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년 종전선언, 08년 평화조약 논의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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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6월 25일 09: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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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 차관보가 오랜 기다림 끝에 북한을 방문하였다. 지난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후 방북을 고대하던 때로부터 약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북한은 몇 차례 힐 차관보를 초청하였지만,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촉발된 6자회담의 난항으로 인해 힐 차관보의 방북은 이뤄지지 못하였다. 그동안 협상가로서의 능력을 제대로 드러낼 기회가 없어 답답해하던 그로선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방북이었을 것이다.

    의미 있는 방북, 약간의 반응 차이

       
      ▲ 힐 차관보가 오랜 기다림 끝에 북한을 방문하였다. (사진=SBS)
     

    여전히 전후 배경과 시말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낳고 있지만, 미국은 BDA 문제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보여주었다. BDA 문제는 지난 해 11월 부시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언급하면서 공식화된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가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부시 정부는 재무부를 비롯한 관료조직의 반발을 누르면서 뉴욕 연방준비은행(FRB)까지 끌어들였다.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보이라는 북한의 요구에 대한 확실한 대답인 셈이었다. 그리고 힐 차관보가 북미 사이의 비공개 교섭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직까지 힐 차관보의 방북 행보 및 북미 협상의 내용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이 북한을 양자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했다는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앞으로도 북미 양국은 양자협상을 더욱 긴밀히 진행할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긴밀하게 추진될 북미 양자협상이 한국,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북미 양자가 긴밀한 협상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힐 차관보의 방북 이후 미국과 북한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북한이 힐 차관보의 포괄적 해결을 반기면서 핵문제 해결과 관계 정상화를 연계시키고 있다면, 미국은 포괄적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비핵화가 핵심요소(key element)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신보는 “부시 정권이 핵무장 해제를 선차적 목표로 내걸지 않고 관계개선에 의한 포괄적 문제해결을 지향하면 조선도 재빨리 보조를 맞춰나갈 것”(6/22)이라고 보도하였고, 북한 외무성은 “(북미) 쌍방은 당면하여 7월 상순에 6자 단장 회담과 8월초 필리핀에서 있게 될 아세안지역연단 상(장관) 회의 기간 6자 외무상 회의를 개최하기 위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성사시키기 위해 협력하기도 했다”(6/23)고 밝혔다.

    조선신보는 또 “‘9.19 공동성명의 완전한 이행’은 조선반도 핵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조미 적대관계의 청산과 관계정상화, 나아가 지역 안전보장 구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동반”(6/23)할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힐 차관보는 기자회견에서 포괄적 합의를 강조하면서, “영변 원자로를 동결(shutdown)하면 6자회담 참가국 외무장관의 회담이 열려 핵 불능화(disablement)와 95만 톤의 중유 선적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1단계 초기조치 이행의 시한이 꽉 죄인(tight) 것에 비해 불능화는 예정된 일정에 따라 올 해 안에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맥코맥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대화에 보상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 힐의 방문은 “우리가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킬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진지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고 밝혔다.

    힐 차관보의 방북 관련 상세한 내용이 나와야 알겠지만, 미국과 북한이 포괄적 문제에 대해 협상은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협상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기대’를 얹고 있다는 것 역시 분명해 보인다.

    한반도 정세의 급변을 강조하는 낙관주의

    힐의 방북에 대해서 신중한 시각들이 여전히 많지만, 한반도 정세의 급변 가능성을 점치는 낙관주의가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6자 외무장관 회담이 보다 큰 틀의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고, 그 성과에 기초하여 남북미 3자 정상회담과 남북미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종전선언이 올해 안에 채택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부시 행정부의 임기 안에 북미 관계 정상화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기대로도 이어져있다.

    설혹 북미 관계 정상화까지는 가능하지 않다 하더라도, 종전선언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임기가 1년 반 남짓 남은 부시 정부로선 북한 문제로 치적을 홍보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내 여론조사에서 3대 외교현안으로 꼽히는 이라크, 이란, 북한 문제 중에서 이라크 문제는 잘 해결된다 하더라도 밑지는 문제이며, 이란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을 볼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러므로 북한 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핵 불능화를 달성하고 종전선언을 이루는 대북한 정치 이벤트가 구미 당기는 책략일 수 있다. 더욱이 올해 초 언론에 알려진 미국 국무부의 사업계획에선 18개월 내에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청사진이 담겨 있었다. 또한 북한의 입장에서 종전선언은 특별히 나쁠 것이 없다. 평양 지도부는 적절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종전선언이라는 이벤트를 거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부정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BDA 문제가 우여곡절 끝에 해결되었지만, 핵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북한과 미국은 여전히 ‘공약 대 공약’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힐이 북한에 무엇을 제안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북한이 미국의 상응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핵시설 폐쇄에서 핵시설 불능화에 이르는 과정을 순탄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다소 무리일 수 있다.

