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후보 경제론을 비판한다
        2007년 06월 25일 03: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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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된 이후 흔히 듣는 이야기로 “세 후보 다 비슷하다”는 말이 있다. 세 후보의 캠프에서도 그리 말하고, 지켜보는 이들도 버릇처럼 그렇게 말한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보다 결속력이 강한 정당이니 그러려니 싶기도 하지만, 조금 들여다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 사진=노회찬 의원실
     

    특히 세 후보의 경제정책이 비슷하거나 별 차이 없다는 풍설은 사실이 아니다. 세 후보의 경제정책에 중요한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하다는 둥의 이야기가 되풀이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 경선 역시 한국 사회의 여느 선거처럼 정책과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첫째, 민주노동당 안팎의 이론가들이 세 후보가 발표하는 문서를 꼼꼼히 읽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책 보고 찍을 것도 아니니 말이다. 둘째, 문서를 읽어보기는 하되 비판적으로 평가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무릇 운동권 이론가들 치고 제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셋째, 뭔가 문제점을 느끼더라도 선거 때라 말을 아끼는 것이다. 누군가를 비판하면, 너 어디 편이지 하는 욕설이 날아드는 판이니 이해되기도 하지만, 술자리 객담으로나 기능하는 이론가는 어느 모로나 백해무익하다. 셋 중 무엇이든 나쁘다.

    비판할 건 비판하자

    권영길 후보의 ‘진보적 성장 전략’은 민주노동당의 이전 당론으로부터 가장 멀리 벗어나 있다. 예를 들어 “농협이 지역금융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사람중심 경제체제로 진보적 경제성장을 이루겠습니다」, 이하 동일)” 같은 대목은 민주노동당의 신경분리(信經分離) 정책과 충돌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게 하고, “한국경제 성장률 저하”라는 현실 진단은 꽤 당혹스럽다.

    권영길 경제론의 가장 큰 변화는 지식기반 경제론과 북방대륙 개척론이다.

    “한국사회에는 지식기반 사회론, 지식기반 경제론이라는 표현이 성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삶의 질을 추구하는 웰빙 바람이 일기도 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사람들이 ‘양’이 아니라 ‘질’을 추구하는 시대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질’을 추구하는 경제시대로의 진입은 소비현상, 사회현상, 경제현상으로 이어졌으며, ‘팀제’의 도입을 비롯한 기업문화에도 부분적으로 반영되었다.

    권영길의 사람경제론은 ‘지식기반 사회론’을 적극 수용한다. 더 나아가 지식기반 사회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식기반 사회는 노동의 창의성과 자발성이 경쟁력의 관건이며, 경제성장의 관건이 되는 시대이다.”

    지식고도화 현상 또는 그 필요를 일반론 수준에서 인정하는 것과 권영길 후보처럼 성장의 주요 얼개로 수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자유주의적 미래학자들의 지식경제론이 옳지 않은 것은 그 이데올로기적 특허권이 부르주아에게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노동력 문제에서의 경제성장이란 근본적으로 단위생산성의 향상과 전체 노동자 수의 증가에 의한다. 그런데 지식경제론은 그 특성상 고투자를 유발하기 때문에 전체 노동자 수의 증가나 일반적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하지 않고, 제한된 부분에서의 불균등한 선행 발전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지식경제론을 큰 규모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같은 것과 연결시킨다면, 심각한 사회적 효율성 저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지식경제론은 요소생산성 향상을 통해 고용 축소를 지향하는 것이다.

    지식경제론은 고용 축소 지향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지식’의 고유한 특질로부터 온다. 지식이란 어느 경우에든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근대 초기에 숙련노동자와 자유도시 교양계층의 지식이 선진적일 수 있었던 것은 전근대적 경제 영역이 광범위하게 잔존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삼성반도체 같은 선두주자들의 성공 역시 국내외 기업의 실패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요컨대, 선진 지식으로만 구성되는 경제는 이론적으로든 경험적으로든 성립 불가능하고, 실제의 지식경제는 낙후 부분으로부터의 초과이윤 이전을 기초로만 성립된다. 외국의 지식경제론이 제조업이나 농업의 포기, 지식산업 이외 분야의 국외 이전, 자유무역론과 함께 전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원적으로 지식경제론은 “경쟁우위 분야는 살아남고 경쟁열위 분야는 죽여버리는 잔인한 경제관(「사람중심 경제체제로 진보적 경제성장을 이루겠습니다」)”이다.

