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 잡사상, 전체주의 잡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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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6월 18일 07: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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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80년대 소련의 몰락을 분석한 자신의 논문에서 “다원주의는 자본주의 잡사상”이라고 규정한 바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다원주의를 자본주의 잡사상 취급하는 이런 관점이야 말로 고루한 ‘전체주의의 잡사상’이다.

    최근 615선언을 기념하는 소위 민족 단합대회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귀빈석 참석 문제로 파행을 겪었다. 북조선 측이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귀빈석 참석을 허용할 수 없다고 해서 대회를 파행으로 끌고 간 것이다.

       
      ▲ 2005년에 열린 5주년 6.15 민족통일 대축전
     

    다원주의 시스템에 대한 북의 무지

    이 사건은 우선 다원주의 시스템에 대한 북측의 무식한 소견을 드러냈다. 원래 ‘사상의 자유’란 한 개인이 자기 머릿속에서 혼자 생각할 자유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한 개인이 자기 혼자 머릿속에서 벌이는 사상의 여행은 누가 알 수도 없고 처벌도 불가능하다.

    사상의 자유가 중요한 까닭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출발한 사상의 여행이 조금씩 주변의 동의를 얻어 결국 사상의 조직이 형성되고 그것이 점차 성장을 거듭한 결과 거대한 정치결사로 발전해 궁극적으로 기존 권력을 대체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사상’이란 미래 대체 권력의 씨앗이고 따라서 사상의 자유는 권력의 기초를 만들기 위한 운동의 자유를 뜻한다. 본질적으로 ‘권력의 자유’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야당’이 존재해야 비로소 제도화 될 수 있다. 내용과 형식의 두 측면에서 모두 실질적인 야당의 성립은 이런 맥락에서 사상의 자유에 대한 진정한 표현이다.

    북조선은 아시다시피 야당이 없다. 사상의 자유가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야당’의 존재가 필수적인 한국적 체제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야당의 중요성에 대한 천박한 이해수준이 스스로 중요시 하는 정치행사를 두 동강 낸 것이다.

    6.15선언에 대한 이해 부족

    두 번째, 이 사건은 소위 민족 단합의 주체들이 갖고 있는 6.15선언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냈다. 6.15선언 이란 본질적으로 <국가연합에 대한 합의>로 요약된다. 이른바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국가연합 사이의 공통점이란 국가연합을 뜻한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그리고 국가연합이란 어디까지나 ‘분단상태’이지 ‘통일상태’는 아니다.

    어떤 논자들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니 ‘연방연합제’니 하는 정신 산만한 출처불명의 개념들을 자꾸 만들어내지만 논리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래서 결국 어디까지가 ‘통일’이고 어디까지가 ‘분단’이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방과 외교가 통합되면 말 그대로 ‘통일’이지만 단순히 경제 사회적인 통합에 그친다면 그것은 평화적 ‘분단’이지 ‘통일’은 아닌 것이다. 군대가 둘로 갈라져 있는 한 언제든 내전 가능성이 상존한다. 사실 개성 공단은 남북한 사이의 FTA인데 ‘국가연합’이란 이 ‘남북한 FTA’를 전국적으로 확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니 연방연합제니 하는 말들은 이런 논리적 귀결-즉 국가연합이 결국은 단기적으로 분단의 유지-을 은폐하고 싶어서 만들어낸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평화적 분단에 대한 합의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특정 야당을 배제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도대체 615선언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축하를 하든지 말든지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심지어는 나도 아는데.

    민족주의인가 전체주의인가

    셋째로, 이 사건은 북조선의 지도이념이 결국 민족주의가 아니라 민족이라는 포장지에 쌓인 전체주의임을 드러냈다.

    사실 나는 민족주의자들이 ‘민족단합대회’를 하건 ‘민족 회식’을 하건 별로 관심은 없다. 그런데 민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민족주의자들이 같은 민족인 한나라당을 ‘차별’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상당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개념상 한나라당도 분명히 민족의 일원이다. 정주영도 같은 민족이고 전두환도 같은 민족인데 왜 누구는 차별한단 말인가?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의 민족 개념을 갖고 있는지 그것이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일본식민지 시절 독립운동가 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은 “민족에 이익이 되면 그것이 정의이고 민족에 이익이 되면 그것이 진실” 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민족주의에 관한 가장 잘된 정의 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북측은 결국 북한 군부에 우호적인 민족만 민족이고 적대적인 민족은 민족이 아니라는 시각을 드러냈다. 사실 민족주의라는 개념 자체는 이런 차원에서 원천적인 한계가 있다. 북한의 민족만능주의자들이 볼 때도 나 같은 놈이랑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이 별로 기분 좋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북조선이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는 50년 동안 북한 권력내부의 정치지형이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부분은 사회 하부구조의 변화와 맞물려 일상적인 상부구조의 변화과정을 담아내야 한다.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사회 전체가 정체되는 것이다.

    북한군부는 이제 다원주의가 잡사상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야당이 존재하고 선거를 통해 국민의 다양하고 대립적이며 분산된 의지가 의회 안에서 수량화된 역학관계로 그대로 반영되는 체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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