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창은 패배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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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7월 05일 03: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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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말 스포츠 중계하듯이 실시간으로 한미FTA 마무리 협상을 생중계하던 언론이 지난 주부터는 비슷한 집중의 자세로 평창동계올림픽에 올인하더니,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소치가 선정된 것을 오늘 아침 ‘국가적 비보’로 전했다.

    온 국민은 마치 가족을 잃기라도 한 듯, 통곡하는 평창의 할머니, 어린이들을 TV 화면으로 보아야 했다. 과연 이들은 누구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걸까?

    광주학살 직후, 프로야구 개막과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등을 연달아 개최한 전두환 정권이 이를 국민들의 탈정치화, 선진국 도약의 환상 유포에 성공적으로 활용한 이후, 개발주의와 결부된 국체스포츠대회는 국가권력자는 물론 지자체장들이 가장 손쉽게 이용하는 단골 한탕 메뉴가 되었다.

    2014년 평창동계올림픽이 5조원의 부가가치 유발효과를 가져오고 14만 명에 이르는 고용증대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정부는 선전했지만 이를 위한 기간시설 설비에만 국고로 4조2천억원이 투여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설혹 고용이 그만큼 증대되더라도 일시적인 고용일 뿐이며, 발생할지도 모르는 부가가치는 해봐야 아는 거지만, 강원도의 가장 큰 재산인 수려하고 청정한 자연의 파괴는 피할 수 없는 기정 사실이다.

    정부는 국제 스포츠경기만 하면 관광객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개발은 절로될 것처럼 선전해왔만 2003년 유니버시아드를 치른 대구의 관광객은 오히려 2년 전보다 절반규모로 줄었고, 온나라가 들썩였던 2002 월드컵때도 외국인 관광객은 예년의 20~30%에 불과했다.

    4강 신화에 온국토가 들썩거렸으나, 남은 것은 곳곳에 지어져 유지비만 수십억원에 달하는 너무 큰 운동장들 뿐이었다. 2002년 아시안게임을 치른 부산은 이후 시설유지에만 매년 30~40억원을 쏟아붓다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경륜을 시작하였으나, 이 또한 지금까지 600억원의 경비를 삼켜버린 애물단지에 불과하다.

    동계올림픽은 구조적으로 반생태적일 수 밖에 없다. 선진국에서는 동계올림픽 유치전이 진행되면 예외없이 환경단체의 극렬한 반대가 있어왔다. 극성스런 정부와 언론의 선동 그리고 이에 희생된 평창 주민들의 일치단결된 지역정서에 어떤 환경단체들도 노골적으로 평창올림픽 반대를 표명하지 못해왔다.

       
      ▲ 평창 시가지를 감돌아 도도히 흘러가는 평창강.
     

    연초부터 인천 아시안게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 세계 4대 스포츠 이벤트를 모두 개최하는 다섯번째 국가가 된다고 언론은 설레발을 쳤다. 국제 스포츠경기가 우리의 삶을 들쑤셔 놓고 허무하게 사라지기를 벌써 십여 차례. 아직도 이런 얄팍한 후진국적 선동이 먹힌다는 사실이 통탄스럴 뿐이다.

    2003년 유니버시아드를 치렀고 또다시 세계육상경기대회를 유치하는 쾌거(?)를 달성한 , 인구 250만의 대구에 공공도서관은 여전히 13개 뿐이며, 2004년엔 4살짜리 아이가 굶어죽었다. 아무리 국제 체육경기가 많이 치러져도 그것이 우리 삶의 질을 개선되거나 쾌적하게 만드는 것과는 무관하다.

    더 이상 국가주의와 개발지상주의를 팔아 주민을 허황된 수치로 선동하는 정치인들과 지자체장들의 간계에 당신들의 열정을 빼앗기지 마시라. 그들의 임기는 4년이지만 우리와 우리 자손들의 삶은 훨씬 더 길고 가치있는 것이 아닌가.

    무주리조트가 전북 무주에 만들어지고 나서 무주지역의 인구는 오히려 감소했다. 이 곳에 대규모 골프장을 건설하려는 계획이 관광레저 기업도시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자, 성난 주민 들은 덕유산에서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느라 처음으로 리프트를 타보았다. 자연은 파괴되고 투기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언제나 발빠른 외지인들. 덕유산에서 산나물 캐며 살아가던 주민들은 생계수단을 잃고, 내 텃밭까지 개발에 내주어야 할 형편이 되었다.

    평창 주민들이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이 올림픽 개최 도시라는 허황된 자부심이 아니라, 더 편안하고 행복하고 유택한 삶이었다면, 동계올림픽을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쏟아부으려 했던 그 예산을 바로 주민들의 문화복지 향상에 쓸수 있도록 매진하면 될 일이다.

    잠깐 다녀가는 전세계의 손님들을 위해 상다리가 휘도록 산과 들을 해쳐가며 잔치를 벌인 후, 그 심란한 뒤치닥거리로 수십년을 고생해야 하는 끔찍한 난리를 당신들은 다행스럽게도 피해가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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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민주노동당의 ‘정책논평’ 형식으로 발표된 내용을 전재한 것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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