    선진 지식에 기반한 국제적 비교우위론 역시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만약 이것이 성공한다면 한국 경제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국외 경제에의 과의존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중심’ 지식기반 경제는 상품의 교환보다는 서비스 제공에 의존하여야 하는데, 현 시점에 그리고 꽤 오랜 미래에도 서비스 기반의 국제 경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권영길의 사람경제론은 ‘북방대륙 경제권 개척’을 한국의 세계경제 전략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러시아-중국-남과 북-일본을 잇는 북방대륙 경제권은 ‘제4의 세계경제권’으로 발전시킬 것이다.

    …북방대륙 경제권 개척 역시도 에너지 공동체에서 출발할 것이다. …현재 북한 서한만에는 총 매장량 150억 배럴로 추정되는 원유가 매장되어 있으며, 시베리아는 러시아 전체 석유 매장량의 약 75%, 석탄 매장량의 약 90%가 매장되어 있으며, 천연가스 매장량의 약 80%가 매장되어 있다. 특히 천연가스의 경우, 세계 매장량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막대한 양이다.”

    북한이나 시베리아에 석유가 많다는 사실을 남한 부르주아들은 모르는가? 중국이나 러시아 정부는 그런 사실을 모르는가? 권영길 후보의 ‘북방 개척론’은 단지 에너지 개발 공동투자론이나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정책인가?

    시장 개척이 진보적인가

    그런 정책은 한국석유공사와 석유재벌들과 노무현의 이광재가 이미 추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북방에서의 화석에너지 개발은 국내 대안에너지 연구나 에너지 자립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 그리고 그곳에 석유가 많다는 사실이 남한 민중경제와 무슨 상관인가?

    이에 대해 ‘북방 개척론’은 “북방대륙 경제권은 에너지와 자원의 보고이자 동시에 높은 경제성장률과 광활한 내수시장을 겸비한 잠재력이 큰 경제권”이라고 대답한다. 여기에서 자원과 시장이라는 답이 나왔다. 이는 알제리에 대한 프랑스 사회당의 정책이나 제3세계에 대한 유럽 사민당들의 시장주의적 태도와 같다. ‘사회주도 협력국가론’이나 ‘공동번영 전략’이라는 보완적 수사가 한국 자본의 낙후 시장 진출이라는 본질을 상쇄하지는 못한다.

    권영길 후보의 ‘경제성장 3대 동력론 = 노동중심 혁신 클러스터 + 한반도통일경제 + 북방대륙 경제권 개척’은 먼저 발표된 심상정 후보의 ‘세박자 경제론’과 같다. 심상정 후보 역시 ‘국내 서민경제 + 한반도 평화경제 + 동아시아 호혜경제’라는 틀거리를 제시한다.

    “심상정 의원은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발전모델로 ‘국내 서민경제론, 한반도 평화경제론, 동아시아 호혜경제론’으로 구성되는 ‘세박자 경제론’을 제안. 영어로 하자면 트리플노믹스(triple-nomics). 세박자 경제론은 앞으로 5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50년, 100년 한국사회를 지탱할 경제파라다임을 지향.

    …지구적 개방이 가속화되고 국가간 경제개방협정, 경제교역이 확대되면서 일국의 독립적 경제모델 구상이 사실상 어려운 상태.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은 일국적 경제발전을 대안모델로 상정해 왔으나 한미FTA협상에서 미국의 압력에 대해 일국 차원의 대응이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이러한 일국모델의 한계가 커지고 있음. 이에 지구적 경제개방의 현실성을 직시하여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넘어서는 대안적 국제경제체제를 모색(「심상정의 세박자 경제론」).”

    세박자 경제론과 노무현 구상의 유사성

    가장 풍부하고 자세한 개별 정책들을 내놓고 있는 심상정 후보의 경제론이 ‘남한-한반도-동북아’라는 세 개의 지역 시장론과 어떻게 융화하는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현 시점에 보기에도 그 기본 패러다임은 노무현 대통령 자문기구인 동북아시대위원회의 모델과 매우 흡사하다.

