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사람들 왜 롯데에 열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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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6월 25일 09: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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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광적인 롯데자이언트 팬들 (사진=롯데자이언트 홈페이지)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부산에 사는 초등학생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現 롯데자이언츠 감독이신 강병철 감독님의 퇴진에 힘써주십사 하고 이 글을 올립니다.

    롯데는 제가 5살 때부터 매년 꼴찌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작년 롯데가 5위라는 호성적을 올렸을때 저는 난생 처음으로 ‘이것이 인생의 낙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기대가 컸던 올시즌, 강병철 감독님이 롯데의 사령탑을 맡으시면서 저는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맛보고 있습니다.

    자세한 이유는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강병철 감독님과 노무현 대통령님은 부산상고 동기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발 강 감독님을 잘 타이르셔서 자진 사퇴하게 해주세요.

    야구를 보시며 참외를 깎아주시던 어머니는 9회말 어이없는 역전패를 보시고는 아버지와 술 먹으러 가셨고 멍청한 형은 오늘 잠실경기인 줄도 모르고 롯데 선수버스 뒤집어야겠다면서 사직야구장으로 뛰어갔습니다. 저는 혼자 집에 남아 이렇게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숙제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이 글이 무슨 글이냐? 청와대홈페이지에 가면 진짜로 있는 글이다.
    http://www.president.go.kr/cwd/kr/bbs/bbs_view.php?meta_id=free_bbs&waste=0&sel_type=1&keyword=%B0%AD%BA%B4%C3%B6&id=2593d6db09ccd4f988427f3e

    문장력, 단어구사력, 듬뿍 묻어나는 애환… 이 글… 아무리 봐도 초등학생 5학년이 쓴 글이 아닌 것 같다. 허나, 이 글에서 나타난 두 가지 사실만은 진짜다. 1) 로떼 팬들은 로떼자이언츠가 지면 선수단 버스는 물론 청와대도 뒤집어 버릴 사람들이란 거. 2)부산에서 야구는 엄마, 아부지, 형, 동생 모두가 함께 하는 문화란 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비록 변두리를 전전하기는 했으나 한번도 서울 밖에서 살아본 적 없는 서울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역시 네살이던 82년부터 서울 연고의 MBC청룡을 좋아라 해왔고, MBC청룡이 90년에 LG에 매각된 이후에도 꾸준히 좋아하고, 신문이 오면 스포츠면부터 펴보는 25년 된 야구팬이다. 허나, 요즘엔 점점 부산을 연고로 한 롯데자이언츠가 좋아진다.

    LG가 비록 작년에 사상 최초로 꼴찌를 하는 수모를 겪긴 했지만, 그 전에도 그리 잘 하던 팀은 아니었다. MBC 시절엔 단 한번 결승전 격인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본 거 빼고는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하는 중하위 팀이었고, LG로 바뀐 뒤에도 90년, 94년 말고는 성적으로 상쾌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미우나 고우나 연고팀이라고 좋아했었다. 성적이나, 선수구성 이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오직 연고팀이란 이유만으로 언젠가는 좋아지겠지란 기대로 25년을 응원하던 팀을 이제 바꿀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상태다.

    25년 된 팬을 흔들어 놓은 팀. 롯데자이언츠에 대해 알아보자..

    1) 롯데팬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야구장 가는 재미가 야구 구경하는 재미만 있다면 야구장에 갈 이유가 없어진다. 야구를 제일 잘 볼 수 있는 방법은 TV다. 시속 140km 넘는 공이 실밥 회전하는 것까지 자세히 보여주는 건 TV다. 게다가, 아차 하고 상황을 놓쳐도 걱정이 없다. 계속 리플레이 해주고 다른 각도에서도 보여주고, 구수한 입담의 해설가가 해설도 해주고, 누워서도 보고 앉아서도 보고, 에어컨 켜놓고도 보고 꺼놓고도 보고.

    허나 그 먼 잠실구장까지(우리 집은 여전히 서울의 변두리, 구로구 고척동이다!ㅠㅠ 집 앞에 영등포교도소가 있다!!) 통닭에 맥주에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이유는? 수많은 관중들이랑 같이 호흡하며 응원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롯데 경기는 팀이야 이기든 지든 재미가 있다. 최고로 재밌다.

    뭐 응원이야 롯데 말고도 7개 구단 모두가 하고 있지만, 롯데의 응원은 매우 특별한 데가 있다. 굉장히 열광적이다. 원정경기인 잠실경기에서도 극성스럽지만, 홈경기인 사직경기장에서의 극성은 상대팀 선수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이다.

    구장을 가득 채운 3만명이 오직 한팀만을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경기는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 말고는 별로 없을 것 같다.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게 아니라, 응원도 열광적이어서 누가 주도하는 것도 아니라 자연 발생하는 파도타기부터, 좀만 기분 좋으면 나오는 ‘부산갈매기’ &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이루어진 응원가 콤비.

    다른 구장에는 없는 신문지 응원, 경기 후반에 쓰레기 담으라고 나눠주는 오렌지색 쓰레기 봉투를 이용한  응원. 구장을 가득 채운 팬들이 일제히 신문지와 오렌지색 쓰레기 봉투를 흔들어 대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다.

