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파에 갇히고 계급에 동원된 '여성'
        2007년 06월 12일 07: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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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이 여성주의에 대해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대선예비후보는 11일 창당 이래 처음으로 당내 여성주의를 성찰하는 ‘민주노동당의 여성주의를 말한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오후 3시부터 열린 토론회는 토론자를 제하고 10여명 남짓한 인원이 참석한 작은 규모의 자리였지만, 공감과 소통으로 이어지는 ‘수다’ 덕분에 예상된 시간을 초과하며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 사진=레디앙 김은성 기자
     

    심상정 후보는 인사말을 통해 “이번 대선에서 저를 비롯해 다른 정당 내에서도 여성 후보가 출마해 여성 후보 간 경쟁 구도가 형성됨으로써 여성들의 표심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면서 ”이번 대선이 후보 개인의 능력이나 이미지 문제를 넘어 민주노동당의 여성성이 국민들로부터 검증받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심 후보는 ‘민주노동당의 여성주의’에 대해 △ 조직(정파)의 이해에 갇힌 여성주의 △ 계급문제, 민족문제에 동원되는 여성주의 △ 여성에 갇힌 여성주의 △ 슈퍼우먼을 요구하는 여성주의 △ 여성 대중 조직화 노력 없는 여성주의로 진단했다.

    그러면서 심 후보는 "민주노동당이 여성의 정당임에도 다수의 여성들이 지지하지 않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여성의 지지 실패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면서 “그간 비례대표 1번으로서 다른 남성들에 비해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었으나, 여성주의 실천에 얼마나 힘을 보탰느냐에 대해선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고백했다.

    심 후보는 “여성주의를 내걸면 성공한 정치인이 없다는 말처럼 당내에서조차 득표 전략에 도움이 안 될 거라는 지적이 많다. 또 남성들은 물론 여성들에게도 자기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에 (여성주의는)불편하다”면서 “그러나 진보는 불편한 것이며, 불편한 것 때문에 여성주의를 버리자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자기 배반”이라고 강조했다.

    심 후보는 당내 여성주의를 강화시키기 위한 대안과 관련해 △ 여성할당 확대, 성평등 문화 확산, 여성역량강화 등의 사업 대폭 강화 △ 여성노동권 강화, 돌봄 노동의 사회화, 빈곤여성의 생존권 대책 등 여성 대중에 대한 정책 마련 △ 비정규여성, 농민여성, 장애인여성 등 각 분야의 다양한 여성 대중 주체들과의 네트워크 강화 등을 제시했다.

    민주노동당은 과연 여성의 당인가?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이선희 민주노동당 1기 여성위원장은 발제문을 통해 "민주노동당은 과연 여성의 당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여성당직자 폭행사건 ▲여성최고위원 육아문제 논쟁 ▲서울시장선거 인터넷 홍보영상 사건 등의 사례를 근거로 제시하며, "민주노동당은 결코 여성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그는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당 사업을 재평가하고 여성당원들이 활동할 수 있는 당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당 부설로 ‘진보여성(교육)센터’를 운영해 여성 의제 개발과 교육, 인적 풀을 형성하자”고 제안했다.

    민주노동당 여성위원장 박인숙 최고위원은 "여전히 당의 이미지가 남성적이고 무겁고 여성 정책에 대한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못해 일반 여성 유권자의 호감을 덜 받고 있다”면서 “이번 대선 준비위원회에서도 20~30대 여성을 표적으로 하는 조직 전략을 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최고위원은 "그간 여성 운동이 상층 중심, 엘리트 중심, 소수 선진 활동가 중심이었다면 민주노동당의 여성주의는 노동자 농민 등 기층 여성을 중심으로 한 대중적 여성 세력화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이제는 할당제라는 제도를 넘어 인식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지속적인 문화 운동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계급정치와 여성주의, 동행하기 어렵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당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민주노동당을 사랑한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민주노동당의) 노동의 정치 계급 정치와 여성주의가 함께 갈 수 있는가?"라는 도발적 질문을 던졌다.

    신 교수는 "계급의 정치는 하나, 동질성, 통일을 강조하는데 비해 여성주의는 차이와 다름을 주장하는 성향이 있어 여성주의가 계급 정치에 끼어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여성주의자를 포함한 일반 시민들은 대의를 위해 소수를 무시하고 통일의 명분으로 다른 목소리를 억누르는 폭력과 거대 담론의 추상적 명분을 내세운 계보들의 전투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성, 연령, 작업, 학벌, 소득, 지역 등 다양한 차이로 인해 고통 받는 것에 대해 격려 받고 존중받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당원이기도 한 김기선미 여성연합 정책국장은 “심상정 의원이 민주노동당에서 여성주의를 표방하고 대선 주자로 나와 여성 당원이 뭉칠 수 있는 큰 계기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제가 확산되지 못하는 민주노동당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면서 "왜 민주노동당은 ‘여성’을 대표하지 못하는가?”라고 따져물었다.