       
     
     

    심상정 후보의 ‘동아시아 호혜경제론’이 제시하고 있는 3대 정책 과제 역시 노무현 정부의 그것과 비슷하다. 심 후보의 ‘호혜적 문화 교류’는 동북아시대위원회에서는 ‘사회문화협력(「동북아시대 구현을 위한 사회문화협력 구상」)’이고, ‘역내 클러스터 네트워크’는 ‘광역 혁신클러스터(「동북아 경제중심 실현의 기본방향」)’이고, ‘탈달러 아시아 통화체제’는 ‘비IMF 금융통화협력(「동북아 경제공동체구상의 정립과 중단기 중점과제」)’이다.

    물론 동일한 경제 상황에서 제시되는 대안이 유사할 수는 있다. 문제는 ‘남한-한반도-동북아’라는 외연 확대론이 현 시기 한국 경제의 대안 패러다임으로 타당하거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외연 확대 이미 이루어져

    첫째, 대통령 선거 역시 공직에 부여된 권한과 능력의 제약을 받게 되는데, 그 권한과 능력이 미치는 영향에 있어, 남한 경제와 남한을 제외한 동북아 역내 경제는 매우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반 세기나 진행 중인 유럽 통합도 역풍에 머뭇거리는 상황을 감안하면, 더군다나 동북아에서의 비경제적 긴장 지속, 경제적 상호 보완성의 부족, 남한 국가가 역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어떠한 변용을 가하든 일체의 동북아론은 경제 대안이라기보다는 ‘꿈’에 가깝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론도 그 순경제적 기능보다는 정치적, 외교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이 더 컸던 것에 비추어 동북아론이 민주노동당의 대안경제론으로 제시되는 것은 과하다.

    둘째, 동북아론에 입각한 경제적 실효가 크지 않을 것이다. 권영길 후보는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한 한국경제의 기본전략은 다극화와 균형화가 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경제의 수출은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심상정 후보는 한미FTA에 대응되는 “대안적 국제경제체제”로 동아시아 호혜경제를 내세운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수출은 중국, 미국, 일본, 홍콩, 대만, 싱가폴, 독일, 러시아 순이다. 즉, 동북아경제론이 대상 삼는 국가와의 경제 교류가 이미 압도적이다. 따라서 지역경제론에 입각하여 다극화와 균형화를 이루려면 오히려 탈아시아를 제시해야 한다.

    셋째, 동북아론이 지정학적 관점을 취하고 있는 점이다. 특히 권영길 후보의 경우 “새로운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공동번영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 나갈 것이다. 한반도는 이제 지정학적 기회의 땅으로 새롭게 자리매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우리의 지정학적인 위치를 적극 활용하여 대외적으로 역내 국가간 경제협력의 기반을 구축함으로써 종국적으로 동북아지역의 모든 국가가 번영하는 공동체를 이룩하는데 우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동북아중심국가를 위한 정책과제」)”이라는 관점과 동일하다.

    지정학적 관점은 제국주의

    그런데 영토, 인구, 위치, 자원을 다루는 지정학은 제국주의의 이론틀일 뿐더러, 무역 호황, 내수 부진으로 고통받고 있는 한국 경제의 대안으로는 적절치 않다. 김대중, 노무현 같은 자유주의 정부들이 이런 지정학적 관점을 취하고 있는 것은 대미 관계 균형론, 무역 중심론을 고수하면서 거점국가론이나 유통국가론에 입각한 외연적 발전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포 성장론을 주창해온 민주노동당이 이런 관점을 수용하는 것은 당 정체(政體) 자체의 변질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통일경제와 동북아경제가 남한 경제에 일정한 기여를 할 것도 사실이고, 동북아 교류협력의 계기가 되는 것도 사실로 인정되어야 한다. 한미FTA에 대한 반대가 “그럼 어디 하고 할 건데?”라는 식의 즉자적 질문에 부딪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 경제의 문제는 명(明)이냐 청(凊)이냐, 미국이냐 동북아냐 하는 식의 선택적 파트너십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방식은 한미FTA에 의해 실권한 한국 자유주의 급진 분파의 해법일 뿐이다.

    남한 진보정치의 관할로부터 독립돼 있는 동북아론의 미래가 남한 자본의 진출일 뿐이라는 사실이 망각되어서는 안 된다. 개성공단의 극악한 근로조건처럼 남한 자본의 진출이 북한이나 여타국에서 낳을 사회적 문제, 그리고 해외 시장과 그 과실의 독점이 불러일으킬 남한 내 양극화의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통일경제론’이나 ‘동북아경제론’의 제창자이기보다는 자본 진출의 비판적 감시자로 오랫동안 남아 있어야 한다.

