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발, 그리고 '악'소리 나는 고행
        2007년 06월 19일 11: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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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일. 이제 임시로 묵었던 집을 떠나 깐마스데우로 이동해야 한다. 짐을 정리하고, 좁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힘들게 자전거와 트레일러를 옮겼다. 집앞 공터에서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자전거에 짐을 실은 청년이 나타났다. 이스라엘에서 온 에란이다. 31일 저녁 늦게 공항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타고 시내로 와서 잠을 자고 우리와 합류하기 위해 도착한 것이다.

    깐마스데우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 바이크 투어 일정과 음식문제에 대해 논의 했다. 에코토피아 바이크 투어는 음식을 현지 시장에서 직접 구입해서 가스가 아닌 불로 음식을 해 먹는다. 문제는 스페인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불 피우는게 힘들고 마른 장작을 구하기도 힘들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이 여행용 가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6월 2일 스코틀랜드에서 온 빈센트, 깐마스데우 근처에 사는 아돌프, 폴란드에서 온 라덱, 슬로바키아에서 온 루시아, 엘리자베스가 합류했다. 아돌프와 라덱은 1주일 정도 바이크 투어 일정을 함께 할 예정이다. 루시아와 엘리자베스는 에코토피아를 마치고 모로코로 이동해서 아프리카로 자전거 여행을 더 할 예정이란다.

       
    ▲ 본격적인 출발에 앞서 회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길리엄, 에란, 라덱, 루시아, 엘리자베스, 빈센트, 마르코스
     
     

    첫 출발 인원이 예상보다 많아 졌다. 바이크 투어 사이트에 등록된 첫 출발 인원은 이본, 길리엄, 에란, 나까지 해서 4명 정도였다. 이제 본격적인 출발 준비를 해야 한다. 지도 구입과 복사, 각자 하루에 지불하는 에코머니를 정해야 한다.

    여기서도 돈 문제만큼 민감한 건 없다

    에코토피아와 바이크 투어는 에코레이트(ecorate)라고 하는 일종의 대안통화 시스템을 통해 물가수준과 생활수준이 서로 다른 참가자들이 각자의 형편에 맞게 하루 음식값을 지불하게 되어 있다. 1유로가 1에코가 되는데 1에코를 기준으로 1.5배를 내는 사람도 있고, 0.7배를 내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바이크 투어에서는 형식적인 부분이다. 참가자들이 토론을 통해 다른 결정을 할 수 있다.

    참가자들에게는 돈 문제만큼 민감한 문제도 없다. 회의를 통해 작년 바이크 투어 하루 에코머니가 5유로였고, 이것을 기준으로 5유로를 지불하는 안과 자신이 속한 국가의 에코레이트에 맞게 지불하는 안, 또는 자신의 형편에 맞게 지불하는 안 등으로 열어 놓았다. 그리고, 깐마스데우에서 머무는 동안의 음식값과 지도와 책 구입, 각종 필요 물품구입 비용으로 전체 참가자가 15유로를 내기로 했다.

    에란과 함께 지도와 책 구입, 복사를 위해 바르셀로나 시내로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알트에어(Altair)라는 여행 전문서점에 들러 지도와 스페인 여행가가 쓴 여행기 책을 구입했다. 여행만을 전문으로 하는 서점은 상당히 컸는데 세계 각국의 지도에서부터 여행 잡지, 책, 여행에 필요한 물품 등 다양한 것들을 팔았고, 배낭 여행자들의 여행정보 메모판도 눈에 띄었다.

    지도복사를 마치고 우리는 현재도 건축 중에 있고, 앞으로도 100년은 걸릴 거라고 하는 가우디가 참여한 그 유명한 성가족 성당과 쿠엘 공원을 둘러보았다. 성가족 성당은 직접 보니 웅장하다거나 세밀하다는 표현으로는 어딘지 부족한 정말 대단한 건축물이었다. 쿠엘 공원에서는 젊은 한국 관광객들을 만나 이번 자전거여행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해가 떨어질 무렵 서커스에 관심이 많은 에란은 선상 서커스 관람을 하고, 나는 깐마스데우로 돌아왔다.

    6월 3일 일요일은 깐마스테우가 일반에 개방되는 날이다. 아침부터 분주하다. 100인분이 넘는 점심식사를 준비하느라 2시간 넘게 싱싱한 채소를 다듬어야 했다. 이날은 볏집으로 생태 집짓기와 생태 건축에 대한 워크샵이 열렸고, 많은 방문객들로 깐마스데우는 붐볐다.

    6월 4일 이제 본격적인 에코토피아 바이크 투어가 시작되는 날이 밝았다. 아침 9시에 기상해서 차와 간단한 아침을 먹고 11시에 출발을 했다. 첫 출발부터 비포장 오르막길이다. 깐마스데우가 있는 산을 넘어 리폴레트(Ripollet) 근처 공원에서 ‘자전거 친구들(Amics de la Bici)’ 이라는 일종의 자전거 공동체 사람들이 합류해서 바이크투어의 하루 일정을 같이 했다. 오전부터 강하게 내리 쬐는 햇살에다가 물 사정이 좋지 않아 걱정이다. 이번 바이크 투어는 더위와 물 부족과의 싸움이라고 누가 말했다.

