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랜드, 계산대를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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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6월 25일 07: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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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이랜드 일반노조 김경욱 위원장이 말했다. “상암동 홈에버에서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조합가입을 유도하는 선전홍보전을 한다고 했을 때, 몇 번하고 말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겨울 내내 계속 하더군요. 여러분들이 한 겨울 이곳에서 조합 가입 권유를 해 주셔서 지금 상암동 홈에버에서만 100명이 넘는 조합원이 생겼습니다.”

    사실 나도 그랬다. 부끄럽지만, 민주노동당 마포, 서대문, 은평, 용산구위원회 노동위원들이 상암동에 있는 홈에버에서 몇 달 동안 선전전을 할 때, “이거 잘 되겠나” 싶었다. 과연 저 거대한 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노조에 가입시키고, 그 조합원이 당원이 되고, 그리고 파업이 일어나 매장이 멈추는 그런 날이 과연 있겠는가 생각했다.

    나도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촛불도 얼어붙을 추위 속에서 4개 지역위원회의 당원들이, 그것도 많은 수가 아닌 소수가 매주 선전전을 할 때에 나는 발언을 했다.

    “민주노동당은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입니다. 이번 비정규직 투쟁, 이건 우리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투쟁입니다. 지금은 조합원이 없어도, 우리가 겨울을 지나고 봄이 올 때면 반드시 이곳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은 얼마나 멋진가.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투쟁. 민주노동당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매서운 겨울바람과 맞서며 이곳에 나왔노라고…

    그러나 나도 확신은 없었다. 시린 손을 촛불로 달래며 고생하는 당원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말이었지, 아니 이렇게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조합에 가입시키려는 당원들의 선전 행위 자체가 가지는 ‘숭고함’에 대한 존중의 표시였을 수도 있다. 비단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은 아름답게 깨졌다. 봄이 오자, 이랜드 일반노조 월드컵 분회가 결성되고, 지역위원회 사무실에서 수차례 조합원 교육이 이어지고, 네 개 지역위원회 주최로 하종강 선생의 강연회가 비정규직 아주머니 조합원을 대상으로 열리고… 그리고 파업찬반 투표 뒤 파업돌입.

    우리의 예상은 아름답게 깨지고

    지난 23일, 토요일. 월드컵이 열렸던 서울 상암동에 수천의 조합원이 모였고, 그만큼의 경찰력이 동원됐다. 마포가 들썩였다. 노조는 이랜드 그룹이 6월 말까지 뉴코아 비정규직 수백 명을 해고하고, 홈에버에서도 이미 350명 이상의 비정규직이 해고했고, 이후 순차적으로 수천 명을 해고할 예정이라며, 이날 매장을 점거하는 공세적인 투쟁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랜드 일반노조의 공세적 투쟁지침은 간단했고, 더 이상 명확할 수는 없었다. “계산대를 멈춰라.” 매출제로. 이랜드 그룹에서 가장 매출이 높다는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내 대형유통업체인 홈에버(구 까르푸)와 역시 같은 이랜드 계열사인 뉴코아 매출 1위 강남점을 마비시키겠다는 것.

       
      ▲ 24일 오후 잠원동 뉴코아아울렛 강남점 앞에서 비정규직 해고 중단을 요구하며 경찰들과 몸싸움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홍찬선 기자)  
     

    마포구위원회 노동위원장으로부터 오후 1시에 결합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도착하니 이미 매장 안으로 조합원들이 들어간 상황이었다. 오전에 격렬한 투쟁이 있었다. 용역과의 몸싸움에 이은 전경과의 충돌. 그러나 조합원들은 기어이 매장 안으로 진입했다.

    1층은 이랜드 일반노조 조합원이, 2층은 함께 공동투쟁을 하고 있는 이랜드 계열사 뉴코아 노조 조합원이 계산대를 완전히 점거하고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손님들이야 불편한 일이지만, 조합원들에게는 생존권이다. 간혹 손님들과 마찰이 있었지만, 조합원들의 호소가 우위였다. 하지만 TV 뉴스는 불만에 가득 찬 손님들 얘기만 옮겨놨다.

