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보다 선거법이 더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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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6월 08일 11: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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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진 변호사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 또다시 말이 많다. 혼자서 네 시간 동안 연설했다는 이 자화자찬식 연설의 백미에 대해서는 굳이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나라당이 선거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중앙선관위는 일단 선거중립의무 위반으로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선거중립 의무는 처벌조항이 없는 다분히 선언적인 조항이기 때문에 대통령과 같은 고위 공직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처벌조항이 있는 사전선거운동 금지와 유사기관설치에 대해서는 모두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선관위 판단 현행법 신중 해석 결과

    선관위의 판단은 현행법을 신중히 해석한 결과라고 일단 평가할 수 있다. 현행법 상 사전선거운동은 선거기간 전에 “당선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라고 정의되어 있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한나라당의 낙선 또는 당선을 거명하지 않은 노무현에 대해서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은 틀린 해석은 아니다.

    ‘참평포럼’에 대해서 유사기관이 아니라고 한 것 또한 무엇보다도 ‘참평포럼’이 현재 대선후보 중 특정인의 선거운동을 위한 조직은 아니라는 점에서 유사기관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는 사전선거운동보다 훨씬 넓은 개념으로 공무원이 선거와 관련하여 특정 후보 내지 정당에 유불리한 발언을 하는 경우에는 선거중립 의무에 위반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적 해석에 무관하게 한 번 근본적으로 던져보아야 할 의문이 있다. 현재 아마도 국민의 한 70% 정도는 특정 정당의 후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현 집권세력이 다시 재집권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과 한나라당이 집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다 합치면 못해도 70% 정도는 되지 않을까한다. 문제는 70% 정도에 이르는 국민이 생각하고 있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였다고 하여 그것을 과연 위법으로 규정하는 현행 선거법이 타당한가이다.

    대통령 정치적 견해 표명 법으로 막는 것은 잘못

    물론 보통사람의 견해 표명과 대통령의 견해 표명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선거법은 대통령에게만 무거운 의무를 지우고 있지 않고, 모든 공무원에게 선거중립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일반 국민 모두에게 사전 선거운동을 하지 말도록 동등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따라서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9급 공무원이 공개석상에서 노무현과 동일한 발언을 한 경우에는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 위반이고, 9급 공무원이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징계 받을 수도 있고, 일반 국민도 한나라당이나 열린 우리당은 절대 찍지 말자라고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면 사전선거운동 위반으로 처벌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 낙선을 위해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하여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거나 국가예산을 사용하였다면 당연히 문제는 달라지고 이에 대해서는 당연히 제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였다면 이것을 과연 법으로 금지할 수 있을까. 필자는 금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대통령이건, 20세의 청년이건, 100세의 노인이건 간의 그 견해는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그것이 다수결의 원리이자 보통선거권에 내재되어 있는 핵심적인 철학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무능과 오만은 아마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표명을 위법으로 볼 수밖에 없는 현행 선거법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검토해 볼 때가 되었다.

       
    ▲ 노무현 대통령이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21세기 한국, 어디로 가야 하나’를 주제로 참여정부평가포럼 월례강연을 하고 있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야당에 대한 극단적 탄압과 정당이 주도한 극단적인 혼탁선거가 지배하던 시절에 대한 반성으로 만들어진 현행 선거법이 현재와 같이 누구나 거리낌 없이 의견표명을 하는 시대에 부합한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미 몇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많은 네티즌들이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처벌받은 바 있다. 그것이 허위가 아니라면 선거운동기간 전에 한나라당, 열린우리당의 후보, 중도통합민주당, 민주노동당의 후보 중 어느 누가 당선되어야 한다거나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견해 표명이 과연 왜 금지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할 때다.

    허위 사실 유포 아닌 한 ‘입’을 해방시켜라

    그토록 혼탁선거가 걱정되어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아야 한다면 고대 그리스처럼 차라리 선거를 하지 말고 추첨을 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기이한 선거법 때문에 법원에서는 기이한 해석이 속출하고 있다. 도의원으로 출마한 자신의 남편을 잘 부탁한다고 동네 약국에서 이야기한 경우, 약을 사러 간 김에 이야기가 나와서 한 것이지 선거운동이 아니라고 판단한 법원의 판결은 정말로 기이하다.

    같은 이야기를 하였는데도 약을 사러 가서 이야기 하면 사전선거운동이 아니고 그렇지 않으면 사전선거운동이라는 이 기이한 해석은 상식과는 전혀 무관한 기준이다.

    또 다른 예로 선거운동기간 하루 전에 국회의원 후보자가 자원재생화 시설을 주민동의 없이 설치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이 낙선하더라도 이를 막겠다고 말한 것이 과연 금지되어야 할 일이고, 의원직을 상실(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 경우-편집자)시킬 만큼 중대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선거 때는 허위사실이 아닌 한 입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건 일반시민이건 국회의원 후보자이건 간에 말하는 것을 막지 말라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결국 주권자인 국민이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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