    자전거 여행의 몇 가지 원칙

    오후 3시쯤 작은 냇물이 흐르는 곳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 출발하면서 이본의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라덱과 빈센트가 남아 도와주기로 하고 일행은 세 개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전날 카메라 충전기를 잃어버린 나는 마르코스와 함께 사바델(SABADELL) 시내 상점들을 돌았지만 더 큰 도시에 가야 구입할 수 있다는 말만 들었다. 이본 일행이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이 지나서야 사바델의 작은 마을에서 우리와 합류 했다. 맨 선두 그룹은 한창 앞쪽에서 달리고 있는 중이다.

    에코토피아 바이크투어에서는 모든 참가자가 떼거리로 이동을 하지 않는다. 혼자서 또는 그룹을 지어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가야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갈림길에서 길을 알리는 신호이다. 화살표와 함께 크게 B자를 써서 바이크투어 루트임을 알린다.

    비가 내릴 경우를 대비해서 보통은 스프레이를 사용하는데 친환경적이지 않은 이유로 우리는 아스팔트위에 분필을 이용하거나 나뭇가지나 돌, 꽃 같은 것으로 신호를 만들기로 했다.

    사바델의 한 작은 마을은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이 사는 동네다. 마르코스가 바르셀로나에서 포르투갈까지 가는 이번 여행에 대해 한 할아버지께 설명을 한다. 할아버지는 집에서 시원한 냉수를 우리의 물통에 채워주며 격려해 주었다.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의 연속이다. 착시현상인지 평평한 길 같은데 오르막이다. 이 평평한 오르막을 지나면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첫날부터 아주 힘든 S자 오르막이다. 자전거를 끌고 가기도 하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힘들게 오르는데 마르코스의 체인이 끊어졌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체인은 끊어지고, 날은 어두워지고

    오르막이 끝날 즈음 날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둥근 달이 우리를 환히 밝히고 있다. 자전거의 라이트를 켜고 내리막을 내려가는데 이본과 라덱이 보인다. 이본의 타이어가 두 번째 펑크를 냈다. 두 번이나 펑크가 난 걸로 봐서 휠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둠 속에서 내리막을 달리다가 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내리막을 달릴 때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빠른 속도로 내려가면서 조금만 방향이 틀어져도 트레일러가 돌아가서 엎어지는 수가 있다. 오르막은 오르막대로 트레일러가 뒤에서 잡아당겨서 힘들고, 내리막에서도 트레일러 때문에 조심스럽게 내려올 수 밖에 없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용 자전거 가방(페니어 가방)과 트레일러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사진기와 캠코더, DV 테잎 등 짐이 많아서 트레일러를 선택하기는 했는데 트레일러 자체의 무게에다가 줄인다고 줄인 짐도 남들보다 많았다. 바퀴가 한개인 트레일러인지라 중심을 잘못 잡으면 트레일러가 틀어져 버리기 일쑤다. 다들 ‘crazy luggage’라고 놀려댔다.

       
    ▲ 르 파르데스(Les RePardes)농장
     

    자정을 한참 넘긴 후에야 르 파르데스(Les RePardes) 농장에 도착했다. 앞서 도착한 일행이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허기진 배를 채웠다. 집은 현재 공사 중이라 벽이 여기저기 뚫려 있다. 그래도 텐트 치지 않고 편하게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악’소리 나는 전날의 오르막을 마친 다음날(5일) 아침 루시아가 바이올린을 켜며 모닝콜을 한다. 7시 30분밖에 안됐다. 보통은 9시가 기상인데 집이 공사 중이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 했다. 빵으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농장주인인 에스테르(Esther)의 농장 설명이 있었다. 2년 전부터 이곳에서 생태농장을 하고 있었고, 대안에너지를 연구하는 곳이다.

    오전 11시를 조금 넘겨 우리는 다시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내려왔던 길을 조금 올라가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물라(Mula) 라는 작은 마을을 지났다.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스페인 곳곳에는 중세시대 때 지어진 건물들이 많아서 마치 영화 속 중세시대에 온 느낌이다.

    오후 3시를 넘겨 중간 정도 규모의 도시인 만레사(MANRESA)에 도착 점심준비를 했다. 유기농 전문상점에서 점심을 위한 식품을 구입했다.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일단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시청 청사 앞 공간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빵과 콩, 고추, 올리브유를 곁들여 먹었다. 아직 채식에 익숙지 않아 배를 채우는데 급급하다.

    여행시작 보름 전에 넘어져서 무릎을 다쳤는데 첫날의 무리함이 통증을 계속 유발 시켰다. 쉴 때는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마르코스는 체인이 끊어져서 만레사에서 우리와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 농업학교에서 바이올린과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루시아와 엘리자베스. 밤하늘에 울리는 바이올린과 기타소리가 지친 심신을 달래주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비가 그쳤다. 이날 묵기로 한 농업학교로 향했다. 농업학교에 도착한 후에 나는 카메라 충전기를 구입하기 위해 시내의 사진전문 상점으로 갔다. 작은 전용충전기는 없었고, 거의 모든 가전회사의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멀티형 충전기 밖에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거금 7만원을 들여 충전기를 구입했다.

    농업학교는 2년 과정으로 1년에 1,000시간씩 2,000시간을 이수하면 일종의 수료증을 받는다. 정부 소유이고, 정부에서 모든 것을 지원해준다. 1년에 약 40명 정도가 과정에 참여하고 이곳 과정을 마친 사람들은 직접 생태농업을 하거나 농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다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고 하니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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