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해 다시 '팜플렛'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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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6월 23일 09: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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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해가 다시 ‘팜플렛pamphlet’을 썼다. 이번 팜플렛 역시 1980년대의 팜플렛에서처럼, 피 냄새가 진동하고,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다. 그러나 이번 팜플렛은 ‘정치 경제적’이고 ‘혁명적’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 무엇을 지향한다.

    지난해 7,8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이 끝난 직후 레바논을 방문해 전쟁이 남긴 비참한 실상을 보고하고 있는, 글과 사진 150여 장이 수록된 이번 글에서 박노해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 안에만 갇힌 관심은 마침내 자신의 진정한 소망조차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자기 자신만으로 가득한 곳에는 사랑도 선도 아름다움도 자라날 자리가 없고, 결국 진정한 자신마저 자기 안에 발 디딜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관심,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국경 너머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관심은 진정한 나 자신에게로 가는 더 넓은 길이기도 하다.”(저자 ‘후기’ 중에서)

    박노해는 전쟁 직후의 폐허를, 아니 삶의 터전이 무너져버린 곳을 슬픈 눈으로 바라본다. 그곳에는 아이들, 아이들을 잃은 어머니들, 절망 속에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의 본질도 아울러 말한다. 그의 글과 사진들은 우리 시대의 잔혹한 풍경이면서도 동시에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양심의 연대로 가는 풍경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자기 배를 띄운다”는 한 어부의 말이다.

       
    ▲ 폭격으로 폐허가 된 모습. 멀리 어슴프레하게 온전히 남아있는 부촌의 모습도 보인다.
     

    “나는 가난해도 예수와 무함마드를 내 마음의 성인이자 선배로 모시고 지금껏 어부로 살아왔습니다. 나는 못 배웠지만, 많은 고기를 잡아서 한꺼번에 부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중략…나는 지금껏 평화의 배를 띄우고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아 살아왔는데, 이스라엘은 파괴의 배를 띄우고 미국은 폭탄의 그물을 던졌습니다.”(p.51~52)

    “나는 지금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양심의 편이 되어야죠.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늘 이렇게 말해 왔습니다. 성공한 사람이라고 겉모습만 보고 인정하지 마라. 그가 무슨 배를 띄우는지를 지켜보아라. 평화의 배인지, 불화의 배인지. 그가 자기의 그물을 던져 무엇을 건지는지를 보아라. 사랑인지, 탐욕인지, 너는 공부해서 성공하고 싶거든 해라. 그러나 남에게 탐욕과 불화의 그물을 던지는 성공은 하지 마라.”(p.52~53)

    그러나 그 같은 양심의 연대의 풍경을 두고, 호사가적인 취미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것은 ‘책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다. 책 그 자체에도 전쟁과 연대 그리고 양심의 문제는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선, 팜플렛. 느린걸음 출판사는 책 뒷날개에서 매체로서의 ‘팜플렛’을 이렇게 정의한다. “인터넷은 너무 조급하다. 잡지는 깊지 않고, 책은 때늦은 진리를 말하기도 한다. 팜플렛-깊지만 둔하지 않은, 현장 지성의 새로운 출판. 지향은 대안, 포커스는 세계.”

    팜플렛은 인터넷의 뜨거운 냄비 근성, 잡지의 잡스러움, 책의 무거운 발걸음이라는 각 매체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극복하고자 한다. 곧 대중들에게 읽히는 매체로서의 유효적절한 속도와 깊이를 만들어내는 게 목표인 셈이다. 그리고 그 전략은 현장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말하는 것이다.

    1980년대의 팜플렛이 말해져야만 될 것을 어떡하든 말하고자 하는 방식, 곧 진리의 내용에 방점이 거침없이 찍혔다면, 지금의 팜플렛은 진리의 내용은 물론 화법의 적절성마저도 담보하고자 하는 두 목표지점에 하이킥을 날리고자 한다.

    한편 이 팜플렛 시리즈의 형식은 르포르타쥬reportage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사실 이 팜플렛 시리즈를 르포르타쥬 시리즈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 둘 사이의 경계는 없다. 다만 짐작컨대, 르포르타쥬의 현장성에다가 대안을 향한 발언을 아끼지 않겠다는 출판 의도에서 팜플렛 시리즈로 명명한 게 아닌가 싶다.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박노해
     

    내용이 이렇다면 형식은 어떤가. 짐작이 맞다면, 느린걸음 출판사 대표로 등재된 강무성은 편집디자인계에서 손꼽히는 명망가이다. 그는 자신의 명성에 걸맞게 표지와 본문을 포함한 책 전체를 통틀어 단순하고도 세련된 ‘그리드'(디자인에 영향을 주는 레이아웃 원리-편집자)를 일관되게 적용시킴으로써 형식적인 깊이를 확보하고 있다.

    강렬하되 억압적이지 않고, 단순하되 헐겁지 않고, 시각적이되 결코 과시하지 않는다. 명조와 고딕만 구사하고 있는 타이포그라피는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다. 쉽게 말하면 그는 자신의 솜씨를 굳이 드러내 과시하려 들지 않는다.

    가령, 이런 비교는 어떨까? 강준만의 ‘저널룩journalook’과 비교해보면 편집에서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물론 직접적인 비교가 어려운 대목이 분명 있지만 둘을 비교하면, 강준만의 ‘저널룩’은 편집이 서툰 나머지 편집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 강무성의 ‘팜플렛’에서는 내용과 형식이 확실한 편집 원칙에서 결합됨으로써 마치 편집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편집은 자신을 숨겨야만 먹이를 낚는 거미와 거미줄의 관계와도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팜플렛의 그 같은 모범적인 측면에 한 가지 덧붙여 말할 것도 있다. 팜플렛은 이번이 두 번째로 발행된 것인데, 두 권 필자가 모두 동일인이라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필자가 박노해 혼자로 계속된다면 ‘박노해 팜플렛’이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점이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강무성의 팜플렛’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출판’으로서의 ‘팜플렛’이 그 어떤 특별한 개인을 통해서만 적용되고 평가받기 보다는, 우리시대에 유효적절한 매체 트렌드로서, 보다 확산되는 형식 그 자체로 남기를 나는 조심스레 희망한다.

    유명짜한 출판평론가들이나 출판담당 기자들은 구두선처럼 ‘트렌드’를 말한다. 그에 관한 신조어도 난무한다. 그들은 그렇게 바쁘다. 그러나 팔아먹을 아이템으로서의 트렌드만 말할 게 아니라 꼭 말해져야만 할 것을 읽히게끔 만들고자 하는 출판 철학 차원에서 트렌드를 말해볼 수는 없을까? 나는 정녕 그것이 궁금하다. 출판인들이여, ‘정신의 배’를 띄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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