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들 감옥살이를 좋아하랴마는"
        2007년 06월 28일 09: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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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옥살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감옥이 훈장도 아니고, 아무리 정당한 투쟁이라 해도 보고싶은 가족들과 헤어지는 것을 기꺼워할 노동자는 아무도 없다. 더구나 쉰 나이에 약해진 몸으로 ‘빵살이’를 한다고 생각하면 사실 끔찍한 일이다.

    정부가 금속노조의 한미FTA 저지 파업에 대해 ‘무관용 원칙’과 ‘사전 공권력 투입’을 밝히고, 재벌들의 모임인 경총이 금속노조가 파업에 들어가기도 전에 노조 임원들을 고발하더니 경찰은 문자메세지와 퀵서비스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소환장을 보내왔다.

    노무현 정부는 역대 대통령이 하지 않았던 일을 골라하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서슬퍼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김영삼 시절인 96∼97 총파업 때도 정권은 노동조합 임원과 지도부 전원에게 소환장을 보내는 ‘황당한’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경찰은 정갑득 위원장을 비롯해 임원 9명 전원과 14개 지역지부장 등 23명에게 출두요구서를 세 차례나 보냈고, 5개 기업지부장도 곧 소환장을 보낼 예정이다. "책임자는 물론 배후세력까지 색출하겠다"고 했으니 파업에 들어간 160개 지회장 모두를 처벌할 심산인지도 모르겠다.

       
    ▲ 한미FTA 저지를 위해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사무실 모습
     

    집에 인사하고 짐 싸들고 사무실에 온 임원들

    경찰의 체포영장 발부가 임박해지자 금속노조 9명의 임원들은 26일 저녁 집에 들어가 가족들에게 인사하고, 옷보따리를 한 짐 싸들고 사무실로 나왔다. 그렇다고 사무실에만 갇혀 있을 수는 없다. 체포영장이 떨어지더라도 현장에 내려가 조합원들을 만나고 집회에도 가야 한다.

    금속노조는 25일 밤 11시 긴급 공문을 보내 "노동자들의 고용, 생존권을 위한 파업 투쟁에 임원 및 지부장들에 대한 소환장 발부는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었던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전면 도발"이라며 경찰 소환조사에 불응하고, 체포영장이 발부될 경우 안정적인 사업장에 거점을 마련해 농성에 돌입하라고 했다.

    정갑득 위원장(49)은 오뉴월 감기에 걸려 3주째 기침을 하며 약봉지를 달고 지내고 있다. 얘기하던 중에도 연신 기침을 해 댄다. 노무현 정권이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지도부를 구속한다면 역시 1순위는 정 위원장이다.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봐요.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삶 자체가 그런 것인데…"

    그래, 한두번이 아니다. 그는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으로 1년, 임단협 투쟁으로 1년 6개월, 2001년 자동차 해외매각 반대투쟁으로 4개월 등 총 3번에 걸쳐 2년간 옥살이를 했다. 이번에 가면 ‘전과 4범’이다.

    어디 정 위원장 뿐이랴. 박준석 부위원장도 4번이나 감옥에 다녀왔다. 임원들이나 지부장들 대부분이 20년 노동운동 하면서 최소한 한 두 번씩 감옥에 다녀왔다. 정혜경 여성부위원장도 시그네틱스 투쟁으로 6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

    금속노조의 살림을 챙기는 역할을 하는 최용규 사무처장도 소환장을 받았다. 사무처장까지 소환장을 날릴 만큼 금속노조 파업이 그렇게 위협적인 걸까?

    27일 금속노조 인천지부 윤화심 사무국장은 "정말 28명의 지도부 전원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할 것 같냐?"고 물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다면 지부장을 어느 사업장으로 ‘피신’시켜야 할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는 전체 조합원이 파업에 들어가는 28일 중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외협력실의 한 관계자는 "경찰을 통해 확인해보니까 체포영장 발부가 확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27일 밤에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사실 금속노조의 파업은 12시간밖에 안 된다. 그것도 시한부 파업이다. 경제를 망치는 것도 아니고, 회사의 생산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수위도 아니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특근으로 금세 때울 수 있는 수준이다. 근데 왜 노무현 정권은 금속노조를 향해 정면으로 칼을 빼들었을까?

    노무현 정권이 강경탄압하는 이유

    지난 4월 2일 한미FTA 협정이 체결된 이후 반대운동은 급격하게 사그러들었고, 거꾸로 한미FTA 찬성여론은 높아만 갔다.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자동차와 섬유에서 엄청난 성과를 남겼다며 난리를 쳤다. 협정문이 공개되고 속속 협정의 독소조항들이 드러났지만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의 귀엔 잘 들어오지 않았다.