    제발 오늘 하루 물건을 사지 말아 주십시오

    “제발 물건을 사지 말아 주십시오. 오늘 하루 여기를 멈춰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용산구위원회 홍성준이 피켓을 들며 목청껏 외친다. “약한 사람들과 함께 합시다. 제발 오늘은 그냥 돌아가 주시길 바랍니다. 비정규직과 함께 해주십시오.”

    1층에서는 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고 조합원들을 독려하는 모습도 보인다. “여기서 물러나면 우린 다 죽습니다. 조합원들은 절대로, 절대로 계산대에서 한발자욱도 물러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까.” 나이가 40에서 50대인 여성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악에 바친 구호로 위원장의 지침에 답한다. “투~쟁.”

    서부지역노점상 연합회 회원들도 대거 비정규직 연대투쟁에 결합했다. 지역장과 부지역장을 비롯한 회원들이 함께 계산대를 점거하며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연배로 보자면,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와 비슷해 보인다. 회원들도 손님들에게 물건을 사지 말 것을 호소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이런 연대도 뭉클하다.

    2층을 점거한 뉴코아 노조는 비정규직 조합원을 앞으로 불러 발언을 요청하며 “이제까지 우리 정규직이 비정규직에게 잘 못한 거 많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사과 드리겠습니다”하며 정중히 인사를 한다.

    뉴코아 노조의 정규직은 대부분 젊은 층인데 비해 비정규직은 홈에버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아주머니들이다. 수줍은 듯, 아주머니들이 젊디젊은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다. 이를 지켜보는 당원들은 코끝이 찡했던지 숙연해진다.

    투쟁 현장에서 코끝이 찡해지다

    경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전갈이다. 조합원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이 매장에 진입할 경우 이랜드 일반노조 지원대책위 소속 단위들이 앞줄에 서기로 했다. 지원대책위는 민주노동당의 4개 지역위원회가 주축이다.

    여차하면 1층으로 내려갈 태세를 하고 있는데, 사측이 영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발표가 났다. 계산대에서 철수를 해도 된다는 얘기다. 모두가 환호를 지른다. 경찰도 조합원에 대해 연행을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전원 물러갔다.

    불가능해 보였던 상암동 홈에버의 계산대가 조합원들의 투쟁에 의해 멈췄고, 이에 사측도 백기를 든 것.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정리집회를 가졌고 당원들의 얼굴도 조금은 상기됐다. 그러나 정리 집회를 마치고 난 뒤,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사측은 결국 약속을 어기고 영업을 시작해, 앞으로 투쟁이 험난하게 진행될 것임을 예고했다.

    하지만, 오늘의 승자는 누가 뭐래도 조합원들이었다. 그동안 이랜드 자본으로부터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았던 그들이 매출 1위의 홈에버 월드컵점을 적어도 몇시간 동안은 완전히 멈추게 만들었지 않았는가.

    다 이해하진 못하지만, 굳건한 연대로

    “노동자는 점점 더 많은 압박을 받으면서도 항상 언제든 ‘사용’될 수 있다는 안심을 가지지도 못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을 소집한 산업은 그들이 필요할 때에는 그들을 살아만 있게 한다. 그리고 그들을 버릴 수 있게 되면 일말의 배려도 없이 곧바로 그들을 버린다.”

    언제 얘긴가. 지금의 비정규직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1844년 스물여섯 살 마르크스가 쓴 <경제학-철학 수고>에 나오는 말이다. 필요할 때만 살아있게 한다는 마르크스의 지적은 오늘날에도 본질적인 차이가 없이 그대로 적용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사람들이 그들에게 부여하는 노동이 길고 고통스럽고 불쾌할수록, 그 노동의 보수는 적다.” 홈에버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급은 80만원. 먹는 시간을 빼면 7시간 넘게 꼬박 서서 일하고, 화장실에 갈 때도 보고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그들은 몇 년씩 인내하며 버텨왔다.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노동을 감내했던 비정규직 아주머니들이 노래를 부른다. 아직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파업가. 하지만,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절을 부를 땐, 누구보다 절절하다. 난 머리로만 알지만, 그들은 가슴으로 느끼기 때문일 게다. 화장실에 갈 때,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난, 그들을 전부 다 이해한다고 감히 말하지 못한다. 그냥 힘차게 연대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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