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언론 ‘시사저널’ 침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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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6월 14일 01: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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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진의 삼성 관련 기사 삭제가 불씨가 되어 장기 파업과 직장폐쇄로 번진 ‘시사저널 사태’가 오는 15일이면 꼭 1년을 맞는다. 언론시민단체와 언론학자들은 시사저널 사태가 ‘자본권력 시대’의 언론종사자들을 향한 경고음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언론은 여전히 무관심하기만 하다. 시사저널 사태 1년이 언론계에 남긴 과제는 무엇일까.

    금창태 시사저널 사장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2006년 6월15일이었다. 삼성 이순동 부사장(현재 전략기획실 사장)이었다. 그는 시사저널 이철현 기자가 이학수 삼성 부회장의 사장단 인사문제를 취재하고 다니는데, 기사가 나가면 명예훼손이므로 묵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편집국. 이 기자도 삼성 관계자들과 만나고 있었다. 그들은 취재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기사를 쓰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 기자가 당시 삼성 관계자들의 요구를 압력으로 느꼈는지는 불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경영진과 데스크, 일선기자에게 동시다발적인 접촉이 이뤄졌다는 것과 그 효과가 아주 위력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기자는 삼성 관계자들과 얘기가 끝나는 대로 사장실로 올라오라는 호출을 받았다.

       
       
     

    사장이 기사 삭제 지시에 불응한 기자와 편집국장에게 알리지 않은 채 인쇄단계에서 기사를 삭제한 초유의 사태는 이렇게 벌어졌다.

    당시만 해도 기자들은 사태가 쉽게 정리될 것으로 생각했다. 자체 기구인 기자협의회장에서 초대 노조위원장을 맡게 된 안철흥 기자도 “그 전에 삼성 관련 기사를 작성할 때 금 사장이 문제를 제기했던 적이 있었지만 당시까진 협의해 잘 풀어왔다. 이번 사태도 사장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면 다들 사태가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기자들의 판단과는 달리 금 사장은 항의의 표시로 제출한 이윤삼 편집국장의 사표를 하루만에 수리했다. 같은 이유로 편집회의에 불참한 팀장들은 차례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 시사저널 사태의 장기화를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팀장을 포함한 기자 23명 전원은 결국 올해 1월 파업을 선택했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지만 기자가 파업을 결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시사저널 기자들이 파업을 결정한 이유는 ‘시사저널이 침묵하면 아무도 말할 수 없다’는 언론인으로서의 자긍심 때문이었다. 회사는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그러나 시사저널 사태는 MBC <PD수첩>(2월6일)에서 다뤄지기 전까지 주류언론에서 한번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언론사 직장폐쇄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조선·중앙일보와 방송3사 등 메이저 매체들은 침묵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방송기자는 “시사저널 사태를 취재해 보도하려고 해도 데스크에서 잘린다. 같은 기자로서 시사저널 기자들에게 미안하다”는 자조 섞인 고백을 털어놓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언론사들이 삼성의 눈치를 본다는 얘기도 나온다. <PD수첩> 강지웅 PD는 시사저널 기자들이 지난 4월20일 파업 100일 문화제에서 배포한 노보에서 “삼성을 취재한 경험이 있는 수많은 기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대다수가 거절했다”며 “‘아무리 음성을 변조하고 얼굴을 가려도 삼성의 기술력으로는 다 밝혀낸다’는 이유였다”고 밝혔다.

    이처럼 언론계의 의도적인 외면이 여전한데다 지지부진한 회사와의 협상으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기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중되고 있다.

    기자들은 5개월 째 월급을 받지 못해 생활에 곤란을 겪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족이 투병 중인 기자도 3∼4명에 이른다. 노조에서 후원기금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시사저널 사태의 전망이 이처럼 비관적으로 흐르면서 이 사건이 언론계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 사건이 어떻게 매듭지어지는가에 따라 미래의 언론환경에 대한 상징적인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회사가 제2창간 정신으로 경영진을 교체하지 않으면 회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의하고 노조에 사표를 일임한 상태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조선일보나 KBS에서 경영진에 의한 기사삭제와 직장폐쇄가 이뤄졌다면 이렇게 조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반인들이야 그렇다고 해도 동업자인 언론들이 너무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자본권력자들이 이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처리할지 시사저널 사태를 통해 면밀히 지켜보지 않겠느냐”며 “언론계가 이 문제를 언론자유 수호차원에서 다루지 않으면 기자들이나 저널리즘에 심각한 위험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 김상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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