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책 의제 잡아먹는 정치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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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6월 21일 10: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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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대선후보간 ‘검증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야 한다는 충정어린 보수언론들의 ‘일침’에도 불구하고 사생결단식 우격다짐 양상은 이들에게 ‘걱정반 기대반’의 요즘 주가지수를 연상시킬 것이다.

    실현가능한 정책, 깨끗한 도덕성, 미래지향적 시대정신을 갖춘 지도자를 선택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서의 ‘후보자 검증’이 갖는 진정성을 굳이 깎아내릴 필요는 없겠으나, 이러한 과정이 그 목적에 부합하는 결과로 나타나겠는가 하는 데는 물음표를 찍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이 정치권의 검증공방에 ‘의혹’과 ‘심증’은 있었으나, ‘증명’은 되지 않았던 것이 태반이었다. 또 그 ‘의혹’의 수준이라는 것도 ‘숨겨놓은 자식(혹은 가족사)’, ‘의심스러운 사상’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거나, ‘자유민주주의 헌법’에서 보장된 권리 영역을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으로 ‘정죄’하는 것이었다.

       
    ▲ 19일 세번째 토론회를 마친 후 박근혜와 이명박 후보측은 각각 자신들이 승리한 토론회였다고 자평했다. ⓒ뉴시스
     

    물론 현재 이명박 후보에 제기되고 있는 BBK와 관련한 주가조작 논란과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위장전입 논란, 그리고 박근혜 후보와 관련된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비리의혹 등은 공직자 윤리와 도덕성 문제를 넘어 실정법 위반 여부와 그 동안 한나라당이 앞장서서 제기했던 ‘법치주의’의 영역이기에 ‘사법정의’차원에서도 선명하게 밝혀져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작 의혹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들의 검증 의지와 검증 가능성이다. 그나마 정책검증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던 ‘한반도 운하’논란의 경우, 이명박 후보는 청와대 연루설, 혹은 배후설을 내세우면서 검증을 비켜가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비리문제 역시 이미 십여 년 전에 수사가 완결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인격에 대한 문제인 양 논란의 성격을 전환하려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당차원에서 ‘국민검증위원회’까지 만들고 그 수장에 전직 대검중수부장을 앉혔다. 제보접수가 마감되는 21일까지는 약 100여건의 검증제보가 접수될 전망이며, 다음 달 10일까지 조사 작업을 마무리한 뒤 10~12일 열릴 예정인 검증청문회 때 결과를 밝힐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 한나라당의 검증공방 역시 과거 검증정치의 시나리오에서 크게 벗어날 것 같지 않다. 이미 당내에서도 짧은 일정으로 무엇을 밝히겠냐는 회의론이 고개를 드는 실정이고, 자칫 ‘날림검증’의 역풍을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법치주의가 ‘선진한국’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수사권이 없는 검증위원회의 한계가 드러난다면, 한나라당은 정치는 정치의 영역으로, 범법행위는 ‘공소시효’ 뒤에 숨지 말고 사법의 영역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앞서 잠깐 언급하긴 했지만, 이러한 검증정치는 ‘국민의 알 권리’라는 원론적인 차원을 넘어 두 가지 측면에서 ‘정치적’이지 못하다. 하나는 정책적 쟁점의 소멸이고 다른 하나의 이에 따른 정치영역의 축소이다.

    ‘정책이 정치를 낳는다(policy produces politics)’라는 격언이 있다. 정책을 둘러싼 지지층의 형성과 이러한 균열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경쟁이 정치행위의 기초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대운하’, ‘열차페리’, ‘감세정책’, ‘정부규제철폐’, ‘평화와 통일’과 같은 정책과 정치의 영역이 ‘범법여부’를 놓고 벌이는 이전투구에 가려 정작 쟁점화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정책토론회의 경우, 정책쟁점과 미래비전을 놓고 의미있는 논박이 오가곤 했지만, 그때뿐이다. 정책의 쟁점이 더 이상 확대재생산되지 못하는 것은 개발과 성장담론에 갇혀 21세기라는 전환적 시대를 읽지 못하고 있는 보수정치의 근본적인 한계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도덕성이라는 손쉬운 차별화 전략에 집중하고 있는 이들의 자승자박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검증정치’라는 한편의 정치쇼를 보고 있다. 당사자들에게는 대권으로 가는 치열하고 엄중한 하나의 ‘역사’로 여길 법도 하겠지만, 과거 정경유착을 통한 자본과 정치권력의 수혜를 받아왔던 이들이 서로의 묵은 때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 자체가 한편의 정치적 희극과 무엇이 다를까.

    이들이 이토록 검증에 목을 매달고 있는 데는 과거 ‘김대업 효과’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2002년의 패배가 김대업 때문이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면, 현재 벌어지고 검증공방은 아마도 이들에게 또 한 번의 비극을 선사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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