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쁜 시나리오로 나쁜 영화 찍는 노대통령
        2007년 06월 26일 11: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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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배우나 감독을 인터뷰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영화를 찍고 있을 때는 대부분 몇 주 또는 몇 달씩 연락이 되지 않는다. 한 유명 배우에게 한미FTA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 힘을 실어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연락을 취했는데 7월 초순까지는 어떤 연락도 안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를 찍고 있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감독들은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면 아예 연락두절이다. 5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도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어서 쉽사리 연락이 되지 않았다.

    금속노조의 한미FTA 반대 파업 첫날인 25일 저녁. 충남의 파업 현장을 돌아보고 아산에서 지부 간부들과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에 들어갔을 무렵, 감독과 연락이 닿았다. 저녁식사가 나왔지만 숟가락을 들 수가 없었다. 노트북을 꺼내 들고 핸드폰으로 전화인터뷰를 할 수밖에 없었다.

       
      ▲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 (자료사진=레디앙)
     

    그는 "이번 한미FTA 싸움은 마라톤처럼 오래오래 가는 싸움이다. 마라톤은 혼자서 뛰면 힘들지만 같이 뛰니까 끝까지 달릴 수 있는 운동"이라며 "한미FTA 반대투쟁도 오래오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면 막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작년에 영화계가 한창 힘을 모을 때 노동계에서는 왠지 아직 자기들의 문제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다"며 "약간 늦기 했지만 그래도 금속노조가 노동자의 이익만이 아닌 전체적이고 정치적인 것에 힘을 쏟는다는 것이 대단한 결단"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무엇보다 좋은 영화가 나오려면 좋은 시나리오가 있어야 하는데 한미FTA는 시나리오가 나쁘기 때문에 결코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다"며 "금속노조가 어렵지만 일어섰는데 진짜 서민들, 노동자들이 우리 역사에서 굉장히 소중한 한 페이지를 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인들 비롯해서 한미FTA에 문제의식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눈여겨보고 있고, 지지를 하고 있다"며 "만약에 힘이 필요할 경우 동참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쁜 시나리오로 좋지 않은 영화를 찍으려는 무리한 정부의 의지와 노무현이라는 신인감독의 과욕을 미래를 걱정하고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노동자 시민들이 단합해서 막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정윤철 감독과의 일문 일답

    – 지금 영화 준비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한미FTA 싸움은 마라톤처럼 오래오래 가는 싸움이라고 본다. 마라톤은 혼자서 뛰면 힘들지만 같이 뛰니까 끝까지 달릴 수 있는 운동이다. 여러 사람들과 같이 달리다보면 결승점에 골인하니까. 한미FTA 반대투쟁도 오래오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막아낼 수 있다. 그래야만 무엇보다 미래에 우리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지지 않을 것이다.

    –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와 한미FTA 반대운동을 선두에 서서 했었는데

    = 작년 1월에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문제를 가지고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탄 전도연 씨를 비롯해 모든 배우들과 영화인들이 거리에 나섰다. 당시 우리가 두들겨 맞았던 것도 밥그릇 싸움이라는 것이었다. 경제관료들은 외제차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운동을 하냐며 외제차나 먼저 타고 다지지 말라고 얘기했고 국민들이 질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운동의 정당성을 갖게 되었다. 많은 분들에게 한미FTA의 문제점을 알리는 데 본의 아니게 우리 영화인들이 앞장서게 된 것이다. 외롭고 힘든 싸움을 전개했지만 많은 분들이 동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한미FTA 문제가 여론에 의해 외롭게 된 처지가 되어 있는데 금속노조의 투쟁으로 전 국민에게 알리는 2단계 로켓이 점화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그래서 외로움과 고생의 대가는 충분히 값진 결실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많은 국민들과 영화인들, 영화배우, 영화감독들, 제작자들, 국민들이 마음 속과 행동으로 지지와 연대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 스크린쿼터가 73일로 줄어들었고 한미FTA 협상에서 한국영화 점유율이 줄어들더라도 더 늘릴 수 없고 오히려 줄일 수 있는 ‘현행유보’로 결정됐는데 한국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 누적된 문제도 있지만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에 한국 영화가 줄어드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작년까지는 한국영화가 잘 돼 스크린쿼터가 필요 없었는데 하락기가 되니까 여파가 크다. 작년에 정부에서는 잘 되는데 뭐가 필요하냐 그랬는데 잘됐을 때 필요한 게 아니라 흉년일 때 필요한 게 쿼터인데 반으로 줄고 나니까 한국영화 제작편수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여파가 직접적으로 나타나서 관객 점유율이 70%에서 3∼40%로 떨어졌다. 작년에 마지막에 최종 합의할 때 정부측에서는 아예 미래에도 더 줄일 수도 있다는 항목까지 허용했다. 앞으로 한국영화가 축소되더라도 쿼터를 더 늘릴 수는 없게 ‘현행유보’까지 넣어서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투자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한국영화보다 헐리웃 영화가 훨씬 유리하게 되었고, 투자를 많이 위축시키는데 직결된 것 같다. 아시다시피 영화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극장에 걸리지 못하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영화계가 힘들게 될 예정이다 .

