.

    마포가 속한 서울 서부민중연대에서는 8일 점심을 쏘기로 했어요. 서부민중연대 소속 단체인 노점상 연합회 회원들과 민주노총 서부지구협, 당이 주축이 되어서 준비하기로 했죠. 좀 배아프시다고요. 너무 잘난 체 하는 거 아니냐고요. 죄송합니다. 사실 새벽에 글 쓰니 정신이 오락가락해서요.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짧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 비정규 노동자 투쟁을 위해 나서주세요. 각 지역별로 이랜드 사업장 규탄 투쟁이 전개될 예정인데, 지역위원회 깃발과 함께 펄럭여주세요.

    이 곳 농성장에서 곤히 잠들고 계신 비정규 아주머니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주시기 위해 거리로 나와 주세요. 이런 거 하려고 만든 당, 맞는 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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