    대세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바로 그 시점에 금속노조가, 그것도 최대 수혜를 받았다는 자동차산업의 노동자들이 ‘한미FTA 반대투쟁’에 나선 것이었다. 유일한 업적으로 한미FTA를 치장하려고 했는데 금속노동자들이 독약이 들었다며 밥상을 엎어버리려고 했으니 얼마나 괘씸했을까?

    거기에 15만 금속산별노조를 초기에 제압해야 한다는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한겨레 홍세화 기획위원은 "산별노조가 출범하고 첫 번째로 한미FTA를 반대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투쟁에 나섰기 때문에 정부와 자본, 수구언론 등 모든 기득권 세력이 필사적으로 이를 막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갑득 위원장도 "15만 금속노조의 첫 번째 투쟁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금속노조의 위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고, 이는 한국사회의 힘의 역관계까지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5만 산별노조의 첫 싸움, 그래서 기득권 세력 모두가 달라붙은 것이다.

    "이미 싸움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미 금속노조의 투쟁은 성과를 내고 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한미FTA가 국민적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묻지마 타결’을 꿈꾸었던 정부에게 자동차와 섬유가 수혜산업인가 아닌가라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파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여야 국회의원들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금속노조 파업에 대한 지지를 밝히고 있다.

    정갑득 위원장은 "금속노조의 파업으로 한미FTA를 타결하기 전에 현장에서 땀흘려 일하는 노동자들과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며 "이를 통해서 전 국민이 FTA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토론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조직 내적으로도 금속노조의 파업은 ‘저항’의 불씨를 만든 투쟁이 되고 있다. 그동안 침묵했던 민주노총의 많은 조합원들이 금속노조의 선도적인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고 있고,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지도부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에 대해 정면으로 맞설 태세를 갖추고 있다.

    "진짜 힘들고 어려운 거 알아요. 그렇지만 주춤거리거나 다르게 해서 극복할 방법이 없습니다. 일부 잘못된 집단과 회사가 산별노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확대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20년 기업별노조를 통해 고용문제, 공장의 해외이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산별노조로 전환했잖아요.

    그 첫 번째 투쟁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현장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돌파할 과제지, 타협할 사항은 아닙니다. 힘을 내 돌파해봅시다." 정갑득 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늘 "결정되기 전에는 신중해야 하지만 결정한 후에는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당당히 싸워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역사 교과서에 자랑스럽게 기록될 투쟁"

    28일 금속노조는 10만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장갑을 벗고, 기계를 멈추고, 공장을 세우고 거리로 나온다. "노동자 민중의 재앙 한미FTA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농민과 도시빈민 등 민중들의 손을 잡고 싸운다. 한미FTA 협정문 체결을 하루 앞둔 29일에는 서울에서 수만명이 참가하는 위력적인 투쟁을 벌인다.

    27일 밤 10시, 정갑득 위원장이 샤워를 하고 들어왔다. 박근태 부위원장을 비롯한 부위원장들도 컴퓨터 앞에서 금속노조 기사를 검색하고 있다. 유일한 여성인 정혜경 부위원장은 배낭을 들고 여성숙소로 올라갔다. 그나마 여성휴게실이 있어서 다행이다. 남자 부위원장들은 오늘부터 지독하기로 유명한 ‘영등포 모기’에 뜯기며 생활해야 한다.

    출두요구서가 전보로 집에 날아와 온 가족이 이 사실을 알게 된 우병국 부위원장은 26일 집에 들어가 아내와 대학 다니는 아들에게 "당분간 못 들어올 것이고 연락도 안 될 거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박준석 부위원장은 "우리 후세들이 학교에서 배우게 될 역사에서 87년 민주항쟁처럼 오늘 우리의 투쟁이 자랑스럽게 기록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정혜경 부위원장도 "나한테 무슨 탄압이 가해져도 조합원들이 뒤에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다"며 "자본과 정권. 언론이 20년 노동운동 사에서 유례없는 공세를 퍼붓고 있는데 현장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사수대를 편성해 지도부에 대한 침탈을 막을 준비를 하고 있다. 밤 12시가 넘어가자 사람들은 씻고 잘 채비를 한다. 금속노조 사무실은 역사의 중심에서 조용히 불타오르고 있다.

    금속노조를 지지하는 한 단체는 이번 파업을 ‘아름다운 저항’이라고 불렀다. 아름다운 저항은 역사에 기록된다. 금속노조 15만 조합원들의 투쟁을 이후 역사책에서는 어떻게 기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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