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민련 시각, KKK단과 무엇이 다른가
        2007년 06월 12일 05: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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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이하 ‘범민련’) 조직위원회는 자신들의 기관지 <민족의 진로>에 「실용주의의 해악에 대하여」라는 글을 게재했다. 그런데 그 글에 좀 이상한 게 있다.

    “이남사회에는 갈수록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되고 있습니다. 외국인노동자 문제, 국제결혼, 영어만능적 사고의 팽배,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유학과 이민자의 급증, 극단적 이기주의의 만연, 종교의 포화상태, 외래자본의 예속성 심화, 서구문화의 침투 등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유심히 살펴보면 9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사회에 신자유주의 개방화, 세계의 일체화와 구호가 밀고 들어오던 시점부터 이러한 문제들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형은 달라도 결국은 이남사회가 민족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민족문화전통을 홀대하며, 자주적이고 민주적이지 못한 상태에서 외래적으로 침습해오고 그것이 또한 확대재생산되는 구조 속에서 이 문제들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위 글에서 범민련은 세 가지를 말하고 있다. 첫째, 외국인노동자나 동성애의 증가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만연’이나 ‘외래자본에 대한 예속성 심화(범민련 인용문에 한글맞춤법에 맞지 않는 비문이 많아 뜻이 통하게 고친다)’와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있는 부정적 현상이다. 둘째, 이런 현상은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1990년대부터 나타났다. 셋째, 이 현상의 원인과 본질은 민족성과 민족문화 전통을 홀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가 들어오기 전의 우리 민족 문화에는 외국인노동자(이주민)나 동성애가 없었을까?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왕 능비(陵碑)는 그의 조상이 흉노라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네 번째 큰 성씨인 경주 김씨는 한반도 원주민이 아니라, 남하한 이주 정복민의 후예이고, 그들의 먼 친척은 중국 감숙성이나 헝가리에 살고 있는 셈이다.

    현재의 한반도 국가와 비슷한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 고려의 『고려사』에는 한족(漢族), 여진족, 몽골인, 일본인 등 238,225명의 귀화인이 기록돼 있다(박옥걸, 「고려시대 귀화인 연구」, 1996). 사서에 기록되지 않은 귀화인이 훨씬 많았을 것이라는 점과 당시의 인구가 200만~300만이었음을 감안하면 고려의 다민족성은 현재보다 컸으면 컸지 작지는 않다.

    정복민이든 귀화인이든 우리 역사에는 이주민의 유입이 끊인 적이 없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성씨의 46%가 귀화 성씨이고(박기현,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2007), 범민련 10기 의장단 이름만 살펴보아도 중국계 귀화 성씨가 눈에 띈다.

    북한 학계가 주장하는 대동강 5대 문명설이나 한반도 독자 인류 발생 진화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역사 기록은 다양한 이주 혈통과 문화가 ‘한민족’을 이루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범민련의 외국인노동자 질시는 북미에 조금 먼저 들어갔다는 명분으로 흑인을 몰아내려 하는 KKK단의 관점과 비슷하다.

    우리 역사는 신라 혜공왕, 고려 목종과 공민왕, 조선 세종의 며느리가 동성애자였다고 전한다. 화랑이 동성애를 했다 하여 부끄러이 여긴 것은 『성호사설』 같은 조선 후기 유교에 이르러서였는데, 지배계급이 동성애를 배타시하는 상황에서도 사당패와 같은 민초들 사이에서는 그러한 풍속이 계속 유지되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조선시대에조차도 유럽 기독교 문화에서와 같이 극악한 동성애 탄압은 없었다는 점이다.

    문화의 변천에 따라 동성애가 늘거나 줄기도 하지만, 어떠한 인류 사회에서든 유전적 남성의 4%, 유전적 여성의 2%는 완전한 동성애자로 태어난다. 인간 노동력에 의존하는 유목사회나 농경사회가 동성애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만한 규모의 인간 집단을 배격하거나 격리하지 않았던 것도 분명하다. 동성애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는 기독교나 파시즘 같은 획일주의에 의해 나타났다.

    동성애나 양성애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런 지향을 가졌다거나 그걸 권장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빨간색이나 파란색을 좋아한다고 남들에게 같은 색을 좋아하도록 강요하거나 다른 색 좋아하는 사람들을 못살게 굴지 않는 것과 같은 말일 뿐이다.

    이렇게 살펴보다 보니 범민련이야말로 우리 민족사를 너무도 모르는 것 같다. 범민련 조직위원회 글의 필자는 “우리는 반만년 한민족”이라는 초등학교 교과서나 “외래사상에 물들지 않은 민족전사”라는 문구는 달달 외웠지만, 우리 민족이 실제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별로 공부하지 않은 것 같다. 일탈이나 특이라는 뜻에서 보자면 외국인노동자와 동성애를 이상하게 여기는 범민련의 견해야 말로 민족사적 변태다.

       
      ▲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은 ‘열등민족’과 사회주의자와 장애인과 동성애자를 박멸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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