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대연합하려면 정파등록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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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6월 26일 07: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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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력투쟁이란 언제나 2차원적이다. 다시 말하면 권력투쟁은 언제나 ‘당 안’과 ‘당 밖’, 그렇게 2중적으로 걸쳐져 있다. 혹자는 민주노동당 내부의 정파투쟁이 당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파투쟁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정파의 운동방식일 뿐이다. 내부투쟁이 없는 정당은 없다. 만약 그런 정당이 있다면 그것은 정당이라기보다는 단순 정치 서클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투쟁이란 필연적으로 당 안팎을 넘나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당 안팎의 권력투쟁을 연관시켜 생각하는 입체적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 

    2.

    최근에 민중경선제에 이어 진보대연합 논의가 나오고 있다. 민중경선제는 후보선택권을 분산시켜 결국 당 자체를 형해화시킬 우려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유럽식 당원중심 정당이 아니라 미국식 지지자 중심 정당으로 가게 된다. 한미 FTA 협정문에도 없는 미국식 정당 제도를 수입하는 꼴이다. 그러나 민중경선제가 아닌, 정파등록제를 전제로 한 정치연합은 생각해 볼만 하다.

    예를 들면, 정파를 공식화해서 입당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당비의 절반을 자기 정파에 송금할 수 있도록 ‘옵션’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한시적으로 정치연합 형식을 통해 입당한 조직에 ‘대의원’등을 배정해주는 식으로 당내 각종 의결 기구에서 정파 단위의 의견 충돌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 밖의 정치세력들은 정파로서의 자기형체를 유지한 상태에서 통째로 당 내부에 들어오기 쉬워진다. 그리고 이것은 정치결사체로서의 ‘외형’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동시에 의회진출의 통로를 확보하는 길이 된다.

    당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비례대표 제도를 통해 의회진출의 가능성이 열리고 그렇게 되면 단순 ‘정치 서클’에서 본격적인 ‘정당’으로의 재탄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또 당내 무정파로 남아있는 당원 대중들을 상대로 자기 정파를 확대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도 한다.)

    이를테면 한국 녹색당이 출범한다고 했을 때, 이들이 단독으로 창당하는 것보다는 민주노동당 안에서 블록을 형성하는 것이 훨씬 비례대표 당선자를 내기 쉽다.(또 당내 환경운동가들이 녹색후보를 국회로 보내는 방법으로써도 정파등록제가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렇게 되는 과정이 민중경선제를 봉쇄(?)한 진정한 효과일 수 있다. 공직후보 결정권을 대중단체에 양보하는 것 보다는 ‘당 내부’에 가두어 두는 것이 당 밖의 정파들로 하여금 당 내부로 들어와 공직 진출을 시도할 유인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당원들에게도 정파등록제는 유의미하다. 당에 무슨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별 당원들이 탈당하기보다는 자기 정파를 통해 당내 권력투쟁에 더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 불만이 생겼을 때 ‘당원 하나’가 ‘당 전체’를 징계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상태이다. 정치적 스트레스는 쌓이기만 하고 해소될 여지가 없는 셈이다.

    정파등록제는 마치 정파가 없는 듯 정파활동을 해온 사람들에게도 이점을 제공한다. 당내 선거에서 남모르게 쪽지를 전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저 후보가 어떤 ‘파’인지 게시판 뒤져가며 찾아봐야하는 비효율도 사라진다.(물론 정파가 없으면 무정파로 출마하면 된다)

    정파란 자기 강령, 자기노선, 자기정책의 산물이다. 따라서 당의 실질적인 강령은 풍부해 질 수 밖에 없다. 다양한 차원에서 정책이 생산될 유인도 높아진다. 

    3.

    정파등록제는 동시에 정파책임제이기도 하다. 재벌 체제의 문제는 재벌 총수들이 실제로는 지배력을 갖고 있으면서 형식상으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파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못하면서 정작 그 정파가 대중 앞에 투명하게 노출되어 ‘책임’을 부여 받는 것은 지독하게 꺼리는, 이런 행태는 재벌총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정파등록제 반대는 마치 박테리아가 햇빛 앞에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재벌 총수 같은 행태를 지속하고 싶은 민족주의자들의 음습한 욕망이다.

    어찌 보면 민주노동당은 이상한 당이다. 밖으로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촉구하면서 당 내부적으로는 정파등록제를 거부하고 있다. 밖으로는 재벌의 불투명하고 무책임한 지배구조를 비판하면서 당 내부적으로는 정파책임제를 반대하고 있다.

    이제 당내 정파인정을 통한 정치연합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진보대연합을 제안한다면 정파등록제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4.

    민주노동당 안과 밖에 걸쳐 있는 신정치세력들은 민주노동당을 의회진출의 중간 통로로 활용하는 법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 즉 여러 노선과 입장들이 민주노동당을 ‘허브 정당’으로 삼아 의회로 진입하는 방안에 대해 상당히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87년식 전략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 김근태 등이 추진하는 ‘반한나라당 총연대 전략’은 궁극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이미 시대정신이라는 원초적인 정치에너지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87년식 전략이 실패한다면 그 다음 단계에서 정치적으로 빈공간이 발생하게 되는데 지금으로써는 이를 대체할 정치통로가 마땅히 없다.

    만약 새로운 세력들이 의회를 향해 각자 각개 약진 하게 된다면 아무도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87년 체제의 붕괴로 새로 등장하게 될 새로운 정치적 빈터를 엉뚱한 세력에게 헌납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어차피 이질적인 세력들의 동거정당이다. 심지어는 핵무기에 대한 찬성-반대 입장이 뒤섞여 있을 정도다. 그런데 바로 이런 속성 때문에 이 공간 속에서 우리는 당 안팎을 들락날락 거리면서 오만가지 권력투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오히려 당밖에 있으면 우파들하고 별로 투쟁할 일이 없어 심심할지 모른다.

    따라서 신정치 세력은 적당히 인큐베이터를 활용하고 적절한 시점에 이를 파괴하겠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새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듯이 적당한 시점에 자기를 탄생시킨 자기한계로부터 탈출하면 되는 것이다.

    역사는 ‘굴러온 돌’과 ‘박힌 돌’ 사이의 투쟁의 역사이다. 그리고 역사는 대개 ‘박힌 돌’ 보다는 ‘굴러온 돌’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제 새로이 굴러올 돌을 소망한다. 박힌 돌의 미래는 이제 어디로 다시 굴러가서 박힐 것인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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