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톨스토이, 고슴도치라 생각한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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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6월 09일 09: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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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크게 보면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모든 것을 하나의 핵심적인 비전, 즉 명료하고 일관된 하나의 시스템에 관련시키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이런 시스템은 모든 것을 조직시키는 하나의 보편 원리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런 시스템에 근거해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생각하며 느낀다.

    다른 한 부류는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 목표들은 흔히 서로 관계가 없으며 때로는 모순되기도 한다. 물론 심리적이고 생리적인 이유에서 사실적인 관계를 갖지만 도덕적이고 미학적 원리에 근거한 관계는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고 행동지향적이며, 생각의 방향을 좁혀가기보다는 확산시키는 경향을 띤다.”(p.7~8)

    이사야 벌린, 우리에게는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로 잘 알려진 저자는 전자를 고슴도치형 인간, 후자를 여우형 인간이라고 명명한다. 그에 따르면 플라톤, 단테, 파스칼, 헤겔,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입센, 프루스트가 고슴도치형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 셰익스피어, 몽테뉴, 에라스무스, 몰리에르, 괴테, 푸슈킨, 발자크, 조이스는 여우형이다.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그렇다면 톨스토이는 어느 쪽에 속할 것인가? 이사야 벌린은 이 질문으로 『고슴도치와 여우』를 시작한다. 곧 “톨스토이가 일원론자인지 다원론자인지, 결국 톨스토이가 하나의 비전을 추구했는지 다양한 비전을 추구했는지”(p.11)를 묻는 것이다.

    이사야 벌린은 톨스토이의 작품 중 가장 논란이 많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과 평화』를 텍스트로 삼는다. 『전쟁과 평화』는 문학적 작품성은 높지만 작가의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언설이 결정적인 흠으로 지적되는 작품이다.

    곧 톨스토이의 장점과 단점이 다 담겨져 있는 셈이다. “젊은 지식인들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특징답게 설익은 지식으로 가르치려는 (그 결과로 예술적 가치를 손상시키는) 톨스토이의 성향 탓…중략…일탈의 전형적인 예” “톨스토이가 훌륭한 사상가라기보다 훌륭한 작가라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천만다행이다” 등등.(p.19) 하지만 이사야 벌린은 접근을 조금 달리한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왜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는가를 묻기 때문이다. 달리 말한다면 『전쟁과 평화』를 톨스토이의 진정한 작품으로 말하고자 한다.

    결론을 줄여 말한다면, 톨스토이는 스스로를 고슴도치라고 믿었던 여우다. 근원적인 질문에 근원적인 대답을 원했지만 그 질문과 대답은 늘 구체적이고도 세부적인 것들 속에서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톨스토이의 모습을 한낱 한계라는 짧은 단어로 규정해 버리면 안 된다.

    그것은 자아와 세계에 대한 작가의 정직함이자 성실함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자아와 세계를 묻지 않는 작가가 그 얼마나 많은가?

    “톨스토이 식으로 말하면 삶을 만들어가는 진정한 구성 요소인 ‘생각, 지식, 시, 음악, 사랑, 우정, 증오, 열정’을 기록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할까?”(p.45)

       
      ▲『고슴도치와 여우』이사야 벌린, 애플북스  
     

    그렇다면 톨스토이를 “여우냐 고슴도치냐”라고 묻는 이사야 벌린 자신은 여우일까 고슴도치일까? 책을 번역한 강주헌은 “전통적인 자유주의 지지자였으며, 다원주의를 신봉했다. 사회를 조직하는 문제에 단 하나의 해결책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했다”라는 벌린에 대한 평가를 인용하며 “여우형에 가깝다”라고 평한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이 책 『고슴도치와 여우』는 어떤 유형의 책일까? 책을 장식하고 있는 붉은 색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방어형의 고슴도치 경영과 공격형인 여우 경영이 적절히 조화되어야 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말씀이시다.

    이건희의 멘트가 등장하니 경제경영서? 띠지 뒤쪽에는 “당신은 여우로 살 것인가 아니면, 고슴도치로 살 것인가? 이 책은 톨스토이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당신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쯤이면 자기계발서가 될 노릇이다.

    한마디로 『고슴도치와 여우』는 겉과 속이 다르게 포장된 책이다. 카피문구나 책의 장정과 편집 스타일은 경제경영이나 자기계발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띄고 있지만 그 속 내용은 톨스토이라는 대작가의 역사관과 내면을 짧지만 깊이 있게 파헤치고 있는 인문서이기 때문이다.

    상술이 본질을 압도하고 있음이다. 형식이 내용을 앞지른다. 그것이 책을 읽는 내내 가시가 되어 찌른다. 자본주의라는 고슴도치가 여우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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