       
      ▲ 사직구장을 가득 메운 부산 팬들의 열기 (사진=롯데자이언트 홈페이지) 
     

    뿐만 아니다. 야구 저변 확대에도 힘을 쓰고 있다. 가끔 관중석으로 공이 넘어가는 파울볼이라도 나올라치면, 롯데팬들은 다같이 입을 모아 ‘아 주라~ 아 주라~’를 외친다. ‘애 줘라!’ 의 부산 사투리이다. 안 주면 줄 때까지 외친다. 롯데경기에서 파울볼은 ‘아~’한테 가는 게 상식이다.

    야구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알겠지만, 파울볼을 줍기 위한 쟁탈전은 이종격투기에 버금간다. 의자가 빼곡한 계단길을 네댓명이 우르르 달려가서 몸싸움을 벌인 끝에 주을 수 있는게 파울볼이다 보니, 나같이 점잖은(-_-;) 사람은 그토록 야구장에 다녔는데도 아직까지 한 개도 못 주워봤다.ㅠㅠ 하물며 ‘아~’들은????

    관중들이 일치단결해서 ‘아’를 챙겨주니 그 ‘아’가 야구팬이 아니 될 수가 있겠는가? 또 공을 받은 이 ‘아~’가 가만히 있겠느냔 말이다. 필경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에 가서 자랑을 할테고. 그 자랑을 들은 그 ‘아’ 친구들은 자기도 야구장에 가고 싶어서 얼마나 몸이 달겠느냔 말이다.

    이것의 결과는? 사직구장에 가면 애 업은 아줌마들이 무척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꼬맹이들도 많고. 초등학교 다니는 ‘아’건, 나이 60 넘은 ‘아지매’건 롯데의 간판타자 이대호가 조실부모하고 할머니 손에 컸으며, 그 할머니가 부산 어디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2) 그럼 왜 롯데팬은 열광적인가?

    글이 여기서 끝난다면 나는 이 글을 스포츠신문으로 송고했을 것이다. 허나..여기가 어딘가? ‘말많고 탈많은’ <레디앙> 아닌가?ㅋㅋㅋ 여기서 한 번쯤 롯데가 왜 인기가 많은지 짚어보고 넘어가야 <레디앙>다운 게 아닌가?

    2)-1 롯데 성적이 좋아서?
    롯데를 좀이라도 아는 사람은 코웃음 칠 얘기다. 위에 초등학생이 쓴 글에도 나오지 않는가? 다섯살 때부터 꼴찌를 했으며, 8개팀 중 5위 한 번 했다고 삶의 낙을 느꼈다고. 게다가, 롯데가 죽을 쓴 게 최근의 일만도 아니다.

    82년 프로야구 출범 이래 84년, 92년 두번을 우승했는데, 이때도 롯데는 최강 전력과는 거리가 먼 팀이었다. 84년 우승했을 땐, 당시 최강팀이던 삼성이 강호인 OB를 피해 약체인 롯데랑 결승에서 붙으려고 일부로 롯데한테 경기를 져줘서 ‘겨우’ 결승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고.

    92년에도 8개팀 중 4위를 했는데, 혜성과 같이 등장한 염종석이란 신인투수가 결승전에서 팔꿈치가 빠져라, 공을 던져서 일궈낸 일종의 업셋(주: 스포츠 동네에서 약팀이 강팀을 잡는 경우를 업셋이라 한다)이었다.

    정리하자면, 솔직히 롯데… 그렇게 야구 잘하는 팀은 아니다. 부산에 유독 신선이 많은데 이들 중 상당수는 ‘야구 보다가 성불했다’고 전해진다. 그 정도로 경기 내용이 열통터진다.(롯데팬들 ‘화장’하면 사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 1등은 아니지만…
     

    2)-2 롯데 구단이 마케팅을 열심히 해서?
    역시나 롯데를 좀이라도 아는 사람은 코웃음 칠 얘기다. 지금 미국에서 제법 이름이 난 추신수, 백차승. 얼마전까지 미국 있다가 돌아온 송승준, 이승학, 채태인 등은 모두 부산 출신이다. 출신지역 선수에 대해 우선권을 갖는 현행 제도상 이들은 롯데로 왔었어야 하나, 모두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왜냐? 당시 불었던 메이저리그 열풍이 가장 컸겠지만, 선수 계약금 연봉 등이 짜기로 유명한 탓도 분명히 있다. 다른 팀과 계약한 자기보다 실력이 못한 선수가 자기보다 계약금을 2~3배 더 받는다면 납득이 갈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나가는 선수를 못 잡는다면, 다른 구단에서 자유계약(FA)으로 풀린 선수라도 데려와야 할텐데, 역시나 돈 쓰기를 극도로 싫어하는지라 그런 것도 없다. 선수 영입할 돈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구단 금고에 보관해놨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선수 대신 금송아지한테 야구를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롯데팬으로선 ‘팔짝’ 뛸 일이다.

    기본적인 선수 구성도 이런 판인데, 마케팅을 제대로 할 리가 없다.(그나마 요즘은 ‘옛날 유니폼 입고 오는 날’ 등등도 생기고 좀 나아진 편이다)

    2)-3 부산사람들이 본디 열정적이라서?
    항구도시이다보니 사람들이 열정적이라서? 그럼 똑같이 부산을 연고로 한 축구팀 부산아이콘스나 농구팀 매직윙스 경기장에서는 왜 똑같은 모습이 안 나오는 걸까?

    그럼 과연 무엇때문에?????? 얘기가 길어지니 1주일 안에 후속편을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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