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 마지막 수배자 윤한봉 선생 별세
        2007년 06월 27일 05: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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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광주민중항쟁의 ‘마지막 수배자’인 윤한봉 민족미래연구소장이 27일 오후 1시께 서울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서 5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윤 선생은 지병인 폐기종으로 수년간 치료를 받아오다 26일 폐이식 수술을 받은 후 한 때 상태가 호전됐으나 이날 새벽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끝내 운명했다.

    48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윤 선생은 70년대 민청학련 조작사건 등으로 3차례 투옥됐고, 5.18 직후 배후 주동자로 지목돼 전국에 수배되자 이듬해 4월 화물선 갑판 아래 숨어 35일간의 밀항 끝에 미국으로 도피했다. 지병인 폐기종도 당시 밀항과정에서 얻은 것이라고 선생의 지인은 전했다.

    93년 5월 수배가 풀려 귀국하기까지 12년의 망명 생활 동안 윤 선생은 민족학교와 재미한국청연연합을 결성하는 등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당시 선생은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않는다. 조국의 가난한 동포들과 감옥에서 고생하는 동지들을 생각해서 침대에서 자지 않는다. 도피 생활할 때처럼 허리띠를 풀고 자지 않는다.’는 생활원칙을 세웠으며, 이를 지켰다. 

    93년 귀국 후에도 선생은 5.18기념재단 설립과 들불야학 열사기념사업을 주도하는 등 운동의 일선을 떠나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이 유달리 강했던 선생은 광주항쟁의 박제화를 거부하고 항쟁의 정신을 오늘의 현실에 되살리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겼다고 한다.

    지난 2005년 어느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나 사회 경제적으로나 광주는 진보의 온상이고 고향이다. 그런데 그 광주가 진보성을 잃고 있다. 광주는 이제 민주화의 성지가 아니라 망지다. 통탄할 일이다""고 광주의 현재를 질타한 것도 5월의 항쟁정신과 대동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함이었다.

    선생의 빈소는 조선대병원 영안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30일(토요일) 오전이다.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소아 여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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