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행을 놓쳐 한참을 헤매다
        2007년 06월 22일 04: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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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에는 만레사를 출발 깔라프(Calaf)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다. 깔라프의 작은 마을에서 길을 잃었다.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봐도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중간에 바이크투어 사인을 놓친 것 같다.

    한참을 헤매다가 산 페레(Sant Pere)로 향했다. 국도를 따라 내리막길을 달리다가 산 페레 근처에서 좌회전을 해야 한다. 계속되는 내리막에 어느 순간 산페레 표지판이 보인다. 계속 내려가니 작은 마을이 하나 나타났다. 그러나 이곳은 꾸폰(Copons)이다. 행선지 보다 더 밑으로 내려온 것이다.

    놀이터에 아이들과 사람들이 보인다. 한 동양인 녀석이 자전거에 트레일러까지 달고 나타나니 다들 신기한 듯 쳐다본다. 주변에 공중전화가 있는지 물어봤다. 공중전화는 깔라프까지 가야 있다고 한다. 한참을 내려온 내리막을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거의 미칠 지경이다.

    한참 내달린 내리막길을 다시 오르다

    다행히 한 40대 초반의 아줌마가 휴대폰을 빌려주었다. 이본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 신호가 그렇게 좋지 않다. 몇 마디 하다가 끊어지기를 반복한 끝에 길리엄이 내려왔던 길에서 한 5km 정도 다시 올라와서 49km 표지판 근처 사잇길로 빠지면 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49km를 다시 돌아서 가야 하는 줄 알고 꾸폰에서 하루 자고 갈 생각이었다.

    휴대폰을 빌려준 아주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에코토피아 바이크 투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다. 사실 아주머니한테 상당히 미안했다. 이본의 휴대폰은 오스트리아에서 로밍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요금이 나올 것이다. 휴대폰 요금 통지서를 받고 아주머니가 화를 내지 않을까 걱정이다.

    점심도 못 먹고 거의 녹초가 된 상태에서 엄청난 오르막의 시작이다. 거의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아돌프가 근처에 마중을 나왔다. 나이 40이 넘은 아돌프가 나의 트레일러를 대신 끌어주었다.

    도착하니 다들 반겨준다. 길리엄이 자신의 실수라고 미안해 한다. 나는 내 잘못이니까 괜찮다고 했다. 국도를 내려가는 나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 소리가 들렸을 리 만무하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서 편하게 잠을 청했다.

       
    ▲ 스쾃운동을 통해 점거한 깔 빈센스(CAL VINCENCE)라는 집
     

    우리가 하루 묵은 집은 스쾃운동(빈집 점거운동)을 통해 점거한 깔 빈센스(CAL VINCENCE)라는 집이다. 스페인 곳곳에서 스쾃운동을 통해 점거한 곳과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몇 년 전, 유럽의 스쾃운동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소개가 된 적이 있어서 대충 스쾃운동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빈집 점거운동 활발한 스페인

    7일 오전 11시 산 페레에서 출발, 어제 잘못 들렀던 꾸폰을 지나 다시 오르막이다. 쎄르베르(CEVER)에서 3시를 넘겨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했다. 제일 늦게 도착하는 나를 위해 아돌프와 빈센트가 앞에서 바람을 막아주며 이끌어 주었다. 아돌프와 빈센트의 페이스에 맞추어 페달을 밟느라 엄청 힘이 들었다.

    이날의 행선지인 아그라문트(Agramunt)에 도착했다. 이날은 숙소제공을 하는 공동체가 조직되지 않은 날이라 캠핑을 해야 한다.

    수로와 가까운 곳에 캠핑준비를 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수로에 수영을 하러 갔다. 물살이 엄청나게 세서 나는 들어갈 엄두를 못 냈다. 바이크 투어에 대비해서 두 달 동안 수영을 배웠지만 아직은 거의 초보 수준이다. 길리엄과 라덱, 이본이 옷을 다 벗고 수로에 점프를 한다.

    나는 물안경에 수영복까지 준비해서 왔지만 다들 다 벗고 뛰어들라고 해서 할 수 없이 다 벗고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물살을 따라 가다가 길리엄이 잡아 주었다. 무더위를 식히는 정말 환상적인 수영이었다.

       
    ▲ 아그라문트 근처에 캠핑을 하다.
     

    다 같이 저녁 준비를 하고 파스타 요리를 해서 먹었다. 저녁식사 후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일종의 진실게임을 했다. 서커스에 관심이 많은 에란, 일년의 반은 일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여행을 계속하려는 루시아. 돌아가면서 에코토피아 바이크 투어에 참여하게 된 동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모닥불 속에 하나둘씩 태워버렸다.