    6자 외무장관 회담에서 ‘정치적 타결’의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그 합의 역시 ‘행동 대 행동’ 프로그램에 묶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 내에서 소소한 ‘행동 대 행동’의 틀을 넘어서는 ‘평화조약’의 구상을 지지하는 입장들이 있지만, 그 역시 핵심 쟁점들에 관한 합의와 합의의 이행을 필요로 한다.

    또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종전선언’ 역시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에 가깝다. 공동 선언과 협상의 과정이 6자회담 참가국 사이에 켜켜이 쌓은 불신을 완화시킨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일이지만, 실제의 상황 진전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종전선언’을 이룬다면 북미관계를 완전히 역전시키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추구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일각에서는 종전선언이 분단체제를 고착화하려는 미국의 음모라고 보는 입장도 존재한다. 즉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을 분리하는 것은, 실제로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않고 북한 핵문제를 관리하거나 혹은 장기간의 평화조약 체결 과정에서 북한 체제를 바꾸려는 적대적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경우엔,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의 동시 달성을 위해서는 결국 북한의 ‘평화냐 전쟁이냐’하는 담판 외교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미국의 적대적 의도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안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미국이 그러한 담판에 응답할 것이라는 전제도 문제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핵 문제의 진전을 가로막는 논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대안이 2차 핵 위기 이후 북한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2차 핵 위기 이후 북한 지도부의 담판 외교 혹은 위기 외교는 1차 핵 위기에 비해 미시적인 위기, 대화 국면의 교체가 비교적 빠르다. 적어도 북한 지도부는 ‘시간’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북한 내부의 복잡한 정치, 경제적 문제들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위험 회피적 전략을 재고해야

    북한의 담판 외교 전략이 매우 대담한 전략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북한이 2차 핵 위기 이후 보인 모습은 위험 회피적 행동에 가깝다. 북한은 커다란 위험을 감수하며 상황을 진전시키려 하기보다는, 관리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위기 전략을 활용해왔다.

    필자가 북한의 미사일 실험과 핵 실험 당시에도 지적하였지만, 북한은 역설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 실험들을 감행하였다.

    거시적 차원에서는 세계적 패권국가인 미국을 상대로 맞짱을 뜨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것은 사실 치밀하게 계산된 공식에 따른 것이다. 미국 내부의 국내정세, 동북아시아 국제관계, 중국 한국 일본 등의 움직임 등을 치밀하게 고려한 북한의 전략은 지금까지 부분적으로 성공해왔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전략은 적대적인 주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전략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치밀한 계산은 언제나 상황을 추수하는 경향이 있다. 즉 상황 선도적인 행위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북한은 지금까지 상황추수적 대응으로 인해 중요한 기회를 몇 차례 놓친 적이 있다. 1991년 현실 사회주의 몰락 당시에는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를 외치면서 국제질서의 변화에 전면적으로 개입하지 못하였으며,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의미 있는 제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고 2000년에 가서야 정상회담을 열 수 있었다. 클린턴 정부 말년의 북미 관계 개선 과정에서도 북한은 약간은 굼뜬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요한 전환적 시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상황추수적 대응을 하는 것은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는 데에는 효과적일 수는 있지만, 상황을 변화시키는 데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

    부시 정부가 전략적 차원이든, 전술적 차원이든 정책의 변화를 보이는 상황에서 북한이 보다 과감한 상황 선도적 전략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황추수적 전략은 결국 부시 정부가 정해 놓은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 미국에게 판단을 강요하기 위해선 그에 맞는 위험을 안은 선도적 행동이 필요한 것이다.

    핵시설의 불능화 문제에 대한 북한의 전략적 선택이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러한 판단이 내려진다면 한국과의 협력 즉 남북협력은 정당한 지위를 얻을 것이다.