    여성 당원이 행복하지 않는 정당이 진보 정당일까?

    그러면서 김 국장은 “여성 당원이 행복하지 않는 정당은 진보의 진정성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여성 당원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성찰하며 민주노동당의 정책과 의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지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노동 운동 조직 내 성인지적 조직 활동과 문화가 부족해 여성이 활동하기 어렵다"면서 "조직의 구조적 문제를 보고 그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선 여성의 눈으로 조직을 봐야한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의 인상에 대해 민주노총과 구분을 못하고 투쟁, 점거 등 어둡고 남성적이다고 말한다"면서 "현실이 너무 처절해 웃지 못하는, 이 땅의 민중을 대변하려니 어둡고 처절할 수밖에 없지만 진보란 매력적인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이며, 당이 좀 더 희망적인 컨셉을 만들어 가기 위해선 여성 친화적 문화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사무금융연맹 김금숙 여성국장은 여성 활동가들의 분발을 요구했다. 김 국장은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모성, 육아 등 남성과의 갈등 유발이 적은 선에서 비교적 쉽게 동의가 이루어지나 성과 학력을 이유로 채용ㆍ배치ㆍ교육ㆍ승진으로 이어지는 고용차별 해소 등 남성 직원들과의 이해관계 대립이 발생하는 여성 의제는 매우 소극적으로 인식하며 의제로 선정되는 것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여성활동가들도 더 분발해야

    그러면서 김 국장은 "남성 중심의 노동 운동 조직 속에서 우리 여성 활동가들이 할 일이 너무 많아 아직은 행복해선 안 된다"면서 "오히려 우리 자신들이 얼마나 여성의 역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했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영미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의 여성주의에 여성 농민이 있는가?"라며 질문을 던졌다

    한 위원장은 "전여농은 주류 농민 운동판에서 느끼던 소외를 민주노동당의 여성주의를 성찰하는 토론회에도 느낀다"면서 "생산수단으로부터의 배제, 교육과 기술 정보로부터의 소외, 법적 지위로부터의 소외 등 여성 농민들의 지위는 항상 언제나 소외된 지역에 남아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여성농민은 주류 농민 운동의 남성중심적 사업 결정과 가부장적 사업 작풍 속에서 항상 부차적 과제로 밀려 농민으로서, 여성으로서 동등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민주노동당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여성에 대한 접근, 여성농민당원에 대한 접근이 세심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할당제를 넘어선 고민 필요

    토론회를 지켜 본 심재옥 최고위원은 "당내 여성주의에 대한 논의가 여성위원회가 아닌, 당 차원의 공식적 단위에서 이뤄져 보다 공개적으로 논의가 활성화 돼야한다"면서 "단순히 여성할당제 실현을 넘어 여성 정치인이 많이 배출되는 상황과 달리 보통 여성의 삶이 왜 점점 더 힘들어 지는지 그 모순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 최고위원은 "삶이 점점 고달파지는 일반 여성들에게 민주노동당이 그 고통을 풀어주는 당이 아닌 것이 불행하다"면서 "나 또한 최고위원 시절 육아 문제로 힘들 때 그것이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며 꺼내놓고 얘기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많이 고통스러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보통 여성들이 겪는 고통의 지점들을 민주노동당이 감싸 안으며 그 고통을 일반화 공론화 시킬 수 있는 다양한 소통의 창구와 구조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김은희 사무국장은 "오늘 레이스가 달린 민소매 원피스를 입으면서 과연 민주노동당 행사에 갈 때 이런 옷을 입고 가도 되는지, 이상해 보이지는 않을지 스스로 검열을 하고 망설였다”면서 "여성주의정치 세력화 운동을 하는 저를 포함해 2030 여성 유권자들에게 민주노동당이 왜 가깝게 다가서지 못하는지, 더 나아가 왜 일반 대중에게 어필하는 정당이 되지 못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민소매 원피스 입고 민주노동당 행사에 참석해도 될까?

    한편, 이날 ‘청일점’으로 참석한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선전홍보부장 김영재씨는 "실제 노동 운동 내 현실은 남성 중심적이다"며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고 참석 소감을 밝혔다.

    김씨는 "술잔을 돌리며 친밀감을 확인하는 남성 중심의 술자리 문화가 만연해있고, 또 여전히 조직 내 일부이긴 하지만 성매매 업소나 룸살롱 등을 드나드는 남성들이 있다"면서 “그런 조직문화를 여성 개인이 혼자 거부하며 돌파하기는 쉽지 않다"고 ‘현실’을 전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오히려 여성들이 조직에 적응하며 살아남기 위해 여성성을 버리고 더욱 남성화되는 불가피한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면서 "쉽진 않겠지만, 노동 운동을 포함한 진보운동 내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과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토론회는 김진화 민주노동당 대전시당 전 여성위원장 사회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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