    나는 하루에 하나씩 꼭 물건을 놓고 다닌다. 산 페레 집에 캠코더 충전기와 배터리를 놓고 왔다.

    8일. 어김없이 9시에 기상해서 간단한 아침과 휴식을 취했다. 이날 행선지는 발라게르(BALAGUER)라는 곳으로 거리가 짧고 햇살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점심까지는 쉬기로 했다.

    육류 먹으려면 개인 돈으로 사야

    오후 5시가 가까워서 엄청 강한 햇살 아래 평평하게 길게 뻗은 국도를 따라 달렸다. 트럭이 지나갈 때 마다 자전거와 함께 몸이 흔들렸다. 자전거 옆을 지날 때 조금만 속도를 줄여주면 좋으련만 친절한 트럭과 자동차들은 별로 없다.

    서울에서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서울이야 자동차들의 천국에다가 교통지옥으로 불리니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들을 보기는 힘들다. 차도를 따라 자전거를 타다 보면 뭐가 그리 급한지 뒤에서 빵빵 크랙션을 울린다. 자전거를 앞질러 가는 듯 싶지만 어느 순간 신호등 앞에서 같이 마주하게 된다.

    발라게르에 저녁 8시쯤 도착했다. 강한 햇살 때문에 오른쪽 종아리에 피부 알러지가 생겼다. 2년 전 여름 선배와 함께 한달 동안 영호남과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을 한 기억이 있어서 약국에 가서 약을 사서 발랐다. 약국 옆에 마트가 보인다. 마트에 들어가서 소시지를 하나 샀다. 에코토피아 바이크 투어 기간 중에 같이 해먹는 음식은 채식이지만, 본인의 돈으로 고기나 다른 음식을 사서 먹을 수는 있다.

    발라게르 근처 에코농장 집 앞 잔디밭에 캠핑을 했다. 수영장도 있고, 부엌에 샤워장까지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에코토피아 바이크 투어는 가는 길에 이렇게 생태 공동체에서 숙박을 제공하기도 하고, 캠핑을 하기도 한다.

    9일은 달콤한 휴식을 할 수 있는 날이다. 시내를 한번 둘러보고 자전거도 수리해야 한다.

       
    ▲ 발라게르에 있는 생태농장에서 저녁을 먹고 있다.
     
     

    오랜만의 휴식이다. 일주일 정도 되니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가는 중이다. 마지막 남은 담배를 다 피웠다. 이번 여행을 통해 금연을 시도하려고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아침은 간단히 먹고, 시내로 나갔다. 자전거를 세워놓으면서 트레일러의 무게 때문에 뒷 기어부분에 이상이 생겨 수리를 해야 한다. 시내 자전거 수리점을 돌아다녔지만 토요일이라 수리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큰 도시에 가야 수리할 수 있다.

    발라게르는 특별할 게 별로 없는 작은 도시로 작은 강을 중심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된다. 신시가지는 새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다소 썰렁한 느낌이다.

    숙소로 돌아와서 일주일간의 비디오와 사진을 가지고 짧은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루시아와 엘리자베스의 연주음악과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깔았다.

    사람이 모이다 보면 감정이 부딪치는 법

    점심을 먹고 나서 간단한 회의를 했다. 바이크 투어에서는 이렇게 매일 하루 일정과 다음날 일정을 논의하고 음식 만드는데 필요한 기구 공동분배에 대해 함께 토론을 통해 결정한다. 여행을 이끄는 대장 같은 것은 없다. 모두가 다 대장이고 조직가여야 한다.

    공동으로 나누는 짐은 트레일러 두개이다. 더불어 이본의 아들을 태우는 키즈(Kids) 트레일러도 공동으로 나누어 자전거에 연결한다. 키즈 트레일러를 끌고 가는 문제로 빈센트가 이본을 감정적으로 자극했다. 여러 사람이 모이다 보면 감정도 생기는 법이다.

    하루 에코머니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각자의 사정에 맞게 일주일 단위의 에코머니를 내기로 했다. 난 하루 5유로씩 35유로를 내기로 했다. 우리 돈으로 치면 4만원 정도 되는 금액이다.

    10일에는 레이다(LLEIDA)로 이동해서 안티 지엠오(anti-GMO) 집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금단현상에 피로누적으로 저녁도 안 먹고 일찍 잠이 들었다. 집앞 마당에서는 저녁 늦게까지 파티를 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 일주일 간의 비디오와 사진, 루시아와 엘리자베스의 연주음악과 노래로 만든 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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