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재미없다. 정치인 토론 맞아?"
        2007년 06월 15일 02: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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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민주노동당)
     

    보통 정책토론은 별로 재미가 없다. 민주노동당 정책토론은 특히 그렇다. 어제 통일.외교.정치 분야 TV토론도 그랬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일반 국민들은 세 후보의 정책에 대한 배경지식이 거의 없다. 언론이 거의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보들은 서로의 정책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걸 전제로 토론을 할 수밖에 없다. 작품도 읽지 않은 사람 앞에서 작품에 대한 비평과 메타비평을 해대는 격이다. 재미있을 까닭이 없다.

    또 세 후보의 정책이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누가 각론을 좀 더 많이 갖고 있느냐, 체계적인 접근을 하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 근본적인 이견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각론의 차이는 어지간한 전문가가 아니고선 알 수도 없고 또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끝으로 정책이 전혀 인격화되어 있지 않다. 정치인들의 정책토론은 학자들의 토론과는 다르다. 학자들은 정책의 타당성을 논리적으로만 따지면 된다. 그러나 정치인은 ‘바로 나이기 때문에 그 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예를 들어 ‘불도저’ 이명박 전 시장은 정말 대운하를 파버릴 것 같고(그래서 나라가 엉망이 될 것 같고), ‘준법주의자’ 박근혜 전 대표는 정말로 ‘불법’ 파업과 시위를 엄단해 GDP를 높이려 할 것 같다(그래서 나라가 심하게 답답해질 것 같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후보들은 이런 게 부족하다. 입장차가 있는 정책도 아니요, 정치적 개성이 각인되어 있는 정책도 아니라면, 권영길 후보의 말대로 나중에 후보로 당선되는 사람이 잘 모아서 활용하면 그만이다.

    어제 토론에선 이런 문제점에서 비껴나 있는 이슈도 있었다. 심상정 후보가 권영길 후보에게 던진 ‘친북당’ 질문이다. 일반 국민들은 민주노동당을 ‘친북당’이라고 이해 내지 오해하고 있다. 또 이 문제를 보는 세 후보의 입장도 갈리는 것 같다.

    심 후보의 질문에 대한 권 후보의 답은 "친북정당이라는 공격에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토론 마무리 발언에선 "북의 혁명열사릉을 함께 방문하자"고 다른 후보들에게 제안했다. 민주노동당의 역사와 자신의 운동사를 투영시켜 가며 그렇게 말했다. ‘정책’을 ‘인격화’한 것이다.

    아마도 권 후보의 이런 말들과, 그 말들이 불러일으키는 연상효과는 일반 국민들의 의식 속에 어렵지 않게 기입됐을 것이다. 어제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정책토론을 한 사람은 권 후보가 유일해 보였다.

    어제 토론에서 아쉬웠던 건 이런 것이다. ‘친북당’ 같은 이슈에 대해 왜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토론 비슷하게 하더라도 마치 정치적 진공상태에서 하는 것처럼 논리적인 답을 찾는 것에서 머무를까. 정치인들의 토론이 이래서 되는 걸까.

    ‘친북당’이 이슈라면 ‘친북당’이 과연 문제인지, ‘친북당’으로 비춰지는 이유가 뭔지, 이게 잘못된 것이라면 누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지, 후보들은 어떤 당내외 정치를 통해 이를 극복할 것인지, 등등에 대한 구체적인 수단과 비전이 제시돼야 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접근해야 할 다른 이슈들도 있다.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을 ‘민주노총당’이라고 한다. 또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의 대표적인 정책상품인 ‘부유세’의 종적을 궁금해할지 모른다. 한미FTA 협정문이 공개되면 거대한 반대의 불길이 타올라야 할텐데 그럴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고 있다.

    말해놓고 보니 대개 정치.경제 분야 이슈들이다. ‘6.15 공동선언’ 7주년에 맞춰 통일.외교 분야 토론회를 갖는 건 충분히 존중할만한 기획이다. 그러나 수용자의 요구와 취향도 고려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처럼 TV에 얼굴 비칠 기회를 좀체 갖기 힘든 정당은 더욱 그렇다.

    어제 토론은 KBS, MBC, SBS, YTN 등 4개 방송사가 생중계했다. 토론시간이 90분이었으니 4사를 합하면 총 360분간 민주노동당의 독무대가 마련된 셈이다. 지난해 민주노동당이 TV 뉴스에 등장한 시간의 총량이 이보다 얼마나 더 많은지 따져봄 직 하다. 앞으로 몇 차례나 더 이런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광고비로만 쳐도 어마어마한 기회를 어제 1회 소비한 셈이다.

    한나라당이 경제분야 토론회를 가장 먼저 한 것은 괜한 것이 아니다. 물론 민주노동당이 통일.외교 분야 토론회를 가장 먼저 한 것도 괜한 것은 아닐 것이다. ‘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걱정스러운 면도 있다. 한나라당 토론회보다 더 재미없는 민주노동당도 또 다른 걱정거리다. 

    끝으로 토론회의 형식과 관련해서도 사전에 모든 것을 꽉 짜놓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에서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좀 더 자유롭고 역동적인 형식 실험을 시도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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