    불분명한 노회찬 경제론

    노회찬 후보 진영에는 필자를 포함하여 민주노동당의 전현직 정책간부들이 가장 많이 드나들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경제대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것 중 대안경제론에 가장 비슷한 것이 「일자리 강국, 차별 없는 경제」와 「9대 민생특별법」이다.

       
     
     

    이 패러다임은 노동시장 조장적 조치보다는 법제적인 노동시장 규제에 상당히 치우쳐 있고, 부품소재산업과 에너지환경산업을 제외하고는 민주노동당의 전통적인 분배론을 따른다. 이런 기조에 대해 심상정 후보의 ‘세박자 경제론’은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원내진출 이전까지 민주노동당의 경제정책은 사실상 조세, 재정 분야에 한정. 부유세, 국방비 절감, 무상의료, 무상교육 확대 등. 사회복지로 확대된 서민구매력이 성장에 순효과를 미칠 것이라는 성장/분배의 선순환론이었음. 이러한 ‘구매력 향상론’(수요론)이 균형발전에 중요한 요소이지만 여기에만 머물 경우 민주노동당의 대안경제론이 ‘분배중심모델’이라는 한계를 안게 됨.”

    노회찬 후보의 경제론이 노동, 조세, 복지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정당하나, 위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구매력 향상론이라면 한국 경제의 대안으로는 일면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분배의 결여는 고성장기 때부터 구조화돼 있던 것인데 비해, 최근의 중소기업 낙후, 제조업 공백화, 부가가치 생산의 전반적 저하, 재투자 부진 등 지속성장의 위기는 사후적 분배 문제 이외의 영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분배론 머물러서는 안 돼

    ‘분배를 통한 성장론’은 당시의 한국 경제 실정 더욱 중요하게는 민주노동당의 위약한 처지와 목표에 조응하는 적절한 담론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분배론의 문제의식을 더욱 발전시켜 내포성장과 실질성장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노동당 고유의 성장론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명박 신드롬이나 한미FTA 찬성 여론이 나타내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을 성장주의나 개방주의 내재화로 이해해서도 곤란하지만, 운동권식 분배론이 성장주의나 개방주의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확립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냉정히 인정해야 한다. 이명박이나 한미FTA에 대한 지지는 민주화 이후의 사회경제적 낙담과 답답함이 그것이 무엇이든 ‘변화’ 욕구로 응집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둘째, 한국 경제의 불균형과 분절 상태는 고도화된 노동력과 낙후된 산업구조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즉, 주요 국가 중 가장 고학력인 경제활동인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 다수가 비정규노동과 저부가가치 영세자영업에 종사하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이를 타개키 위해서는 이른바 산업구조조정, 혁신적 구조 전환이 필요한데, 구조 전환은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일 뿐 아니라, 경제 내적 동력 즉 성장에 의해 추동된다.

    셋째, 무엇보다도 분배론이 과연 진보정치운동의 담론이었던가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여전히 성장주의가 분배 유보론으로 연결되고는 있지만, 성장-분배론의 대치 구도는 천민자본주의 고성장기 한국 사회의 왜곡된 논쟁 지형이고, 이 구도 아래에서 ‘민주화’와 ‘분배’는 1987년 이래 남한 자유주의의 정치적 경제적 담론은 아닐까?

    사회주의적 내포성장론 필요

    한국은 자유주의자들의 프로그램으로는 소화할 수 없는 고욕구 사회로 변화하였고, 진보정치운동이 지향하는 바 복지 계획 역시 엄청난 재원을 요구한다. 분배만을 통해 이에 대응하기 어려울 뿐더러, 적립 재화의 재편성보다 신규 재화의 전용이 훨씬 용이함에 주목해야 한다. 즉, 자본주의적 성과균등론에 입각한 성장 후 분배 개입에서 사회주의적 평등론에 입각한 전략적 성장 개입으로 전환할 시기가 도래하지는 않았을까?

    민주노동당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저러한 경제 문제에 대한 대책의 산술합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유용한 경제이론이다. 정치적으로 유용한 경제이론이란, 한편에서는 한국 사회 경제 의사의 정치적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외연확대론은 한국 사회에도 민주노동당에게도 적절치 않다. 마찬가지로 분배론은 객관적인 경제 욕구라는 현실에서 민주노동당의 성장에 기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지금 정치적으로 유용한 경제이론은 내포성장을 핵심으로 그에 유리한 경제환경의 조건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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