    상황선도적 전략은 중국과 미국 사이의 줄타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형성에서의 결단을 의미한다.

    2.13합의 이후 김계관은 방미 과정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의미심장한 말들을 쏟아냈다. 그 때 한국에서는 북미 결탁설까지 나왔다. 중국에서의 반응은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대사관을 직접 방문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북한의 행동은 경솔한 것이었다.

    북한은 몇 차례 ‘지역 안전보장 구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언급하고 있다. 그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작년부터 북한 고위관료들의 입에서 나오는 중국 관련 발언들과 연관된다면 상당히 우려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북한의 중국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 해프닝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미동맹의 강화에 기울어진 한국

       
      ▲ 사진=SBS
     

    좁은 한반도를 벗어나 동북아시아 국제질서의 한 주체로서 당당히 서려는 외교, 국방 관료들의 눈에 북한은 성가시지만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경제력은 과거에 비해 높아진 것이 사실이며, 집합적 정체성 역시 민주화 이행 이후 혼란 속에서도 진전되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상황에서 국력에 걸맞는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고, 국제적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그러한 역할이 한반도의 평화체제 형성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을 높이거나 미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에게 일정한 레버리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같다. ‘선진화’이든 ‘중견국’이든 미들파워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는 것 역시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이 혹은 남북한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자가 되지 못하는 한, 그러한 전략은 공허한 것이기 십상이다. 노무현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힘을 기울였지만 유엔사의 강화 논란은 전시작전통제권을 빛 좋은 개살구로 만들 가능성도 있다.

    동중국해를 염두에 둔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대양해군론은 한국의 군사적 능력에 대한 과신에서 유래되었다. 과연 한반도의 위기관리를 미국에 내맡긴 채로, 동북아시아에 중국, 일본과 군사적 경쟁을 감행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겠는가?

    여전히 군사주의의 낡은 담론에 집착할수록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를 달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동북아 국제질서의 의미 있는 주체로서 성장할 수도 없다. 노무현 정부가 남북관계를 6자회담의 반걸음 뒤로 돌린 것은 부국강병, 팽창주의와도 관계가 깊은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사회의 변혁이 없이는 남북협력과 한반도 평화체제가 형해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북미 모순을 강조해온 입장들은 대부분 남한의 역할을 종속적 변수로 인식한다. 또한 분단체제의 변혁을 강조해온 입장들은 기능주의적 남북협력에 치중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변혁 없이는 주체적인 한반도 평화체제가 어려워지며, 여전히 한반도는 갈등적인 강대국 정치의 영향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을 바꾸고, 남북협력 이끌어내자

    이제는 한국의 평화, 복지 사회로의 민주적 발전이 북한개혁, 남북화해협력, 동아시아 평화질서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남북협력을 위한 전제들로 주로 거론되었던 것은 국가보안법 폐지, 서해 NLL 문제 해결 등의 사안들이었다. 이들 사안이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북협력을 이끌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은 역시 정치군사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군비축소와 관련된 것이 핵심적이다.

    군비축소와 관련된 사안은 한미동맹과 한국군의 군비축소라 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의 안보전략은 한미동맹을 통한 공격적 군사전략에 기초해왔다. 이제 협소한 국가안보의 전략이 아니라 인간안보의 전략으로 안보전략을 전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국가안보에서 인간안보로의 전환은 1950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전쟁과 정전체제, 이로 인한 군사체제와 동원체제를 종식하고, 남과 북 내부의 비정상성을 극복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한국의 역할을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은, 남북한의 군사적 대립을 부차시하는 인식과도 맞닿아 있다. 또한 한국의 군축을 강조하지 않는 경우엔, 그것이 북한에 대한 또 다른 압박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도 이어져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분단체제의 현 단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남과 북 모두가 바뀌어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에는 오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라도 한반도 정세의 급변을 달성하기 위해서 북한의 전략적 선택, 남북협력의 강화, 한미동맹 강화의 지연 등의 창조적 해법들이 구사될 필요가 있으며, 한반도 평화체제의 적극적 제기가 필요할 것이다. 적어도 올해 불능화 단계가 시작되고 그 과정에서 종전선언이 채택될 수 있다면, 내년에 평화조약을 현실화하는 논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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