    – 영화산업이 미래 세대들에게 중요한데

    =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그 나라의 사람들도 만나는 것이고 문화와 음식, 여러 가지 것들을 접할 수 있는 것인데, 한국영화보다 헐리웃 영화를 많이 보게 되면서 한국의 문화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기회가 줄어들 것이다.

    무엇보다 현대자동차나 삼성핸드폰처럼 한국영화에서 소개되는 제품들이 광고효과가 크다. 한국영화가 홍콩영화를 대신해서 아시아에 우뚝 서 있는데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서 상업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이 타임에 미래 가치를 너무나 짧게 보고 넘겨준 게 안타깝다.

    미국이 한국 시장만 바라보고 스크린쿼터 축소를 원했던 게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 시장을 더 이상 한국에게 빼앗길 수 없기 때문에 요구한 것이다. 중국이 개방되면 영화시장이 엄청 커지는 것이다. 한국 영화산업을 죽여놓고 들어가기 위해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시장만 먹겠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영화산업을 죽이겠다는 게 정말 크다. 한국영화를 보며 중국이나 동남아 국민들이 한국 영화를 보며 한국 제품들을 보게 되는 것인데, 즉, 엄청나게 큰 광고효과가 있는 것인데 정부는 너무 헐값에 넘겼다.

    – 금속노조는 자동차산업에도 이익이 되지 않을뿐더러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가중시키고, 제조업 공동화를 촉진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정부는 막연히 자동차와 몇몇 공산품은 유리할 것이라는 정확하지 않은 숫자로 밀어붙였는데 처음부터 문제로 지적됐던 지점이었다. 실제로 자동차 노동자나 서민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제도이다.

    그런데 억지로 밀어붙인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나 대통령의 업적을 내세우려는 성향이 훨씬 크다고 본다. 국민들은 정부가 준비하지 않고 졸속으로 추진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국회 비준이 남아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협약을 철회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금속노조가 오는 30일 양국 정부 사이의 협정문 체결을 막기 위해 오늘부터 일주일간의 총파업에 돌입했다.

    = 작년에 한창 힘을 모을 때 노동계에서는 왠지 아직 문제가 자기들의 문제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다. 생각들이 있었겠지만 내부적으로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것 같았다. 약간 늦긴 했지만 그래도 금속노조가 노동자의 이익만이 아닌 전체적인, 정치적인 것에 힘을 쏟는다는 것이 대단한 결단이라고 본다.

    우리도 그렇듯이 나와 가족을 위해 나서는 일이라고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정치라는 게 나와 가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영화가 나오려면 좋은 시나리오가 있어야 하는데 한미FTA는 시나리오가 나쁘기 때문에 결코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다. 한미FTA에 금속노조가 어렵지만 일어선 것이 진짜 서민들, 노동자들이 우리 역사에서 굉장히 소중한 한 페이지를 열었다는 생각이 들고, 영화인들을 비롯해서 한미FTA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눈여겨보고 있고, 지지하고 있다.

    만약에 힘이 필요할 경우 동참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영화인들은 미리 시작을 해서 지금은 지쳤지만 힘을 모으고 있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금속노조에서 전면적으로 자신들이 갖고 있는 큰 힘을 쏟고 있기 때문에 영화인들과 농민들, 각계각층의 구성원으로서 굉장히 큰 지지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나쁜 시나리오로 좋지 않은 영화를 찍으려는 무리한 정부의 의지와 노무현이라는 신인감독의 과욕을 미래를 걱정하고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노동자 시민들이 단합해서 막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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